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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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50화
49화. 숨바꼭질을 시작하지
“…….”
“내가 수장이라는 말을 듣지 못했나 보지?”
“조장을 놓아줘라!”
“…….”
피식 웃던 소청이 초사의 목을 잡은 손에 힘을 집어넣었다.
“커억!”
“이놈!”
잡혀 있는 초사로 인해 비마대의 무인들이 감히 칼을 휘두르지는 못했다.
“너희들이 나를 좋아하건 말건 상관 안 해. 하지만 명령을 내리는 건 나야. 따르는 건 너희들이고. 이 간단한 체계가 싫으면 꺼져.”
“…….”
모두가 말이 없자 소청이 초사를 쳐다보았다.
탈 때문에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눈동자에는 여전히 반발심이 가득했다.
“둘째,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대가리를 빳빳하게 쳐들면 모가지를 꺾어 버릴 거야.”
순간 소청의 몸에서 뻗어 나온 살기가 스무 명의 비마대 전원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고작 그따위 실력을 가지고 나에게 반항을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무척이나 담담했지만 살기와 섞인 투기가 온몸을 짓눌러 오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혁련휘와 인간 같지 않은 비무를 펼치고도 이만한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먹잇감을 두고 눈을 부라린 범처럼 기세를 피워 올리던 소청이 초사를 모랫바닥에 던져 버렸다.
“모두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인데. 기회를 주지.”
소청이 비마대를 쓸어 보며 말했다.
“나를 이길 기회.”
“…….”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소청의 말에 모두가 얼굴을 찌푸렸다.
사도삼위 중의 하나이자 사도련의 후계와 맞먹는 힘을 가진 그를 이기라니.
마음에 들지 않는 것과 현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이 자리에 모인 어느 누구뿐 아니라 무림을 뒤져 봐도 그를 이길 수 있는 자가 몇 되지 않아 보였다.
“흥, 힘으로 우릴 눌러 볼 참인가 보오?”
초사가 제 목을 잡고 일어나며 빈정거렸다.
“누가? 내가? 그럴 생각 없는데?”
“흥, 이길 기회를 준다 하지 않았소! 그럼 당신과 싸워서 이기라는 말과 뭐가 다른 것이오? 우리 스물이 합공이라도 해서 당신을 쓰러뜨리란 말이오?”
그 말에 소청이 픽 하고 코웃음을 터트렸다.
“마치 합공하면 이길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네. 아서라. 그러다 죽어.”
“…….”
“난 지금 너희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부분에서 기회를 주는 거야.”
“무슨 말이오?”
“범위는 이곳을 중심으로 정확히 오백 장. 시간은 이각. 너희 스물 중 하나라도 찾지 못하거나 너희에게 들키면 묵영단의 수장 자리를 내놓지.”
“…….”
어이가 없었다.
은신으로 승부를 가리자는 말이었다.
은신이라는 무공은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세상의 어느 고수도 은신을 극도로 익히지는 않는다.
치졸하다 여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은 목적을 위해 은신을 기본으로 익혀 온 자들이었다.
빈정거림이 가득 담겨 있는 소청의 말에 이미 자신들의 은신이 한차례 발각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자만심이 대단하군.”
“자만? 그렇다고 해 두지. 단, 지면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거야.”
소청의 눈에 짙은 살기가 번들거리는 것은 아무도 감지하지 못했다.
“자, 시작해 볼까?”
소청의 웃음과 함께 초사와 비마대 스물이 숲으로 뛰어들었다.
“크크크. 그럼 어디 숨바꼭질을 시작해 볼까?”
열, 아홉, 여덟…… 둘, 하나.
소청은 마음속으로 천천히 숫자를 세었다.
그리고 열이 하나가 되는 순간.
픽.
그의 모습이 꺼지듯이 사라져 버렸다.
백사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숨어 있던 은수는 아름드리 고목에 숨어들어 소청을 바라보고 있었다.
‘망할 놈, 감히 우리를 무시해? 은신 대결을 하자고? 어린놈이 겁대가리를…….’
그 순간 소청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어?’
슷.
차가운 느낌이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건?’
언제 생긴 것인지 목에 옅은 생채기가 생겼다.
-흐흐흐. 네놈이 첫 번째로군. 이따 보자.
섬뜩한 전음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이거, 뭔가 잘못된 느낌이…….’
은수는 소름이 ‘쫙’ 하고 돋아 오르는 느낌에 몸을 떨었다.
불과 일각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약속한 시간의 반.
발견된 자는 스물.
탈을 벗은 비마대의 얼굴에는 당황, 놀람이 떠올라 있었고 모두가 목 어림에 손톱자국과 같은 생채기가 남겨져 있었다.
“져, 졌소.”
초사의 얼굴에 침통함이 가득 묻어났다.
“그러게, 졌네. 근데 너희들은 이미 처음부터 졌었어.”
“…….”
“내기가 시작되기 전에 내가 은신을 눈치채고 있었잖아. 그럼에도 자존심에 내기를 수락했지.”
“…….”
“흑비도 그렇고, 너희들도 그렇고 냉정은 개뿔. 도대체 무슨 훈련을 받은 거지?”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말처럼 애초에 승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삼십 장 밖에 숨은 동료까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허술해도 너무 허술해.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은 소청은 은수를 향해 다가갔다.
“그럼 이제부터 내기에서 진 대가를 치러야겠지?”
“…….”
소청이 피풍의를 벗어 휘말고 기운을 불어 넣자 반 장이 넘는 길이의 몽둥이로 변했다.
“흠, 이거 생각보다 괜찮네.”
폭마에게서 얻은 피풍의는 그 대단했던 폭혈마동의 폭발까지 막아 내는 기물(奇物)이었다.
형태가 자유롭게 변하고 기운을 불어 넣으면 그 강도가 단단해졌다.
“예?”
의아하게 쳐다보던 은수를 바라보는 소청의 얼굴에 악귀와 같은 미소가 지어졌다.
빠악!
“크악!”
빡! 빠박! 퍽! 퍽! 퍽!
“…….”
처참하기 짝이 없는 구타가 이어졌고 그 잔인함에 치를 떨었다.
내기는 내기였다.
승부에서 진 이상 어느 누구도 말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은수가 완전히 피 떡으로 변해 모래사장에 쓰러진 뒤에야 소청은 손을 멈췄다.
“이거 진짜 좋은데?”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어 놓고 제 손에 들린 몽둥이를 보며 감탄하는 모습은 오금이 저릴 정도로 잔인해 보였다.
“처음 보는 재질인데……. 아깝네. 혁련휘와 싸울 때 이걸 썼으면…….”
사람보다 물건에 더욱 심취해 있던 소청이 기운을 풀어 피풍의를 걸쳤다.
질색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비마대의 무인들을 바라본 소청이 차근하게 설명했다.
“잘 들어. 사도련에 잠입한 마천의 무리는 편살원(片煞院)일 가능성이 높다.”
우철을 통해 약간의 정보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지 못했다.
“살수들의 집단. 오로지 죽이는 것 하나만을 익혀 온 자들이다. 그런데…….”
소청이 쓰러진 은수를 지그시 바라보다 코웃음을 쳤다.
“제갈휘문이 자신하길래 내심 기대를 했었는데. 모조리 쓰레기였어.”
비마대 무인들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지금 실력으로 갔다가는 뒤를 잡기도 전에 모가지가 날아가겠군. 이따위 실력으로 마천에 대비하겠다니. 정말 웃기지도 않아.”
소청은 그들을 철저하게 비웃었다.
“모두 잘 들어. 앞으로 매일 밤. 매일 낮. 나를 적으로 생각하고 암습해도 좋다. 어떤 장소, 어떤 상황에 있어도 상관하지 않겠다. 너희들 중 단 한 놈이라도 나에게 발각되지 않는다면 훈련을 끝낸다.”
“…….”
“그때까지는 어떠한 임무도 없다. 그리고 그때까지 나에게 제일 먼저 발각되는 놈은 지옥에 가는 게 좋다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거야.”
싸늘하게 걸린 미소에 비마대의 무인들이 오한을 느끼듯이 몸을 떨었다.
“뭐 해? 알아들었으면 꺼져.”
비마대의 무인들은 은수를 부축하고 독기 가득한 눈으로 소청을 노려보다 모습을 감추었다.
그들의 기감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 소청은 모래사장에 좌정하고 앉았다.
혁련휘와의 싸움에서 소모한 내공을 회복하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잔마의 편살원, 암살자들의 집단. 그들이 사도련에서 활동하고 있다면 주요 무인들을 노릴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겪어 온 마천의 무인들을 떠올렸다.
폭마의 수하들은 약했다.
폭뢰를 다루는 것이 더 중요했던지 고작해야 일류 무인의 수준이었다.
환영곡이라는 곳의 무인들은 정종의 무공을 익히고 있었고 타인으로 위장하기 위해 제 얼굴마저 망가뜨려 놓았다.
‘결국, 편살원이 필요한 인물을 죽이면 환영곡의 인물이 대체자로 활동한다, 는 것이겠지.’
소청은 종남파의 혁세기와 그의 수하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분명 환영곡의 무인들에게 사도련에 숨어든 잔마와 합류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환영곡이 이동했다면 조만간 대체자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곧 편살원의 움직임이 시작되겠지.’
편살원이 움직인다면 사도련의 주요 직위자가 대상일 가능성이 높았다.
사도련 예하의 거대 세력만 해도 스물을 넘는다.
더욱이 본거지에 모인 무인들까지 합치면 수를 헤아리기도 힘들었다.
혁련휘에게 부탁을 해야 할 일이었지만 아직 때가 이르다.
결국 비마대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비마대로는 암살자는커녕, 환영곡의 대체자조차 상대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들을 완전히 훈련시킬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무공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겨우 이용 가치가 높은 장기판의 졸(卒)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졸들에게 소청이라면 가장 빠르고 확실한 힘을 줄 수 있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가장 잘 익히고 있는 것이 자신이었으니까.
은신 능력.
그것이라면 그들의 역할에서 단기간에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고 적을 감시하는 데 최대의 효과를 발휘시킬 수 있었다.
그때까지는.
‘협상단이라……. 뭐, 사도삼위 중의 하나인 섬뢰라면 편살원이 충분히 노릴 만하지. 섬뢰 본인이든 그와 관계된 자들이든.’
소청은 섬뢰를 찾아가 볼 생각이었다.
* * *
비마대와 헤어진 소청이 초옥으로 돌아온 것은 이른 아침이 시작될 묘시 초였다.
“어? 강변에서 잔 거야?”
막 일어난 혁련휘가 물었다.
“뭐 생각할 것도 있고.”
“수하들인가? 은신 솜씨가 제법이던데?”
“제법은.”
“충분하지. 내가 아니면 눈치챌 수 없을 만큼 뛰어나 보였는데.”
“멀었다. 나는 몰라도 너에게 감지될 정도면.”
“…….”
혁련휘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보다 고개가 젖혀지도록 웃었다.
“하하하! 이 친구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어이가 없었지만 소청의 표정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뭐야? 진심인 거야?”
“그래. 필요하면 눈치채지도 못하게 자네의 등 뒤에서 칼을 꽂게 만들 생각이거든.”
“…….”
소청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흠,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꼭 진심 같잖아. 절친한 벗에게 그 무슨 잔인한 말을…….”
절친한 벗?
만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소청의 말은 진심이었다. 마천을 없애기로 마음먹은 이상 방해가 된다면 가족을 제외한 그 어떤 이라도 죽일 생각이었다.
“무슨 살수라도 키울 모양이군.”
“그럴 생각이야.”
“허, 자네가 수장이라면 천하제일의 살수단이 되겠군. 이유가 뭐야? 지금도 충분히 강하잖아.”
소청이 혁련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혁련휘.
언젠가는 마천에 대해 알게 될 인물이었다.
사도련의 선봉에서 그들과 싸워야 했다.
이미 비무를 해 보았고 처음부터 ‘천뢰충파’를 사용해 강공으로 밀어붙여 보았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당태위나 폭마에게서 느꼈던 마기는 없었다.
‘그래. 어차피 알게 될 것이면 미리 알려 주는 게 낫겠지. 그가 함께한다면 사도련이라는 든든한 우군이 생길 테니까.’
마천과 싸우기로 마음먹은 이상 수많은 우군이 필요했다.
얼마만큼의 세작들과 마천에 동조한 세력들이 있을지 모를 정천맹은 제갈휘문과 함께 완전히 뒤집어 놓아야 했다.
하지만 사도련이라면 달랐다.
처음에는 위도혁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종이 산서를 갔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그였다.
정천 최고수인 검존을 꺾었으니 다음은 위도혁일 터였다.
그러다 운 좋게 혁련휘를 만났고 그와 연을 맺을 수 있었다.
그가 함께한다면 사도련의 영역에 숨어든 마천의 인물들을 손쉽게 뽑아낼 수 있을 듯했다.
운이 좋다면 잔마라는 마천의 주구를 만나게 될지도 몰랐다.
“혹, 마천이라고 들어 보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