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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338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6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38화

338화. 적교희 (3)

 

대정문의 배는 모두 두 척이었는데 생각보다 컸다. 짐을 모두 싣고 사내들이 오기를 기다리던 선장은 그들이 오자 곧 배를 출발시켰다.

백수연에게 수작을 걸다가 적운상까지 배에 태우게 된 사내는 놀랍게도 이곳의 책임자였다. 대정문의 문주인 대력패도 인의정의 셋째 아들로 이름은 인성문이었다.

그는 아버지처럼 성격이 올곧았지만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흠이었다. 영웅은 호색이라 가문도 좋고 생긴 것도 괜찮으며 지닌 능력도 봐줄 만하니 여자를 좀 밝히는 게 흠이 될 수는 없을 만도 하련만 그렇지가 않았다. 아버지인 인의성이 워낙에 꼬장꼬장하니 명문가의 자제들이 즐기는 정도만 즐겨도 흠이 되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있던 사내들은 그의 부하들이기는 했지만 관계가 좋아서 친구처럼 허울 없이 지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막상 백수연과 주양악, 그리고 적교희의 외모에 혹해서 배에 태우기는 했지만 적운상 때문에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가만히 서 있는데도 뭔 놈의 박력이 그리 좋은지 시선이라도 마주치면 괜히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바람이 좋네.”

흘러가는 강물을 뱃머리에서 보고 있던 적운상 옆으로 백수연이 다가왔다.

“응.”

적운상이 무표정하니 대답을 하자 백수연이 그를 힐끗 봤다.

“왜?”

“아니야.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셔?”

“글쎄… 워낙에 어렸을 때 집을 떠나와서 기억이 잘 안 나.”

“여덟 살 때 왔다며? 그럼 그렇게 어린 나이도 아니잖아.”

“지금이야 이렇지만 그때는 코 흘리는 뚱보였어.”

“호호. 말도 안 돼.”

“사실이야. 양악이한테 물어보면 알걸.”

때마침 주양악이 적교희와 함께 다가왔다. 둘만 있으니 사내들이 자꾸 주위를 맴돌았다. 왜 그러는지 뻔히 알기 때문에 이쪽으로 온 것이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요?”

“적 동생이 옛날에 그렇게 뚱뚱했다는 게 정말이야?”

“에? 호호. 물론이죠. 뚱뚱하기만 했나? 먹을 건 또 얼마나 밝혔다고요.”

주양악이 웃음을 터트리면서 말했다. 그러자 적교희가 거들었다.

“맞아요. 오라버니가 주방에서 먹을 걸 훔쳐 먹는다고 어머니가 혼을 냈던 적이 여러 번 있었어요.”

“정말?”

“그럼요.”

적교희의 말에 백수연과 주양악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트렸다. 이에 적운상은 인상을 살짝 쓰다가 결국 같이 웃고 말았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그 이야기가 나온 거예요?”

“아, 내가 적 동생의 부모님에 대해서 물었거든.”

“흐음.”

적교희가 의미 있는 눈빛으로 적운상을 봤다. 그녀도 적운상이 부모님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네. 이번에 가면 만나야 되니까 마음의 준비를 좀 해야 되는데.”

“그럴 필요 없어.”

적운상이 갑자기 딱 잘라 말하자 방금까지 좋았던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착 가라앉았다. 주양악은 그걸 알면서도 일부러 눈에 힘을 주고 적운상을 노려보며 말했다.

“왜? 나 시집가면 고생시키려고?”

“어차피 이번 한 번만 보고 말 사람들이야.”

“오라버니!”

생각지도 못한 말에 적교희가 적운상을 크게 불렀다. 그러자 적운상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내 친어머니는 나를 낳다가 돌아가셨어. 아버지는… 항상 바빴지. 내 기억이 잘못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도 내게 따뜻한 눈빛을 주지 않았어. 오히려 나를 냉대하고 천덕꾸러기 취급하는 새어머니가 더 나았지. 그녀는 최소한 감정이라도 드러냈으니까.”

적운상이 뱃머리에 기대어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하는 말을 듣고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형한테는 항상 놀림만 당했지. 괴롭힘도 많이 당했고. 그래도 날 보호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그나마 너는 내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구나.”

적운상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적교희를 봤다. 적교희는 그런 적운상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서 꽉 껴안아주고 싶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어. 교희 네가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잊고 살았을 거다.”

“오라버니…….”

“이런 이야기는 그만 하자.”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면서 선실로 들어갔다. 그런 적운상의 모습은 다른 때와 달리 무척이나 외로워 보였다.

* * *

 

강물을 따라 이틀 동안 느긋하게 움직인 배는 물길의 끝에 있는 례릉(醴陵)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거기서부터는 이제 강서였다.

례릉에서 한나절을 쉬고 배는 다시 출발한다고 했다. 적운상은 일행과 식사를 할 겸 배에서 내렸다. 그리고 가까운 객잔으로 갔다.

객잔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자리가 없는 것 같아서 다른 곳으로 가려는데 마침 식사를 끝낸 사람들이 있어서 자리가 났다.

“이쪽으로 오세요.”

점소이가 적운상을 그리로 안내한 후에 주문을 받고 휑하니 사라졌다.

“사람들이 많네.”

“선착장이 가까우니 그렇겠지.”

백수연의 말에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면서 탁자 옆에 엎어놓은 잔을 뒤집어놓았다. 그러자 적교희가 주전자를 들어 차를 따랐다.

그때 객잔의 입구로 웬 거한이 들어왔다. 그는 덩치가 어찌나 큰지 입구가 꽉 막힐 정도였다. 그의 옆에는 색기가 줄줄 흐르는 여인이 서 있었다.

적운상은 그들이 낯익었다. 어디서 봤는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그들이 적운상을 보고는 다가왔다.

“여기 있었군요.”

여인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건넸다. 그제야 적운상은 그녀가 누군지 생각이 났다.

“화접랑이로군.”

“어머! 호호. 저를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적 공자같이 대단한 사람이 기억을 해주니 기분이 좋네요. 비무에서 이겼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축하드려요, 적 공자.”

“고맙소.”

“누구죠?”

주양악이 묻는 말에 화접요부 진진랑이 배시시 웃으면서 그녀를 봤다.

“역시 적 공자네요. 이리 아름다운 여인들을 세 명씩이나 거느리고 말이에요. 이래서야 그녀의 말을 전해도 소용이 없겠어요.”

“그녀라니요?”

슬쩍 운만 뗐는데도 주양악이 격한 반응을 보이자 진진랑이 다시 미소를 지었다.

“걱정이 되나 보군요.”

그때였다. 갑자기 날카로운 살기가 전신을 찔러오자 진진랑이 깜짝 놀라며 적운상을 봤다. 그 살기가 적운상에게서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진랑은 애써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적운상의 눈치가 보이는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할 이야기가 뭐지?”

“백리 소저를 우리가 데리고 있어요.”

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탁자가 박살이 나면서 그대로 내려앉았다. 그러자 객잔 안의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뚝 그치면서 모두가 적운상을 봤다.

적운상은 일어나면서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려친 자세 그대로 진진랑을 노려봤다. 순간 진진랑은 숨이 탁하니 막히면서 다리가 떨려왔다. 그녀도 나름 무공이 경지에 오른 고수였다.

하지만 적운상의 기세를 받기에는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이었다. 그때 그녀와 함께 온 덩치가 커다란 사내가 슬쩍 움직여 적운상의 기세를 대신 받았다.

쾅!

다시 한 번 폭음이 크게 울렸다. 동시에 진진랑을 보호하려는 듯, 앞을 막아섰던 덩치 큰 사내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라서 천장을 부순 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쿠웅!

적운상의 일격에 사내가 그렇게 되자 객잔 안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서 슬금슬금 밖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림인들의 싸움에 휘말려봐야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적운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기세 때문에 사람들은 마치 바윗덩어리가 어깨를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방금 뭐라고 했지?”

적운상이 싸늘하니 물었다. 그러자 진진랑이 가볍게 어깨를 떨었다. 제대로 겁을 먹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와 함께 왔던 사내는 마도연맹에서도 제법 알아주는 실력자였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단 일격에 기절을 해버렸다. 적운상이 마음만 먹으면 그녀를 죽이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지, 진정하세요. 나, 나는 단지 말을… 전하러 왔을 뿐이에요.”

진진랑은 떨리는 몸을 필사적으로 진정시키면서 간신히 말했다.

“말해.”

“백리 소저는 상처 하나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맹주께서 잘 봐주고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단지… 맹주께서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해요. 그뿐이에요.”

“어디냐?”

“영주(永州)예요.”

영주는 호남의 남쪽 지방에 있는 현이었다. 이곳에서는 거리가 꽤 되었다. 적운상은 잠시 망설이다가 백수연을 봤다. 그녀와 백리난수는 한때 더없이 친하게 지냈었다. 당연히 백리난수를 생각하는 정이 남달랐다.

“백 누이.”

“아니. 내가 먼저 말할게.”

백수연은 적운상이 무슨 말을 할지 미리 짐작을 하고 먼저 말했다.

“난수는 나와도 친분이 있어. 나도 갈 거야. 그러니까 돌아가라느니 하는 말은 하지 마. 적 소저를 데려다 주기도 싫어. 네 누이동생이니까 직접 챙겨.”

딱 잘라 말하는 백수연을 보면서 적운상은 난감했다. 마도연맹으로 가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몰랐다. 그런 위험한 곳에 같이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형산파로 다시 돌아가든가 아니면 적교희를 데려다주라고 말하려는데 백수연이 먼저 선수를 친 것이다.

“나도 싫어. 사형은 만날 우리를 떼어놓으려고만 해. 마음 졸이면서 사형을 기다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생각지도 못한 말에 적운상은 주양악을 쳐다봤다. 그러한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위험한 곳에 함께 가기를 원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미안해. 그런 것은 전혀 몰랐었어. 알았어. 다 함께 가자.”

적운상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하자 백수연과 주양악, 적교희가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진진랑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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