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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353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6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53화

353화. 다시 강서로 (3)

 

“후후. 돌이켜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구만.”

술에 취한 이존의가 딸꾹질을 하며 중얼거렸다. 적운상과 첫 비무를 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몇 년이 흘렀는지 모른다. 비무에 져서 형산파의 식객으로 온 이후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무공에 대해 많은 사람들과 마음을 터놓고 연구하며 지내다 제자까지 생겼다. 절친한 사이인 홍문형과 같이 지내는 것도 좋았다. 말년에 이 정도면 복에 겨운 것이 아닌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술 한 잔 나눌 벗이 있으며, 뒤를 이어줄 제자가 있다. 비록 가정을 이루지는 않았지만 가족과 같은 사람들이 이곳에는 가득했다.

“그렇지. 그래. 클클.”

홍문형이 마지막 술잔을 비우면서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손녀인 홍은령은 요즘 신혼재미가 한창이었다. 적운상은 완전히 잊어버린 듯, 막정위에게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한 문파를 책임지는 장문인의 부인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예전의 천방지축 같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누가 봐도 현모양처였다. 예전에 홍은령이 어땠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 그녀가 원래부터 그렇게 조신하고 현명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게다가 형산파와 그렇게 사돈을 맺어놓으니 호남 일대에서는 더 이상 금검문에 시비를 거는 자들이 없었다. 오히려 잘 보이기 위해서 안달이었다.

큰 문파들과 마찰이 생겨도 그쪽에서 먼저 타협을 해오는 일이 많았다. 적운상의 명성이 워낙에 높으니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그건 금검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적운상의 재능을 알아보고 전폭적인 지지와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상관보는, 이제 호남뿐만이 아니라 호북과 강서지방으로도 진출을 해서 많은 이득을 챙기고 있었다. 돈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투자한다는 상관도백의 의지는 현재 그의 손녀딸인 상관보연이 이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혁무한이었다. 그의 무릎에는 은서린이 머리를 대고 잠들어 있었다.

조용히 술잔을 비운 그는 은서린을 납치해서 적운상과 싸울 때가 생각났다. 그때만 해도 그는 적운상보다 강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 초도 받아내지 못한다.

그가 약한 것이 아니었다. 혁무한은 명옥심법을 이미 팔성 가까이 익혔다. 누구보다 먼저 시작했기 때문에 성취가 가장 빨랐다. 거기다 통천문의 절기인 진천무상검법(振天無像劒法)과 삼십이로(三十二路)의 파옥도법(破屋刀法)은 절정에 올라 있었다.

신검합일의 경지에서 이제는 심검의 경지를 넘보고 있으니 결코 약한 것이 아니었다. 적운상이 터무니없이 강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이제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혁무한에게 중요한 것은 그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잠들어 있는 은서린이었다.

‘조만간 달라고 해야겠군.’

은서린은 형산파의 살림을 거의 도맡아서 했다. 최근에는 홍은령에게 많이 위임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녀가 하는 일이 많았다.

게다가 적운상이 명성이 높아지면서 그의 사형제들을 데려가려는 사람들이 날로 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적운상과 연줄을 만들어놓으려는 것이다. 현재 가장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초사영과 은서린이었다. 혼인을 전제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혁무한은 한때 호남의 칠대세력 중 가장 강했던 통천문의 둘째 공자였다. 하지만 그런 배경보다 더 좋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날마다 매파를 보내오고 있었다.

그 때문에 혁무한은 마음이 조급했다. 은서린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녀의 사형들이 반대를 하면 혼인이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요즘은 뭘 주고 은서린을 달라고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다.

“저는 먼저 일어서겠습니다.”

적운상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며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모두 그를 봤다.

“오늘 출발하려면 조금 쉬어야겠구만.”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신경 쓰지 말고 더 즐기십시오.”

이존의가 하는 말에 대꾸를 하던 적운상은 몸을 한 번 비틀거렸다. 술기운 때문이었다. 아무리 마셔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던 적운상이건만 오늘은 기분이 좋아 다른 때와 달리 너무 많이 마신 것이다.

“가서 쉬게나.”

“그럼.”

적운상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떴다.

* * *

 

그날 오후, 적운상은 눈을 뜨자마자 떠날 채비를 했다. 적교희가 가기 싫어하는 눈치를 보였지만 적운상은 무시했다. 집에서 몰래 나온 지 몇 달이나 됐건만 지금까지 연락 한 통 하지 않았으니 부모님이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가자.”

먼저 준비를 끝낸 백수연이 와서 말하자 적운상이 봇짐을 메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적교희가 팔을 잡으면서 매달렸다.

“잠깐만요. 저 안 가면 안 돼요? 혼례식 보고 가고 싶어요.”

“그럼 갔다가 부모님한테 허락받고 다시 와.”

“허락 안 해주신단 말이에요.”

“시간 없으니까 가면서 이야기하자.”

“지금 이야기해야죠!”

적교희의 언성이 높아지자 적운상이 미간을 살짝 좁히며 쳐다봤다. 그 눈빛에 적교희가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다.

“가기 싫은데…….”

“빨리 와.”

냉정하게 말하고 방을 나가는 적운상을 보며 적교희가 사납게 눈을 한 번 치켜떴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적운상의 기세에 눌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투덜거리면서 뒤를 따라 나가야 했다. 백수연이 그런 적교희의 등을 다독여줬다.

형산을 내려온 세 사람은 말을 타고 관도를 따라 달렸다. 가다가 밤이 되면 쉬고 날이 밝으면 다시 달렸다. 며칠을 그렇게 이동하자 강서에 들어설 수가 있었다.

악안 근처에 다다랐을 때였다. 길가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사내들이 몰려와서 소란을 떨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들은 마치 이곳에 자신들밖에 없는 것처럼 큰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한쪽 탁자에 앉아 있던 손님들이 그들의 눈치를 보다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른 곳에 앉아있던 손님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먹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적교희가 인상을 팍 쓰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이봐요! 좀 조용히 할 수 없어요!”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왁자지껄하니 떠들어대던 사내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적교희를 노려봤기 때문이다. 그들이 뿜어내는 험악한 기세에 적교희는 움찔했다.

하지만 말없이 소면을 먹고 있는 적운상을 한 번 힐끔 보고는 팔짱을 척하니 끼면서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그렇게 보면 누가 무서워할 줄 알아요? 여기에 당신들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조금만 조용히 해줘요.”

적교희가 기죽지 않고 말하자 사내들 중 한 명이 눈을 부라리며 다가가려고 했다. 손을 봐주려는 것이다.

“기다려.”

그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적교희에게 다가가려는 사내를 말렸다.

적교희를 보니 입고 있는 옷은 평범하지만 피부가 곱고 손이 흰 것이 고생을 모르고 귀한 집에서 자란 것 같았다. 게다가 같이 있는 적운상과 백수연은 상황이 이런데도 너무나 여유가 있었다.

강호의 경험이 많은 그는 적운상과 백수연이 굉장한 고수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우리는 해룡방(海龍幇) 사람들이오. 어린 소저가 함부로 말하니 조금 어이가 없군. 뭘 믿고 그러는지는 몰라도 강호에서는 항상 조심해야 하오.”

해룡방은 강서에서는 상당히 세력이 강한 문파였다. 성도(聖都)인 남창(南昌)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강서 곳곳에 퍼져있는 분파만도 십여 개나 되었다.

강서는 유난히 흑도문파들이 많은 지역인데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곳이었다. 그래서 해룡방의 이름만 대면 웬만해서는 양보하고 그냥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

적교희도 그러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믿는 것이 있는지라 여전히 큰소리를 쳤다.

“내가 뭐 틀린 말 했어요? 조심해야 할 사람들은 당신들이잖아요.”

“정말 경우를 모르는군. 혹시 옆에 있는 두 사람을 믿고 그러는 거요? 이쪽에서 먼저 정체를 밝혔으니 통성명이나 합시다.”

사내들의 우두머리가 그렇게 말했지만 적운상은 들은 체도 하지 않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백수연과 적교희를 향해 말했다.

“다 먹었으면 가자.”

“에? 잠깐만요. 오라버니.”

적교희가 당황하며 적운상을 붙잡으려고 하는데 뒤에서 탁자를 내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탕!

“시비를 걸고 그냥 가겠다는 것이오?”

그제야 적운상이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눈이 마주친 사내들의 우두머리가 움찔하며 탁자를 내려쳤던 손을 슬그머니 거뒀다. 적운상이 뿜어내는 박력에 기가 눌린 것이다.

“누이동생이 아직 세상을 몰라 실례를 했소.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시오.”

포권을 취하면서 정중하게 하는 말이었지만 기세는 그렇지 않았다. 계속 붙잡고 까불면 목을 날릴 것만 같았다.

‘고수다!’

우두머리 사내는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을 깨달으며 해룡방의 이름을 대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적운상이 귀찮아서 그러는 것을 모르고 해룡방의 이름에 눌려서 그런 다고 여긴 것이다.

“아, 아니오. 우리도 실례를 했으니 없던 일로 칩시다.”

“그럼.”

“살펴 가시오.”

적운상이 다시 한 번 포권을 취하자 우두머리 사내는 얼결에 같이 포권을 취하면서 인사까지 했다. 그리고 적운상이 적교희와 백수연을 데리고 식당을 나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냥 보내준 겁니까? 내 생전에 그렇게 예쁜 계집들은 처음 봤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사내 둘이 히죽거리면서 묻자 우두머리 사내가 왈칵 화를 냈다.

“닥쳐! 이 멍청한 놈들! 방금 아차 했으면 우린 모두 여기서 죽었어.”

“네?”

“그자가 누군데 그럽니까? 혹시 아는 사람이었습니까?”

“아니. 모르는 자였다. 하지만 무공이 굉장한 고수가 틀림없다. 봐라. 손에 이렇게 땀이 배어 있잖아.”

“저희는 잘 모르겠는데요.”

“그러니까 내가 무공수련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했잖아.”

“장 대인보다 강합니까?”

장 대인은 해룡방의 돌격조 조장이었다. 산속에서 커다란 곰을 만났는데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한 방에 쳐죽인 일은 아주 유명했다. 그래서 별호도 흑웅일도(黑熊一刀)였고, 해룡방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였다.

“그걸 말이라고 하냐? 우리보다 강할 뿐이지 장 대인만큼은 아니다.”

“이번에 장 대인을 만나게 되면 잘 좀 봐달라고 이야기해 주십시오. 그래야 저희 분타가 클 거 아닙니까?”

“알아. 그건 걱정하지 마라. 악안적가의 일을 잘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장 대인이 도움을 주실 것이다. 운이 좋으면 한 수씩 무공을 가르쳐줄지도 모르지.”

“벌써부터 마음이 들뜨는군요. 빨리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자.”

사내들은 다시 왁자지껄하며 음식을 주문하고 떠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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