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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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42화
41화. 정말 더러운 악연이구나
간양이 무너지고 있었다.
대학살.
간양의 초입에 들어선 당가는 닥치는 대로 죽이고 부쉈다.
“죽여라. 진가와 관련된 자들은 모조리 참하라.”
온량거를 앞장선 당태위의 눈동자는 완전히 검게 물들어 칙칙한 어둠을 뿌리고 있었다.
당태위의 손길은 겁먹고 물러나는 자신의 식솔들마저 용서하지 않았다.
피와 살육의 현장이 두려워 떨고 물러나던 무인들은 그의 손에 죽었다.
온량거가 지나간 자리는 앞으로 당구독의 혼백이 가야 할 지옥의 발자취 같았다.
살육의 피 맛에 취해 버린 당가의 인물들은 점차 눈에서 귀기를 토하며 스스로 검을 휘둘렀다.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자는 없었고, 어느새 귀기가 눈동자를 지배하고 있었다.
흐흐흐…….
모조리 죽이고 물어뜯어라.
사천이 피로 물들 때까지.
이곳이 지옥이 될 때까지.
당태위를 도운 의문의 인물은 영여에 올라타 희뿌연 연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옅은 연기는 바람에 따라 퍼지고 퍼져 당가의 인물들의 호흡과 함께 그들의 귀기와 잔혹함을 부추겼다.
‘키히힛! 이만하면 되었다. 나머지는 당가의 꼬마 놈이 알아서 해 주겠지.’
진한 피 내음을 느끼던 그는 음산한 웃음을 남긴 채 사라졌다.
하지만 살육에 취해 악귀가 되어 버린 당가의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못했다.
* * *
“이런 잔혹한!”
쌍장으로 십수 명을 후려쳐 낸 멸절사태가 노성을 뱉어 내었다.
개방의 전언에 의해 깨어진 연회의 끝자락은 그들을 참혹한 전장으로 안내했다.
피윳!
암기를 쏘아 내던 무인을 제압해 꿇렸지만 무언가에 취한 듯 제 팔을 뜯어내고 빠져나와 단도를 찔러 왔다.
‘마혈을 짚었거늘!’
하지만 아무리 간악한 무리라 해도 불자인 그녀가 함부로 살계를 열 수는 없었다.
스걱.
막 제압하려는데 소청이 검으로 목을 날려 버리며 다가와 그녀의 옆에 섰다.
멸절사태가 아미, 청성의 무인들을 규합해서 당가를 막아 내는 동안 소청은 간양의 사람들을 진가로 피신시키고 온 참이었다.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켰습니까?”
“예. 세가로 모두 이동했습니다. 대족장이 운남의 무인들과 함께 지키고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하나 벌써 죽은 이들이…….”
안타까워하는 그녀의 말에 소청이 싸늘하게 전방을 바라보았다.
멸절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아미와 청성이 당가의 무인들을 막아 내었고, 흑비와 소강이 합세했지만 수적 열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도사들의 검은 부러졌고 비구의 승복이 갈가리 찢어졌다.
“끄아악!”
도사 하나가 고슴도치처럼 암기에 꿰여 비명을 내질렀다.
뒤이어 수십 개의 검이 몸속을 헤집었고 갈가리 찢겨 나갔다.
진무월창의 무인들도 다르지 않았다.
소강이 평소보다 뛰어난 힘을 보이며 선전했지만 모든 피해를 막아 낼 수는 없었다.
“모두 이지를 상실한 것 같습니다. 어찌 이런…….”
“…….”
비슷한 느낌이었다.
검존에게서 느낀 마기와 동일했다.
오래전이라 잊고 있었던 마천의 기운이 그들에게 있었다.
‘마기.’
전장에 퍼져 있는 진득한 마기가 옷을 뚫고 피부에 진하게 전해져 왔다.
‘개새끼들…… 결국 당가에도 네놈들의 손길이 뻗쳐 있었단 말이지.’
소청이 턱 언저리에 잔근육이 잡히도록 어금니를 깨물었다.
폭마와의 싸움.
바로 앞에서 터져 나가는 아이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 저주받은 술법을 위해 얼마나 많은 아이가 희생되어야 했을지 여실히 알고 있었다.
그의 목표는 점차 비고에서 ‘마천’ 그 자체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오냐, 너희들이 걸어온 싸움이다. 감히 당가를 이용해 진가를 치려 했단 말이지. 처음으로 가져 본 가족이라는 느낌을 내게서 뺏어 가고자 했단 말이지.’
소청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와 투기가 피어올랐다.
물경 이천에 이른다 했다.
과거 당가의 수백과 싸웠을 때 여덟 독맥의 힘을 모조리 끌어내었다.
그럼에도 복부에 두 번의 칼을 맞았고 열흘을 정양해야 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이곳이 뚫린다면 다음은 진가였다.
아무리 빨리 움직인다 해도 포위한 적을 모조리 막을 수는 없을 터.
피해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소청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
“사태.”
“…….”
“무인들을 이끌고 모두 물러나 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들의 수가 보이지 않습니까? 이 길목을 막지 못하면 곧바로 진가입니다. 지금의 수로는…….”
“괜찮습니다.”
소청이 희미하게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방해만 될 뿐이었다.
온 힘을 다하는 데 거치적대기만 할 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차라리 저들의 병력을 최대한 줄여 버리는 것이 좋았다.
“소강!”
소청의 외침에 선두에서 당가의 무인들을 막아서던 소강이 고개를 돌렸다.
“물러나라.”
“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한 번도 형의 말을 거역해 본 적이 없는 소강이었다.
눈앞에 칼을 뻗어 오는 무인을 후려쳐 밀어 버린 소강은 호각을 불어 진무월창의 무인들에게 퇴각 신호를 보냈다.
삐이익!
갑작스런 호각성에 진무월창의 빠져나가자 의아해하면서도 청성과 아미의 무인이 뒤따랐다.
“공자!”
승혜가 달려와 걱정스러움과 의문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소청은 그녀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어 주었다.
“창!”
소강의 월영이 던져졌다.
허공으로 솟구쳐 창대를 잡은 소청은 몰려오는 당가의 무인들 앞에 내려섰다.
손안에서 느껴지는 월영의 한기에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어쩌면 당가의 사람들은 이용당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눈가에 서린 짙은 마기가 그 사실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하지만.
“값싼 동정일 뿐이지. 약에 취했든, 섭혼을 당했든.”
우웅.
‘월영’에 단전의 기운이 모조리 담겼다.
손월식 삭월의 참살(斬殺).
언젠가 십만대산의 언저리에서 거대한 소나무밭을 통째로 베어 버린 초식이 재현되었다.
후웅!
온 힘이 담겨 부러질 듯 휘어진 창대의 궤적을 따라 반월형의 기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슈가가각!
“저, 저럴 수가…….”
소청의 말에 마지못해 물러났던 멸절사태의 눈이 부릅뜨였다.
그것은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절삭.
자른다.
라는 느낌으로 표현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영역만큼의 세상이 반으로 갈라졌다.
상하의 경계에 검은 아가리가 생겼다.
우지지직.
관도의 좌우로 늘어섰던 건물이 모조리 무너져 내렸고 분리된 시체들이 후두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파악!
지면이 파헤쳐지고 사라진 소청의 몸이 참살의 기운 너머 당가의 무인들 위에서 나타났다.
‘천뢰충파!’
태극을 이루고 두 개의 기운을 창극에 담았다.
거대한 구가 하늘 높이 떠올라 만월을 이루었다.
창대가 미친 듯이 떨어 대며 울음을 토해 내었다.
우르릉!
뇌성을 머금은 만월이 운석처럼 떨어져 내렸다.
멀리 선 이들이 선명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진한 충격이 지축을 흔들어 놓았다.
꾸우우웅!
대지가 짓눌렸다.
잔잔한 물에 작은 돌을 던져 생긴 파문이 아니라 거대한 바위를 던진 것처럼 오십여 장의 공간이 짓이겨졌다.
“후우, 후우.”
단 이 격.
두 번의 공격에 전세가 뒤바뀌어 버렸다.
소청은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앞을 바라보았다.
움직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모든 이들이 일순간 멈춘 채 소청을 바라보았다.
“…….”
멈춰 선 소청은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두 개의 기운이 태극을 이룰 때 생기던 단전의 고통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폭마의 싸움 이후로 단전이 더욱 단단해져 있었다.
자신감이 생긴 소청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단전을 포함한 기운의 수는 모두 아홉, 태극은 모두 네 번.
수가 많으니 긴 싸움이 될 터였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천뢰충파는 끝까지 아껴야만 했다.
‘모조리…… 작살내 주마!’
창대를 돌려 뒤로 잡은 소청이 발을 굴렀다.
파앙!
소청의 몸이 폭사하듯이 쏘아져 나갔다.
창대가 궤적을 만들며 춤을 추었고, 메뚜기 떼처럼 시커멓게 달려든 당가의 무인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어떻게 저런…….”
지켜보는 이들은 어떤 감탄사를 내뱉어야 할지 몰랐다.
힘.
그의 창에는 모든 것을 압살하듯 짓누르는 강대한 힘이 있었다.
그리고 춤사위처럼 아름다운 초식의 향연.
창으로 펼칠 수 있는 모든 초식들이 그곳에 있었다.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잔인하게 적을 섬멸하고 있었다.
“결국 넘었는가?”
멸절사태의 중얼거림.
그의 눈에 비친 소청은 이미 백대 고수를 한참이나 넘어 오존의 반열을 향해 가고 있었다.
멸절사태는 그의 창 앞에서 스스로가 이루었던 모든 경지를 부정당한 듯 절망감을 느꼈다.
소청의 공격 범위를 지나 넘어오는 이들은 소강과 진무월창의 무인들에 의해 진압되고 있었다.
“허, 내 안일했음이다. 아미창이 중원 일절이라 자부해 머물렀음이야. 아미타불…….”
그녀는 소청이 펼치는 창법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절망이든 희망이든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모두 들어라! 시급히 잔당을 제압하라!”
손을 놓고 구경만 할 수는 없었다.
소청이 천신과도 같은 모습으로 당가와 싸우고 있지만 혼자였다.
죽거나 전투 불능이 된 자는 고작해야 몇백에 불과했다.
무릇 아무리 높은 경지에 오른 자라 할지라도 내력에 한계가 있으니 수천의 군세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홀로 모든 곳을 방비할 수는 없었다.
소청으로 인해 적의 기세가 꺾이고 아군의 사기가 올랐으니 그가 더욱 날뛸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뒤집어진 전세를 끝까지 유지해야만 수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었다.
“아미타불!”
웅혼하게 불호를 외친 멸절이 치고 나가자 아미와 청성, 진가를 찾았던 사천의 무인들이 그 뒤를 따랐다.
소청이 헤집어 놓은 전장을 그들이 마무리했다.
전세가 뒤바뀌자 이제까지 이지를 상실한 듯이 공격하던 그들이 겁을 집어먹은 듯이 본능적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소청으로 인해 안정을 되찾은 청성과 아미가 항마의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점차 마기는 옅어졌고 당가의 무인들은 마치 범 앞에 꼬리를 내린 승냥이 떼처럼 와해되고 있었다.
무려 반나절이나 싸움이 지속되었다.
‘감히…….’
당태위는 짜증이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고작 간양의 반도 진격하지 못했다.
소청이 끼어들고부터는 아예 밀려나고 있었다.
진가가 코앞이었다.
아비의 영전에 진가의 건물을 불태우고 그 일가의 시신을 제물로 바치려 했었다.
‘진소청, 진소청. 네놈은 언제까지 나를…….’
분이 치밀수록 살심은 더욱더 끓어올랐다.
화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다.
아직 일천이 넘게 남은 무인들이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진가의 문턱조차 밟아 보지 못할 것만 같았다.
파악!
주춤거리며 물러나던 당가의 무인 서너 명의 목이 당태위의 손에 모조리 잘려 나갔다.
“누가 물러나도 좋다고 했나.”
당태위의 몸에서 뿜어지던 마기가 더욱 짙어졌다.
독기가 사방을 지배했고 그 안에 짙은 마기가 깔려 퍼져 나갔다.
“크아아아!”
물러나던 당가의 무인들은 당태위가 뿜어낸 마기의 속에 갇히자 갑자기 괴성을 질러 대며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옅어지던 마기에 다시금 힘이 돌아왔고 당가의 무인들은 이전보다 더욱 광폭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가슴이 들썩일 정도로 거칠어졌던 호흡을 가라앉힌 소청은 온량거에서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당태위를 바라보았다.
멀지 않았다.
곧 닿을 것만 같은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밀려나던 당가의 기세가 변했다.
마기는 더욱 짙어졌고 더욱 잔인해졌다.
마기 때문인지 그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힘보다 더욱 강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당태위가 있었다.
그의 두 눈에는 당가의 무인들보다 더욱 칙칙한 검은 빛이 자리 잡고 있었다.
소청은 창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당태위보다 그를 이용했을지 모를 마천에게 화가 치밀었다.
‘네놈과 나는 정말로 더러운 악연이구나. 전생에서도 후생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