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60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60화
360화. 황제와의 대면 (2)
안내를 하던 환관도 적운상이 어느새 자신을 앞질러 출구에 가있자 깜짝 놀라며 후다닥 달려왔다. 그러고는 사람이 아니라 마치 귀신을 보는 것 같은 얼굴로 앞에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저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황제 폐하께서 그곳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적운상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그가 가리키는 건물로 향했다. 그리로 가는 동안 넓은 공터에 양쪽으로 도열한 병사들이 잔뜩 있었지만 그들은 더 이상 덤벼들지 않았다.
그들을 지나쳐가자 황금색의 곤룡포를 입고 뒷짐을 진 채 서있는 황제가 보였다. 그의 양옆으로는 무공이 대단해 보이는 자들 십여 명이 서있었다.
적운상이 황제와 삼 장 정도의 거리까지 다가갔을 때였다. 황제가 서있는 곳의 계단 밑에 있던 환관이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거기에 멈추어서 황제 폐하께 예를 갖추시오!”
적운상은 그가 시키는 대로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예를 갖추었다.
그러자 황제가 가만히 적운상을 보다가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라.”
적운상이 말없이 일어났다.
황제는 여전히 적운상은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과연, 영웅의 기상이로다. 내 그에게 술을 한 잔 내리고 싶구나.”
“예이.”
황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환관 한 명이 쪼르르 달려왔다. 그의 손에 든 팔각반에는 술병과 술잔이 올려져있었다.
환관이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그걸 들어올렸다. 그러자 황제가 술병을 들어 술잔을 채웠다. 환관은 그걸 들고 적운상에게 다가가 그 앞에 내려놓았다.
적운상은 잔을 들어 살짝 읍을 하고는 단숨에 비워버렸다. 그걸 보며 황제가 눈을 빛냈다. 사실 그 술잔에는 독이 들어있었다. 사망궤(死亡軌)라는 괴상한 이름의 독약이었는데, 해독약이 없는 극독이었다.
하지만 적운상은 사망궤가 섞인 술잔을 비우고도 멀쩡했다. 그걸 보고 황제는 속으로 의아했으나 적운상의 무공이 뛰어나니 반응이 늦게 나오는 걸 수도 있다고 여겼다.
“한 잔으로는 부족한 듯하니, 세 잔을 채우는 것이 좋겠구나.”
환관은 술잔과 술병이 놓인 팔각반을 들고 두 번이나 왕복을 했다. 그때마다 적운상은 망설임 없이 술잔을 비웠다.
황제는 잠시 침묵을 지키면서 적운상의 반응을 살폈다. 그러나 적운상은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았다.
“그대의 무공이 상당하다고 들었다. 여봐라.”
황제가 부르자 그 옆에 있던 여섯 명의 고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그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내가 보고 싶구나.”
“명을 받듭니다.”
여섯 명의 고수들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는 일제히 적운상을 향해 몸을 날리며 공중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적운상은 백운검을 뽑아 들고 그들의 공격에 맞섰다.
쉬쉬쉬쉬쉭!
날카로운 파공음이 연이어 울렸다. 하지만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는 단 한 차례도 울리지 않았다.
낙연검법의 묘리는 쾌에 있었다. 적운상은 빠르게 백운검을 휘둘러 그들의 검이 그리는 검로를 피해 공격을 했다. 이에 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쾌에서 뒤진다면 중이나 변으로 대체할 수도 있었다. 빠르다고만 해서 능사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건 일반적인 빠르기였을 때의 이야기였다.
적운상이 무극의 영역에 들어가서 검을 휘둘렀기 때문에 그들은 막아낼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여섯 명이 짧은 신음성을 내며 팔을 부여잡고 물러났다. 적운상이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면 모두 팔이 잘렸을 것이다.
‘허, 저들은 황궁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고수들이거늘, 그에게는 십초지적(十招之敵)도 안 된단 말인가?’
황제는 놀라움으로 인해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들을 일부러 내보낸 것은 적운상이 내공으로 독을 내리누르고 있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공을 운용하면 독이 빨리 퍼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십초지적도 되지 않으니 내공을 운용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제야 황제는 적운상을 자세히 살펴보고 독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대의 무공은 참으로 대단하구나. 짐이 진심으로 감탄을 했다. 처음에 많은 병사들로 하여금 그대를 공격하게 한 것은 그대를 지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백여 명이 넘는 병사들의 공격을 너무나 간단히 물리치는 것을 보고 그것이 소용없음을 깨달았다. 두 번째로 어두운 곳에서 암습을 한 것은 무공이 아무리 대단해도 그런 공격에는 약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것마저 소용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독을 실험해봤는데 역시나 통하지가 않는구나. 그대는 모든 시험을 통과했다. 정삼품의 관직에 오를 자격이 있다.”
황제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적운상이 입을 열었다.
“오늘 제가 이곳에 온 것은 관직을 거절하기 위함입니다.”
“뭐라? 어째서 거절을 한단 말이냐?”
“저는 관직에 뜻이 없습니다.”
“그래도 내가 내리지 않았더냐? 정삼품이 낮단 말이냐? 원한다면 정이품에 해당하는 관직을 내리겠노라.”
황제가 하는 말에 주위에 있던 고관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환관들까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정삼품만 해도 대단한데 정이품이라니?
지금까지 이런 특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적운상이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그걸 거절한 것이다.
“거절하겠습니다.”
“감히! 짐의 뜻을 거스르겠다는 것인가?”
“제게는 과한 관직입니다.”
“절대로 과하지 않다. 그대는 능력을 증명해 보였다.”
“무공이 강한 사람들은 강호에 넘쳐납니다. 제 무엇을 보고 그리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허면, 그대는 반역이라도 꿈꾼단 말이냐? 짐의 자리를 원하는 것이냐?”
억지였다. 하지만 황제가 말하면 억지가 아니었다.
적운상은 신중하게 대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제는 적운상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떤 방법으로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겁을 먹은 것이다. 그래서 정이품의 관직을 내주더라도 옆에 잡아두려 하고 있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적운상은 일단 시간을 벌기로 했다. 그 뜻을 간파한 황제가 딱 잘라 말했다.
“하루! 단 하루를 주겠다. 잘 생각해보고 대답을 하도록.”
그 말을 끝으로 황제는 자리를 떴다. 그러자 환관 한 명이 적운상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그가 안내한 방은 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컸다. 게다가 호화스러웠다. 최고의 귀빈들만 대접하는 방이었으니 당연했다.
“이곳에서 쉬시면 됩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십니까?”
“없소.”
“석반(夕飯)은 후에 시간이 되면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알았소.”
그가 가고 나자 적운상은 방을 둘러보다가 침상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하기 시작했다.
황제가 생각해보라고 하루의 시간을 줬지만 관직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황제에게 맞설 수만도 없으니 뭔가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황제가 자신을 시험하려고 할 때 적당히 하다가 질 것을, 괜히 실력발휘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동안 운기조식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적운상은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오시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적운상이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었다. 더구나 그는 관복을 입고 있었다.
“오랜만이로군.”
호천마궁의 궁주인 조황인이 먼저 인사를 건네 왔다. 적운상은 잠시 놀란 눈으로 그를 보다가 자리를 권했다.
“앉으시오.”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호천마궁은 황궁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단체였다. 그러니 궁주인 조황인이 관인이라고 해서 그렇게 이상할 것은 없었다. 다만 전혀 어울리지 않고, 생각을 못했던 일이라 조금 놀랐을 뿐이다.
조황인이 의자에 앉자 적운상이 맞은편에 앉았다.
두 사람은 잠시 어색하니 침묵을 지켰다. 그때 방문으로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궁녀가 차와 다과를 가지고 왔다. 한눈에 봐도 빼어나게 아름다운 궁녀였다.
그녀는 적운상에게 몇 번이나 시선을 던지며 교태를 보이다가 밖으로 나갔다. 그걸 보고 조황인이 미소를 지었다.
“폐하께서 어지간히 자네를 곁에 두고 싶어 하는군. 저렇게 뻔히 보이는 방법까지 쓰는 걸 보니.”
“황제 폐하가 갑자기 정삼품의 관직을 주기에 이유를 몰랐었는데, 왜 그랬는지 이제야 알겠군요.”
“후후. 맞네. 내가 폐하께 직언을 올렸네.”
“덕분에 조금 난처하게 됐습니다.”
“그냥 받으면 되지 않나?”
“저는 관직에 뜻이 없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무림인은 가급적 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지.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닐세. 자네도 알다시피 황궁에는 무림에서 크게 활약을 했던 고수들이 대거 몸을 의탁하고 있네. 관직에 오른 인물들도 많지. 무림인이라고 해도 모두가 폐하의 백성이지 않은가?”
“어쨌든 저는 관심이 없으니 궁주님이 이야기를 좀 잘 해주십시오. 보아하니 끝까지 저를 붙잡으려는 것 같은데, 황궁과 척을 지기는 싫습니다.”
“그러니 그냥 못이기는 척 관직을 받으라고 하지 않는가? 흐음…… 좋군. 들게나.”
조황인이 차를 권하자 적운상이 입술을 축였다. 과연 조황인이 칭찬을 할 만큼 좋은 차였다.
“용정차군요.”
“폐하께서는 자네에게 하나에서 열까지 신경을 쓰고 있네.”
“제가 끝까지 거절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솔직한 대답을 원하나?”
“그렇습니다.”
“낮에 자네는 너무나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네. 만약 자네가 폐하의 명을 거역한다면 자네를 죽이려고 할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