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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24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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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패월진천 24화

23화. 마천 비고 (4)

 

 

 

 

소청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지어졌다.

마천이라는 이름에 반응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는 뜻이 분명했다.

“마천요?”

“예. 마천.”

“흠…….”

육지개는 고심하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듣는데요? 왕발! 넌 들어 봤냐?”

“예? 글쎄요. 마천이라는 곳은 저도 처음 듣는데…….”

소청은 그것이 거짓말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요? 이런. 개방이라면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이고 죄송합니다. 귀한 분을 헛걸음하게 했네요.”

육지개가 누런 이를 드러내 보이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뭐 그래도 일단 의뢰는 해 놓겠습니다. 십만대산에 있었던 곳입니다.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도통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소청은 전낭을 꺼내 금을 쏟아부었다.

투툭.

열 냥은 족히 넘어 보일 금덩이에 육지개와 왕발이 군침을 삼키며 시선을 고정했다.

“일단은 선금입니다. 얼마나 기다리면 될까요?”

“글쎄요. 이름이 알려진 곳이라면 열흘 안쪽이겠지만…… 아마도 한 두어 달 정도 지나야 하지 않을까요?”

“흠, 꽤나 오래 걸리는군요. 알겠습니다. 부탁드리죠. 개방의 이름을 믿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귀인. 제가 데리고 있는 아이들을 모조리 풀어서 찾아보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예.”

“한데, 함자가 어찌 되시는지?”

“…….”

소청이 육지개를 보며 조소를 날렸다.

자신에 대해 조사하려는 게 분명했다.

“거 이상하네요. 개방은 정보를 사고팔 때 신상 내력은 묻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아! 하하하.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돈 욕심에.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예. 두 달 후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예. 귀인. 왕발, 어른 나가신다. 배웅해 드려라.”

“예!”

허리를 반으로 접어 인사를 하는 육지개를 뒤로한 소청은 관제묘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성곽까지 배웅한 왕발이 돌아왔을 때 육지개는 절정 고수의 풍모를 드러내고 걸개의 수장들을 불러 모았다.

“야묘!”

“예. 단두 어른.”

“너는 나와 함께 동정호로 간다. 채비해라.”

“동정호요?”

“그래. 아마도 지금쯤이면 군사께서 대회합에 참가하시기 위해 악양루로 향하고 계실 것이다.”

“아니 전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전서구를 띄우지 않고요?”

야묘가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짓자 육지개가 매서운 눈으로 그를 걷어차 버렸다.

“멍청한 놈아! 직접 간다는 이유를 몰라서 그래?”

그만큼 비밀 유지가 필요한 일이란 뜻이었다.

전서구는 그 특성상 속도가 빠르고 개방도만이 아는 암호로 전해졌지만 누군가 볼 수 있는 요소가 많았기에, 화급을 다투는 내용이 아니라면 극비 사항을 전할 때는 잘 이용하지 않았다.

“왕발, 너는 지금 즉시 사천 지부에 전서를 띄워라.”

“사천요? 갑자기 사천은 왜?”

“…….”

육지개가 왕발을 지그시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그놈이 누군지 아는 놈?”

“예?”

걸인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아…… 이런 멍청한 것들을 지부의 수뇌로 뽑아 놓다니. 이러니 내가 출세를 못 했지. 약관의 외모에 피풍의 아래로 초승달이 새겨진 단창 봤냐, 못 봤냐?”

“그런 게 있었어요?”

“…….”

또다시 한숨이 내쉬어졌다.

“월창진당혼.”

“월창…… 진소청?”

“그래 이놈아. 얼마 전에 용모파기가 내려왔는데 안 외웠어?”

“예? 하하하.”

왕발이 멋쩍게 웃었다.

“그는 진혼창이 분명하다. 내 눈깔은 못 속이지. 딱 보면 알아. 딱 보면. 지금 즉시 사천 지부에 전서구를 띄워. 진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 진소청에 관련된 정보라면 애새끼 때 하루에 똥을 몇 번이나 쌌는지까지 조사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절대 마찰 일으키지 말고 감시만 하라고 해. 필요하면 지부의 단두가 직접 움직여서 진가의 가주와 만나 보라고 해.”

“사천 지부의 단두께서요?”

“그래. 어차피 진혼창 같은 고수가 나타났으니까 앞으로 정천맹의 중심축에 서게 될 거야. 미리 연을 맺어 두어도 상관없어.”

“예.”

“그리고 나머지는 지금부터 예하 부, 현의 걸개들을 모아서 십만대산 인근을 모조리 뒤져. 진혼창이 뭘 하고 갔는지 알아내! 밥은 뭘 먹었는지, 어디서 잤는지, 누구랑 이야기 했는지. 알았어?”

“옙!”

걸인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자, 알았으면 다들 움직여!”

육지개와 야묘, 왕발만을 남기고 걸개들이 후다닥 빠져나가자 관제묘가 금세 썰렁해졌다.

“진혼창, 도대체 어떻게 된 놈이야? 십 년 전에 없어진 마천을 조사하다니. 그때라면 제 놈이 열 살 정도 밖에 안 됐을 텐데……. 젠장, 바빠지겠구먼.”

육지개가 밖으로 나가려는데 왕발이 그의 소매를 잡았다.

“왜?”

“이거는…….”

왕발이 내민 손에는 소청이 두고 간 금덩이가 들려 있었다.

“…….”

육지개는 그 황홀한 금빛에 매료된 눈으로 바라보다 또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도대체 이게 얼마야. 망할. 잘 챙겨 둬라. 도, 돌려……줘야 하니까.”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마지못해 고개를 돌린 육지개는 야묘와 함께 길을 떠났고, 왕발은 손에 든 금을 보며 군침을 흘리다 관제묘에 세워진 관우상의 눈 부분을 눌렀다.

찰칵.

목상의 배 부분이 열리고 작은 공간이 드러났다.

“하아…….”

아쉬운 듯이 금을 넣어 두고 몇 번이고 돌아본 왕발이 밖으로 나갔을 때.

“흐흐흐.”

음흉한 웃음소리와 함께 한쪽 벽에서 스르륵 하고 엿 줄기처럼 늘어 나온 흑의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소청이었다.

성으로 돌아간 줄 알았던 소청은 잠행을 펼쳐 다시 돌아왔고 은신술을 통해 벽면에 숨어들어 모든 것을 듣고 있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지. 이 자식이 분명히 알고 있었어. 그런데 현 군사라면 제갈휘문 그 양반 아냐? 그 노인네가 뭘 좀 안다 이거지?”

소청은 천천히 다가가서 관우상의 눈 부분을 눌렀다.

찰칵.

배 부분이 열리자 품에서 자루 하나를 꺼낸 소청은 그 내부에 있는 금과 돈, 패물을 모조리 쓸어 담았다.

벼룩의 간을 빼먹듯이…….

“그나저나 사천 지부에서 조사를 한다면 꽤 귀찮긴 하겠네. 그래도 뭐, 개방과 연을 맺어서 나쁠 일은 없겠지.”

소청은 종이 한 장을 주워 글귀를 적어 두고 목상의 작은 공간에 던져 놓았다.

 

@[막야(莫夜)]

 

“동정호라…… 오랜만이군. 어쩌면…….”

소청은 천천히 몸을 돌렸고 발을 구르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 *

 

오주를 떠나온 소청은 보름 만에 동정호에 도착했다.

정천맹 대회합이 코앞으로 다가온 터라 동정호 인근을 오가는 이들은 대부분 칼을 찬 무림인이었고, 객점이며 주루는 각 세가에서 온 후기지수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여기가 처음이었지. 그 자식들 잘 있으려나?’

막야의 과거.

신투가 아닌 오래전, 스무 살이 조금 넘을 때까지 동정호에서 살았던 그는 뒷골목 부랑아였다.

‘그땐 참…….’

점소이였던 그는 인근 건달패들 중 하나에게 배수 기술을 배워 본격적으로 뒷골목 생활을 시작했었다.

손재주가 좋고 눈치가 빨라 어린 나이에도 꽤나 알아주는 배수가 되었지만, 손에 쥐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대부분은 건달패들에게 뜯겼고, 남는 것이라고는 고작 함께 커 온 부랑아들과 저녁을 먹을 정도였다.

정말이지 찢어지게 가난하던 때였다.

문득 허리께에서 묵직하게 느껴지는 전낭의 느낌에 피식 웃음이 났다.

“이 녀석들 혹시나 만나면 용돈이나 좀 줘야겠네.”

소청은 흐뭇하게 웃으면서 오래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객점을 찾아갔다.

 

차르륵.

주렴이 걷히는 소리에 객점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손님들 중 일부가 힐끗거렸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앳된 점소이가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어디로 모실까요?”

“대삼……?”

점소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소청의 눈빛이 아련하게 변했다.

“어? 절 아세요?”

소청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대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아, 아니야.”

지금의 자신은 막야가 아닌 소청이라는 걸 깨달은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이 층, 군산도가 보이는 창가로.”

“예. 이쪽으로…….”

대삼과 함께 올라간 이 층 역시도 앉을 곳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층에 오른 순간 스무 살 막야의 기억이 눈앞에 펼쳐졌다.

용소 객점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곳은 자신의 첫 일터였고 오랜 추억이 담겨 있는 곳이었다.

익숙한 얼굴들, 익숙한 풍경.

그곳엔 한 사내가 허세를 부리며 술병을 들고 있었다.

부호의 주머니를 털고 나서 친구들과 함께 영웅담을 주절거리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손님? 손님!”

멍하니 서 있는 소청을 대삼이 의아해하면서 불렀다.

“아…….”

“이쪽 자리예요.”

대삼은 사람들로 가득히 채워지고 남아 있는 두 자리 중 소청이 보고 있는 큰 탁자가 아니라 한쪽 구석에 있는 이 인용 탁자를 가리켰다.

“난 저기 앉고 싶은데?”

“예? 저쪽은 연회석인데…….”

소청은 품에서 은전 두 개를 꺼내 대삼의 손에 쥐여 주었다.

“안 될까? 저 자리에 추억이 좀 있어서…….”

“저긴, 좀 그런데……. 요새 이쪽에 손님이 많기도 하고, 음, 그럼 잠시만요. 물어보고 올게요.”

주저하는 듯하다 내려갔다 돌아온 대삼은 객점주가 여섯 사람분의 가격을 내야만 앉게 해 주겠다고 전했다.

“그래. 여기 있다.”

몇 년, 아니 몇십 년 만의 추억을 느끼고 싶었던 소청은 품에서 은원보 하나를 꺼냈다.

“너, 너무 많은데요?”

“나머진 네게 주마. 가서 거스름돈을 받으면 돌려주지 말고 네가 가지렴.”

소청이 대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대인!”

대삼은 한껏 밝아진 얼굴로 거듭 인사를 하고 뛰어내려 갔다.

부랑촌 왕씨의 다섯째인 대삼은 아비와 함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다들 잘 있겠지? 어쩌면 과거의 나를 만나게 될지도…….’

소청이 과거를 떠올리며 추억에 잠겨 있을 때, 대삼이 음식과 함께 여아홍 한 병을 들고 왔다.

“뭐 좀 물어도 될까?”

“예. 말씀하세요.”

대삼이 소청의 첫잔을 따라 주었다.

“혹시 왕철이라는 사람을 아니?”

“아, 왕철 아재요? 알죠. 인근에서는 꽤 유명했으니까요. 근데 대인께선 어떻게 아세요?”

순간 불안감이 들었다.

“유명했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얼마 전에 죽었어요. 안타깝죠. 건달패라곤 해도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잘해 주신 분…….”

왕철은 자신의 처지를 불쌍하게 여겨 기술을 알려 준 유명한 배수(소매치기)이자 동정호 부랑촌에서도 꽤나 알아주는 건달패 소속이었다.

“누가 죽였단 말이냐?”

“예? 그건 모르죠. 관에선 그냥 술 먹고 개울에 빠져 죽었다고…….”

“젠장!”

소청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술을 먹고 죽다니.

왕철은 뒷골목 배수이긴 해도 기본적인 무공과 내공을 가진 사파 소속의 무림인이었다.

그가 가진 무공이 원체 뛰어나 자신을 구했음에도 패거리들이 함부로 하지 못했다.

술을 먹고 개울에 빠져 죽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분명 누군가에 의해…….

‘그리고 그 누군가는 어쩌면…….’

갑작스러운 그의 반응에 대삼이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하면 막야는? 막야는 어찌 되었냐?”

“막…… 누구요?”

“막야 말이야. 막야.”

“막야라. 특이한 이름이긴 한데 처음 듣는데요?”

“처음? 몰라?”

소청이 놀란 눈으로 재차 물었다.

“예.”

순간 그가 추억하던 회상이 깨어져 버렸다.

대삼이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왕씨의 움막은 그가 살았던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왕래가 잦았다.

또한 지금의 막야는 왕철에게 기술을 배운 뒤 동정호에서도 꽤나 이름난 배수여야 했다.

그런데 모른다니…….

“혹 왕철 형님과 함께 다니는 사람이 없었니?”

“없었어요. 그 아재는 늘 혼자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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