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3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79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3화
구천성은 기재들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 많은 무서를 긁어모았다.
그 중 백여 권을 필사해서 기초 수련에 유용한 열다섯 종류는 일차 수련생을 위한 교육서로 사용하고, 이차 수련생들에게는 나머지 무서를 아낌없이 개방했다.
바로 그 무서가 있는 곳이 무서동이다.
장천운은 구산과 사명학의 예상대로 무서동에 있었다.
구천성의 기재들이 희망을 키우는 곳, 무서동은 자연동굴을 손질해서 만든 커다란 석실이었다.
입구와 벽에는 습기를 방지하기 위해서 숯이 쌓여 있었고, 온갖 무서가 안쪽에 진열되어 있었다.
석실은 무서의 권수에 비해 상당히 넓었다. 한쪽에는 무서를 보다가 필요하면 직접 초식을 펼쳐볼 수 있게끔 넓은 공간과 병기대도 마련되어 있었다.
장천운이 들어갔을 때 안에는 여덟 명이 있었다. 무진년 이차 수련생은 없고 모두 무진년 일차 수련생들이었다.
일차 수련생들은 수련복이 짙은 녹색이어서 청색인 이차 수련생과는 차별이 되었다.
그들은 아무래도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보니 이차 수련생보다 더 적극적으로 무서를 파고들며 자신에게 맞는 무공을 찾으려 애썼다.
장천운이 무서가 꽂힌 서대 쪽으로 다가가자 한 사람이 아는 척했다.
“자주 보는군.”
선우상. 나이 스물둘. 그는 무진년 일차 수련생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 중 하나였다.
“아무래도 모자란 점이 많아서요.”
장천운은 그를 무서동에서 네 번이나 만났다. 인상도 나쁘지 않았고 대하는 것도 서글서글해서 장천운도 싫어하지 않았다.
“자넨 참 특이해.”
“뭐가 말입니까?”
“사실 나는 자네가 대단한 실력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거꾸로 가는 것 같더군.”
“그렇게 보였습니까?”
“솔직히 말해보게. 왜 자신을 숨기는 거지?”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혹시 백리우진 때문에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강련곡 안에서 함께 지낸 지 이 년이 넘었네. 비록 수련을 따로 해서 정식으로 만난 적은 없지만, 알 건 다 알지.”
하긴 떨어져 있다 해도 기껏해야 수십 장 차이다. 오히려 모르는 것이 이상했다.
“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냥 조용히 있고 싶을 뿐이죠.”
그래야 개인적인 수련을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사실 장천운은 백리우진보다 백리호와 총사의 눈이 더 신경 쓰였다.
“좌우간 언젠가는 밖에서 만날 날이 있겠지. 그때는 모른 척하지 말게나.”
“한솥밥을 삼년이나 함께 먹은 사인데 당연히 그래야죠.”
선우상이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장천운도 미소로 답했다. 그러고는 선우상이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자 다시 무서에 집중했다.
“오늘은 어떤 걸 볼까?”
그는 사실 몽중무와 혼천수라권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그럼에도 시간 날 때마다 무서를 살펴보았다.
몽중무는 혼자서 익히기에는 그 내용이 너무 심오했다. 그렇다고 해서 남과 상의할 수도 없고.
무 노인은 구천성이 쫓는 사람 아닌가?
그런 무 노인이 심어 놓은 거라면 함부로 드러낼 수 없었다.
많은 무공을 접해보고 스스로 깨닫는 수밖에.
‘꿈속에서는 잘도 펼쳤는데…….’
그랬다. 분명히 자신은 몽중무를 펼쳤었다.
아주 멋지게!
그러나 현실에서는 흉내 내는 것조차 어려웠다.
자신의 능력에 회의감이 들 정도.
사실 꿈에서는 무 노인이 도와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쭉 제목을 훑어보던 그는 얇은 검법서 한 권을 뽑았다.
“단혼칠검(斷魂七劍)이라. 혼을 자른다? 이름은 제법 그럴 듯한데?”
필사본인 무서에는 앞부분에 무공 연원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표지를 넘긴 그는 설명서를 읽어보았다.
[무서의 본 주인은 단혼검객(斷魂劍客) 정추. 강호에서 쾌검으로 이름깨나 날렸던 자임. 허창에서 취(取).]
장천운은 그 자리에 선 채로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았다.
칠초 이십일식의 쾌검이었다. 초식이나 구결을 보니 느낌이 괜찮았다.
그는 단혼칠검의 초식을 마음속으로 그려보기도 하고, 구결의 내용을 두어 번 암송해보기도 했다.
그때 누가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너 같이 게으른 놈이 쾌검에 관심을 가지다니. 의왼데?”
고개를 돌리자 단수인이 보였다. 아마도 무서에 몰두한 사이 들어온 듯했다.
“나는 보면 안 되나?”
“너처럼 게으른 놈한테는 단혼검보다 이런 것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허리를 굽힌 단수인은 맨 아래쪽 구석진 곳에 처박혀있던 낡은 무서 중 한 권을 집더니 장천운에게 휙 던졌다.
손을 안 탄 지 무척 오래된 듯 무서 위에 수북이 쌓였던 먼지가 분가루처럼 날렸다.
장천운은 펄럭거리며 날아드는 무서를 잡아챘다.
“이게 무슨 짓이야?”
“먼지구덩이 속에 절기가 있는지 모르잖아?”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 단수인이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는 몇 마디 덧붙였다.
“함부로 건방 떨다가는 목뼈가 부러질 거다. 강련곡을 나가자마자 죽고 싶지 않으면 입 조심해.”
그러고는 조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장천운은 단수인의 등을 보며 냉소를 지었다.
‘네놈 목뼈나 걱정하는 게 좋을 거다.’
그는 더 이상 단수인을 신경 쓰지 않고 들고 있는 책을 내려다보았다. 장법에 관한 무공서였다.
만유장(滿柔掌).
무서를 두어 장 넘겨본 그는 책을 원래 있던 자리에 놓으려 했다.
그런데 그곳은 먼지가 너무 많이 쌓여 있었다.
무서를 먼지구덩이에 놓을 순 없는 일. 그는 책을 깨끗한 서대에 꽂았다.
그때 몸을 돌리려던 그가 멈칫하더니 본래 책이 있던 곳을 내려다보았다.
먼지가 수북한 그곳에는 책이 몇 권 더 있었다.
그는 마저 그 책들을 집어서 먼지를 털었다. 어차피 손댄 김에 정리를 할 생각이었다.
그가 여덟 권 째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책 사이에 유난히 얇은 책이 한권 끼어 있는 게 보였다.
기껏해야 대여섯 장 정도. 일반 무서에 비하면 반의반쪽밖에 안 되는 양이었다.
그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 책을 살펴보았다.
제목은 ‘환영만변(幻影萬變)’이었는데, 필사한 지 무척 오래된 듯 종이가 누렇게 바랜 상태였다.
그냥 꽂으려던 그는 연원이나 알자는 마음에 표지를 젖혀보았다.
[이 책은 환술사(幻術士)였던 환귀자(幻鬼者)가 만든 신법이라는 설이 있음. 처음에는 수련생들에게 신법에 대한 혼란만 줄지 몰라서 필사를 하지 않았으나, 무서판독관들의 논의 끝에 도움이 될지도 몰라서 남겨 놓기로 했음. 내용은 그냥 참고만 하기 바람.]
은근히 흥미가 일었다. 환귀자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신법에 혼란을 줄지 몰라서’라는 문구가 마음에 들었다.
남이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최소한 남들이 익히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말이다.
장천운은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 무서를 끝까지 살펴보았다.
첫 장에는 환귀자라는 인물이 이 책을 만든 이유가 적혀 있었다.
[나는 온몸에 털이 하나도 없는 괴이한 체질을 타고 났다. 게다가 상황에 따라서 피부색이 달라지는 괴질까지 있었다. 어릴 때부터 괴물로 불리며 가는 곳마다 쫓겨난 나는 세상을 떠돌던 중 서장에서 괴이한 술법을 얻었다. 그 후 내가 얻은 술법을 수십 년 동안 발전시켜서 새로운 환술무공(幻術武功)을 만들어냈다.
나는 환술무공을 이용해서 나를 쫓아냈던 사람들을 괴롭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일도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이곳에 남긴 것은, 내 환술무공이 사장되는 게 너무 아까워서 나처럼 괴상한 체질이 아니어도 익힐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연구 정리한 것이다. 다만 성공은 나도 장담할 수 없다. 실패하면 죽거나 병신이 될 거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자만 익혀라.]
그 다음 장부터는 환귀자의 환술무공이 나열되어 있었다.
모두 구백구십 자. 종류는 세 가지였다.
물체와 동화해서 자신을 감출 수 있는 만변은환(萬變隱幻).
자신의 모습을 흔적도 없이 없앨 수 있는 무영무종(无影无踪).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는 부풍비(浮風飛).
정말 실현 가능한 무공이라면 굉장했다.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완벽히 감추다니!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람이 익힐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 믿는 사람이 미친놈이지.
게다가 환귀자가 연구 정리해서 일반사람도 익힐 수 있게 했다고는 하나, 그 자신조차 성공여부를 모르는 무공 아닌가.
실패하면 죽거나 병신이 될 거고.
장천운은 쓸 데 없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남들이 아무도 익히지 않은 무공이라는 생각이 들자 일단 외워놓기로 했다.
몽중무를 기억해내느라 머리를 짜내면서 기억력이 발달한 그였다. 구백구십 자를 외우는 정도는 힘든 일이 아니었다.
혹시 알아? 이 환술무공에서 기가 막힌 뭔가를 찾아낼 수 있을지.
이각 후. 장천운은 무서동을 나오며 피식 실소를 지었다.
“내가 미친놈이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엉터리 구결을 다 외우다니.”
그때였다. 저 멀리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
“무슨 일인가요?”
수련을 마치고 류화의 심부름을 다녀오던 연송하는 갑자기 자신의 앞을 막은 진녹색 복장의 청년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너에게 할 말이 좀 있어서.”
그녀의 앞을 막은 청년은 무진년 일차 수련생 이조 조장인 동겸이었다.
그는 선우상과 함께 일차 수련생 중 실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세 사람 중 하나였다.
게다가 그의 부친이 구천팔당 중 경혼당(驚魂堂) 당주여서 무척 오만했다.
연송하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저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겠다는 건가요?”
“난 돌려서 말하는 걸 싫어하니 솔직히 말하마. 너, 내 여자가 되지 않을래?”
갑작스런 동겸의 말에 연송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필 그녀가 그를 마주친 곳은 거처에서 이십여 장 떨어진 외진 곳이었다.
수련생들은 수련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터라 몇 명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들도 그녀가 있는 곳은 신경 쓰지 않았다.
“저는 그럴 마음이 없어요. 죄송해요. 그만 가볼 게요.”
그녀가 빠르게 말하고 한쪽으로 돌아서 가려고 하자, 동겸이 다시 앞을 막아섰다.
“수련이 끝나면 쉬기도 해야지. 내 여자가 된다면 앞으로 이곳에서의 생활이 훨씬 편해질 거다. 물론 이곳을 나간 후에도 편해질 거고. 어때?”
“죄송해요. 조장이 기다려서 그만 가봐야 해요. 그럼…….”
연송하는 슬쩍 고개를 숙이고는 동겸을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동겸이 갑자기 손을 뻗어서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그녀가 피하려 했지만, 단순히 뻗은 것이 아니라 금나수(擒拿手)를 펼친 것이어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내 말을 들으면 편해진다니까.”
동겸이 연송하의 팔을 움켜쥐고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이거 놓으세요.”
연송하가 말하며 팔을 빼내려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강하게 움켜쥐는 바람에 팔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무슨 짓이오!”
유고원이 뛰어오더니 동겸의 손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손을 놓으시오!”
동겸은 이마를 잔뜩 찌푸리고는 자유로운 왼손을 휘둘러서 유고원의 공격을 막았다.
그러나 유고원이 약하다 해도 한손으로 상대할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동겸은 연송하의 팔을 잡았던 손을 놓고 두 손으로 유고원을 상대했다.
그 사이 연송하는 한쪽으로 멀찌감치 물러났다.
분노한 동겸은 그 화를 고스란히 유고원에게 풀었다.
“이 건방진 놈이!”
무진년 일차 수련생은 들어올 때부터 어느 정도 실력을 인증 받은 자들이었다. 더구나 나이도 네댓 살이나 많아서 훨씬 노련했다.
동겸은 그들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
유고원이 전력을 다해서 버텨봤지만 그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결국 사오 초식 만에 동겸의 공세가 유고원의 몸을 두들겼다.
퍼버벅!
쓰러졌다 재빨리 일어난 유고원이 연송하를 향해 소리쳤다.
“어서 가!”
그러나 연송하는 자신 대신 동겸과 싸우는 유고원을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
그 사이 동겸의 주먹과 발길질이 유고원에게 퍼부어졌다.
퍽! 퍼버벅!
“네가 뭔데 나서, 인마?”
동겸의 욕설과 함께 유고원이 복부를 얻어맞고 나뒹굴었다.
하지만 그는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서 동겸을 노려보았다.
입술이 터져서 피가 여기저기 묻어 있긴 해도 눈빛만큼은 횃불처럼 강렬했다.
그가 입가의 피를 닦으며 말했다.
“당신이 건들 수 있는 여자가 아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