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55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55화
355화. 부자상봉 (2)
“허…….”
적문후는 황당함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적교희를 달라는 말은 그녀를 인질로 보내라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소복산의 채굴권을 주고 나서 뒤에서 허튼짓을 할까 봐 그런 식으로 예방을 하려는 것이다.
그때였다.
대청의 입구에서 소녀의 뾰족한 외침이 들려왔다.
“싫어요!”
모두가 그쪽을 보니 적교희가 서있었는데, 그 옆에는 눈이 다 훤해지는 미녀와 아주 잘생긴 사내가 함께 있었다. 백수연과 적운상이었다.
“너, 너…….”
적교희를 본 적문후가 눈이 동그래져서는 한마디 하려다가 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집을 나가서 몇 달 만에 저리 갑자기 나타났으니 생각 같아서는 붙잡아놓고 혼을 내주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이리 오너라.”
“아버지, 저는 그 바람둥이한테 시집가기 싫어요. 그 사람이 얼마나 망나니인지는 아버지도 알잖아요. 절 보내지 마세요.”
적교희가 하는 말에 표국주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걸 본 적문후가 당황하면서 다급하게 적교희를 다시 불렀다.
“시끄럽다. 함부로 입 놀리지 말고 빨리 이리 오너라.”
“싫어요! 오면서 들으니까 술 먹고 싸우다가 그렇게 됐다면서요? 그걸 가지고 책임지라고 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애들도 아니고 우르르 몰려와서는 부끄럽지도 않나?”
“말을 함부로 하지 마라!”
표국주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분위기가 흉흉해지자 보다 못한 적문후가 적교희를 데려오려고 했다.
“내가 뭐 틀린 말 했나요? 평소에 행실이 바르지 않으니까 벌을 받은 거라고요. 표국주님 아들 때문에 피눈물 흘린 여자가 어디 한두 명인 줄 알아요? 나는 억만금을 가지고 온다고 해도 싫어요. 차라리 목을 맬 거예요.”
“닥쳐라!”
화가 난 표국주가 적교희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남궁세가의 남궁방과 남궁호가 표국주를 막기 위해서 동시에 몸을 날렸다.
“멈추시오!”
“어딜!”
퍼퍼퍼퍼펑!
백면서생 오 대인이 남궁방과 남궁호의 앞을 막아서며 쌍장을 휘두르자 서로의 장력이 부딪치면서 뒤로 서너 걸음씩 물러났다. 그 와중에도 남궁방과 남궁호는 적교희를 봤다.
그녀가 표국주에게 맞으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가 있었다. 그러면 중재를 하러 온 자신들의 입장이 난처해진다.
하지만 다행히 표국주는 적교희를 때리지 못했다. 적교희도 나름 무공을 익히고 있었기 때문에 표국주가 손을 휘두르자 재빨리 뒤로 몸을 날렸던 것이다.
“교희야!”
적문후가 놀라서 적교희에게 달려갔다. 그러자 보해신니가 적문후의 앞을 막아서며 뒤로 밀었다. 흑웅일도가 풍기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태, 어째서…….”
적문후가 보해신니를 보면서 말하다가 흑웅일도의 기세를 느끼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걸 보고 백면서생이 웃으면서 남궁방과 남궁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시작했으니 한 수 더 겨뤄봅시다.”
백면서생이 양 손바닥을 쭉 뻗어내자 남궁방이 장력을 맞받아쳤다. 그리고 남궁호는 백면서생의 측면을 노리고 발을 내지르면서 주먹을 내리쳤다.
백면서생은 남궁방의 장력과 부딪치는 반탄력을 이용해서 뒤로 몸을 날리며 남궁호의 공격을 피하고 다시 쌍장을 내질렀다. 그걸 남궁방이 다시 받아쳤고, 남궁호가 이번에는 백면서생의 뒤로 돌아갔다.
백면서생은 앞뒤로 협공을 받게 되자 조금 난처했다. 남궁방이나 남궁호의 무공은 백면서생의 아래가 아니었다. 한쪽에 놓고 견제를 하면서 싸우면 어떻게 해볼 수 있었지만 이렇게 양쪽에서 공격을 해오면 상대하기가 힘들었다. 그걸 눈치챈 흑웅일도가 도를 뽑아 들고 끼어들었다.
백면서생의 뒤를 공격하려던 남궁호는 옆에서 갑자기 매서운 칼바람이 일자 급히 몸을 틀어 피하면서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흑웅일도가 손바닥을 뻗어 맞받아치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흑웅일도와 백면서생이 남궁호, 남궁방과 싸우기 시작하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탈혼쌍도는 몸이 근질거렸다. 광서지방의 고수들을 모두 찾아다니면서 비무를 했을 정도로 싸움을 좋아하는 그들이었다.
남궁호와 남궁방의 무공이 뛰어난 것을 보니 피가 끓었다. 하지만 이 대 이로 짝을 맞춰서 싸우고 있는데 자신들이 끼어드는 것은 모양새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참고 있는데 적교희가 눈에 들어왔다. 일단 적교희를 잡으면 여러모로 유리할 거란 생각에 탈혼쌍도 중 한 명이 소리 없이 그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적교희를 향해 손을 뻗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 적운상이었다.
탈혼쌍도는 너무나 쉽게 손목을 잡히자 어이가 없었다. 이에 잡힌 손목을 뺄 생각도 않고 적운상을 쳐다봤다.
‘고수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탈혼쌍도의 머릿속에서 위험신호가 왔다.
상대의 역량을 가늠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비무를 해오면서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은 단지 무공만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뭐하고 있는 거냐?”
탈혼쌍도 중 나머지 한 명이 다가오다가 적운상이 힐끗 쳐다보자 그 박력에 눌려 멈칫했다. 그 역시도 적운상이 고수라는 것을 한눈에 간파했다.
“타핫!”
순간, 적운상에게 손목이 잡혀 있던 사내가 크게 기합을 내지르며 오른 손바닥을 뻗어냈다. 그와 동시에 뒤에 있던 사내가 도를 뽑아 들고 적운상의 어깨를 향해 내리쳤다.
콰앙!
한차례의 폭음이 울리면서 탈혼쌍도가 동시에 뒤로 튕겨져 나갔다. 한 명은 대청의 벽에 가서 쿵 소리를 내며 처박혔고, 또 한 명은 천장으로 떠올라 등을 부딪친 후에 꼴사납게 엎어졌다.
단 한 수였다. 단 일격에 광서에서 위명을 떨치고 이곳까지 온 탈혼쌍도가 나가떨어졌다.
한순간에 대청 안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적운상에게 모였다.
한창 열을 올리며 싸움을 하고 있던 남궁방과 남궁호, 그리고 흑웅일도와 백면서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어느새 싸움을 멈추고 훌쩍 물러나서 적운상을 보고 있었다.
적운상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태연하기만 했다. 적문후를 잠시 보다가 그 옆에 있는 황옥정을 보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적문후는 적운상의 모습이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하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누군지 알지 못했다. 기억을 더듬었지만 그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저렇게 무공이 뛰어난 고수가 없었다.
하지만 황옥정은 아니었다. 그녀는 적운상과 잠시나마 눈이 마주치자 단번에 그를 알아봤다. 어렸을 때의 뚱뚱한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세월도 십여 년이나 지났건만 그녀는 적운상을 똑똑히 기억했다.
“당신은 누구요?”
흑웅일도가 존칭을 쓰며 물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탈혼쌍도를 한 방에 보낼 정도로 무공이 대단하니 대우를 해줘야 했다.
“그전에 저들부터 치료를 해주시오.”
적운상의 말에 그제야 사람들은 탈혼쌍도를 봤다. 한 명은 완전히 정신을 잃은 상태였고 다른 한 명은 엎드려서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흑웅일도가 대청 밖에 있는 해룡방도들을 향해 눈짓을 했다. 그러자 그들이 달려와서 탈혼쌍도를 옮기고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무공이 대단하구려. 탈혼쌍도를 단 일 초식으로 저리 만들다니, 정말 탄복했소.”
백면서생이 적운상을 향해 포권을 취하면서 말했다. 그러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기는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장 형, 나는 저 사람이 누군지 알 것 같소.”
백면서생이 흑웅일도를 보며 하는 말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보기에 이제 약관을 벗어난 것 같은 나이에 그런 무위를 가진 사람은 몇 명 없을 거요. 우선은 무당파의 무당십걸과 소림사의 십팔나한을 들 수 있겠으나 도사차림도 아니고 승복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니니 그들과는 상관이 없을 테고, 화산파의 매화검수 역시 아닐 것이오. 세가에서 찾자니 특징이 없소. 하북팽가나 모용세가도 아니고 남궁세가도 아니오. 당문이라면 독을 썼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니, 짐작이 되는 것은 딱 한 명뿐이구려. 혹시 예전에 무적일검이라고 불리지 않았었소?”
“아!”
백면서생이 마지막에 적운상을 향해 묻는 말을 들으면서 사람들은 모두 탄성을 터트렸다. 그제야 적운상이 누군지 짐작이 갔던 것이다.
“모두 짐작했겠지만 그는 천하제일의 고수라 불리는 무적일검이오. 만나게 돼서 영광이오. 적 대협. 다시 한 번 인사드리오.”
백면서생이 짐짓 예의를 차리면서 다시 포권을 했다. 이쯤 되자 적운상은 그를 무시할 수가 없어서 마주 포권을 취하면서 예를 받았다.
“형산파의 적운상이오.”
“오오…….”
적운상이 직접 스스로를 밝히자 다시 한 번 좌중이 술렁거렸다. 대청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해룡방의 사내들은 걷잡을 수 없이 두려움이 일었다. 객잔에서 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 그녀가 그렇게 어깨에 힘을 줬었던 거로군.’
그들은 객잔에서 적운상을 만났을 때 제때에 물러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안 그랬으면 탈혼쌍도처럼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적 대협께서 이곳에는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봐도 되겠소? 혹시 적 장주가 초청을 해서 온 것이오?”
백면서생이 묻는 말에 해룡표국의 표국주가 살짝 긴장을 했다. 만약 적운상이 적문후의 부탁으로 온 것이라면 자신들은 그냥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해룡방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이곳 강서지역에 한해서였다. 천하에 명성을 쟁쟁하게 떨치고 있는 적운상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만약 적운상을 적으로 돌려야 한다면 해룡방은 표국주를 버리려 할 것이다.
적운상에 의해서 호천마궁이 봉문을 하고 무림맹이 와해되었다. 해룡방은 그들 두 세력에 비하면 지방의 작은 문파에 불과할 뿐이었다.
표국주를 도와주면 떨어지는 이득이 많으나 문파의 존망을 걸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오. 나는 적 장주를 모르오.”
적운상이 하는 말에 표국주가 눈에 띄게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적문후의 부인인 황옥정도 마찬가지로 안도하는 표정을 보였다.
“그럼 이곳에 온 이유가 뭐요? 그리고 갑자기 탈혼쌍도에게 손을 쓴 이유도 궁금하오. 그들은 해룡방에서 초청한 손님들이었소. 이미 적 대협에게 당했으니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이유는 알아야 하지 않겠소?”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누이동생인 적교희 때문이오. 그리고 방금 그들에게 손을 쓴 것은 그들이 누이동생을 붙잡으려 들었기 때문이오. 대답이 되었소?”
적운상의 말을 들으면서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적 장주를 모르는데 어떻게 적교희가 누이동생이 된단 말인가?
오가다 만나서 의남매가 되었을 수도 있었지만 두 사람 다 성이 적씨라는 것이 조금 걸렸다.
“물론이오. 충분히 대답이 되었소. 그럼 한 가지만 더 묻겠소. 당신은 이번 일에 간섭을 할 생각이오?”
결국 백면서생이 하고 싶었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적운상이 이번 일에 개입을 할지 말지가 그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그가 개입을 한다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여기서 깨끗하게 물러나야 했다.
“나는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은 관심 없소.”
적운상의 말에 표국주는 다시 한 번 안도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런 표국주를 힐끗 한 번 본 백면서생이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하지만 적교희가 하는 말에 두 사람의 얼굴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오라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저들이 하는 말을 들었잖아요! 내가 그 망나니 같은 사람한테 시집가기를 바라나요?”
“그건 좀 그렇군.”
적운상이 표국주를 봤다. 그러자 표국주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하하. 그저 조건이 그렇다는 거였지 꼭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적 대협이 싫다고 하면 그건 조건에서 빼겠습니다.”
“그럼 아예 그냥 전부 없던 일로 하고 돌아가요. 안 그럼 오라버니한테 이야기해서 당신들을 혼내주라고 할 거예요.”
“적 소저, 이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오.”
“뭐가 간단하지 않다는 거죠? 어쩌다 일어난 싸움 때문에 이렇게 우르르 몰려와서 힘자랑을 하고 있잖아요.”
“당한 사람 입장도 좀 생각해주시오.”
“그럼 아예 칼을 차고 다니지 말아야죠! 한번 말해보세요. 상영 오라버니가 비겁한 수를 써서 그 사람을 다치게 만들었나요?”
“때론 그렇게 논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오.”
“좋아요. 그럼 힘으로 해결해요. 오라버니. 저들을 당장 쫓아내주세요.”
화가 난 표정으로 적교희가 적운상에게 부탁을 했다. 그러자 당황한 표국주가 당장에 아까 한 이야기를 꺼냈다.
“적 대협은 이번 일에 관여치 않는다고 하지 않았소? 적 대협 같은 분이 설마 한 입으로 두말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소.”
“표국주님, 저는 당신을 굉장히 존경했어요. 인덕도 대단하시고 무공도 뛰어나시며 무엇보다 표사아저씨들을 잘 챙겨주셨잖아요. 하지만 망나니 아들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이다니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네요.”
적교희가 흥분해서 목소리가 높아지자 적운상이 그녀를 제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표국주와 백면서생을 보며 말했다.
“아까 나는 나와 관계없는 일에는 관여를 하지 않겠다고 했소. 하지만 교희가 관계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