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47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47화
347화. 사투 (3)
동굴의 끝까지 오자 백수연과 백리난수, 적교희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오라버니, 괜찮으세요?”
“괜찮아. 이 정도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다. 내상 때문에 속이 뒤틀려서 얼굴은 창백해질 대로 창백했고, 다친 다리는 자꾸 움직이는 바람에 상처가 더 벌어지면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나마 방에서 좀 쉬면서 치료를 한 덕에 그 정도이지 안 그랬으면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여기서 어떻게 가죠? 절벽이라서 올라갈 수가 없잖아요.”
백리난수가 묻는 말에 적운상이 비틀거리며 절벽으로 향했다.
“올라가는 게 아니야. 내려가야 해.”
“어떻게요?”
“뛰어내려야지. 듣기로는 이 밑에 호수가 있다더군. 하지만 여기가 얼마나 높은지 정확한 높이를 모르니 떨어져 내리다가 칼을 벽에 박아 넣어서 속도를 줄여야 해.”
“난 그런 거 못해요.”
적교희는 밑을 보기만 해도 아찔했다. 벽에 검을 박아 넣는 건 고사하고 뛰어내릴 수조차 없었다.
“걱정 마. 너는 양악이가 안고 뛰어내릴 거야. 난수는 백 누이를 안고 뛰어내려.”
“사형은?”
주양악이 묻는 말에 적운상은 씨익 웃으면서 대답했다.
“내 걱정은 하지 마. 아직 그 정도는 가능하니까. 문제는 호수에 떨어지고 나서야. 모두들 자맥질은 할 줄 알지? 호수가 얼마나 깊은지 모르니까 조심해야 해. 나는 밑으로 내려갈 수는 있지만 다리가 이래서 자맥질은 무리야. 그러니 먼저 있다가 나를 도와줘야 해.”
“알았어.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주양악이 그렇게 말하면서 적교희를 봤다. 적교희는 두려움에 다리가 살짝 떨렸지만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꽉 잡아. 흔들려도 절대로 놓지 말고.”
“네.”
적교희가 대답을 하면서 주양악의 등에 업혔다. 그러자 주양악이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적운상을 봤다.
“괜찮아. 곧 뒤따라갈게.”
“응.”
적운상을 보자 용기가 생긴 주양악이 생긋 한 번 웃어 보이고는 바로 뛰어내렸다. 그러자 백리난수도 백수연을 등에 업었다.
“먼저 가 있을게요.”
“그래.”
백리난수가 뛰어내리고 나자 이제 남은 건 적운상뿐이었다. 그때 동굴 안쪽에서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적운상은 그들이 더 다가오기 전에 지체 없이 밑으로 뛰어내렸다.
그러다 떨어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지자 태룡도를 힘껏 벽에 박아 넣었다.
콰아아아앙!
“크윽!”
적운상은 온몸이 찌르르하니 울리는 고통에 하마터면 태룡도를 놓칠 뻔했다. 천으로 태룡도를 잡고 있는 손을 돌돌 말아놓았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그대로 밑으로 떨어졌을지도 몰랐다.
“헉헉… 헉헉…….”
거친 숨을 몰아쉬던 적운상은 양발로 절벽을 힘껏 차면서 그 반탄력으로 태룡도를 확 뽑았다. 그러자 다시 몸이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제는 다시 절벽에 태룡도를 박아 넣을 기력이 없었다. 이곳에서 호수까지 높이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면 죽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몸에 엄청난 충격이 오면서 뭔가 확 감싸왔다. 물이었다.
파아아아아앙!
적운상이 떨어지자 물보라가 치솟았다. 그러자 주양악이 잠수를 해서 적운상에게 헤엄쳐 갔다. 적운상은 정신을 잃은 채 계속 가라앉고 있었다. 주양악은 필사적으로 헤엄을 쳐서 적운상을 꽉 부둥켜안았다.
* * *
정신이 드니 따뜻한 햇살 때문에 눈이 부셨다. 순간 전신이 부서지는 것 같은 통증 때문에 적운상은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에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크윽!”
“운상아!”
“사형!”
백수연과 주양악의 목소리와 함께 그녀들의 모습이 보였다.
“헉헉…….”
고통을 참느라 거친 숨을 몰아쉬던 적운상이 눈을 깜빡였다. 살았다. 죽지 않고 살았다는 희열이 들었다.
“모두… 무사…한 거야?”
“응? 응.”
“하아… 다행…….”
적운상은 간신히 그 말을 하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그날 밤 적운상의 온몸에서는 펄펄 끓을 정도로 열이 났다. 주양악과 백수연, 그리고 백리난수는 한숨도 자지 않고 수시로 호수로 가서 옷을 담갔다가 그걸로 적운상의 몸을 문질러줬다.
호수의 물이 차가웠기 때문에 열을 내리는 데 조금은 효과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의술을 아는 사람도 없고, 치료를 할 약도 없으니 그 같은 방법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정성이 통했는지 다음 날 새벽이 되자 열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몸을 덜덜 떨면서 추위를 탔다. 불을 피우려고 했지만 연기가 나면 위에서 알아차릴지도 몰랐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모두 알몸이 되어서 체온으로 적운상의 몸을 따뜻하게 해야 했다.
백수연과 주양악은 이미 적운상과 같이 잤기 때문에 그리 부끄러운 것이 없었지만 백리난수는 아니었다. 그래서 백수연과 주양악이 말렸는데도 그녀는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그만큼 따뜻하지 않겠냐며 옷을 벗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적운상을 꼭 껴안고 있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잠도 못 자고 적운상을 걱정하며 계속 무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아침이 되자 가장 먼저 눈을 뜬 사람은 백수연이었다.
“음…….”
백수연은 일어나자마자 적운상의 상태부터 살폈다. 알몸으로 체온을 전한 것이 효과가 있었던지 적운상은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그제야 백수연은 옷을 입고 주위를 둘러봤다. 첫날하고 어제는 적운상 때문에 워낙에 경황이 없어서 둘러볼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호수를 중심으로 쭉 둘러본 백수연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분지였다. 그래서 사방이 높은 절벽이었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유일한 길은 호수와 연결되어 있는 급류뿐이었다.
호수가 워낙에 커서 잔잔해 보이지만 실상은 흐르고 있었다. 지하수가 연결되어 이곳에 잠시 고였다가 급류를 통해 밖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잠시 급류를 살펴보던 백수연은 고개를 흔들었다. 물살이 너무나 세서 뛰어들었다가는 그대로 휩쓸려서 중간 중간에 있는 바위에 몸이 산산조각이 날 것 같았다.
“언니.”
주양악이 다가오며 그녀를 불렀다.
“응.”
“뭐하고 있어요?”
“나갈 수 있나 보고 있었어.”
“하아… 그나저나 교희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하죠?”
주양악이 풀이 팍 죽어서 물었다. 그러자 백수연이 그녀를 안고 등을 다독여줬다.
“어쩔 수 없었잖아. 운상이도 이해해줄 거야.”
“하지만… 내가 편하지 않아요. 나 때문에… 흑…….”
“울지 마. 괜찮아. 괜찮아.”
백수연은 눈물을 흘리는 주양악을 한참이나 달랬다.
* * *
이틀이 더 지나자 적운상이 눈을 떴다. 그러자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백리난수가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적 오라버니! 정신이 들어요?”
“응… 목이 말라.”
“잠시만요. 잠시만 기다려요.”
백리난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호수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적 오라버니가 정신이 들었어요.”
물고기를 잡고 있던 백수연과 주양악이 그 소리를 듣고 후다닥 달려왔다.
“괜찮아?”
“정신이 든 거야?”
“응… 괜찮아…….”
적운상이 힘없이 간신히 대답을 했다. 백리난수는 물에 적셔 온 옷을 적운상의 입에 대고 짜줬다. 그러자 물이 방울방울 적운상의 입으로 떨어졌다.
“됐어. 고마워.”
“아니에요. 안 깨어나면 어쩌나 했어요.”
“다행이다.”
“흐앙!”
백수연과 백리난수가 눈물을 글썽였고 주양악은 울면서 적운상을 껴안았다. 적운상은 가만히 누워서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그녀들이 진정되자 적운상이 물었다.
“교희는?”
순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적운상은 적교희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았다.
“어떻게 된 거야?”
적운상이 침착하게 다시 물었다. 그러자 백수연이 대답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주양악이 먼저 입을 열었다.
“미안해, 사형. 내가, 내가 좀 더 잘 봤었어야 했는데. 흑…….”
주양악이 말을 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무슨 일인데? 울지만 말고 말해.”
적운상이 다그쳤지만 주양악은 쉽게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백수연이 차분하니 대신 대답을 했다.
“교희는 급류에 휩쓸려갔어.”
“뭐?”
“호수에 떨어지는 충격으로 양악이가 잠시 정신을 잃었었나 봐. 정신을 차렸을 때는 교희가 급류에 휩쓸리고 있었대.”
어찌나 놀랐던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키려던 적운상은 끔찍한 통증 때문에 신음을 내뱉었다.
“크윽!”
“무리하지 마. 그대로 있어.”
“하악… 하악…….”
“교희가 급류에 떠내려가기는 했지만 아직 죽었다고 단정 짓기에는 일러. 반드시 살아 있을 거야.”
적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통을 참기 위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를 악물 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데려오지 말 것을 괜히 데려왔다는 후회가 들었다.
무당삼현과 화산이로를 꺾고 나자 자만을 했었다. 주위에서 천하제일검이라고 떠받들어 주니까 정말 그렇다고 착각을 했었다. 백 명이고 천 명이고 모두 당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동생 하나 지키지 못하고 이렇게 됐다. 적운상은 착잡한 심정과 슬픔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러자 내상이 도지면서 기침을 하다가 피를 토해냈다.
그걸 보고 백수연 등이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다행히 적운상이 필사적으로 마음을 안정시키자 그 이상 악화되지는 않았다.
“빨리 나아. 그래야 교희를 찾으러 가지.”
백수연이 적운상의 머리를 가슴에 안고 속삭였다. 적운상의 눈에서는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