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52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52화
352화. 다시 강서로 (2)
“모두 멈춰라!”
도독첨사 이기혁의 갑작스러운 외침에 모두가 그를 봤다. 그러자 이기혁이 적운상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까 위진학을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대가 적운상이오?”
“그렇소.”
“험!”
헛기침을 한 번 한 이기혁이 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서 펼치더니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어명이오! 모두 무릎을 꿇으라!”
잠시 망설이던 사람들은 곧 너 나 할 것이 없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이기혁이 낭랑한 목소리로 두루마리에 있는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적운상은 들으라! 짐이 듣건대 그대의 무공과 인품이 매우 뛰어난 바, 나라를 위해 그 재능을 유감없이 빛내도록 기회를 주겠노라. 해서 그대에게 정삼품의 직위를 내리고 무령통보사로 임명하노라.”
적운상은 갑자기 관직을 주겠다니 어리둥절했다. 게다가 정삼품이라니?
웬만한 사람들은 평생을 바쳐야 간신히 올라갈 수 있는 직위였다.
“무엇하는가? 어서 받지 않고?”
이기혁이 소리치면서 두루마리를 적운상에게 건넸다. 적운상은 얼결에 그걸 받아들었다. 그러자 이기혁이 웃으면서 그를 일으켰다.
“하하하하. 축하하네. 어떻게 황제 폐하의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내 생전에 이런 특혜는 처음 보는군. 하하하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떻게 되긴? 보다시피 폐하께서 자네에게 관직을 내린 것 아닌가? 아, 내 소개를 안 했군. 나는 전군도독부의 도독첨사인 이기혁일세. 사람들은 나를 남방의 호랑이라고 부르지.”
사실 스스로는 남방의 호랑이라 칭하지만 다른 이들은 남방의 고양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가 도독첨사가 된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가문이 대단해서이지 능력이 대단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관직을 받을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럴 마음도 없습니다.”
“그런가?”
남들은 못해서 안달인 관직이었다. 더구나 정삼품의 고위직이지 않은가?
이기혁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적운상을 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황제 폐하의 명이 내려오지 않았나? 내달까지 황궁으로 가야 하네. 그때 정식으로 임명이 될 걸세.”
“저한테는 과분하군요. 거절할 방법은 없는 겁니까?”
“있지. 황제 폐하를 뵙고 직접 말하면 되네. 폐하께서 정하신 일이니 거둘 수 있는 것도 그분뿐일세.”
이래저래 황궁으로 가야 한다는 소리였다. 적운상은 썩 내키지 않았지만 방법이 없으니 가야 했다.
“저들은 왜 붙잡아둔 겁니까?”
“응? 아, 증인이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닌가? 그래서 잡아둔 걸세. 그대들은 이제 가도 좋다.”
이기혁이 하는 말에 위진학이 그를 잠시 노려보다가 적운상을 한 번 힐끗 보고는 몸을 돌렸다. 그러자 채심의와 풍민주, 그리고 마도연맹의 고수들이 모두 그를 따라 자리를 떴다.
적운상은 증인이라는 말에 미간을 살짝 좁혔다. 갑자기 왜 황제가 그런 직위를 주며 불러들이려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림인들과 황궁은 지금까지 서로 크게 간섭을 하지 않으면서 지내왔다. 게다가 적운상은 황궁에 아는 사람도 없었다.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적운상은 이기혁을 봤다. 그는 뭔가를 바라는 눈치로 아직도 가지 않고 있었다. 보통은 이런 일로 오면 며칠 정도 거하게 대접을 받기 마련이라서, 그걸 바라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뭔가가 남았습니까?”
“응? 하하. 아닐세. 험! 그럼 이만 가보겠네.”
이기혁은 적운상이 대접할 마음이 없는 것 같자 기분 나쁜 기색을 약간 내비치며 말에 올랐다.
“잊지 말게. 내달까지는 황궁으로 와야 하네.”
“알겠습니다.
이기혁이 병사들과 함께 가자 적운상은 주양악의 손을 잡고 이리저리 몸을 살펴봤다.
“뭐해? 사형.”
“어? 아니야. 다치지 않았어?”
“응. 괜찮아.”
“홀몸도 아니잖아. 이제는 조심해야지.”
“알아. 하지만 수연 언니가 위험했어.”
적운상은 별말 않고 주양악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줬다. 그러다 멍하니 넋을 잃고 있는 천고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뭐합니까?”
“너, 너…… 어떻게 그렇게 강한 거야? 물 위를……물 위를 달렸잖아!”
“새삼스럽게 왜 그러는 겁니까?”
천고는 전혀 새삼스럽지 않았다. 적운상이 그렇게 무공이 뛰어나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풍기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고는 생각했었지만 설마 그런 경지에 다다른 고수일 줄은 전혀 몰랐었다.
적운상은 그런 천고의 시선에 그저 웃기만 하면서 주양악과 함께 초옥으로 들어갔다.
* * *
“일단 형산파로 가자.”
저녁 식사를 하면서 적운상이 모두를 향해 말했다.
“왜? 나 때문에?”
주양악이 하는 말에 적운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 달 안에 교희도 데려다줘야 하고, 황궁에도 가려면 시간이 촉박해. 몸도 안 좋은데 같이 다니려면 많이 힘들 거야. 그러니까 형산파에 가있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배 속에 있는 아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천고가 말하기를 임신을 하고 나면 처음 몇 달간은 아주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 무리한 여행은 피하는 것이 좋았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난수도 같이 가있어.”
“네? 아니 나는…….”
“가있어. 양악이를 좀 보살펴줘.”
백리난수가 잠시 망설이는데 옆에 있던 천고가 닭다리를 으적으적 씹으면서 끼어들었다.
“딱히 갈 곳이 없으면 같이 가. 형산은 경치가 뛰어나니 다 같이 둘러보면 되겠네.”
“천고도 갈 거예요?”
“가지 뭐. 그렇잖아도 여기서 사는 것이 이제는 슬슬 지루해지려던 참이었어.”
천고의 말에 적운상이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
“천고가 같이 간다면 환영입니다. 양악이한테 도움이 될 겁니다.”
“으이구. 그저 제 부인만 챙기네. 아직 혼례식도 안 올렸다면서?”
“한 달 뒤에 할 겁니다.”
생각지도 못한 적운상의 말에 주양악과 백수연이 약간 놀란 기색을 보였다. 혼인을 하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적운상은 항상 바빴다. 게다가 언제 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적도 없었다. 그래서 마냥 기다리고만 있었는데 이제야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이것 좀 더 먹어.”
백수연이 적운상의 밥 위에 반찬을 하나 얹어줬다. 그러자 주양악도 조금 쑥스러워하면서 그 위에 반찬을 얹어줬다.
“이것도 먹어. 사형.”
“잘들 논다. 잘들 놀아. 혼인하면 좋은 줄 알아? 평생 한 사람만 바라보면서 살아야 되는데 뭐가 좋다고 그래? 혼인은 스스로를 구속하는 거라고.”
“호호. 상대 나름이죠.”
백수연이 재치 있게 받아치자 천고는 할 말이 없었다. 하긴 적운상 정도 되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었다. 길에서 마주쳐도 한번쯤 돌아볼 정도로 잘생겼고, 무공은 아직 서른 살도 되지 않았는데 천하제일이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 그로 인해 적운상을 추종하며 따르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지금도 적운상에게 딸을 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을 정도였다.
“웃기는…….”
결국 그렇게 말하면서 천고도 웃고 말았다.
* * *
며칠 후, 적운상은 모두와 함께 초옥을 나섰다. 그리고 가까운 큰 마을에 도착하자 마차를 한 대 구해서 여자들을 태웠다. 형산파로 가는 동안 적운상은 주양악을 지극정성으로 대했다. 백수연과 백리난수는 물론이고 천고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사람이 바뀌어도 어떻게 저렇게까지 바뀔 수가 있는지 모두 웃음이 나왔다.
형산파에 도착하자 막정위는 예정보다 일찍 온 적운상을 보고 의아해했다. 하지만 그간 있었던 일들을 전부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을 했다. 그러면서 천고가 금당의가(金堂醫家) 출신이며 의술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하자 반갑게 맞았다.
지금 형산파에는 의원이 없었다. 사람이 날로 늘어나면서 만날 대련과 비무를 하는 바람에 부상자들이 적지 않게 생겨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각자가 알아서 치료를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물론 나름대로 의술에 뛰어난 사람들이 몇 명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천고처럼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래서 형산파에서 계속 상주할 의원을 한 명 데려올 생각을 하던 차였는데, 마침 천고가 적운상을 따라온 것이다.
막정위는 은서린에게 천고가 쉴 수 있는 방을 안내하게 했다. 처음부터 무작정 머물라고 하기보다는 지내는 동안 여러모로 신경을 써줌으로서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지내게 할 생각이었다.
천고가 가고 나자 적운상이 멋쩍어하면서 주양악이 임신한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막정위는 눈이 동그래져서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옆에 있던 초사영도 마찬가지였다.
“그, 그게 정말이냐?”
“네. 장문사형.”
“그럼…… 빨리 혼례식을 올려야겠구나.”
“그렇잖아도 그 일을 좀 의논했으면 합니다.”
“계획이 있는 거냐?”
“네. 두 달 정도면 교희를 집에 데려다주고 황궁에도 갔다 올 수 있을 겁니다. 그때 혼례식을 했으면 하는데, 초 사형이 마음에 걸리는군요.”
순서대로라면 막정위 다음에는 당연히 초사영이 혼례를 해야 했다. 그래서 말했던 건데 초사영은 도리어 화를 내며 적운상을 나무랐다.
“무슨 소리야? 먼저 할 수 있으면 당연히 해야지. 나를 뭐로 보는 거냐? 난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아. 그보다 두 달 후면 일정이 빡빡하겠구나.”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혼례식을 하고 싶습니다.”
적운상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자 모두 한차례 폭소를 터트렸다. 적운상은 늘 진지한 얼굴로 주위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줬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아는데도 적운상에게는 선뜻 다가갈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음이 완전히 풀어져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위압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에 마치 딴 사람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준비는 나와 사영이가 할 테니까 너는 신경 쓰지 말고 잘 다녀오기만 해. 우리가 다 알아서 하마.”
“고맙습니다. 장문사형. 초 사형.”
“고맙기는.”
“제가 없는 동안 양악이를 잘 부탁합니다.”
“하 참…….”
“큭큭. 걱정 마라. 상전 모시듯이 할 테니까.”
농담을 잘 하지 않는 초사영이 하는 말에 모두 다시 한 번 웃음을 터트렸다. 그날 저녁 많은 사람들이 적운상을 찾아와서 미리 축하를 해줬다. 패악룡과 흑곰 등은 환호성을 지르며 난리를 쳤다.
이 기쁜 날, 술 한 잔이 없어서는 안 된다며 호남일도 이존의는 감춰뒀던 귀한 술을 가져왔다.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는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