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30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30화
330화. 악안에서 온 소녀 (2)
무당삼현이 은서린의 안내로 다른 전각에 있는 넓은 대청으로 가자 같이 연락을 받은 화산이로가 와 있는 것이 보였다. 백수연은 무당삼현을 보자 포권을 취하면서 예를 갖췄다. 그 모습이 너무나 예뻐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천응방의 장녀 백수연이 세 분 어르신을 뵈어요.”
“이야기는 들었네.”
겨우 말 한마디뿐이었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은 무당삼현이었다.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기억을 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노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
“여기 적 동생의 서찰이에요. 화산이로 두 분은 먼저 읽어봤으니 세 분도 읽어보세요.”
백수연이 내민 서찰을 일현이 받아서 쭉 읽어보고는 이현에게 건넸다. 그러자 삼현이 그의 곁으로 가서 같이 서찰을 봤다.
“한마디로 비무에 늦는다는 말이군.”
“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조금 늦으니까 제게 대신 가서 양해를 구해달라고 했어요.”
사람들은 백수연이 하는 말을 듣고 허탈한 심정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기도 했다. 혹시 비무를 하기 전에 심리전을 펴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건 너무 예의가 없는 것 아니오? 먼저 약속을 했을 터인데 일방적으로 비무 날짜를 늦추다니.”
적양진인이 기분 나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면서 말하자 백수연이 그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이 말했다.
“일이 있어서 그런 것이니 양해를 바랍니다.”
“그래도 그렇지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이오? 더구나 저분들이 한가한 분들도 아니고…….”
“그만. 거기까지 하거라.”
일로가 적양진인의 말을 끊었다. 그걸 보고 뭔가 할 말이 있는 듯이 머뭇머뭇 거리던 백수연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백 소저.”
이현이 부르자 백수연이 그를 봤다.
“예, 어르신.”
“적운상이 전하라는 말은 그게 다인가?”
“그게…….”
“괜찮으니까 해보게나. 우리네 늙은이들이 그리 꼬장꼬장하지는 않으니까.”
“그럼 들은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그러시게나.”
“적 동생은 제게 먼저 서찰을 전하고 양해를 구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렇게 말하라고 했는데…….”
백수연이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망설이자 이현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허 참. 걱정 말고 말해보시게나.”
“그러니까… 그게… 기다릴 생각 없으면 그냥 돌아가시라고, 다음에 한가할 때 오라고… 했어요.”
“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그런…….”
무당삼현과 화산이로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왔다. 그리고 각 문파의 장문인들은 흥분을 누르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들 하시게.”
그때 지금까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화산이로의 이로가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떠들썩한 소란을 잠재웠다. 적양진인은 이로가 얼마나 과묵한지를 알고 있었다. 그는 일 년에 서너 마디 하면 할 말을 다 한 것이었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이로가 백수연을 보며 물었다.
“얼마나 늦는다던가?”
“며칠 내로 올 거예요.”
“알겠네. 며칠 정도는 기다려줄 수 있네. 사정이 있다니 어쩔 수 없지.”
이로가 그렇게 말하면서 무당삼현을 봤다. 그러자 이현이 나서서 말했다.
“마찬가지일세. 며칠 정도는 이해해주지.”
“넓은 아량에 감사드려요.”
백수연이 무당삼현과 화산이로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러면서 백수연은 적운상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백수연도 상황에 따라 경우에 맞춰서 할 말을 누르고 다른 말을 해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건 백수연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마찬가지일 터, 하지만 적운상은 그런 것이 없었다.
상대가 누구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은 하고야 만다. 적운상에게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당당함이 있었다.
* * *
“이러지 마세요.”
여인이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사내들은 낄낄거리면서 그녀의 몸을 주물러댔다.
“흐흐흐. 뭘 말이냐?”
“제발 부탁이에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어디 이쪽에는 뭐가 있는지 볼까?”
“꺄아아아악!”
사내 한 명의 손이 여인의 엉덩이로 가자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끔 볼 수 있는 흔한 일이었다. 어느 곳이나 흑도의 무리들은 있기 마련이고 그들은 객점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예쁘면 장난을 치며 희롱을 하기 일쑤였다.
주위에 칼을 찬 무인들이 몇몇 있었지만 흑도의 무리들이 사납게 눈을 한 번씩 부라리자 찍소리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안 그런 사람들도 있었다.
“시끄러워서 안 되겠어요. 제가 가서 손을 좀 보고 올게요.”
팽고은이 고운 아미를 살짝 찡그리며 일행에게 말했다. 그녀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수호무룡대의 대장인 운암과 부대장인 무량, 현성, 그리고 수호봉황대의 대장인 황보인영과 부대장인 서서희였다.
그들은 비무를 늦추기 위해서 적운상에게 가짜 서찰을 전한 후에 뒤를 쫓아다녔었다. 그러다 적운상이 천응방에 들어가자 인근에 있는 객잔을 하나 잡고 감시를 했었다.
하지만 잠시 긴장을 푼 사이에 적운상이 백수연 등과 함께 천응방을 떠나버렸다. 뒤늦게 행적을 추적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적운상은 선화빙옥궁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형산파로 돌아가기로 했는데 연락이 왔다. 무림맹의 수뇌부들이 모두 형산파에 와 있으니 빨리 오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적운상은 아직 형산파로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어쨌든 고생은 좀 했지만 목적한 바는 이루었기 때문에 느긋한 마음으로 형산파로 가고 있는 중에 잠시 요기나 할 생각으로 이 객잔에 들렀는데 저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보아하니 흑도 같은데 적당히 해. 혹시 모르니까 암습을 조심하고.”
황보인영이 하는 말에 팽고은이 걱정 말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수호봉황대의 부대장이 저런 자들한테 당하면 체면이 안 서죠.”
“그도 그러네.”
팽고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흑도의 무리들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뾰족한 목소리가 객잔 안에 크게 울렸다.
“그만둬!”
흑도의 무리들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봤다. 열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깜찍한 눈망울을 반짝이면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뭐야? 저건?”
“흐흐. 왜? 너도 주물러주랴?”
“시끄러워요! 백주대낮에 여인을 희롱하다니 그러고도 사내예요? 다른 사람들은 뭐하는 거죠? 왜 저런 짓을 하게 놔두는 거죠? 이곳에는 의협심을 가진 협객이 한 명도 없단 말이에요?”
소녀가 훈계하듯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지금껏 아무것도 못 본 척 고개를 숙이고 있던 무인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저리 어린 소녀도 불의를 참지 못하고 나서는데 자신들은 모른 척했으니 부끄러울 만도 했다.
“더 이상 지껄이지 마라. 가만, 흐흐. 그러고 보니 제법 반반하구나.”
흑도의 사내 하나가 비릿하게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내가 그의 팔을 잡았다.
“왜?”
“입고 있는 옷을 봐. 명문세가의 딸년이 분명해. 괜한 말썽 일으키지 마라.”
그제야 사내는 소녀를 유심히 살폈다. 과연 그의 말대로 소녀는 비싼 재질로 된 화려한 경장 차림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귀하게 자랐는지 피부도 하얗고 뽀송뽀송해 보였다.
지금은 혼자인 것 같지만 일행이 있을 게 분명했다. 대부호의 딸년이라면 상관이 없지만 혹시라도 명문세가나 문파의 제자라면 뒷감당이 힘들었다.
“흥!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운이 좋은 건 당신들이에요! 빨리 그 언니를 놔줘요.”
“참견하지 말고 그냥 가라.”
“놔주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소녀가 허리에 차고 있던 장검을 뽑았다. 그러자 챙 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순백의 검신이 쑥 뽑혀 나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보검이었다.
그걸 보고 흑도의 무리들은 잠시 망설였다. 소녀의 행색이나 가지고 있는 검이 보통이 아니었다. 만약 소녀 옆에 무림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그들은 바로 꼬리를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소녀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물러나면 저 어린 소녀를 무서워한 것처럼 보일 수가 있었다. 그럼 앞으로 이 지역에서는 활동하기가 힘들어진다. 사람들이 얕잡아볼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혼을 좀 내서 보내야겠군.”
결국 아까 그 사내가 낮게 중얼거리면서 위협적으로 소녀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를 말렸던 사내가 조금 걱정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적당히 해라.”
“걱정 마.”
소녀는 덩치가 커다랗고 인상이 험악한 사내가 앞에 서자 살짝 겁이 났다. 하지만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검을 꽉 움켜잡고 큰 소리를 쳤다.
“흥! 내 검이 야속하다고 하지 말아요! 검에는 눈이 없으니까.”
“어디서 들은 거는 있어가지고. 빨리 덤비기나 해라.”
사내가 그렇게 말하면서 허리에 차고 있던 커다란 대두도를 뽑았다. 그러자 대두도의 도배(刀背)에 달려 있는 고리들이 짤그랑 하면서 소리를 냈다.
그걸 보고 소녀가 침을 꼴깍 삼켰다. 저 칼에 맞으면 자신 같이 체구가 작은 사람은 그냥 두 조각이 날 것만 같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언니를 놔주고 여기서 나가요!”
“시끄럽게 쨍알거리지 말고 빨리 덤벼라.”
사내가 이죽거리면서 말했다. 그는 소녀가 그리 대단한 것이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소녀의 다리가 살짝 떨리고 있는 것 본 것이다. 게다가 이리 난리가 났는데도 아무도 나서지 않는 것을 보면 일행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하압! 교룡출수(蛟龍出手)!”
소녀가 초식 명을 외치면서 검을 찔러갔다. 그걸 보고 사내는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들었다. 소녀는 명문정파의 제자가 아니었다. 게다가 실전경험도 아예 없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사형제들 간에 대련을 할 때처럼 저렇게 초식 명을 외칠 리가 없었다.
후우우웅!
사내의 대두도가 바람을 가르며 소녀의 검을 쳐냈다.
따앙!
“아야!”
어이없게도 소녀는 그 일격에 검을 놓치고 말았다. 이어서 사내가 다시 대두도를 휘두르자 재빨리 뒤로 물러나면서 소리쳤다.
“멈춰요!”
“또 뭐냐?”
“여기서 그만두지 않으면 오라버니한테 다 이를 거예요.”
“뭐?”
사내는 기가 찼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눈앞의 소녀가 딱 그랬다.
“아직 혼이 더 나야겠군.”
“꺄아아아악!”
사내가 눈을 부라리며 소녀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콰앙!
“컥!”
뭐가 번쩍하더니 사내는 삼 장이나 떨어진 벽에 처박혀버렸고, 어느새 두 명의 아름다운 여인들이 소녀를 감싸고 있었다. 황보인영과 서서희였다. 그리고 소녀를 핍박하던 사내를 날려버린 사람은 운암이었다.
흑도의 무리들은 갑자기 나타난 그들을 보고 눈만 깜빡일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녀를 놔줘라.”
운암의 한마디에 흑도의 무리들이 화들짝 놀라면서 지금까지 희롱하던 여인의 몸에서 손을 뗐다. 그러자 여인이 후다닥 몸을 피했다.
“생각 같아서는 손목을 하나씩 잘라버리고 싶지만 보는 눈이 있어서 참겠다. 차후에 다시 내 눈에 뜨이면 가만두지 않겠다. 가라.”
“가, 감사합니다, 대협.”
흑도의 무리들은 자신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운암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재빨리 그곳을 떠났다.
“괜찮니?”
서서희가 품에 안고 있는 소녀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소녀가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서서희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서서희는 같은 여자가 봐도 예뻤다. 샘이 날 정도로.
“이제 괜찮으니까 마음 놓아도 돼. 훗! 어린 아가씨가 아주 용기가 있네.”
“아니에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는걸요.”
“하지만 다음부터는 실력을 좀 더 키운 후에 나서야 해. 그렇지 않으면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
“네.”
“같이 온 일행은 어디 있니?”
“없어요.”
“뭐?”
“저 혼자예요.”
“아, 집이 이 근처인 모양이구나.”
“아니요. 집은 강서성(江西省) 악안(樂安)이에요.”
“그럼 왜 여기에 혼자 있는 거지?”
“오라버니를 찾아가는 중이었어요.”
“뭐? 혼자서 말이니?”
“네.”
“하… 너무 철이 없구나. 혹시 집에서 몰래 나온 거니?”
서서희가 묻는 말에 소녀는 고개를 푹 숙이며 우물쭈물했다. 그 모습을 보니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네 오라버니는 어디에 있는데 이 먼 곳까지 혼자 온 거야?”
팽고은이 측은한 듯이 묻자 소녀가 축 처진 모습으로 대답했다.
“형산파요.”
“형산파?”
“네.”
요즘 형산파에는 적운상과 무당삼현, 화산이로의 비무로 인해서 수많은 무림인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보아하니 소녀의 오라버니도 그중의 한 명인 것 같았다.
“어쩌죠?”
“집까지 돌려보내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우리도 시간이 없구려. 그러니 함께 형산파로 가서 오라비를 찾아주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아, 언니들도 형산파로 가는 길이었나요?”
“그래.”
“다행이에요. 그래주시면 그 은혜 잊지 않을게요.”
소녀가 눈을 반짝이면서 말하자 모두들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사문은 어디니?”
“월영매화문(月影梅花門)이요.”
처음 들어보는 문파였다. 그러자 소녀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을 덧붙였다.
“악안에 있는 작은 문파라서 잘 모르실 거예요.”
“그래. 훗! 이름은 뭐지?”
“교희요. 적교희.”
소녀, 적교희가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모두들 그런 적교희를 모습이 어째 낯설지가 않았다. 눈매나 얼굴의 형태가 누군가를 많이 닮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누군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