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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59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1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59화

58화. 누명과 음모

 

 

 

 

어둠이 찾아와 정천맹이 고요로 물든 시간.

청초각에 환하게 불이 밝혀지고 학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되었다.”

사도련에서 전해진 소식을 받아 든 제갈휘문의 얼굴이 희열로 물들었다.

잔마와 편살원.

그리고 환영곡의 존재.

소청에 의해 그들의 존재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마천이 정사의 무림에 암약하고 있다는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막 그들을 꼬리를 잡았으나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놈들이 언제 꼬리를 잘라 내고 숨어 버릴지 모를 일이다.

서둘러 정천맹 예하 세력들에게 마천에 대해 공표하고 그들의 세작을 축출해야 했다.

하지만 마천으로 의심되는 남궁천세가 맹주가 되어 정천맹을 장악해 나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지금의 정천맹에 그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일단 원주님을 만나야 한다.”

원로원주를 움직여 감찰단을 구성해야 했다.

“흑비!”

“예.”

“지금 즉시 정천 인근에 활동하는 비마대를 집결시켜라! 원주님의 지시가 떨어지면 원로원의 무인들과 함께 곧장 남궁가를 친다.”

“알겠습니다.”

“청초각의 현학들은 지금 즉시 마천과 관련된 조사를 모두 분류해라. 각 파의 수장들이 소집되는 즉시 조사한 모든 것을 드러낸다.”

“예, 군사님!”

청초각의 학사들에게 명을 내린 제갈휘문은 그동안 조사해 온 결과를 가지고 원로원으로 향했다.

 

“원주님!”

“응? 이 밤에 네가 어쩐 일이냐?”

늦은 시간 제갈휘문의 방문에 분재를 손질하고 있던 방유현이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부탁?”

“예. 시급한 부탁입니다.”

“귀찮게시리…….”

하지만 제갈휘문의 얼굴이 너무도 급해 보였기에 방유현은 표정을 굳히고 분재를 밀어 놓았다.

“무슨 일이냐?”

“사도련의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흠, 그래. 마천이라는 자들이 암약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래전 네가 말했던 것들이 모두 사실이더구나.”

“원로원을 움직여 주십시오.”

“원로원을?”

“지금 즉시 감찰단을 편성해야 합니다.”

“뭣이?”

감찰은 원로원의 고유 권한이다.

하지만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드러난 정황이 명확하다면 모를까, 구파와 무가들의 어느 누구도 감찰을 반기지 않는다.

자칫 제대로 조사가 되지 않으면 반발을 불러 모두와 척을 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것이 제갈휘문이나 원로원주 방유현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였다.

“휘문, 감찰단을 편성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고는 있겠지?”

“예.”

“음, 네가 허투루 말할 리는 없으니……. 좋다. 어느 곳이냐?”

고개를 끄덕인 방유현의 말에 제갈휘문이 자신이 가져온 서책과 자료들을 늘어놓았다.

굳은 얼굴로 서책을 읽어 내려가던 방유현이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폭마, 폭멸마동.

환마와 환영곡. 종남파의 세작들.

“이, 이게 다 사실이란 말이냐?”

“예. 사실입니다.”

“으음……. 이리되면 정천맹 예하 모든 가문과 문파를 감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너무나 방대했고 너무나 상세했다.

“일단 시급한 것은 남궁가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남궁가가 마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이 확실합니다. 조사를 해 보아야 알겠지만 현 맹주 남궁천세가 그들의 주인인 환마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 그가…….”

“예. 누가 마천에 포섭되었는지 확실하지 않기에 따로 무인들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원주님께서 결단만 내려 주시면 됩니다.”

“…….”

방유현은 주저했다.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제갈휘문이 조사해 온 것이 사실이라면 좌시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이, 이걸 어찌 알았느냐?”

“실은…….”

제갈휘문은 묵영단의 존재에 대해 방유현에게 털어놓았다.

“허!”

방유현은 갈수록 놀란 표정이었다.

“대단하구나.”

“아닙니다. 오랫동안 꼬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되었다. 내 어찌 탓하겠느냐?”

방유현이 한숨을 내쉬며 품에서 원주의 문양이 찍혀 있는 패를 꺼냈다.

“남궁천세는 원주께서 맡아 주십시오. 저들이 정천맹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고는 하나 원로원의 무인들이 움직인다면 감히 반항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냐, 알겠다. 그런데…….”

“…….”

방유현이 패를 건네지 않는다.

“한데 너의 조사에 한 가지 잘못된 사실이 있다.”

“예?”

뜨끔.

순간 몸이 뻣뻣해졌다.

“원주님?”

그리고 방유현의 얼굴이 변했다.

온화하던 두 눈에 사악함이 깃들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제갈휘문, 역시 대단해.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이야.”

“…….”

제갈휘문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어째서?

“내가 맹주가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인 줄 아느냐?”

“…….”

“흑선, 아니 개방을 장악해 너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너는 잘도 우리의 꼬리를 잡더군.”

“원……. 숙부, 설마?”

“따로 조직을 만들어 두었을 줄이야. 예상치도 못했어.”

“…….”

“너의 눈을 속이느라 꽤나 고생했지. 그럼에도 나에게 모든 것을 말해 주지 않더군.”

“허…….”

허탈해졌다.

“후후, 네게 어찌 누명을 씌워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네가 먼저 움직여 준 덕분에 무척이나 쉽게 되었구나.”

“…….”

“청초각 내에 숨겨진 또 다른 조사기관의 존재. 그리고 네가 지난 십 년간 정천 예하의 모든 문파를 캐고 다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들이 어찌 생각할까?”

“…….”

“그리고 현 무림맹주의 가문을 습격하기 위해 무인들까지 준비하고 있다면?”

제갈휘문의 눈동자에 허망함이 떠올랐다.

아무도 믿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 * *

 

정천맹 대전각.

의기천추(義氣千秋).

‘정의로운 기개를 오랫동안 잃지 말자’는 뜻을 가진 현판 아래로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정천의 거인들이 모여 있었다.

원로원주 방유현, 구파의 장문인들과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개방의 대방주 취선개.

당가를 제외한 오대 무가와 강남 칠패의 주인들, 정천맹 일부일각삼단일선의 수장들.

“군사가 어찌…….”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무슨 증거로 내 아들이 어찌 마천과 결탁했다는 것이오?”

제갈무성의 얼굴에 은은한 노기가 어렸다.

“지난밤, 맹의 인근에서 소란이 있었소. 창검으로 무장한 수백의 인물이 맹의 외곽에서 대기 중이었소.”

“…….”

“다행히 여기 호법부장께서 영민하게 움직인 덕분에 그들을 제압할 수 있었고, 심문해 본 결과 마천의 인물들임이 밝혀졌소.”

남궁천세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살수들의 기술을 익힌 그들은 누군가의 명령을 기다리며 정천맹을 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소.”

“닥치시오! 설마 그 명령을 내린 자가 내 아들이란 말이오?”

“나도 믿고 싶지 않았소.”

“…….”

제갈무성이 눈을 씰룩거리며 남궁천세를 노려보았다.

제갈무성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제갈휘문, 그는 그저 군사라고 표현될 사람이 아니었다.

지난 십 년간 정천을 위해 그가 해 온 헌신은 무림의 명숙들마저 존경해 마지않는 업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반응을 예측하기라도 한 것인지 남궁천세의 얼굴은 여유롭기만 했다.

“지금부터 그 증거를 보여 드리지요.”

남궁천세의 눈짓에 남궁천위와 호법부의 무인들이 묵영단의 현학들을 끌고 들어왔고, 어마어마한 양의 서책들이 회의장 안으로 쏟아부어졌다.

“지난밤 제갈휘문을 심문해 찾아낸 것들이오. 이들은 청초각에 은밀하게 만들어진 밀실에 있던 자들입니다. 그리고…….”

남궁천세가 천천히 걸어 서책들 중 하나를 골랐다.

“곤륜에 대한 내용이군요.”

서책을 받아 든 곤륜파의 장문인의 눈동자가 거칠게 떨렸다.

“소림, 무당, 종남…….”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제갈무성의 얼굴은 점점 더 일그러졌다.

각 파와 세가의 주인들은 남궁천세로부터 자신들을 기록해 둔 서책을 받아 들었다.

너무도 상세했다.

오히려 자신들이 모르는 부분까지 적혀 있었다.

제갈무성마저도 아들 제갈휘문이 의심될 내용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정천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습니다. 하나 ‘마천’이라는 희대의 적을 맞이한 지금 한 치의 오해도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본 맹주는 당금의 상황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마천과 관련된 일을 중점적으로 처리할 감찰단을 구성하고자 하는데 어떠신지요?”

감찰단이라니?

아예 대놓고 정천맹의 모든 문파를 수사하겠다는 말이었다.

“감찰단으로 정천의 모든 세력들을 조사하겠단 말씀입니까?”

“맞습니다.”

“으음…….”

매우 민감한 문제였기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본 도와 무당은 거절하오.”

“소승도 거절하겠소. 신성한 불가의 성지에서 제자들을 조사하게 할 수는 없소이다.”

무당 장문인 상명진인과 소림 방장 법혜가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

감찰을 받겠다는 것은 자파에 세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인정하는 것과 같았다.

오랫동안 무림의 태산북두로 군림해 온 소림과 무당의 자존심이었다.

“원로원도 찬성할 수 없소이다.”

전 맹주이자 현 원로원주인 방유현도 거절의 뜻을 전했다.

“뭉쳐야 할 시기에 감찰단이 각 파를 조사하면 서로간의 의심만 가중될 뿐이외다.”

방유현이 우려를 표명하자 남궁천세가 싸늘하게 웃었다.

“소림과 무당에서 반대를 하실 줄은 몰랐지만 원주님께서 반대를 하실 것은 어느 정도 예측했지요.”

남궁천세가 비릿하게 웃으며 호법부의 무인들이 포박된 죄인을 끌고 들어왔다.

“아니!”

방유현의 눈이 부릅뜨였다.

“원주께서는 알아보시겠지요?”

“…….”

방유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얼마 전 저의 뒤를 캐던 친구들입니다. 호법부의 무인들이지요.”

좌중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처음 저들을 잡았을 때 의아했습니다. 어째서 나의 뒤를 캐는 걸까? 그리고 은밀히 조사해 본 결과 그 배후에 원주께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니, 그, 그건. 제갈 군사가…….”

“그렇군요. 그 역시 제갈 군사의 부탁에 의한 것이었군요. 어쩐지…….”

방유현이 무어라 변명해 보려 했지만 오히려 제갈휘문이 마천과 결탁했다는 의심을 더욱 부추겼다.

모두가 방유현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체념한 듯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원주, 무어라 말씀을 해 보시오.”

제갈무성이 답답한 마음에 채근했다.

“미안하오. 나는 그저 휘문이 하자는 대로만…….”

“아…….”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모두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증거였다.

“군사를, 내 아들을 만나게 해 주시오. 내 직접 들어야겠소!”

제갈무성의 말에 남궁천세가 고개를 내저었다.

“제갈휘문이 마천으로 의심되는 이상 제갈세가도 조사 대상이니 만날 수 없소.”

“…….”

하늘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본 맹주는 모든 것이 명확해질 때까지 방 원주님을 원로원에 억류하고 군사 제갈휘문의 직위를 해제해 조사가 끝날 때까지 뇌옥에 감금할 것을 명합니다. 또한 감찰단을 편성해 모든 문파를 세세히 조사할 것입니다.”

남궁천세가 바라보자 방유현이 매섭게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좋소.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내 남궁 맹주의 뜻에 따르지. 하나 가감 없이 사실을 밝혀야 할 것이오. 나와 모두가 납득할 만큼 말이오.”

당사자인 방유현이 수긍해 버리자 더 이상 따질 수가 없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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