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54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54화
354화. 부자상봉 (1)
악안에서 가장 세력이 강한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모두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해룡표국을 말한다. 해룡표국은 강서제일문파인 해룡방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강서삼대표국에 들 정도로 대단한 곳이다.
하지만 그런 해룡표국조차도 눈치를 보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적가장이었다. 적가장은 악안에 아주 오래전부터 뿌리를 내려온 유지였다. 가지고 있는 땅만 해도 엄청나서 악안의 반은 적가장의 소유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몇 대에 걸쳐 그렇게 지내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악안의 주민들은 모두가 조금씩은 적가장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소작(小作)을 할 경우 적가장에서 땅을 빌려야 하고, 급전이 필요할 경우도 대부분 적가장을 이용했다.
악안의 흑도문파들조차도 적가장 앞을 지나갈 때면 조용히 지나갔다.
과거에 거산방(巨山幇)이라는 흑도문파가 주제를 모르고 적가장을 적으로 돌린 적이 있었다. 악안에 와서 갓 뿌리를 내리려던 그들은 적가장의 무력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돈만 많은 거부라고 착각을 한 것이다.
그날, 단 하루 만에 거산방은 완전히 박살이 났다. 적가장의 장주인 적문후가 아는 고수들을 불러다가 부탁을 한 것이다. 돈이 있으면 당연히 인맥이 따르는 법이다.
게다가 몇 대에 걸쳐서 그 지역으로 유지로 지내고 있는데 갓 들어온 그런 흑도문파에게 밀릴 적가장이 아니었다.
그런데 요 며칠 전부터는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해룡표국과 마찰이 생긴 것이다.
해룡표국만 놓고 보자면 문제가 아니었지만 그 뒤를 받쳐주는 것이 해룡방이니 문제가 컸다. 게다가 사람을 크게 상하게 한 일이라서 돈으로 어떻게 해결을 보려 해도 해룡표국에서 거절을 하고 있었다.
“하아…….”
서재에 앉아서 차를 마시던 적문후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공, 너무 근심하지 마세요. 남궁세가와 천룡사에서 사람들이 왔으니 아무리 해룡방이라고 해도 함부로 하지는 못할 거예요. 그리고 보타문에서도 사람이 오고 있잖아요. 미약하기는 하지만 월영매화문에서도 문주가 직접 와서 있고요.”
“후우…… 그렇지가 않소. 그들과 쉽게 타협을 보려면 이쪽의 힘이 월등해야 하오. 하지만 그렇지가 않지 않소? 남궁세가는 무림맹이 와해된 이후로 활동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소이다. 그래서 그 이름값이 예전만 못하오. 천룡사의 지덕대사가 덕이 높기로 유명하지만 과연 해룡방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소. 보타문의 보해신니가 여러모로 대단하기는 하지만 해룡방과 맞설 정도는 아니라오. 애초에 상영이가 너무 큰 실수를 했소. 이번 일은 장차 적가장을 이끌어 가는 데 큰 오점이 될 것이오.”
적문후가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한탄을 했다. 이번 일의 발단은 하나뿐인 아들인 적상영에게 있었다. 월영매화문은 악안제일의 문파였다. 적상영은 그곳의 정식제자로 들어가 밤낮으로 무공을 연마한 결과 다음대의 문주로 거론될 정도로 강해졌다.
그것까지는 좋았지만 실력을 과신한 것이 문제였다. 우연찮게 해룡표국의 표사들과 월영매화문의 제자들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서로 아는 얼굴들이라 처음에는 양보를 하는 것 같았지만 혈기가 끓는 젊은이들이다 보니 금방 칼을 뽑아 들게 되었다.
무공이 뛰어난 표국주의 아들 한태덕이 월영매화문의 제자들을 일시에 눌러가자 적상영이 나섰다. 몇 번 검을 섞던 한태덕은 적상영에게 질 것 같아지자 이를 악물고 죽일 듯이 덤벼들었다.
적상영은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적당히 싸우다가 물러날 줄 알았는데 죽자 사자 덤벼드니 맞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크게 부상을 입을 것 같았다.
기세는 한태덕이 더 대단했지만 무공은 적상영이 뛰어났다. 적상영은 마지막까지 숨겨두었던 비기로 한태덕의 다리를 깊숙이 베었다.
그제야 싸움이 멈추고 표사들이 한태덕을 부축해서 자리를 떴다. 적상영은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시작이었던 것이다. 다음 날 해룡표국에서 적가장으로 사람이 왔다. 한태덕이 한쪽 다리를 영원히 못쓰게 되었으니 그 책임을 지라며 과도한 요구를 해왔다.
그 싸움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누가 다쳐도 할 말이 없는 일인데 그런 요구를 해오니 적상영은 황당했다.
그래서 들은 체도 안 하고 돌려보냈는데 그로 인해 일이 더 커진 것이다. 해룡표국의 표국주가 표사들을 이끌고 직접 적가장으로 찾아와서 보상을 하든지 아니면 적상영도 똑같이 다리 하나를 내놓으라고 윽박을 질렀다.
적상영이 억울해하며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만약 그것이 일대일의 비무였다면 다리 하나가 아니라 목숨을 잃었다고 해도 한태덕은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비무가 아니라 패싸움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뒤늦게 적문후가 그 사실을 알고 사정을 봐달라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결국 적문후는 남궁세가와 천룡사, 그리고 보타문에 연락을 해서 사람들을 불렀다.
그들에게 중재를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왔다고 해서 해룡표국에서 응해줄지는 알 수가 없었다.
“장주님! 큰일 났습니다.”
종복 하나가 허겁지겁 들어오는 것을 보고 적문후는 올 것이 왔음을 알았다.
“왜 그리 난리더냐? 해룡표국에서 왔느냐?”
“그, 그렇습니다.”
“가서 손님들에게 알리고 그들을 대청으로 안내해라.”
“알겠습니다.”
노복이 나가고 나자 적문후가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장검을 꺼내서 허리에 찼다. 그걸 보고 적문후의 부인인 황옥정이 놀라며 물었다.
“상공, 어째서 검을 가져가는 겁니까?”
“허허. 일이 어찌 될지 모르지 않소? 저들이 작심을 하고 온 것 같으니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소. 걱정 마시오. 검을 쓰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오. 어디까지나 만약을 위해서요.”
“그래도…….”
적문후의 무공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심신의 건강을 위해서 검법을 조금 익혔을 뿐이었다. 그러니 황옥정이 걱정을 하는 것이 당연했다.
“괜찮소. 당신은 일이 끝날 때까지 여기에 있으시오.”
“아니요. 저도 가겠어요.”
“위험할 수도 있소.”
“내 집이 위험하다면 어디에 있던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도 그렇군. 알겠소. 그럼 같이 갑시다.”
적문후가 허락하자 황옥정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함께 밖으로 나갔다.
* * *
적문후는 대청 입구에 몰려 있는 사람들을 보며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얼추 오십 명에 달하는 그들은 해룡표국의 표사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반이었고, 해룡방의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반이었는데 풍기는 분위기가 매우 험악했다. 협상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마치 싸움을 하러 온 것 같았다.
적문후가 황옥정과 함께 다가가자 그들이 못마땅한 눈으로 노려보며 옆으로 비켜섰다. 적문후가 그들을 지나쳐 대청으로 들어가자 염소수염을 기른 장년사내가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풍기는 네 명의 사내들과 함께 있는 것이 보였다.
염소수염을 기른 장년사내는 해룡표국의 표국주였지만 같이 있는 사내들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보통 인물들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문후가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남궁세가와 천룡문, 그리고 보타문에서 사람을 불러왔듯이 그들도 해룡방에서 사람을 불러왔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해룡방의 인맥을 이용해서 더 대단한 사람들을 불러온 것일지도 몰랐다.
“오셨구려.”
적문후가 반갑지 않게 해룡포국의 표국주에게 포권을 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그도 그다지 반갑지 않은 얼굴로 포권을 취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당연히 와야 하지 않겠소?”
“그런데 옆에 있는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구려.”
“그럴 거요. 여기 있는 두 분은 내가 곤경에 처한 걸 알고 해룡방에서 오신 분들이오. 흑웅일도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소.”
표국주의 말을 들은 적문후는 크게 놀랐다. 해룡방에서 도움을 줄 거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흑웅일도가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흑웅일도는 큰 키에 비쩍 마른 중년의 사내였다. 얼굴에 자상이 여러 개 나있고 손에는 한 자루 도를 들고 있었다. 커다란 곰을 단 칼에 갈랐다는 바로 그 칼이리라.
“여기 이분이 흑웅일도 장 대인이시오. 그리고 그 옆에 계신 분은 백면서생(白面書生) 오 대인이시오.”
적문후는 또 한 번 놀랐다. 별호가 백면서생인 오 대인은 흑웅일도 장 대인과 함께 해룡방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였다. 생긴 것이나 옷차림은 글밖에 모르는 연약한 서생 같지만 무공이 대단히 뛰어나고 손속이 잔인했다.
“명성은 익히 들었소. 두 분의 고수를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적문후가 흑웅일도와 백면서생에게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했다. 하지만 흑웅일도는 무표정하니 한마디 대꾸도 없이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에 비해 백면서생은 환하게 웃으면서 마주 포권을 취했다.
“반갑소. 장주께서 허명을 알아주니 부끄럽구려.”
“천만에 말씀입니다.”
표국주는 적문후가 흑웅일도와 백면서생에게 깍듯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에게 기가 많이 눌렸으니 이제 나머지 두 사람을 소개한다면 이미 협상은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험. 그리고 여기에 있는 두 분은 광서에서 혁혁한 이름을 떨치고 있는 탈혼쌍도(脫魂雙刀)이시오.”
탈혼쌍도는 광서제일의 고수들이었다. 수년 동안 광서지역의 고수들을 두루두루 찾아다니면서 모두 꺾고 더 이상 상대할 사람이 없자 이제는 강서로 온 것이다.
최근 강서에서 적운상 다음으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허, 완전히 작심을 하고 왔구나. 작심을 하고 왔어.’
적문후는 오늘 하루가 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흑웅일도와 백면서생, 그리고 탈혼쌍도까지 왔으니 어떻게 그들을 누를지 자신이 없었다.
“두 분의 명성은 귀가 따갑게 듣고 있소이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이오.”
탈혼쌍도는 덩치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당히 컸다. 키만 해도 보통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차이가 났다. 그래서 그냥 서있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반갑소.”
탈혼쌍도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포권을 취했다.
“저들은 누구요? 천룡사에서 오신 지덕대사는 알겠는데 나머지는 누군지 모르겠구려.”
어깨가 우쭐해진 표국주가 적문후의 뒤에 서있는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사실 그는 지덕대사뿐만이 아니라 월영매화문의 문주도 알고 있었지만 아들을 상하게 한 적상영의 사문인지라 일부러 그리 말했다.
“저기 계신 분은 보타문에서 온 보해신니시오.”
“오…… 그렇구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보해신니는 작은 체구의 노파였다. 하지만 눈빛이 형형한 것이 무공이 굉장히 뛰어나 보였다.
“그리고 옆에 있는 두 분은 남궁세가에서 오신 남궁방, 남궁호 대협이시오.”
“남궁세가에서 오셨구려. 반갑소.”
남궁세가란 말에 표국주는 잠시 움찔했지만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그들을 이렇게 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무림맹이 와해되고 무림의 거대문파들과 세가들이 속속들이 봉문을 하면서 남궁세가의 세력도 크게 줄고 있었다.
“반갑소.”
두 사람이 포권을 취하자 표국주도 포권을 취했다.
“일단 자리에 앉으시오. 앉아서 이야기를 합시다.”
적문후가 모두에게 자리를 권하자 둥그런 탁자에 모두가 둘러앉았다. 시비가 차를 내왔지만 손을 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표국주였다.
“긴말하지 않겠소. 적 장주.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나는 지금 필사적으로 슬픔을 누르고 있소이다. 내 뒤를 이을 아들이 당신 아들 때문에 절름발이가 되었소. 정당한 대결로 그리 된 것이 아니고 그쪽에서 무리지어 내 아들과 표사들을 공격했으니, 거기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오. 처음에는 너무나 화가 나서 내가 당신이 가진 재산의 반을 달라고 했으나 집으로 돌아와 머리가 좀 식으니 내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더이다.”
생각지도 않게 표국주가 양보를 할 기미가 보이자 적문후는 약간 의외였다. 그래서 그가 하는 말 중에 옳지 않은 부분이 있어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내 아들은 이제 무림인으로서는 성공하기가 힘들게 되었소. 표사일도 하지 못할 것이오. 다행히 상재(商材)가 좀 있으니 그쪽으로 진출을 시킬 생각이오. 그러니 적 장주가 좀 도와주었으면 하오.”
“원하는 것을 말해보시구려. 내가 들어줄 수 있다면 도와드리리다.”
“원하는 것은 두 가지요. 하나는 소복산의 채굴권이오.”
표국주의 말에 적문후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소복산에서 채굴을 해서 벌어들이는 돈은 적가장의 수입 중 절반을 차지했다. 그걸 선뜻 내놓으라니 기가 막혔지만 적문후는 내색을 하지 않으며 나머지 조건 하나를 물었다.
“또 하나는 뭐요?”
“원래 내 아들 정도 되면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소이다. 그런데 절름발이가 되었으니 이제는 장가가기가 힘들 게 되었소. 그래서 적 장주의 여식을 보내줬으면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