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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326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7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26화

326화. 선화빙옥궁에서 (1)

 

적운상은 소희가 안내해준 곳으로 가서 깔끔하게 씻은 후에 옷을 갈아입었다. 청의 무복에 백색의 포를 걸치자 명문세가의 자제같이 헌앙한 태가 났다.

그런 적운상을 보고 소희가 약간 감탄을 하면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적운상이 잘생긴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단지 옷을 갈아입었다고 해서 이 정도의 느낌을 줄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었다. 옷이 날개라더니, 지금의 적운상이 딱 그랬다.

“정말 잘 어울려요.”

“고맙소.”

느낌이 달라서 그런지 무뚝뚝하게 말하는 모습조차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아니에요. 사실이 그런 걸요. 어서 가요.”

소희가 앞장서서 가자 적운상이 두어 걸음 정도 떨어져서 뒤를 따라갔다. 가는 동안 몇몇 여인들이 적운상을 보고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어떤 여인은 발이 땅에 붙은 듯,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적운상이 지나가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기도 했다.

여인들의 그런 반응을 보고 소희가 웃으면서 농담을 건넸다.

“모두들 적 공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네요. 적 공자가 계속 궁에 있다가는 모든 업무가 마비되겠어요. 호호.”

“나도 그러기를 바라지 않소.”

적운상이 무표정하니 받아치는 모습을 보면서 소희는 그게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열 여자 마다하지 않는 것이 남자이건만, 적운상은 조금 특이했다. 물론 백수연이 빼어나게 아름답기는 했지만 단지 그런 이유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되면 절대로 붙잡지 않을 거예요.”

“알고 있소.”

적운상은 정말 그러기를 원했다. 그렇지 않으면 무력을 써야 하는데, 여인들을 상대로 칼을 휘두르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계속 소희를 따라가자 넓은 객청이 보였다. 그곳에는 북진마문의 문주인 동중성과 그의 아들인 동호영, 그리고 마뇌총관이라 불리는 금극영과 북진단을 이끄는 호유광이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적운상이 객청 안으로 들어서자 금극영과 호유광이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걸 보고 동중성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러나?”

금극영은 크게 당황해서 동중성이 묻는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다, 당신이 왜 여기에…….”

“그렇게 됐소. 앉읍시다.”

적운상이 자리에 앉으면서 말하자 동중성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오라는 소궁주는 오지 않고 기분 나쁜 위압감을 풍기는 적운상이 와서 상좌에 앉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저 행동은 또 뭐란 말인가?

마치 제집인 양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자네는 누구인가?”

동중성이 기분 나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적운상이 무표정하니 대답했다.

“적운상이오.”

“적운상? 설마, 무적일검?”

동중성이 그렇게 말하면서 옆에 있는 금극영을 봤다. 그러자 금극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대가 왜 이곳에 있는 건가?”

“이곳의 궁주니까.”

적운상이 툭 내던진 말에 동중성은 물론이고 그와 함께 온 세 명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소희가 입가를 살짝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고소해서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당신이 이곳의 궁주라면 소궁주를 안았다는 말인가?”

동중성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초면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상당히 실례가 되는 일이었다. 또한 선화빙옥궁을 무시하는 처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적운상은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무표정하니 대답했다.

“그렇소.”

“믿을 수 없다.”

“믿건 안 믿건 그건 당신 마음이고, 무슨 볼일로 왔는지나 이야기해보시오.”

이미 다 알고 있을 텐데도 오만한 태도로 용무를 묻는 적운상을 보면서 동중성은 기분이 더욱이 나빠졌다. 그래서 말투가 곱지 않았다.

“요화보검의 비밀을 풀면 누구를 막론하고 선화빙옥궁의 궁주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나?”

“물론이오.”

“본문에서 그 비밀을 풀었네. 그래서 아들과 소궁주를 혼인시키려고 온 걸세.”

“늦었소. 그냥 돌아가시오.”

“소궁주를 만나서 확인해야겠네. 정말 그대가 궁주로서 인정을 받고 있다면 돌아가도록 하지.”

“그럼 그러시오.”

적운상이 소희를 봤다. 그러자 소희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선화를 데려오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다.

객청 안에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동중성은 선화빙옥궁에서 설마 이런 식으로 자신들과 맞서려고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상대가 적운상만 아니라면 어떻게 한번 해보련만 지금으로서는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힐끗 금극영을 보니 그는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마뇌총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머리가 뛰어난 자였는데 요 며칠간은 성에 차지 않게 행동하고 있었다.

“아, 이제야 생각났군.”

적운상이 입을 열자 네 사람이 그를 봤다. 적운상은 그들 중 동호영에게 시선을 꽂았다.

“그때 난수와 함께 있었지?”

“맞소.”

“난수를 마음에 두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군.”

“그, 그렇지 않소! 나는…….”

동호영이 발끈해서 소리치다가 갑자기 입을 닫고 옆에 있는 동중성의 눈치를 봤다. 사실 동호영은 백리난수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그녀가 도움을 바라고 접근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을 돌리지 않고 오히려 반가워할 정도였다.

그러나 동중성이 이번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닦달을 하자 어쩔 수 없이 함께 온 것이다. 동중성은 선화를 얻어 선화빙옥궁만 산하에 둘 수 있다면 첩으로 백리난수를 받아주겠다고 했다.

동호영은 마음 같아서는 백리난수를 정실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하지만 백리난수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사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북진마문의 며느리로서 부족한 것이 많았다.

동호영이야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지만 동중성은 달랐다. 며느리를 잘 들이면 북진마문의 세가 더욱 강해질 수가 있었다. 선화를 얻으려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그러니 백리난수가 눈에 찰 리가 없었다. 하지만 동호영이 그렇게 좋아하니 어쩔 수 없이 조건을 내건 것이다.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되면 백리난수를 받아들이는 것을 눈감아 주기로.

그런 사정이 있었지만 그것을 적운상에게 이야기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적운상은 듣지 않아도 어찌 된 일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뭐, 상관없겠지. 어차피 혼사는 부모가 정해주는 거니까. 하지만!”

말을 하며 적운상이 동호영을 노려봤다.

“만약 난수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하면 내가 가만히 두지 않겠다.”

순간 뜨거운 기운이 동호영을 확 덮쳐갔다. 적운상이 내뿜은 진득한 살기였다. 그걸 느낀 동호영이 움찔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니 알아서 헤어져라.”

“그럴 수 없소.”

“헤어져.”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내게 그리 말하는 거요?”

동호영은 기세에서 눌리면서도 하고자 하는 말을 했다. 적운상은 그런 동호영을 가소롭다는 듯이 보며 말했다.

“그런 어설픈 마음으로 다가가서 난수에게 상처를 주지 마라. 제대로 책임질 생각이 없으면 마음 접고 물러나. 이건 분명한 경고다.”

동중성은 웬만하면 그냥 듣고 넘기려고 했었다. 그도 아들인 동호영이 백리난수와의 관계를 정리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운상이 저리 무시하는 말을 하니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듣자듣자 하니 나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군. 그 여자가 그리 대단한가? 반반한 얼굴 말고 봐줄 것이 뭐가 있나?”

“그러는 당신 아들은 북진마문이라는 배경을 빼면 내세울 것이 뭐가 있소? 전에 보니 무공도 별로고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도 떨어져서 목숨을 걸고 만용을 부리더군. 세상물정 모르고 떠받들어지기만 하면서 자란 사람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이지.”

“말을 함부로 하지 마라!”

탕!

흥분을 한 동중성이 차탁을 내려치자 다리가 부러지면서 내려앉았다. 적운상이 차라리 동중성을 욕했다면 그는 속으로는 욕을 했을망정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고 참아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인 동호영을 욕하니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지 못했다.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이야기했을 뿐이오.”

“애초에 네놈이 왜 남녀의 문제에 끼어드는 거냐?”

“그러는 당신도 지금 그러려고 하지 않소?”

동중성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말로는 적운상을 이길 수가 없었다. 생긴 것과 다르게 적운상은 사람 속을 박박 긁어대는 능력이 탁월했다.

과거, 구혁상과 함께 새외를 돌 때, 적운상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비무를 했었다. 심한 경우 하루에 몇 번씩 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보니 상대를 흥분시키는 화술이 필요했다.

무공이 높아도 흥분을 하면 허점을 쉽게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무공이 강해졌지만 한 번 입에 밴 말투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동중성이 아니라고 받아치려는데 아까 나갔던 소희가 선화와 함께 객청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그녀들에게 향했다.

“오랜만이군요, 동 문주님.”

며칠 전에 봤으니 오랜만이라고 인사하는 것은 좀 그랬다. 하지만 동중성은 신경 쓰지 않고 인사를 받았다.

“또 보는구려.”

선화는 동호영과 금극영, 호유광을 향해서는 눈으로만 살짝 인사를 했다. 어찌 보면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선화는 그걸 무마시킬 만큼 아름다웠다. 또한 그들은 원하지 않는 불청객이었기 때문에 그런 대우를 받아도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선화는 적운상의 옆자리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적운상의 찻잔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는 다소곳이 차를 따랐다.

“드시어요, 상공.”

얼굴을 붉히면서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예뻐서 동중성을 비롯한 네 사람은 심하게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적운상이 정말 그녀를 안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서로 관계를 가진 남녀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연기를 잘한다고 해도 그 분위기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특히 선화의 분위기가 그랬다.

적운상이 차를 마시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던 선화가 동중성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번에는 무슨 일로 오신 거죠? 오면서 소희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요화보검의 비밀을 풀었다고 하던데, 정말인가요?”

“그렇소.”

“아시겠지만 원래 요화보검의 비밀을 풀면 누구를 막론하고 본궁의 궁주가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과 같이 궁주가 있는 경우에는 그럴 수가 없어요.”

선화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을 하던 동중성이 물었다.

“그럼 궁주가 없으면 가능하다는 말이군.”

“그래요.”

선화가 대답을 하자 동중성이 적운상을 봤다. 지금 남은 방법은 적운상을 죽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장소가 좋지 않았다.

“알겠소. 먼 길을 와서 피곤해서 그러는데 삼 일만 쉴 수 있겠소?”

저들이 순순히 물러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저런 부탁을 해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선화가 대답을 망설이고 있는데 적운상이 대신 대답을 했다.

“그러시오. 객방으로 안내하고 편히 쉴 수 있도록 해주시오.”

적운상이 소희를 보며 말하자 그녀가 약간 주저하는 빛을 보였다. 저들이 삼 일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냥 적운상이 쫓아 보냈으면 했다.

하지만 적운상은 그런 소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를 재촉했다.

“뭘 하고 있소? 저들을 안내하라는데.”

“네. 명을 따르겠습니다.”

소희가 적운상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 후에 동중성 일행을 봤다.

“따라오세요.”

“가서 편히 쉬시오.”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이제 할 이야기 다 나눴다는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동중성도 굳이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 소희를 따라갔다.

그들이 그렇게 객청을 나가자 선화가 적운상을 보며 물었다.

“저들을 머물게 해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오. 기껏해야 삼 일이니 별일은 없을 것이오. 문제는 그 이후요. 저들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보아하니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은데. 내가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수는 없는 일이오.”

“알고 있어요. 일단 저들에게 본궁을 핍박할 명분만 없어지면 저희들 힘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럼 그 미인도만 빼앗으면 되겠군.”

“쉽지 않을 거예요. 아까 그들의 눈치를 보아하니 적 공자를 죽이려는 것 같았어요.”

“바라던 일이오. 덤벼오면 오히려 상대하기가 쉬우니까.”

“적 공자의 무공이 출중한 것은 알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덤비지 않을 거예요.”

“상관없소. 미인도를 되찾아오는 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소. 그보다 백 누이는 어디에 있소?”

적운상이 묻는 말에 선화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원하지 않는 관계를 억지로 맺기는 했지만 어쨌든 관계를 맺지 않았던가?

백수연이 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선화는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방에 있어요.”

“아는지 모르겠지만 형산파에서 무당삼현과 화산이로가 나와 비무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소.”

“알고 있어요.”

“이번 비무는 내게 상당히 중요하오. 하지만 이곳의 일을 처리하려면 제때에 가지 못할 것 같소.”

“죄송해요.”

“사과를 받자고 하는 말이 아니오. 그들에게 서찰을 보내 비무 날짜를 좀 늦출 거요. 그러자면 백 누이가 가야 하오.”

“서찰을 보내려면 저한테 주세요. 그럼 경공이 뛰어난 아이한테 직접 전달하라고 할게요.”

“그건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오. 하지만 백 누이가 가서 사정을 잘 설명하면 그들도 이해를 할 것이오.”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선화가 얼결에 따라서 일어났다.

“내일은 신경 쓰지 말고 그들이나 감시를 해주시오.”

“알았어요.”

조금 침울해하며 대답하는 선화를 놔두고 적운상은 객청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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