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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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3화
12화. 유명세
호위(?) 아닌 호위를 받으며 쫓겨나다시피 소진각으로 끌려난 소청은 헐레벌떡 찾아온 소강에게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형님. 지금 세가가 난리입니다.”
“난리?”
“예. 그날 비무 이후로 사천 각지에서 무사들이 몰려오고 있어요. 더 멀리서 오는 사람들도 있고요.”
“왜?”
“왜긴요? 형님 때문이죠.”
“…….”
월창, 진당혼.
진가의 월창으로 당가를 눌렀다는 뜻을 가진 말은 날개 돋친 듯이 퍼져 나갔고 순식간에 사천의 모든 이들이 진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당가를 의식했는지 사람들은 그날의 사건을 ‘당’ 자를 빼고 ‘월창진혼(月槍鎭魂)’이라고 명명했고 어느새 소청의 명호가 되어 버렸다.
더러는 그를 진혼창(鎭魂槍)이라 부르기도 했다.
어쨌든 비록 그 위세가 당가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지만 그 예하의 방계나 목가와 같은 곳보다 더욱 유명세를 날리기 시작했다.
청성이나 아미 같은 대문파가 아닌 중소 문파에서 당가와 비무를 한 것도 처음이지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당당히 비무를 이겨 버린 것도 처음이었다.
전생의 기억에도 그런 일은 없었으니 특별하기는 한 일이었다.
“저렇게 찾아오면 당가에서 좋아하지 않을 텐데?”
“그렇죠. 당연히. 하지만 아버님께서 비무 전에 사천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었다는 사실을 아시죠?”
“그래.”
“그래서 그런지 아예 당가와 연을 끊으시고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환대하기 시작하셨어요.”
“흐흠.”
소청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대표두도 그렇고 가성 숙부도 그렇고 나한테 그렇게까지 해야 해? 아버님이 지시하신 거냐?”
“하아, 형님 정말…….”
소강이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전시 효과 아닙니까! 전시 효과! 아니, 저들이 형님을 대영웅쯤으로 생각하는데 그냥 예전처럼 할 수 있겠어요? 보여 줘야지. 우리는 이 정도로 대우하고 있다. 너희도 그래라. 이런 거잖아요. 그리고 지시하신 게 아니라 다들 생각이 통했는지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는 거라고요.”
“…….”
“아니, 당태위를 어린애 다루듯 하는 무공을 가지시고는 어찌 그렇게 눈치가 없으세요. 하여간 아직 더 배우셔야 한다니까.”
“…….”
웬일인지 경험해 보지 못한 가문의 상황에 기분이 들뜬 때문인지 소강이 말이 많았다.
딱!
“아얏! 왜 때려요!”
소강이 두 손으로 제 머리를 감싸 쥐면서 울상을 지었다.
“아, 미안 왠지 밉상이라 나도 모르게 그만…….”
“뭐요?”
“아, 하하하.”
소청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
‘글쎄. 내가 생각하기에는 올바르게 보이지 않는데. 하는 짓이 다른 대문파와 다를 게 없잖아. 쓸데없는 격식에 허울이나 생기고.’
소청은 과거에 수많은 문파들을 보았고 그 안에서 생기는 갖가지 문제들을 들어 왔었다.
문파가 발전하는 모습은 저마다 각양각색이었고 망해 가는 모습도 각양각색이었다.
작은 문파에서 이름난 무인이 나오면 그의 주위로 별별 사람들이 모여서 그 세는 순식간에 불게 된다.
하지만 기초가 탄탄하지 못한 문파는 그들 모두를 끌어안을 준비를 하지 못했다.
또한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눈이 멀어 겉이 화려한 자들만 우대하다 보니 정작 필요한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흥분된 표정으로 재잘거리는 소강을 지그시 바라보던 소청은 피식 웃었다.
‘흠, 좀 도와줘야 하나? 뭐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잖아. 그래도 처음 생긴 가족인데 잠깐 도와주고 떠난다고 해도…….’
당태위의 문제만 해결하고 진가를 떠나려 했던 소청은 잠시만 더 머무르기로 했다.
살아오며 처음 있는 일일 터였다.
소강에게는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지만 진가신과 섭약란, 대표두와 진가성, 그리고 진가의 수많은 사람들이 처음 느껴 보는 뿌듯함이리라.
‘흠, 그냥 둘 수는 없고…… 필요한 인재가 떠나지 않도록 받아들인 인물들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는 있겠어. 그리고…….’
소청이 물끄러미 응시하자 소강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십니까? 형님?”
“너 요새 어떤 수련을 하고 있니?”
“…….”
소청은 사악하게 웃었고 소강은 소름이 돋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 * *
그날 이후, 소청의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얼마 전까지 수업을 받는 입장에서 가르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들과 직접 뽑은 이들을 대상으로 진가의 월창식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창술을 배우는 이들은 천차만별의 나이를 가지고 있었다.
소청과 동갑인 아이부터 진가성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까지…….
수업이 끝나면 소진각으로 돌아와 소강에게 혹독하게(?) 패월창법을 가르치며 함께 수련했다.
그리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자, 이제 슬슬 유명세는 빠지기 시작했고 움직일 때가 되었군.”
진가 본각, 가주전.
유명세가 많이 줄긴 했어도 여전히 수없이 찾아오는 손님에게 시달리고 있는 진가신에게 작은 함 하나를 든 소청이 찾아왔다.
“아버님, 청입니다.”
“들어오너라.”
목소리가 지쳐 보였다.
가주의 자리를 맡은 이후 가장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흠, 가문의 첫 번째 문제는 집안을 꾸려 갈 관리인이 없다는 점이군. 아버님과 어머님이 집안 살림을 모두 신경 쓰고 있으니…….’
근래 몰려드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이 소청의 창법에 매료되어 찾아온 무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무술을 배우려는 문하생과 표국에 지원하는 표사들은 넘쳐 났지만 정작 그 모든 것을 관리할 총관이 없었다.
“힘드시죠?”
소청의 물음에 진가신이 고개를 내저으며 밝은 웃음을 지었다.
이전의 근엄하기만 했던 아비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힘들다니. 모름지기 이제야 가주 할 맛이 나는구나! 얼마 만에 이리 바빠 보는 것인지. 허허. 특히나 요즘은 당가에서 찾지 않으니 속이 다 후련하구나.”
“예.”
“그래 어쩐 일이냐?”
“다름이 아니라 본가 옆의 땅을 좀 샀으면 합니다.”
“땅을?”
“예. 그곳에 연무장과 숙소를 지을 생각입니다.”
“연무장?”
진가신은 소청이 근래 가문에 지원한 무인들과 표사들 중 몇몇을 뽑아 직접 월가창법을 전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예.”
“흠…….”
진가신은 고심하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느 정도나 되면 되겠느냐?”
“삼천 평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 삼천 평? 그렇게나 크게 말이냐?”
삼천 평이면 현재 진가의 부지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
“무관을 지을 생각입니다.”
“무관?”
“예. 무인들의 숙소와 식당, 연공실, 합격술을 수련할 연무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후에는 문하생도 받을 생각이니 좀 더 컸으면 좋겠지만…….”
“허, 이미 구상을 끝내 놓은 모양이구나?”
“예? 예.”
“허, 그놈 참.”
아들의 멋쩍은 웃음을 따라 웃은 진가신은 잠시 고민했다.
근래 표행 건이 늘었다 해도 삼천 평이나 되는 대지를 구입할 정도로 재정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사천을 떠나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소청아. 계획은 좋다만 아직은 때가 아닌 듯싶구나.”
“예?”
“당가가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테니 어쩌면 떠나야…….”
“예? 떠나다니요? 이긴 건 우린데 뭐 하러 떠난단 말입니까?”
소청의 말에 진가신이 고심하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안 떠납니다.”
“응? 뭐?”
“이렇게 된 이상 사천에 뼈를 묻고 살아야지요. 기껏 이겼는데 당가가 무서워서 떠나면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겁니다.”
“너는 아직 당가의 무서움을 모른다. 그들이 예하 문파에 거래를 끊으라 지시하면…….”
“끊으라 하십시오. 그리고 언제까지 당가에 기대서 살아갈 생각이십니까? 스스로 일어서야지요.”
진가신은 아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열다섯 소년의 얼굴에 가득 찬 자신감…….
당차긴 하지만 세상을 모른다 여겨졌다.
어떻게 이해를 시켜야 할까?
“아무리 그래도…….”
“제가 하겠습니다.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소청아 그게…….”
소청은 아비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고 탁자 위에 함 하나를 올렸다.
“이게 무엇이냐?”
아비의 물음에 답하지도 않은 소청이 품에서 작은 함 하나를 꺼냈다.
종이를 겹겹이 덧붙여 봉인한 함이었다.
“일단 드시죠.”
“응? 이게?”
“내독단입니다.”
“내독단?”
“예. 일단 드십시오.”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진가신은 아들의 말대로 내독단을 삼켰다.
“멀리 떨어지셔야 합니다. 제가 내공으로 감싸겠지만…….”
진가신이 물러나자 소청이 봉인된 함을 열어젖혔다.
“크읍!”
함이 열림과 동시에 짙은 독기가 가주전 안으로 퍼져 나갔다.
내독단을 먹고 반 장 가까이 물러나 있었음에도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다.
우우웅!
소청이 기운을 일으키자 퍼져 나오던 독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진가신은 너무나 궁금해 다가갔다.
함 속에 든 것은 녹색의 깃털이었다.
만독의 힘을 담은 짐조의 깃털.
운남에서 돌아온 뒤 소청이 완전히 밀폐해 모종의 장소에 감춰 두었던 것이었다.
소청은 그중 하나를 빼내 와 진가신에게 내민 것이다.
“이런 물건을 어디서 구한 게냐?”
“운남 천독곡에서 주운 것입니다.”
비무 전 소청이 운남을 다녀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진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것은 어째서 자신은 현기증이 날 정도인데 소청은 멀쩡한가 하는 것이었다.
물론 비무를 보고 난 이후 소청의 내공이 자신보다 한참 윗줄이라는 사실은 은연중에 알고 있었지만…….
“사실 수련을 위해 운남에 들렀을 때, 죽어 가는 삼두홍사를 발견했습니다.”
“사, 삼두홍사!”
흔히 사왕이라 불리는 영물을 진가신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 내단을 먹었더니 내공뿐 아니라 독기에 내성이 생기더군요.”
“허, 삼두홍사라니……. 어쩐지 당태위를 그리 쉽게 이긴다 했더니 이유가 있었구나. 천운이다, 천운이야. 하늘이 너를 돕고 있음이야.”
진가신이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가 헛기침을 하며 다시 근엄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혹,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있느냐?”
“아버님께 처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비밀로 하거라. 무림이라는 곳은 원체 암계가 많은 곳이니.”
“예.”
진가신의 진심 어린 걱정이 느껴졌다.
짐조에 대해서는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기에 거짓말한 소청은 조금 미안함을 느꼈다.
“그래, 이 독우(毒羽 : 독 깃털)는 어찌할 참이냐?”
“팔아야지요.”
“흠…… 어디에 말이냐?”
“제가 아는 곳이 있습니다.”
히죽 웃는 아들의 얼굴에 진가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뜻 보아도 보통의 물건이 아닌데 어디에 팔 것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묻지 않기로 했다.
“가끔 보면 네가 내 아들이 맞는지 의심스럽구나.”
“설마요.”
소청이 싱긋이 웃었다.
“좋다. 네 뜻대로 하거라. 혹 아비가 도울 일이 있느냐?”
“아닙니다. 제가 알아서 처리하지요.”
“음…… 알았다. 어째 근래에는 네 도움만 받는 듯하구나.”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소청은 아비를 향해 빙긋이 웃고는 가주전을 나왔다.
“후후, 오랜만에 암시장에 가 보는군. 그럼 오랜만에 또 막야의 외출인가?”
* * *
늦은 밤.
성도(사천의 중심 도시)의 두 겹의 외성 사이에 만들어진 판자촌 마을.
적을 방비하기 위해 만든 육 장여 거리를 두고 두 겹으로 쌓은 외성에는 안쪽에 언젠가부터 부랑자들이 들어와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성벽을 기초로 삼아 덕지덕지 판자를 붙여 만든 집이 하나둘씩 늘어나더니 어느새 마을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그림자들의 거리라고 불렀다.
그림자 거리는 도박장, 폐창(폐기들이 몸을 파는 곳), 주루, 주거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성도 외성 동쪽 그림자들의 거리.
도박장이 열리는 그곳을 오가는 이들 사이로 전신을 가린 흑의를 입고 흑색 방립으로 얼굴을 깊숙이 가린 막야, 아니 천변만화의 역용공을 이용해 그로 변한 소청이 찾아왔다.
‘골패장 좌측 모퉁이를 돌면 작은 움막이 나온다. 그 움막 안에 부서진 성곽 벽이 나오지. 그곳이 바로 암시장으로 가는 통로.’
소청은 익숙한 걸음으로 움막 앞에 도착했다.
몇몇의 부랑자들이 거적을 대충 덮은 채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자식들 연기하고는…….’
사실 부랑자들은 모두가 꽤나 뛰어난 무공을 지닌 암시장의 문지기였다.
청부를 이행하지 못하고 도망쳐 암시장에 의탁한 살수들.
그것이 그들의 정체였다.
슈-욱!
다가가자 문지기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소청의 목에 대었다.
“처음 보는 놈인데 여길 어떻게 알지?”
“설명해야 돼?”
소청이 피식 웃으며 이죽거렸다.
암시장에 들어가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흑전.
암시장 고객들에게만 지급되는 검은 동전이었다.
과거 신투였을 때는 항상 품에 소지하고 다녔으니 굳이 문지기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소청으로 환생한 몸이니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두 번째 방법은…….”
파파팡!
발을 내미는가 싶더니 소청의 몸은 문지기들의 뒤쪽에 서 있었다.
“크윽!”
문지기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르는 표정으로 동시에 복부를 잡으며 무릎을 꿇고 꼬꾸라졌다.
“문지기를 쓰러뜨리는 것.”
막야로 변한 소청이었기에 주위의 눈 따위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사용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소청은 더 이상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부서진 성벽의 틈으로 유유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