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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350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2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50화

350화. 세상 밖으로 (3)

 

적운상은 옷을 모두 벗어서 강물에 빨래를 한 후에 나무에 걸어서 놓았다. 그리고 몸을 씻고 머리를 감았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왜 이렇게 기쁜 걸까?

단지 아이가 생겼을 뿐인데. 적교희가 무사한 것도 너무나 기뻤다. 이제는 자신에게도 정말 가족이 생긴 것이다.

만사 젖혀놓고 형산파로 가서 혼례부터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초사영이 먼저 해야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아이가 생겼으니 배가 더 불러오기 전에 혼례를 올려야 했다.

몸을 다 씻은 적운상은 나무 밑에서 옷이 마르기를 기다렸다. 한낮의 햇살이 그런 적운상을 따뜻하게 해줬다. 잠시 그렇게 앉아 있는데 문득 강호를 떠나서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하제일의 고수니 뭐니 그런 거 다 필요 없었다. 백수연과 주양악, 그리고 아기하고 행복하게 살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거 정말 괜찮겠는걸.”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적운상은 멀리서 적교희가 부르는 소리에 그쪽을 봤다.

“오라버니! 양악 언니 깨어났어요!”

적운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아직 다 마르지도 않은 옷을 입었다. 그리고 나는 듯이 그 이 층 초옥으로 향했다.

“양악아.”

“응… 사형…….”

“그래. 괜찮아? 어디 아픈 데는 없고?”

“머리가 좀 아파. 몸도 무겁고.”

“괜찮아. 금방 나을 거야. 큰 상처는 아니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네가 정신을 잃고 떨어져서 정말 놀랐어.”

“헤. 사형이 가르쳐준 거 금방 잊어버려서 바위에 부딪칠 때마다 발로 찼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오잖아. 그때 바위에 머리를 부딪쳤나 봐.”

“조심하지 않고선…….”

주양악은 적운상이 뭐라 한마디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걱정하는 투로 말하자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백수연과 백리난수도 이상하게 관심을 기울이며 이것저것 못해줘서 안달이었다.

“왜들 그래? 혹시…….”

“어? 아니. 그게…….”

“나 죽는 거야? 머리를 부딪쳐서 얼마 못 사는 거야?”

“주양악! 너…….”

언성을 높이려던 적운상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면서 미소를 지었다.

“아니야. 죽기는 누가 죽는다고 그래.”

“그럼 왜들 그렇게 나한테 잘해줘?”

“그게 그러니까…….”

“훗! 뭘 그렇게 부끄러워해? 비켜봐. 내가 말할게.”

백수연이 적운상을 옆으로 밀어내고 주양악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환하게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축하해. 회임했대.”

“회임? 누가? 내가?”

“응. 그러니까 이제는 몸조심해야지 돼. 앞으로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좋은 것만 생각하고. 알았지?”

주양악은 백수연이 하는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이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다 한 손으로 배를 만져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몇 달 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양악아, 정말 고맙다.”

적운상이 훈훈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주양악도 같이 미소를 짓다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게 내가 조심하자고 그랬잖아! 그때 내가 분명히 안 된다고 했는데!”

“안 돼! 그럼 아기한테 안 좋아. 흥분하지 마.”

“꺄악! 언니!”

“양악아! 진정해!”

한바탕 난리는 천고가 들어오면서 진정됐다. 그녀는 보기에는 삼십 대 중후반으로 보였지만 스스로는 이십 대 후반이라고 우겼다. 하도 박박 우기니 모두들 그런가 보다 하면서 믿어줬다.

이름은 천고인데 왜 강 씨라고 불리는지도 의문이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의술이 뛰어난 이유만은 알았다. 그녀가 금당의가(金堂醫家)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금당의가는 사천에 위치해 있었다. 독과 암기를 잘 쓰기로 유명한 당가에서 의술만 가지고 분가해 나가서 독립한 곳이 바로 금당의가였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저 당문의 방계일 뿐이라며 금당의가를 무시했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의원들을 배출해내자 이제는 그곳의 깃발을 단 곳이면 두말없이 치료를 받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천고는 거기서 십 년 동안 의술을 배워서 세상을 돌며 사람들을 치료해주다가 이곳에 와서 정착을 했다고 한다. 자신의 말로는 사랑에 실패를 한 충격을 이기지 못해서 여기로 왔다는데 왠지 믿기지가 않았다.

어쨌든 실력 하나만큼은 확실했기 때문에 주양악의 상처는 물론이고 적운상의 상처도 쉽게 치료를 해줬다.

두 사람이 치료를 하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천고에게 부림을 당해야 했다. 집 안 청소부터 시작해서 요리는 물론이고 고기를 잡아오는 일까지 천고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백수연과 백리난수, 적교희를 부려먹었다.

그렇게 며칠 지나자 어느새 그들은 그곳의 생활에 재미가 들면서 천고와도 친하게 지내게 됐다.

* * *

 

탕탕!

“문 열어라!”

탕탕!

“나갑니다요. 나가. 거참. 한 번만 두드려도 될 것을…….”

중년부부 내외가 투덜대면서 밖으로 나왔다가 갑옷을 입고 있는 병사들을 보고는 기겁을 했다. 복장이 허술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제대로 훈련을 받은 정예군인 것 같았다. 그들이 이런 시골에는 무슨 일로 왔단 말인가?

“무, 무슨 일들이십니까?”

“이런 자를 본 적이 있나?”

병사 한 명이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 종이를 들이밀면서 물었다.

거기에는 잘생긴 젊은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림이 정교하지가 않아서 설사 그림 속의 사람을 봤다고 해도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글쎄요? 본 적 없습니다.”

“확실해?”

“이런 시골에서 보는 사람들이야 뻔하지 않습니까?”

“알았다. 철수! 다음 집으로 간다.”

병사들이 가고 나자 부인이 남편을 보며 말했다.

“그 그림 속의 남자 말이우.”

“왜?”

“강 씨네 집에서 머물고 있는 적 씨하고 닮지 않았어요?”

“닮기는? 생긴 거야 그가 더 잘생겼지.”

“하긴, 그리 착한 사람이 죄를 지을 리가 없지요.”

“알긴 아는군. 괜히라도 쓸데없는 소리 말어. 엄한 사람 붙잡혀 가지 않게.”

“이이는 사람을 뭐로 보고.”

부인이 자신을 못 믿는 남편을 곱지 않은 눈으로 쏘아봤다.

* * *

 

천고는 당황했다. 난데없이 좋지 않은 기운이 넘쳐나는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왔기 때문이다. 마도연맹에서 온 사람들이었지만 천고는 그러한 것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백수연과 백리난수는 그들을 단번에 알아봤다. 이에 달아나려고 했지만 주양악이 집 안에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여기에들 있었군.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도 모르고 그렇게 찾았으니. 쯧쯧.”

위진학이 백수연과 백리난수를 보면서 말했다. 그는 아직도 옆구리의 상처가 완전히 낫지 않아서 움직일 때마다 조금 욱신거렸다. 그런데도 무리해서 나선 것은 적운상이 이곳에 있다는 정보를 접했기 때문이었다.

풍민주의 방에 연결되어 있는 동굴을 발견하고 뒤를 쫓았건만 종적이 묘연해서 한동안 마도연맹 사람들은 바짝 긴장한 채 생활을 했었다. 적운상이 숨어 있다가 언제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아무도 몰랐다. 그러니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적운상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적운상이 밖으로 탈출했다는 가정을 세우고 주위를 샅샅이 수색했다. 그러다 우연찮게 강에서 대나무배를 타고 낚시를 하고 있던 적운상을 발견한 것이다.

“적운상은 어디에 있지?”

“적 오라버니가 오면 이번에는 죽게 될 거예요. 그러니 그냥 돌아가세요.”

백리난수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위진학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위진학이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 없는 모양이군. 그럼 조금 즐기도록 할까? 사실 성에 있을 때 너를 품고 싶었다. 너 같은 미인은 처음이었지. 하지만 총사의 눈치가 보여서 말이야. 지금은 총사도 없고 뛰어난 미인이 한 명 더 있군.”

“당신… 원래 그런 사람이었나요?”

“나는 내 사람은 끔찍하게 아끼지만 적이라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

“마음대로 안 될 걸요!”

“앙탈할수록 맛이 더하지. 잡아와. 가급적 상처 내지 말고.”

위진학의 말에 그를 따라온 마도연맹의 고수들이 백수연과 백리난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집 안을 찾아봐. 두 명 더 있을 거다.”

“명!”

“안 돼!”

집 안에는 주양악이 있었다. 임신을 한 상태라서 무리하면 좋지 않았다. 백수연과 백리난수가 몸을 날려 집의 문을 막고 섰다. 그러자 위진학이 눈을 빛냈다.

“안에 누가 있기에 그러지? 뭣들 하나?”

마도연맹의 고수들이 다시 백수연과 백리난수를 공격해갔다.

삼십 명 가까이 되는 고수들이 맹공격을 퍼붓자 두 사람은 어떻게 막아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죽는 한이 있어도 그들을 안으로 들여보낼 수는 없었다.

“아악!”

결국 무리를 하던 백수연이 다리를 채여서 넘어졌다. 그러자 세 명의 사내들이 그녀의 팔다리를 눌러서 못 움직이게 했다.

“언니!”

백리난수가 백수연을 도와주려고 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몸을 지키기에도 바빴다.

그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주양악이 뛰쳐나오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백수연을 누르고 있던 사내들이 일제히 공중으로 몸을 뽑아 올렸다. 주양악이 휘두른 검에서 뻗어 나온 검강 때문이었다.

그걸 보고 위진학이 무극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몸이 아직 완쾌되지 않아서 극심한 통증이 따랐지만 주양악의 검강을 막아낼 수 있는 건 그밖에 없었다.

따앙!

“악!”

주양악의 검강이 대단하기는 했지만 무극의 영역에 들어가서 움직이는 위진학을 어떻게 하지는 못했다. 위진학이 손목을 치자 주양악은 어이없이 검을 놓치고 말았다.

“흥! 어차피 내게는 잔재주에 불과할 뿐이다. 다시는 강기를 쓰지 못하게 한쪽 팔을 불구로 만들어주마.”

위진학이 그렇게 말하며 주양악의 손목을 잡고 비틀려고 할 때였다.

“멈춰라!”

어디에선가 호통 소리가 들려오면서 수없이 많은 규칙적인 발소리가 들려왔다. 위진학이 소리가 들려온 쪽을 보니 관군이 벌떼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게다가 지방군이 아니라 중앙에서 온 정예군이었다. 지방군과 정예군은 받는 훈련양이 달랐다. 그러다 보니 그 질도 완전히 달랐다.

저 정도 수라면 못 되어도 천 명은 될 터, 위진학이 마음먹고 돌파하고자 한다면 할 수도 있었지만 쉽지는 않았다. 게다가 지금 그는 부상이 다 낫지 않은 상태였다.

위진학은 주양악이 도망가지 못하게 계속 손목을 잡고 있었다. 백수연과 백리난수가 허튼짓을 못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군사들이 와서 주위를 몇 겹으로 완전히 에워싸면서 도열을 하자 말을 탄 장군이 느긋하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오만한 말투로 물었다.

“이곳에서 뭣들 하고 있는 거냐?”

“보다시피 무림인들의 일이오. 그러니 관여하지 마시오.”

위진학의 말에 장군이 눈을 사납게 부라리며 소리쳤다.

“본인은 황제 폐하의 어명을 받들고 나온 전군도독부(前軍都督府)의 도독첨사(都督僉事) 이기혁이니라. 그대는 누구인가?”

어쩐지 병사들의 수가 많다 했더니 생각보다 거물이었다. 도독첨사면 그 밑에 거느리고 있는 병사의 수가 몇 만에 달했다.

하지만 전시에나 움직이지 평소에는 자리나 지키고 있어야 했다. 군사를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역모로 몰려 목이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제의 명을 받들고 이곳에 왔다니 도대체 무슨 이유란 말인가?

어쨌든 아무리 위진학이라고 해도 도독첨사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에 일단 예의를 조금 갖췄다.

“나는 마도연맹의 맹주인 위진학이라고 하오. 본 맹에 침입했다가 도망 온 자들을 처리하려던 참이었소.”

“황제 폐하의 명이 우선이니 잠시 기다리라!”

위진학은 살짝 짜증이 나려고 했지만 도독첨사 정도 되는 사람이 왜 이곳에 왔는지 궁금해서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때였다. 도독첨사 이기혁이 뭐를 봤는지 눈을 부릅떴다. 그 옆에 있는 병사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위진학의 어깨 너머를 보고 있었다. 몇몇 병사들은 크게 감탄한 듯 탄성을 내질렀다.

그제야 위진학도 뒤를 돌아봤다. 그러고는 그들과 똑같이 크게 놀라고 말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보다 더 경악을 했다.

“헉! 등평도수(登萍渡水)!”

촤촤촤촤촤촤!

적운상이 경공을 펼쳐서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물 위를 달려오고 있었다. 한 번씩 물을 찰 때마다 물보라가 일며 삼 장에 가깝게 치솟았고, 적운상의 몸은 십여 장씩 쭉쭉 다가왔다.

한두 번이야 어떻게 가능하다고 해도 저렇게 연속으로 수면을 차면서 달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극의 영역에 들어가서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저렇게 먼 거리를 달릴 수는 없었다. 저건 그야말로 전설로나 내려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어떻게 저런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촤아아아악!

적운상이 마지막으로 수면을 찰 때는 물기둥이 더욱 높이 치솟았다. 그러면서 무려 십여 장이 넘는 거리를 단숨에 날아왔다. 어찌나 빠른지 대충 묶어놓은 머리가 풀리면서 바람에 흩날렸다.

“위진학!”

마치 호랑이가 포효하는 것과 같았다. 그 같은 소리가 쩌렁쩌렁하니 울리자 병사들이 몸을 움찔 떨었다. 마도연맹의 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세에 더욱 민감한 그들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했다.

장군이 타고 있던 말은 겁을 먹고 뒷걸음질을 치다가 똥오줌을 쌌다. 이에 장군은 어쩔 수 없이 말에서 내려야 했다.

쿠웅!

적운상이 떨어져 내리자 땅이 크게 울렸다. 한 손에는 도를, 다른 한 손에는 검을 들고, 흉맹한 기세로 주위를 단숨에 압도하는 적운상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모두 찌릿한 전율을 느꼈다. 그것은 공포였고, 두려움이었다.

자신들을 벌하기 위해서 온 천신(天神)을 보는 것 같은 느낌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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