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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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43화
42화. 꽃은 가장 화려할 때 꺾인다
소청은 당태위와의 결전이 이 싸움을 끝낼 수 있는 열쇠라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가 새롭게 얻은 힘이 무엇이든지 무너뜨릴 것이라 다짐했다.
휘우우우.
호흡이 안정되었다.
비어 버린 단전에 기운을 채우고 미려의 기운을 역행시켜 태극을 만들었다.
일순간 그의 몸에서 일어난 기운의 파동이 사방으로 휘몰아쳐 나갔다.
‘남은 기운은 여섯. 천뢰충파는 세 번.’
소청의 눈이 매섭게 가라앉았다.
그의 시선이 당태위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오십 장.’
그리고 단전에 모인 기운을 모조리 창대에 실었다.
우웅!
창대가 거칠게 떨려 왔다.
패월과는 달랐다.
통짜 한철로 만들어진 소강의 ‘월령’은 이미 한 번의 천뢰충파를 사용했음에도 전혀 무리가 없어 보였다.
“하아압!”
온 힘을 집어넣어 던진 창이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며 쏘아졌다.
트드드득!
창이 나아가는 길의 모든 것을 뜯어 발겼다.
콰앙!
당태위에 의해 후려쳐져 비껴 나간 창이 온량거를 터트려 버렸다.
갈가리 찢긴 아비의 시신은 안중에도 없는지 당태위의 시선이 소청을 향했다.
창이 지나온 곳에 소청과 자신을 연결한 길이 만들어졌다.
막아섰던 당가의 무인들은 신체의 일부분이 짓뜯겨 처참한 몰골로 쓰러졌다.
“그래! 결국 네놈이지. 네놈을 죽여야만 해!”
당태위의 신형이 움직였다.
그 역시 소청이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싸움임을 알고 있었다.
피윳!
소청의 뻗은 손길에 온량거를 터트린 창이 되돌아 당태위의 뒤를 쫓았다.
콰앙!
두 사람이 내뻗은 일 장이 허공에서 부딪히며 충격파를 만들었다.
바닥에 깔린 시신은 물론 기운의 회오리에 휩쓸린 당가의 무인들이 그들의 간격 밖으로 튕겨 나갔다.
마기와 합해진 독 기운이 당태위의 움직임을 따라 사방으로 뻗어졌다.
세상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콰앙!
두 번째 격돌.
밀렸다.
단전의 기운만으로 싸운 소청이 열 걸음을 넘게 밀려났다.
하지만 당태위는 멈추지 않고 쫓아와 수십 개의 독장을 뿌려 내었다.
당태위의 내공은 얼마 전 싸운 폭마만큼이나 강했다.
소청이 피한 자리를 채운 독장이 닿는 모든 것을 녹여 버렸다.
당가의 무인들은 제 주인의 독장에 죽임을 당하고 있었지만 이미 이지를 빼앗겨 버린 터라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소청을 향해 칼을 뻗어 왔다.
휘둘러진 창에 모조리 쓰러졌지만 당태위는 그들의 죽음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쥐새끼처럼 피해 버리는 소청으로 인해 더욱 분노가 치달았고, 어느 순간 마기가 그의 뇌를 마비시켰다.
“크아아아!”
싸움이 진행될수록 강해진 마기가 그의 이지를 모조리 지배했다.
흰자위마저 완전히 사라진 그는 그저 세상에서 가장 강한 독성을 지닌 괴물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죽음과 파괴.
그 이상 그 이하의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육이라는 본능 하나만으로 소청을 뒤쫓았다.
둘의 싸움을 바라보던 멸절사태는 전장을 가득히 채우는 독 기운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 독이 얼마나 지독한지 삼십 장 가까이 떨어져 있음에도 피해를 만들어 내었다.
개중 내력이 약한 진무월창의 무인들이 독기에 비틀거리자 멸절 사태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아미타불! 모두 호흡을 멈추고 독기를 피해 물러나라!”
웅혼한 일격으로 다가오던 적을 모조리 밀어 버린 그녀의 외침이 전장을 가득 채웠다.
“사태! 안 됩니다. 형님을 어찌 홀로!”
소강이 반발했다.
“이 공자. 우리가 끼어들 싸움이 아니네. 지금은 진가의 무인들을 먼저 챙기세. 이곳에 더 있다가는 독기로 인해 피해만 더욱 커질 것이네.”
“…….”
소강은 찡그린 얼굴로 진가의 무인들과 고전하고 있는 소청을 바라보았다.
으드득.
어금니가 거세게 갈렸다.
삐이익!
결국 호각성이 전장으로 울려 퍼졌고 무인들이 또다시 물러났다.
피해가 더 커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지만 홀로 남겨진 소청을 바라보는 소강의 눈동자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콰앙! 콰아앙!
천지가 요동치듯이 뒤흔들렸다.
둘의 싸움이 계속될수록 당가의 피해는 더욱더 심해져 갔다.
소청의 손보다 당태위에 의해 죽어 가는 숫자가 더 많아졌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오로지 소청만이 담겨 있었다.
파앙!
창대의 중단에 당태위의 주먹이 닿았고 소청의 몸이 주욱 하고 밀려났다.
독 기운은 자신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하지만 단전의 기운만으로는 그의 내력을 막는 것이 어려웠다.
결국 하나의 내력으로는 그를 멈출 수가 없었다.
우우웅!
소청은 두 번째 태극을 만들어 창대에 싣고 쏘아져 오는 당태위를 향해 뻗어 냈다.
창날의 속도가 공간을 뛰어넘을 정도로 빠르기도 했지만 마기에 취해 버린 당태위는 피할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꽈과과광!
소청의 창극에 서린 기운이 휘둘러진 당태위의 주먹과 부딪치며 세상을 뒤흔들었다.
여름날 폭풍처럼 퍼져 나간 충격파가 거대한 원형을 이루며 닿는 모든 것을 부숴 놓았다.
“우에엑!”
허공에 떠 있는 때문인지 당태위의 신형이 십여 장이나 날아가 처박혔고 일어난 그는 검은 핏물을 토해 내었다.
하지만 그의 마기는 더욱더 거세졌다.
흘려 낸 핏물이 허연 증기가 되어 피어올랐다.
증혈(蒸血).
피가 태워져 기화했다.
진원(眞元)의 기운.
생명을 가진 모든 만물이 가진 근원적인 힘마저 태워 올린 당태위는 남아 있는 생명력을 모조리 쏟아 붓고 있었다.
“크으으으…….”
짐승처럼 낮게 으르릉거리며 온몸에서 핏빛 증기를 피워 올렸다.
원독에 사무친 그의 붉은 눈이 소청을 향했다.
“크아아아!”
그에게 더 이상 사람으로서의 무언가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곁에 있는 모든 것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것이 건물이든 나무든 당가의 무인이든…….
그를 바라보던 소청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피었으되 시체의 양분을 흡수했고, 피었으되 썩은 고기 냄새를 풍기는 시체 꽃처럼 놀랍긴 해도 아름답지 못했다.
이제는 소청이라는 목표마저 잃어버린 그는 더 이상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저 잔혹한 살인마일 뿐이었다.
소청은 천천히 창을 뒤로 잡았다.
그에게 죽음을 선사해 주어야 할 시간이었다.
증기처럼 피어오르는 그의 피가 사그라질 때 생명력마저 잃어버리겠지만, 그 처절하고 더러운 화려함이 사라지기 전에 꺾어 버려야 했다.
휘오오오…….
세 번째 태극.
단전이 요동쳤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파하학!
지면이 파헤쳐지고 소청이 당태위를 향해 날아갔다.
창대가 곧게 뻗어졌고 창극은 당태위의 심장을 꿰뚫었다.
하지만 당태위는 멈추지 않았다.
심장에 창이 박힌 당태위의 두 손이 독 기운을 머금고 뻗어져 나왔다.
창을 놓았던 소청의 양손에 서로 다른 기운이 진득하게 모여들었다.
네 번째 태극.
또다시 단전에 고통이 밀려들어 왔다.
투두둑.
귓가로 몸속의 잔근육들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역류해 목구멍으로 치솟아 오르는 피의 비릿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단번에 끝을 맺어야 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너무 많은 이들이 이용되었다.
뒤를 생각하지 않았다.
버틸 수 있다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 단숨에 끝내 버리고 싶었다.
‘이것으로 악연은 끝이다!’
소청이 기운이 응축되어 모인 양손을 당태위를 향해 뻗었다.
두 사람의 손이 마주 닿았다.
쩌어어엉!
피육으로 이루어진 손에서 벼락이 암벽을 쪼개 놓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충격파가 폭풍이 되어 몰아쳤다.
부서진 잔해들이 바람을 타고 쓸려 나갔고 주위에 있던 당가의 무인들을 모조리 집어삼켜 버렸다.
“크으억!”
당태위가 끊어진 연처럼 날아올랐다.
그리고 마기마저 모조리 소진해 버린 당태위의 머릿속이 맑아졌다.
만독해를 이루어 오존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생각일 뿐이었다.
그리 보였을 뿐이었다.
완벽하게 패했다.
어떻게 싸웠던 것인지 과정이 떠오르지 않았다.
수년 동안 매달렸던 만독해는 소청을 뛰어넘지 못했다.
아비를 죽였고 식솔들의 목을 베며 진격했다.
승리를 장담했다.
이길 수 있다면 악귀가 되고자 결심했다.
하지만.
털썩.
당태위의 몸이 바닥에 떨어졌다.
“크으……!”
두 손으로 땅바닥을 짚은 당태위가 울컥거렸지만 더 이상 피는 토해지지 않았다.
이미 모두 타 버렸으니…….
슥.
차가운 한기를 머금은 창대가 그의 목을 겨누었다.
태양 빛을 가리고 선 컴컴한 그림자.
소청이었다.
“흐흐흐.”
당태위의 흐려졌던 눈이 선명해졌다.
회광반조(回光返照).
꺼져 가는 불꽃이 마지막으로 타올랐다.
정신이 돌아온 당태위는 잔인한 미소와 함께 소청을 바라보았다.
“졌군.”
하지만 놈도 무사하지 못하리라.
죽음을 목전에 두었지만 상관없었다.
이제 독이 놈의 전신을 침범해 녹여 버리리라.
적어도 저승길 동무는 만들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확신했다.
그런데.
“당태위. 너와 나, 당가와 진가는 정말 더러운 악연이구나.”
“…….”
믿을 수가 없었다.
소청은 너무도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마, 만독……불……침?”
생각지 못했다.
“하아, 만독불침이라니……. 결국 너와 나는 상극이었어.”
왠지 마음이 편해진 당태위의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완벽한 패배.
잘못된 길임을 알고도 걸었다.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임을 알고도 선택했다.
역천은 곧 진마(進魔)의 술법임을 알고서도…….
결국 자신의 죽음과 함께 진격했던 당태위의 당가는 진소청이라는 무인 앞에서 무너졌다.
스걱.
베였다.
느리고 잔인하게.
모든 것이 끝났다.
살아남은 잔당은 얼마 되지 않았다.
소청에게 죽은 이들보다 당태위에게 죽은 이들이 더욱 많았다.
소청은 물끄러미 눈을 감지 못한 당태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천.
두고 볼 수 없게 되었다.
또 일어날 일이었다.
언제고 또다시 제 놈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누군가를 이용하고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 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천 비고만을 찾으려 했다.
무림?
평화?
그딴 건 전혀 상관없다 생각했다.
진가라는 곳에서 다시 태어났을 때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가족이란 존재를 가져 보지 못한 그에겐 거추장스러운 장식일 뿐이었다.
살면서 누군가를 돕고, 누군가를 생각하고, 또 누군가를 위하며 살아 보지 않은 시간은 그를 외롭게 만들었다.
다시 돌아온 삶에서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얽히고설키며 ‘정(情)’이라는 것이 생겼다.
고지식하지만 귀여운 동생이 생겼고, 근엄하지만 두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부모가 생겼다.
숙부가 생겼고 함께 웃으며 떠들어대는 동료가 생겼다.
소청은 차츰 지켜 나가고 있었다.
자신의 주위에 둘러쳐지기 시작한 울타리, 그 안에 품고 있는 이들을 지켜 나가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결심했었지. 하나씩 찾아서 모조리 네놈의 곁에 보내 주겠노라고. 무림의 평화? 그딴 것과는 관계없어. 그저 소강이 살아가야 할 곳과 진가가 있어야 할 곳이니까 지키는 것뿐이야.’
자신도 모르게 그의 울타리는 더욱더 커져 가고 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