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6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4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6화
5화. 드러내다
“뭐? 이런 개자식이!”
목천강이 주먹을 곧바로 뻗어 왔다.
소청은 앉은 채로 슬쩍 탁자를 찼다.
퉁.
목천강의 주먹은 몸이 탁자에 부딪히며 소청의 얼굴 바로 앞에서 멈춰 버렸다.
“더 말 안 한다. 주워라.”
“뭐라고?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고작 진가의 아들 놈 따위가 어디서 감히!”
“…….”
모두가 보는 앞에서 쪽을 당한 목천강이 분노가 서린 음성을 내뱉었다.
“죽는다.”
흠칫!
순간적으로 뻗어 나온 소청의 날카로운 안광에 목천강이 슬쩍 물러났다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닥쳐! 이 자식아!”
목천강이 허리께에 매인 검을 뽑아 들었다.
순식간에 후원의 분위기가 싸늘해졌지만 어느 누구도 말릴 생각을 하지 않고 당태위의 눈치만 살폈다.
그중 대부분은 잘못한 당사자가 아닌 소청을 노려보았다.
“혀, 형님! 왜 이러십니까.”
상황이 좋지 않게 흐르자 급히 다가온 소강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청을 말렸다.
동시에 목천강의 검이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베어 왔다.
소강을 슬쩍 밀어낸 소청이 앉은 채로 탁자 위의 젓가락을 차올려 손에 쥐었다.
쩡!
젓가락 끝이 검면을 꿰뚫었고 검은 소청의 머리맡에서 멈췄다.
“검을 뽑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는 알지? 목가의 대공자 목천강 나리.”
“이익!”
검을 잡아 빼내려는 목천강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 올랐다.
그저 의자에 앉아서 편안하게 조소를 날리는 소청이었는데 아무리 용을 써도 꼼짝하지 않았다.
텅!
소청이 손을 놓자 제 힘을 이기지 못한 목천강이 뒷걸음질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으아아아! 이 개자식!”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 일어난 목천강의 검에 푸르스름한 예기가 덧씌워졌다.
비슷한 또래의 나이니 고작 열대여섯.
검에 기운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성취가 흔한 지방 무관을 뛰어넘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실이었다.
“목가 검식! 삼절편(三絶片)!”
목천강은 살기 어린 안광을 토하며 수직으로 검을 그었다.
검이 소청의 머리 위에서 변화를 일으키며 셋으로 갈라져 떨어졌다.
하지만 검격이 정수리까지 다가온 위급한 상황에도 소청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그 새끼 참…….”
한 발을 내디딤으로 검격을 피해 목천강의 가슴께로 파고든 그는 당겼던 손을 가볍게 뻗었다.
그저 가벼운 듯했지만 손이 당겨졌다 펼쳐지는 순간 축경과 발경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쩌억!
목천강의 명치에 닿는 순간 손에 모인 기운이 그의 몸을 꿰뚫었다.
“커억!”
입이 찢어지도록 벌린 목천강이 일순간 정지한 것처럼 칼을 든 채 멈췄다.
기운이 끊어진 검에는 더 이상 예기가 이어지지 못했다.
빠박!
낮게 돌려 찬 소청의 발이 목천강의 오금(무릎 뒤)을 때렸다.
정확히 설삼 앞으로 무릎을 꿇은 목천강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엎드렸다.
소청은 그런 목천강의 등을 지그시 밟아 누르며 말했다.
“주워라.”
“…….”
차디찬 소청의 말에 목천강은 자신도 모르게 설삼을 주우려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는 핏발이 돋아 있었다.
“네노미 가암히이…… 이따우이 지슬 하고오…….”
숨이 완전히 터지지 않아 어눌하게 들려왔지만 그 의미는 정확히 전달되었다.
“이미 여러 번 기회는 줬다.”
쿠악!
목천강을 그대로 찍어 눌러 버린 소청은 그의 머리통을 걷어찼다.
빠각!
뼈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후원을 가득 채웠고 목천강이 눈을 까뒤집으며 정신을 잃었다.
지켜보는 이들의 눈에는 불쾌감과 더불어 놀람이 가득했다.
목천강.
사천 성도에서 당가 다음의 세를 가진 목가 검장의 대공자.
독선적이고 예의 없는 성격이라 해도 사천 검협이라 불리는 실력만큼은 진짜였다.
흥분한 나머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해도 아직 이름도 나지 못한 변두리 무가의 아들이 상대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 무공이라 부르기도 뭐한 몇 개의 동작만으로 그를 행동 불능으로 만들었다.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어 놓은 장본인인 소청은 아무렇지도 않게 설삼을 주워 흙을 털어 내 비단으로 감쌌다.
“함이 부서졌군.”
처음부터 어린놈의 새끼가 거들먹거리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명문의 대공자라면 응당 목천강을 제지했어야만 했다.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속된 말로 이미 깽판을 쳐 버린 소청은 당태위를 향해 다가갔다.
“진가에서 올리는 예물이다. 부디 좋은 소가주가 되길 바라지.”
소청은 너무도 당당했다.
마치 청성이나 아미처럼 동등한 입장에서나 보일 수 있는 모습으로 예물을 내밀었다.
당태위는 더럽혀진 예물을 건네는 소청의 손을 보며 눈을 씰룩거렸다.
모두가, 아니 청성과 아미가 보고 있으니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진가의 소청이라. 재미있군.”
“글쎄. 재미로 한 짓은 아냐.”
소청은 어서 받으라는 듯이 설삼을 까딱거렸다.
그의 행동과 말투가 당태위의 속을 긁어 놓았다.
“지금 네가 한 행동이 어떤 화를 부를지 생각해 봤나?”
당태위의 얼굴은 무척이나 차분했지만 목소리에서는 한기가 피어났다.
“그런 것도 생각해야 해? 그런 성격이 못 돼서……. 다음부턴 생각해 보도록 하지.”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음에도 소청은 위축됨 없이 웃었다.
사실 자신이 있었다.
전생에 암왕이었던 그때라면 몰라도 지금 당태위의 수준으로는 자신의 몸에 상처 하나 내지 못할 테니까.
마음 같아서는 모두의 위에서 군림하는 듯한 거만한 얼굴에 주먹을 박아 넣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자식!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행패를 부리느냐!”
자신들의 옷을 두고 비웃었던 금가의 대공자였다.
소청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아, 번쩍번쩍한 옷차림의 금가. 그래서? 대신 나서게? 옷차림만큼 자신은 있고?”
이미 꼬일 대로 꼬여 버린 소청이었기에 좋은 말이 나가지 않았다.
“뭐야? 이 새끼가!”
“왜? 너도 칼 뽑게? 잘됐네. 주둥이만 놀리는 놈인 줄 알았는데.”
“이익!”
빈정거림에 화가 났지만 자신보다 몇 수나 앞서 있는 목천강이 당하는 것을 본 다음이라 감히 나설 수가 없었다.
“왜? 자신 없어? 가문의 위세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멍청이냐? 당가가 떨어뜨리는 콩고물이라도 받아먹으려면 처맞더라도 덤벼야지. 안 그래?”
“닥쳐라. 이 망할 자식아!”
결국 몇 마디 말에 금가의 대공자는 이성보다 감성에 굴복했고 두 개의 단도를 뽑아 솟구쳤다.
“그래. 그렇게 나와 주셔야지.”
소청이 가볍게 발을 내딛는 순간 그의 몸이 사라졌다가 몇 걸음 뒤에 나타났다.
“이, 이형환위?”
일 리가 없었다.
그저 감히 소청의 경공을 볼 수도 없는 후기지수의 눈에만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다.
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린 목표에 당태위를 공격하는 모양새가 되어 버린 금가의 대공자가 허둥거리며 몸을 세웠다.
퍼억!
하지만 소청이 친절하게 등을 차서 그를 도와주었다.
와장창!
금가의 대공자는 당태위가 앉은 탁자를 덮쳤다.
“이건 내 동생을 부끄럽게 한 벌이다.”
다행히 재빨리 피했기에 볼썽사나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던 당태위는 점점 더 화가 났다.
“대, 대공자, 죄송합니다. 이건 순전히…….”
금가의 대공자가 서둘러 사과했지만 당태위는 듣지 않고 소청만 노려볼 뿐이었다.
“네놈은 혓바닥만 수련한 모양이군.”
“아, 잠깐. 잘난 대공자 씨.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내가 무공이 모자라서 겨우 이런 방법으로 상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뭐라?”
“하, 이거 오해하게 만들었네.”
소청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이건 말이야. 굳이 저딴 것들을 상대로 진가의 고매한 무공을 쓸 필요조차 없어서였어.”
“자신감이 넘치는군.”
“내 매력이야.”
“…….”
웃는 얼굴로 쉴 새 없이 빈정거리는 소청을 보던 당태위가 언짢은 표정으로 슬쩍 주위를 노려보니 꼬리를 만 개새끼들이 움찔거렸다.
“노, 놈! 고작 알량한 몇 수를 가지고 나댈 만큼 우리가 우스워 보였더냐!”
아미와 청성을 제외한 후기지수들이 일제히 일어나 소청을 둘러쌌다.
“이것들 봐라? 주인 눈빛 하나에 목숨 거는 꼴이라니. 근데 이러면 너희들 곤란하지 않겠냐? 그나마 다들 이름깨나 있어 하는 가문의 자손들인데 기껏 표국 가문의 대공자 하나를 잡기 위해서 합공하면?”
“다, 닥쳐라!”
“그, 그래! 사이하기 짝이 없는 네놈의 버릇을 고치기 위함이다.”
“맞다! 협사가 어찌 사이함을 모른 척할까! 사이함을 제압하는 데 협공은 아무 상관 없다.”
그들의 말에 소청이 피식 웃었다.
“협사 같은 소리 하네. 하여간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애쓰기는……. 칼은 너희들이 먼저 뽑았고, 그래 준비는 됐냐?”
“무, 무슨 준비?”
조소와 함께 소청의 눈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처맞을 준비!”
사악하게 미소 지은 소청은 당가의 기를 꽂은 나무를 뽑아냄과 동시에 움직였다.
빠박! 빠바박!
설명이 필요 없는 싸움이었다.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휘둘러지는 나무 막대기에 후기지수들이 추풍낙엽처럼 바닥에 처박혔다.
“멈춰라!”
당태위가 더는 참지 못하고 소청을 향해 뛰어들었다.
“어쭈?”
당태위가 막대를 잡아 멈춰 세우자 소청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흥!”
소청이 빼내려 비틀자 움켜쥔 당태위가 막대에 자신의 내공을 밀어 넣었다.
내상을 입혀 튕겨 버릴 생각이었다.
“네 생각대로는 안 될걸?”
소청이 그를 비웃으며 팔괘공을 일으키자 밤톨 내공이 일어나 창대를 향해 달려 나갔다.
쩌엉!
“저런!”
이제까지 무표정으로 관망하던 청성과 아미마저 벌떡 일어나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당태위와 소청의 내공이 막대의 중앙에서 부딪쳤고 쇠망치를 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막대가 산산이 조각났다.
소청은 다음을 위해 재빨리 기운이 빠져나간 단전으로 인당의 밤톨을 밀어 넣고 한 발을 내밀었다.
“…….”
하지만 당태위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눈가를 씰룩거렸다.
세 걸음.
소청은 오히려 한 발을 내밀었는데 자신은 세 걸음이나 밀려났다.
봐준 게 아니라 진 것이었다.
아무리 급작스럽게 일으킨 내공이었다 해도 밀릴 것이라 전혀 생각지 못했다.
“이익!”
자신이 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고작 당가 예하의 버러지 취급했던 표국의 아들에게 졌다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당태위는 두 눈을 치켜뜨고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당가가 위급 시에만 사용하라 제한한 필멸비(必滅匕)를 꺼낼 생각이었다.
“멈추어라!”
후원으로 수십여 명의 녹의인이 날아들어 당태위 앞을 막아섰다.
“이 상황을 어찌 이해해야 하는 게냐?”
문을 지나 들어오는 당구독의 크나큰 존재감이 후원을 무겁게 짓눌렀다.
“진 가주, 저 아이는 자네의 자제가 아닌가?”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돌아보는 당구독의 목소리에 진가신이 사색이 되었다.
“칠룡에 오른 내 아들을 소가주로 임명하는 자리를 이리 만들다니. 자, 설명해 보게. 내가 이 자리에서 진가를 사천에서 들어내라 명하지 않도록 말이야.”
차분하고 담담했지만 그의 몸에서 뿜어지는 살기와 투기는 모든 이에게 소름이 돋아 오르게 했다.
자신의 아들들이 처참하게 쓰러진 모습에 함께 온 당가 예하 가주들도 진가신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아니, 이것은…….”
진가신은 상황을 모르니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아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어떻게든 모면해야 한다는 생각이 혼재되어 복잡해졌다.
“진가 소강입니다! 제가 말씀을…….”
“…….”
헐레벌떡 앞으로 나선 소강은 당구독이 슬쩍 노려보는 것만으로 정지해 버렸다.
숨을 쉴 수 없었고 온몸을 짓누르는 압력에 그대로 엎어졌다.
“나는 네게 말할 것을 허락한 적이 없다.”
소청은 자신으로 인해 아비와 소강이 고초를 겪자 눈에 불길이 치솟았다.
‘무림 백대 고수…….’
피부로 느껴지는 당구독의 힘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였지만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이…….”
그 순간 어느새 그의 옆으로 다가온 아미의 승혜가 그의 손을 잡아당기며 당구독 앞에 나섰다.
“소녀는 아미의 승혜라고 합니다.”
“…….”
당구독이 게슴츠레하게 눈을 떴다.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 아미파 장문인이자 중원 백대 고수의 수좌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멸절사태의 적전제자.
오봉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소녀.
그것이 바로 승혜였다.
그녀가 가진 배경과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아미의 장로가 당구독을 고민하게 했다.
“말하라.”
“예. 지금의 상황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진 가주님께 물을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 있는 저희에게 물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좋다. 말해 보라.”
당구독의 허락이 떨어지자 승혜는 자신이 본 바를 차근차근하게 설명했다.
모인 후기지수들이 진가를 조롱했고, 소청이 세 번을 참았으며, 그들이 소청을 협박했던 이야기.
그리고 당태위와의 내공 싸움에서 동수를 이루었다는 말까지…….
당구독이 승혜의 말을 듣고 당황한 표정의 당태위를 쳐다봤다.
미처 빼지 못한 품 안의 손에서 필멸비의 예기가 느껴졌다.
‘필멸비……. 멍청한 놈. 그것까지 꺼내야 할 정도로…….’
승혜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당구독은 그대로 걸어가 당태위의 뺨을 거세게 때렸다.
짜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