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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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40화
340화. 마도연맹 (2)
“수연 언니, 주 소저도 왔네요. 모두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예요?”
백리난수가 묻는 말에 백수연이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여기 잡혀 있다고 해서 온 건데.”
“네? 잡혀 있다니요? 아니에요. 저는 제가 원해서 여기에 있는 거예요.”
“그게 정말이야?”
“네. 그보다 정말 어떻게 온 거예요?”
백수연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보아하니 백리난수는 정말 원해서 여기에 있는 것 같았다. 끌려와서 지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걸 알게 되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허탈했다.
“적 오라버니, 그 사람들을 놔주세요. 저 때문이라면 뭔가 오해가 있는 거예요.”
적운상은 백리난수를 잠시 빤히 쳐다보다가 사도공을 풀어주고 설요원의 목에 대고 있던 백운검을 거뒀다. 그러자 사도공이 적운상에게 제압당했던 팔을 주무르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난수 네가 조금만 늦게 왔으면 내 팔이 부러졌을 게다.”
“후후. 적 오라버니가 정말 마음만 먹었다면 팔로 끝나지 않았을 거예요.”
“다행으로 여기라는 거냐?”
“네.”
백리난수가 밝게 웃으면서 하는 말에 사도공은 허탈하니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백수연은 이제 백리난수의 말을 완전히 믿었다.
“오해하지 마세요. 처음에는 솔직히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왔지만 지금은 제가 원해서 여기에서 머물고 있어요.”
백리난수의 말에 적운상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러고는 백리난수와 함께 온 여인을 봤다.
“처음 보는군요. 적 대협의 명성은 귀가 따갑게 듣고 있어요.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마도연맹의 총사인 채심의라고 해요.”
채심의가 포권을 취하면서 인사를 했다. 예의를 갖춘 인사였다. 하지만 적운상은 퉁명스럽게 자신의 이름만 툭 내뱉었다.
“적운상이오.”
예의 없는 행동에 조금 화가 날 만도 하건만 채심의는 미소를 지으면서 한쪽 손을 들어 안을 가리켰다.
“이유야 어쨌건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안으로 들어오세요.”
“됐소. 난수가 무사한 것을 봤으니까 돌아가겠소. 난수 너도 함께 가자.”
“아니요. 저는 좀 더 여기에 머물래요.”
“이리 와.”
적운상이 백리난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백리난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게 불안해요? 왜 아직까지 나를 걱정해주는 거죠? 적 오라버니에게는 이미 수연 언니와 주 소저가 있잖아요. 두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이러면 안 돼요.”
“여기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수도 있다. 이리로 와라.”
광오한 말이었다. 마도연맹에는 무공이 뛰어난 고수들이 수두룩했다. 적운상의 무공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혼자서는 무리였다. 그런데도 적운상은 서슴지 않고 그런 말을 했다. 그것도 마도연맹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이곳에서.
다분히 그들을 무시하는 짓이었지만 누구도 뭐라고 하지 못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내가 싫다고 하잖아요. 여기 있는 사람들을 죽인다고요? 그럼 수연 언니랑 주 소저는요? 다 함께 여기서 죽을 생각이에요?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해봐요.”
백리난수가 조금 흥분하면서 목소리가 높아지자 채심의가 아미를 살짝 찌푸렸다. 그때였다. 갑자기 후끈한 기운이 확 번져왔다. 적운상이 기세를 뿜어낸 것이다.
그러자 채심의의 주변에 네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항상 그녀를 따라다니면서 호위하는 자들로 개개인의 무공이 굉장히 뛰어났다.
하지만 적운상은 그들을 본체만체하며 태룡도를 뽑았다. 그러자 압도적인 기세가 주위 사람들의 어깨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 같은 기세에 가까이 있던 사도공과 설요원은 숨이 탁탁 막혀올 정도였다.
“총사, 우리로는 무리입니다. 저자를 막을 수 없습니다. 자리를 피하십시오.”
네 명의 호위 중 한 명이 채심의에게 말했다. 그는 말하는 중에도 적운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잠시의 틈이 치명적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가십시오. 여기는 우리가 어떻게든 막으면서 시간을 벌겠습니다. 칠 장로님들이 모두 와야 합니다. 아니, 맹주님께서도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정도인가요?”
채심의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마도연맹의 칠 장로는 전부 전대의 마두들이었다. 적운상과 한 번 붙은 적이 있는 삼대마두도 장로들이었다.
그들 일곱 명이 협공을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맹주까지 와야 한다니, 쉽게 믿기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이들이 이런 상황에서 농담을 할 리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이들의 무공이 어떤지는 누구보다 채심의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강호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과 겨뤄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니 잘못 봤을 리가 없다. 잘못 판단했을 리도 없었다.
“물러나세요. 그렇게 대단하다면 당신들로는 촌각도 버티지 못해요.”
“어떻게 하려는 겁니까?”
“내게 생각이 있어요.”
채심의는 그렇게 말하면서 적운상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네댓 걸음밖에 움직이지 못했다. 마치 호랑이 앞의 토끼처럼 몸이 움츠러들고 다리가 떨려서 더 이상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만 두세요, 적 대협. 우리는 당신의 적이 아니에요.”
“그건 내가 정한다.”
“오해가 있으면 말로 풀어요. 이러면 모두에게 손해예요.”
“그럼 난수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말해봐.”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채심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적운상의 기세가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적운상의 모습이 거대하게 채심의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위험합니다, 총사!”
따앙!
네 명의 호위가 동시에 적운상이 내려치는 태룡도를 막았다. 그러자 네 명의 칼이 밑으로 확 밀리면서 땅을 쳤다.
파아아앙!
“크윽!”
땅을 친 충격으로 칼을 잡고 있는 손이 찌르르하니 울리자 네 사람은 고통 때문에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그때 적운상의 태룡도가 그들의 칼을 옆으로 확 젖혀버렸다. 그 힘이 어찌나 대단한지 칼을 놓치지 않으려던 두 사람은 몸이 휘청하면서 딸려갔다. 나머지 두 명은 손목이 꺾이는 걸 참지 못하고 칼을 놓아버렸다.
그러자 적운상이 그들을 지나쳐 채심의에게 접근했다. 그들은 뒤늦게 후회를 하며 적운상을 잡으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어느새 적운상은 채심의의 바로 앞에 도착해서는 그녀의 목을 틀어쥐고 있었다.
“멈추시오!”
“그만둬!”
호위들이 비명을 지르다시피 소리쳤지만 적운상이 그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채심의는 적운상의 손에 목이 잡힌 채로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그녀의 무공은 제법 뛰어난 축에 속했다. 하지만 적운상이 눈앞까지 오자 기세가 눌려 손발을 꼼짝도 하지 못했고, 그 결과 어이없이 그대로 목을 잡힌 것이다.
만약 그녀가 일 초식만이라도 버텼다면 어떻게든 호위들이 적운상을 막았을 테고 그럼 그사이에 몸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컥! 그, 그만…….”
채심의가 캑캑거리면서 자신의 목을 잡고 있는 적운상의 팔을 움켜잡았다.
“그녀를 놓아주시오!”
호위 중 한 명이 다시 소리쳤지만 적운상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때 어디에선가 날카로운 파공성이 들려오며 적운상의 팔을 노리고 뭔가 날아왔다. 그러자 적운상은 망설임 없이 채심의를 그쪽에 가져다 댔다.
“무슨 짓이냐?”
적운상의 팔을 노리고 채찍을 뻗어내던 노인 한 명이 경악을 하며 그 자리에서 몸을 휘둘렸다. 출수했던 채찍을 거두기 위해서였다.
파아아앙!
채찍이 채심의의 등을 살짝 스치며 되돌아갔다. 조금만 더 깊었으면 채심의의 등뼈가 부서졌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녀를 죽일 셈이냐?”
노인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방금처럼 암습을 가하지는 않았다. 보통은 인질을 잡으면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죽이지 않았다. 그런데 적운상은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채심의를 방패로 사용했다.
적운상에게는 채심의가 인질로서 가치가 별로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마도연맹 사람들의 입장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녀가 다치면 그 뒷감당이 힘들었다. 채심의가 맹주의 여자였기 때문이다.
“말할 생각이 있으면 고개를 끄덕여라.”
적운상의 말에 채심의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적운상이 그녀의 목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지옥의 문턱까지 갔다 온 채심의는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 적운상을 노려봤다.
이렇게 막무가내인 사람은 처음이었다. 행동과 말에 거침이 없었다.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이 되리라고 여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란 말인가?
잠깐 사이에 주위에는 백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 중에는 삼대마두를 비롯한 일곱 명의 장로들도 있었다. 방금 적운상에게 채찍을 휘두른 노인도 장로 중의 한 명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면 조금은 불안하기도 하련만 적운상은 무표정했다. 마치 그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나요? 당신은 무공이 뛰어나니까 어떻게든 살아남겠죠. 하지만 함께 온 여자들은 무사하지 못해요. 난수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적운상이 퉁명스럽게 되묻는 말에 채심의는 말문이 막혔다. 뭐가 그래서란 말인가, 그래서는?
설마 그녀들이 모두 죽어도 상관이 없다는 말인가?
“그 정도는 모두 각오하고 있으니까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난수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말했듯이 나는 아무 짓도…….”
말을 하던 채심의가 입을 다물었다. 목에 섬뜩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적운상이 움직이는 것을 보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태룡도가 목에 대어져 있었다.
순간 뒤늦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움찔 반응을 했다. 적운상의 동작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태룡도를 채심의 목에 댈 때까지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이제야 반응이 나온 것이다.
무공이 뛰어난 몇몇 사람들은 그런 적운상의 움직임에 크게 감탄을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탄성이 나올 정도였다.
“마지막이다. 너 말고도 대답해줄 사람은 많아.”
“나를 죽이면 영원히 듣지 못할 걸요.”
“뭔가 하기는 했군.”
적운상이 하는 말에 채심의는 속으로 ‘아차’ 싶었다. 사실 적운상은 짐작만 했을 뿐, 확신은 없었다. 이곳에는 마두들이 득시글댄다. 아무리 잘 대해준다고 해도 백리난수의 성격상 그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할 것이 당연한데 원해서 남아 있는 거라고 하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백리난수가 너무나 티 없이 밝게 이야기하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러다 그것 역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백리난수는 망해버린 백리세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어렸을 때부터 고생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평소에도 언뜻언뜻 어두운 면이 비춰질 때가 많았었다.
그런데 이런 곳에 와서 그런 모습이 사라진 것이다. 쉽게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채심의에게 겁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총사라는 직책에 있다는 것은 여자이고 나이는 그리 많지 않아도 그만큼 똑똑하다는 뜻이었다. 머리싸움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단순하게 목숨을 위협하는 것이 제일이었다.
“영악하군요.”
“난수에게 무슨 짓을 했지?”
채심의는 대답을 하지 않고 망설였다. 그럴수록 적운상의 몸에서 살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때 그녀 대신 대답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걱정 말게. 섭혼술(攝魂術)을 걸었을 뿐이네.”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였다.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인데도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똑똑하게 들렸다. 모두가 그쪽을 보니 녹색의 장포를 입은 중년인이 서 있었다.
“헛! 맹주님을 뵙습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주위에 있던 마도연맹 사람들이 모두 그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온화한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는 그가 바로 마도연맹의 맹주인 혈검(血劍) 위진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