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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8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5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18화

17화. 피어나는 분노

 

 

 

 

“뭐라고? 너를?”

“예. 아마도 모두의 앞에서 운남 교역권을 바치며 당 가주 자신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 모양입니다.”

“음…….”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부르니 다녀와야지요.”

“안 된다. 혹여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버님.”

“…….”

“진무월창의 무인들은 제가 몇 년간 직접 가르쳐 온 녀석들입니다. 오랫동안 애정을 쏟았고 정이 생긴 사람들입니다.”

“안다. 하나…….”

“가문의 사람들이 위기에 처했는데 어찌 보고만 있겠습니까.”

“음…….”

소청은 밖에 있는 소강을 불렀다.

그러자 소강이 한 아름만 한 궤짝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이것이 무엇이냐?”

“금 열 관입니다.”

“뭣이! 아니 네가 그런 큰돈을 어떻게?”

“지금은 출처를 물을 때가 아닙니다. 하지만 절대 불법적으로 만든 돈이 아님을 알아주십시오.”

진가신이 소청의 눈을 바라보았다.

당황하고 놀랄 만한데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처럼 침착하고 고요했다.

“아버님께 맡기겠습니다. 표국을 건설하는 공사를 멈춰서는 안 됩니다. 또한 진가로 인해 피해를 본 네 가문에 보상하시고 집안의 일꾼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소청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가신에게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갈 참이냐?”

“예. 제가 만든 문제이니 제가 해결해야지요.”

“음…… 무엇을 도와주면 좋겠느냐?”

소청은 고개를 내저었다.

“당가의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나머지 가문의 가주님들과 운남과의 거래에만 신경을 써 주십시오.”

가주전을 나오는 소청의 입가에는 싸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당가…… 마음대로 되진 않을 거다.’

 

* * *

 

소진각으로 돌아온 소청은 또다시 두문불출했다.

그런 소청이 걱정된 소강과 모자겸은 수련도 잊은 채 소진각 앞을 서성거렸다.

“소강!”

“형님!”

기다리고 있던 소강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모자겸과 부리나케 방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앉아.”

차를 따르는 소청의 모습은 속세를 초탈한 사람처럼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형님,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닙니다.”

몸이 단 것은 소강이었다.

“대족장.”

소청은 찻잔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 모자겸을 불렀다.

“예. 은공.”

“거래를 조금 늦춰야겠습니다.”

“예.”

모자겸이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도와 드릴까요? 필요하시다면 일만의 부족을 당장 사천으로 들어오라 전하겠습니다.”

“핫핫, 전쟁이라도 일으킬 참입니까?”

“은공께 입은 은혜가 그보다야 모자라겠습니까? 은공으로 인해 다시 산 목숨입니다. 고강족의 한을 풀어 주셨으니 필요하시다면…….”

“흠, 그럴 줄 알았으면 운남과의 거래를 그냥 진행할 것을 그랬나요?”

소청이 눈을 찡긋거렸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필요하다면 행로는 저희가 뚫겠습니다. 고작 도적 떼에 방해꾼들 따위!”

모자겸이 진심을 담아 말하자 소청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운남 천독곡은 아직 정사의 구분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 운남의 무인들이 사천으로 들어오면 당가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청성, 아미. 인근의 문파들까지 모조리 움직이게 됩니다.”

“그럼 어찌할까요?”

“이쪽의 문제는 이쪽에서 해결해야지요. 하지만 지금은 손이 부족하니 호위단과 함께 작은 도움만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은공. 무슨 일이든지 시켜만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모자겸과 대화를 끝낸 소청은 소강을 쳐다보았다.

“소강.”

“예, 형님.”

“너는 지금 즉시 내가 주는 서신을 네 곳의 가문에 전해라. 서신을 받으면 그들이 알아서 결정할 거야. 당가에 빌붙을 것인지 가문의 명예를 지키며 독립할 것인지…….”

“예?”

소강은 영문을 몰라 했다.

소청은 또다시 미리 작성한 서신을 내밀었다.

“네 가문에 서신을 전하고 난 뒤 숙부님과 진무월창의 남은 무인들을 반으로 나누어 지시된 곳을 공격해라. 불법적인 곳이니 반드시 관인을 이끌고 가도록 하고.”

“예? 예.”

“대족장.”

“알겠습니다. 호위들과 지시하신 곳을 박살 내 놓으면 되지요?”

먼저 대답하는 모자겸을 향해 소청이 슬며시 웃었다.

“준비하고 있다가 제가 당가타에 도착하는 즉시 실행에 옮기시면 됩니다.”

“예.”

“그럼 둘 다 나가 보세요.”

“예.”

 

* * *

 

“으아아악!”

비명 소리가 당가의 본연무장을 가득히 채웠다.

지져지는 인두에 학질이 걸린 것처럼 떨어 대던 무인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혼절해 버렸다.

짜아악!

“끄아아악!”

휘둘러지는 채찍은 살점을 파고들어 사방으로 피를 튀겨 대었다.

정신을 잃으면 또다시 물이 뿌려지고 가혹한 형벌이 가해졌다.

수십이 넘는 무인들이 양쪽 나무 기둥에 두 팔이 묶인 채 보는 사람도 참기 힘든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어떤 대답을 듣기 위한 고문이 아니었다.

그저 고통을 주기 위한 것 일 뿐…….

“가주! 죽었습니다.”

압살형을 받고 있던 무인 하나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목숨을 놓아 버렸다.

“그래서?”

“예?”

“버러지 하나 죽은 것이 뭐가 대수인가?”

“아, 죄송합니다.”

풀려난 무인은 짐승의 사체처럼 바닥에 던져졌다.

수십의 무인 중 살아남은 자는 고작 열하나, 나머지는 연무장에 아무렇게나 버려졌다.

“시체 냄새가 역겹군. 태워라.”

잔인하기 짝이 없는 당구독의 말에 시신들을 모아 불을 피웠다.

털 타는 냄새가 순식간에 매캐하게 퍼져 나갔고 살점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기분 나쁘게 들려왔다.

“죽여도 상관없다. 최대한 고통스럽게 다루어라.”

이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당구독이 직접 나와 지휘하고 있었다.

그때 가문을 방비하던 녹의단 무인 하나가 뛰어들어 왔다.

“가주!”

“무슨 일이냐?”

“진가의 대공자가 찾아왔습니다.”

“뭐라? 진가의 대공자? 흠, 멍청하진 않은 모양이군.”

 

당가의 내성 문 앞에 도착한 소청은 수십이 넘는 녹의단 무인들에게 둘러싸인 채 좌정하고 앉았다.

그의 방문으로 인해 당가의 주요 무인들이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내성으로 모여들었다.

고통에 찬 비명 소리가 마치 들으라는 것처럼 쉴 새 없이 퍼져 나왔다.

‘조금만 참아라. 금방 구해 줄 테니까.’

소청은 마음을 다잡으며 참았다.

‘깃털을 사려는 것이 당가라는 것을 알았을 때 말도 안 되는 금액을 부른 것이 주효했어.’

과한 금액을 지출하면서까지 깃털을 사는 이유가 궁금했던 소청은 몰래 당가로 은밀히 침투했었다.

‘당태위가 독왕이라……. 흠, 내가 아는 역사와 조금 달라졌지만 지금 상황에 신경 쓸 부분은 아니지. 흑린, 당가와 연결된 불법 조직들.’

당가로 오기 전 소청이 닷새 동안 두문불출했던 이유는 다시 한 번 막야로 변해 당가타와 성도의 곳곳을 드나들며 그들의 사정을 세부적으로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오금쇄’는 진가와 네 가문에 피해를 끼친 것뿐 아니라 당가의 재정에도 적잖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더욱이 깃털을 거금에 사고 난 이후라 오금쇄로 인해 재정에 무리가 오기 시작한 당가는 흑린이라 불리는 조직에 최대한 많은 자금을 끌어모으라 명을 내렸고 관의 눈을 가리기 위해 일부러 갖가지 사건을 만들었다.

‘도박장, 고리, 노예 시장, 밀수……. 건드리지 않은 일이 없어.’

원래 대규모의 문파들은 정상적인 경로로 돈을 벌거나 후원금으로 운영되기도 했지만 당가의 경우는 좀 달랐다.

정사의 경계가 불분명한 그들은 의나 협보다는 이(利)를 좇는 가문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드러난 부분보다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당가로 오기 전 소강과 진가성, 모자겸, 네 곳의 가문에게 명을 내려 그들이 흑린이라 부르는 조직을 일거에 공격하게 했다.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 당가…… 처참하게 무너뜨려 주마.’

사실 진무월창 무인들의 비명을 들었을 때는 당장 쳐들어가서 휘저어 놓고 싶었지만 가문을 위해 참는 자신을 보며 괜히 웃음이 나왔다.

‘이제는 신투가 아니라 정말로 진소청이 되어 가는군.’

 

기다림의 시간은 밤이 깊어 달이 떠오를 때까지 계속되었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릴 때쯤.

“진소청! 가주님께서 부르신다.”

“…….”

천천히 눈을 뜨며 일어난 소청이 단창을 내리쳤다.

차자자작!

단창이 순식간에 장창으로 변하자 그를 포위하고 있던 녹의단 무인들에게서 싸늘한 살기가 흘렀다.

파팍!

소청의 창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닥에 깊숙이 박아 넣었다.

“놀라기는……. 두고 간다. 잘 지키고 있어.”

소청은 모두에게 비무장임을 보이듯이 휘적휘적 걸어서 내성 문으로 들어갔다.

 

* * *

 

“이, 이건…….”

문이 열리는 순간 소청은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벗겨진 등에 남은 수많은 태형의 흔적, 인두에 불탄 살점…….

대부분 심한 고통에 정신을 놓아 버린 듯 자신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커멓게 불타고 있는 무언가.

“……!”

시체였다.

자신이 예상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저 잠시 고통받으리라 생각했다.

그들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언젠가 그들에게 보상해 줄 것이라, 가문을 위해 잠시만 참으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계획했고 당가에 조금 더 타격을 주기 위해 시간을 끌었다.

혜택받지 못한 자들이었다.

열망이 있어도, 능력이 있어도 좋지 못한 가문에서 태어났고 배울 만큼 풍족하지 못했기에 그들은 더욱 열심히 했다.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자신의 말을 믿으며 수백, 수천 번 창을 찔러 대었고, 타박과 욕설을 들으면서도 꿋꿋하게 수련을 이어 온 이들이었다.

그 시간을 보내며 처음으로 정이 든 수하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시시덕대는 당가 무인의 발에 치이고 짐승의 사체처럼 던져져 불타오르고 있었다.

“어, 어째서…….”

눈에 핏발이 돋아 오르고 악다문 턱 언저리가 부들부들 떨려 왔다.

움켜쥔 손에 손톱이 파고들어 피가 흘렀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전신을 가득 채우며 타올랐다.

“호오? 진가의 대공자. 어쩐 일인가?”

태사의에 턱을 괴고 이죽거리는 당구독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소청은 천천히 걸어 두 개의 기둥에 묶인 진무월창의 무인에게 다가갔다.

“처, 청연…….”

나무꾼의 아들로 태어나 처음 창을 쥐었을 때 해맑게 웃었던 아이였다.

고작 열다섯밖에 되지 않았다.

“대……공자?”

청연이 힘겹게 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소청은 애써 분노를 삭이며 따뜻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아파……요. 너무…….”

청연은 피와 진물이 섞인 눈물을 흘렸다.

“늦어서 미안해. 이제야 구하러 왔어.”

소청은 그의 두 손에 묶인 줄을 뜯어내고 안아 등을 토닥였다.

“잠깐만…… 잠깐만 쉬렴.”

소청은 청연의 수혈을 짚었다.

강제적으로 재우지 않으면 고통에 잠들지도 못하리라.

“이봐, 진가의 대공자. 내 말이 안 들리나?”

들리지 않았다.

소청의 행동이 그에게 언짢음을 주든 말든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오직 진무월창의 무인들의 모습만 보였고, 귀에는 그들의 힘겨운 신음 소리만 들려왔다.

열 번째 무인의 손에 묶인 줄을 뜯어내었다.

풀썩 쓰러지는 수하를 부축해 안은 소청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해 부랑아처럼 살았던 전생의 자신과 닮았기에 더욱 애착이 갔던 이들이었다.

진가의 창을 배웠을 때, 자신이 패월창의 무공을 익히게 되었을 때만큼 기뻤을 이들이었다.

“이 자식! 가주님의 말씀이 안 들리나?”

수혈을 짚어 수하를 내려놓는데 녹의단의 무인 하나가 다가와 소청의 어깨를 잡았다.

“놔.”

낮게 깔린 그의 음성에 차가운 분노가 서려 있었다.

“뭐라고?”

으드득!

소청은 그의 손목을 잡고 팔꿈치를 역으로 꺾어 버렸다.

“끄아아악!”

허연 뼈가 튀어나오고 피가 뿜어졌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의 가슴을 온 힘을 다해 짓밟았다.

스산하게 내려다보던 소청은 가슴을 밟은 발에 힘을 주었다.

뿌득, 뿌드득!

“끄어어…….”

가슴뼈가 박살 나며 발이 그의 몸 안으로 움푹 들어가자 무인이 비명을 지르다 죽어 버렸다.

“저, 저놈이! 뭣들 하느냐! 저놈을 당장 잡아 꿇려라!”

무시당한 당구독이 노성을 지르며 외치자 내성 문이 열리며 밖을 지키던 녹의단 무인이 쏟아져 들어왔다.

“왜 그랬어?”

뒤돌아선 소청이 물었다.

낮고 스산한 음성이었지만 당구독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죽을 만큼, 이렇게 고통을 줄 만큼 잘못한 건 아니었잖아.”

소청이 열린 내성 문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피유유웅. 턱!

박혀 있던 패월이 날아와 손에 잡혔다.

참아야 했다.

자신이 보낸 모자겸과 소강, 그리고 네 가문이 당가의 불법 조직 흑린을 박살 내고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들이 가진 불법적인 일들의 증거를 모아 올 때까지…….

그런데, 그런데 그런 계획을 세우는 동안 죽어 버렸다.

죽을 만큼 고신을 당해야 했다.

죽어 불태워졌고 이제는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

간신히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져 버렸다.

분노가 더해지고 더해져 온몸을 가득히 채웠다.

차자자작!

힘 있게 뻗어 낸 단창이 장창으로 변했다.

“당구도-옥!”

단전의 기운이 그의 진한 분노와 함께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핏발이 선 눈으로 당구독을 노려본 소청의 발이 흙더미를 파헤쳐 올리는 순간 곧추세운 창과 함께 그가 쏘아져 나갔다.

“막아라! 놈을 막아!”

당호의 외침에 녹의단 무인들이 그의 앞을 겹겹이 가로막았다.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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