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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22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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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패월진천 22화

21화. 마천 비고 (2)

 

 

 

 

소청은 주위를 세세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현수교를 지탱하기 위해 이어진 밧줄, 그리고 그를 고정하는 기둥조차 보이지 않았다.

“뭐야? 설마 여기가 아니었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나머지는 자신의 기억과 다르지 않았다.

촌장의 집이 있었고, 그 주위로 지어진 집들이 몇 가지 다른 점이 있었지만 과거의 기억과 동일한 모습이었다.

아이들의 얼굴, 곰방대에 불을 붙이며 한가롭게 담소하는 노인들의 얼굴은 달랐지만 그건 그저 거슬러 온 세월의 차이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 사냥꾼들이 주로 이용했다곤 해도 이 다리는 분명 마천의 무인들이 만든 것이었는데?”

높이가 백 장, 너비가 오십여 장에 달하는 절벽과 절벽을 이어 현수교를 만드는 것은 일반인으로는 불가능했다.

“허!”

소청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촌장 집을 향해 다가갔다.

“뉘요?”

눈이 가려질 정도로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 곰방대를 빨며 물었다.

“혹, 일만이라는 노인이 없습니까?”

“일만이? 내 아들인데?”

“아!”

그러고 보니 자신이 이곳을 처음 찾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 정도 이후의 일이었다.

자신에게 말을 건 노인은 당시에는 죽은 촌장의 아비인 모양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십만대산으로 가는 여행객입니다. 이곳에 건너편으로 가는 다리가 있다고 들었는데…….”

“다리?”

노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없어.”

“예?”

“내 장씨촌에 산 지 칠십 해인데 그런 다리는 들어 본 적도 없구먼.”

“예?”

소청은 귀를 의심했다.

들어 본 적이 없다니…….

하지만 의아함이 가득했던 소청은 이내 의문을 지우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 다리가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는 관심 없었으니까. 내가 왔던 시기가 삼십 년 후이니 그사이에 만들어졌던 모양이군.’

촌장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절벽으로 돌아온 소청은 멀리 절벽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마을을 내려가 산 아래쪽부터 가면 되겠지만 그곳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길이었다.

마천의 본거지인 곳에서 익숙지 않은 길을 갔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다.

“오십여 장이라……. 이 정도 거리는 아직 도전해 보지 않았는데.”

은형섬전보의 극절예인 일보월하로 그가 한 번에 뛰어넘어 본 거리는 십 장이었다.

과거와 내공의 양이 달라졌으니 더 멀리 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발을 지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만 했다.

소청은 머릿속에 남아 있는 신공절학의 경공술을 모조리 끄집어내었다.

“허공답보(虛空踏步), 능공허도(凌空虛道), 천마행공(天馬行空), 천상제(天上梯). 팔괘연환으로 내공을 모조리 끌어 쓴다고 해도 지지할 곳이 없이는 먼 거리를 갈 수 없으니 이십 장 정도가 한계일 테고.”

누가 들으면 놀라 까무러칠 내용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경공술은 모두가 허공을 자유롭게 걷는다는 전설상의 경지였다.

허공에서 열 걸음만 걸어도 천하제일이라 불릴 텐데 무려 이십 장이라니.

“음…….”

잠시 고민하던 소청은 문득 자신의 창을 바라보았다.

“아! 그래!”

왜 자신이 그 생각을 못 한 것인지 머리를 쥐어박은 그는 서둘러 마을 아래로 뛰어내려 갔다.

 

잠시 후 다시 정상 절벽으로 돌아온 그의 어깨에는 그물을 묶는 줄이 가득히 매여 있었다.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되지.”

소청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자신의 창, 패월의 뒷부분에 밧줄을 묶었다.

“자, 그럼 어디 한번 가 볼까!”

소청이 창을 들고 온 힘을 다해 던졌다.

슈아앙!

패월이 바람을 가르며 쏘아졌고 순식간에 반대편 절벽 위로 날아갔다.

그런데.

쏘아진 창에 매달린 줄이 빠르게 풀려 나가는 것을 흐뭇하게 보던 소청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젠장!”

줄이 모자랐다.

소청은 재빨리 용천혈로 기운을 모조리 뽑아내며 일보월하를 펼쳤다.

파앙!

흙을 파헤치며 사라졌던 소청의 몸이 순식간에 십오 장을 뛰어넘어 창대와 연결된 밧줄에 닿았다.

갑자기 사라진 소청이 협곡의 허공에 나타나자 촌장 노인이 기겁하며 일어났다.

순간 이동이라도 한 듯 사라졌다가 멀리서 나타난 소청의 모습에 바짝 엎드려 빌기 시작했다.

“아이고 산신님! 이놈이 산신님을 몰라뵙고.”

밧줄에 오른 소청은 절정의 경공 중 바람에 몸을 싣는다는 어풍비행술(御風飛行術)과 그림자도 남기지 않는다는 부신약영(浮身躍泳)을 동시에 펼치며 평지처럼 내달렸다.

창대가 아름드리나무에 꽂히는 순간 길게 늘어졌던 줄이 힘을 잃고 협곡 아래로 처졌고 오 장여를 남긴 소청은 허공답보(虛空踏步)를 펼쳐 가까스로 절벽에 닿을 수 있었다.

“후아!”

나무에 박힌 창대를 뽑아낸 소청은 자신이 뛰어넘은 협곡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람이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들었고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

아무것도 없는 오십 장의 공간을 뛰어넘는 것은 무림의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전후무후한 일일진대 자신은 해내었다.

멀리서 여전히 엎드려 떨며 기도를 하고 있는 촌장 노인을 보며 피식 웃은 소청은 절벽과 연결된 숲으로 사라졌다.

 

* * *

 

마천은 십만대산에 수백 년간 터를 잡고 있던 마의 종주였다.

광서와 공동의 경계에 천 리가 넘는 거리에 펼쳐진 십만대산의 중앙, 구름에 가려진 가장 높은 열 개의 봉우리, 마천 십봉이라 이름 지어진 그곳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며 세워진 거대한 성과 전각들.

그곳이 바로 마천의 본거지였다.

마천 십봉에서 조금 떨어진 산자락에서 야행복으로 갈아입은 소청은 어둠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며 마천 비고를 떠올렸다.

과거 그는 모든 것이 완벽하리라 생각하며 찾았지만 결국 그 끝은 죽음이었다.

또다시 같은 상황을 반복할 수 없었기에 마천으로 가기 전 비고에 펼쳐진 세 가지 관문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해야 했다.

“만상귀혼진과 불귀미궁은 이미 한번 뚫어 본 곳이다. 파훼법이 머릿속에 그대로 남았으니 문제 될 것이 없어. 하지만…….”

자신에게 죽음을 선사해 준 일천 청동상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자 본능적으로 돋아 오른 소름에 몸을 움츠렸다.

“일천 청동상, 지금이라면 가능하지. 수천 그루의 소나무, 한 번에 뚫는다.”

차자작!

소청은 패월을 꺼내 장창으로 만들었다.

“자, 간다.”

단전의 기운을 모조리 용천혈로 보낸 소청이 온 힘을 다해 대지를 내리밟았다.

꾸웅!

묵직한 진각에 발목 너머까지 대지에 박혀 들자 거대한 떨림과 함께 대지가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파앙!

터질 듯이 부풀어 접힌 허벅지와 종아리가 맞닿았다가 떼어지는 순간 소청의 몸이 아름드리 소나무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손월식! 삭월(朔月)의 참살!”

단전을 채운 인당의 기운을 모조리 창대로 집어넣으며 휘두르자 반원의 궤적을 따라 초승달 모양의 기운이 수십여 장을 집어삼켰다.

순간 세상이 갈라지는 것처럼 반으로 갈렸고 지면으로 내려선 소청은 팔괘연환에 따라 백회의 기운을 용천혈로 밀어 넣었다.

파앙!

소청의 몸이 지면을 밟는 순간 사라졌다.

여섯 번에 걸친 일보월하.

지지직!

지면에 미끄러진 듯한 흔적을 남기며 멈춰 선 소청의 얼굴에는 짙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구구구궁.

허리께가 베인 아름드리 소나무 수십 그루가 일제히 쓰러졌다.

“다섯 호흡.”

노송 수백 그루를 잘라 내고 일백 장의 거리를 뛰어넘는 동안 들숨과 날숨을 합쳐 다섯 호흡밖에 걸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과거와 달리 그의 단전에는 회음에서 돌아 내려온 기운이 가득히 남아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짜릿함이 온몸을 채웠다.

마천 십봉의 방향으로 뻗은 손에 비고가 잡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돼. 과거에는 정사의 무인들이었지만 지금은 마천의 무인일 터. 함부로 들어갔다가 들키는 날에는…….”

이미 당가라는 거대한 문파와 격전을 치른 바 있었다.

충분히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홀로 문파 전체를 상대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지 깨달았다.

하물며 중원 삼세라 불리며 십만 고수를 가진 마천이라면 승률은 일 할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산악의 어둠은 다른 곳보다 빠르게 찾아왔기에 정확한 시간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소청은 가장 높은 소나무를 골라 그 꼭대기를 딛고 섰다.

복면의 긴 끈이 예전처럼 바람에 휘날렸다.

소청은, 아니 막야로 돌아간 그 느낌이 좋았다.

길게 늘어져 나부끼는 끈은 바람을 충분히 느끼게 해 주었다.

‘어둠이 세상을 뒤덮었군. 달도 뜨지 않은 그믐의 밤. 몸 상태는 최상이다. 최대한 은밀하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복면 아래로 소청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노송의 끝이 흔들렸고 소청의 몸이 사라졌다.

 

‘어?’

마천 십봉의 첫 봉우리를 향해 잠행술을 펼쳐 은밀하게 접근한 소청은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방을 가득 채운 안개는 한 발 앞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보이지 않게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이런 안개는 없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문제였다.

당시의 마천에는 접근해 본 적이 없던 그였다.

의문이 생겼지만 이 또한 분명 자신이 모르는 과거의 마천이리라 생각했다.

‘진법? 그렇군. 과거의 마천은 진법으로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고 있었나?’

소청은 눈앞의 안개를 향해 작은 돌멩이 하나를 가볍게 던져 넣었다.

순식간에 모습을 감춰 버린 돌멩이가 지면에 닿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일 장을 날려 작은 바람을 만들었지만 안개는 전혀 다른 흐름을 보였다.

‘외부의 충격이나 바람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안개의 움직임이 바로 변화일 것인데……. 마천 십봉을 모조리 감추자면 필시 대규모의 진법일 거야. 하지만, 분명 축을 구성하는 매개체가 있겠지.’

소청은 무턱대고 들어가지 않았다.

아직 어떠한 진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환영진일 수도, 살진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안개 속에 기관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었다.

소청은 은밀하게 주위를 돌며 주변 사물과 조금이라도 차이가 나는 것이 있는지 세심하게 살폈다.

‘분명 인위적으로 가공된 무언가가 있을 거야. 나뭇가지에서 작은 돌멩이까지. 응?’

한참을 살피던 소청은 수풀에 가려진 작은 석상을 찾아내었다.

비슷한 환경을 뒤져 보니 모두 열두 개였다.

십이지신 모양으로 만들어진 주먹만 한 석상이 꽤나 넓은 면적을 감싸듯 자리 잡고 있었다.

‘십이지신이라…….’

소청이 바라보는 곳에는 범의 모양을 본뜬 석상이 있었다.

‘그렇군. 상산사세(常山蛇勢)를 본뜬 십이방 회무진(回霧陣)이군.’

상산사세란, 회계 상산에 솔연이라는 뱀이 있어서 머리를 건드리면 꼬리가 이르고, 꼬리를 건드리면 머리가 오고, 허리를 찌르면 머리와 꼬리가 함께 온다는 고사에서 이어진 진법이었다.

‘십이지신의 석상으로 열두 방위를 축으로 잡아 어떤 방향으로 들어가도 결국엔 처음으로 돌아오게 하는 환영진이 분명하다. 결국 접근을 막는 진이라는 건데…….’

진의 속성을 파악해 내었지만 소청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상대는 마천이었다.

회무진 안에 또 다른 무언가를 감추어 두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고작 환영진에 지체할 수는 없지. 십이방은 결국 오행의 연장선, 자(子)에서 시작하면 오행은 사(巳)와 오(午)가 화(火)로 겹친다. 사는 음이고 오는 양이니, 오(午)의 자리가 곧 입구일 터.’

소청은 말의 모습을 한 석상 앞에 섰다.

주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천천히 안개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후욱!

안개가 그의 몸을 집어삼키듯이 감쌌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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