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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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20화
320화. 고수들의 대결 (2)
생각지도 못한 조황인이 나타나자 모두들 바짝 긴장을 했다. 조황인이 뿜어내는 존재감은 너무나 강했다. 하지만 어째 그 느낌이 낯설지가 않았다.
일영진인은 언제 저런 자를 대했었나 생각을 하다가 적운상을 떠올렸다. 적운상 역시 저렇게 존재감이 강했었다. 그저 있는 것만으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의식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제 시작한 건가?”
조황인의 묵직한 음성에 일영진인이 담담하니 대답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소. 이제야 그대를 보는군.”
“일영이로군.”
일영진인은 무당파의 장문인이었다. 그렇게 함부로 도호만 불릴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는 호천마궁의 궁주였다.
“구지는 하던 싸움을 계속 하시오. 보아하니 과거의 은원을 청산하려는 것 같은데 끝날 때까지 손을 쓰지 않겠소.”
오만하고 거만한 말투였다. 하지만 누구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만큼 조황인이 풍기는 위압감은 대단했다.
“후후. 그대가 나타났으니 과거의 은원은 잠시 접어둬야 할 것 같소. 아미타불.”
구지선사가 낮게 불호를 외우면서 입가의 피를 닦았다. 그가 물러나니 갈천기도 더 이상 싸울 생각이 없었다. 갈천기는 구지선사보다 내상이 더 심했다. 계속 싸운다면 크게 패했을 것이다.
“크크크. 어린놈아. 어린놈아. 내가 강호를 종횡하고 다닐 때 네놈은 갓 태어나서 꼼지락거리고 있지 않았더냐?”
지철목은 조황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람들을 압도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너무 뛰어난 자를 대하면 보통은 두 가지의 경향을 보인다.
하나는 동경이고 다른 하나는 질투였다. 지철목은 후자였다.
“나이로만 따지자면 그렇겠군. 당신은 나보다 그렇게 오래 살면서 뭘 했나? 내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군.”
“닥쳐라! 어린놈아!”
지철목이 발끈 화를 내며 조황인을 향해 적마수를 펼쳤다. 사실 지철목은 처음부터 조황인과 한 번 붙어볼 생각으로 내공을 잔뜩 끌어올린 상태였다.
조황인은 지철목의 적마수가 코앞까지 다가오는데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니 팔을 한 번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폭음이 터져 나오면서 지철목이 조황인에게 덤벼들던 것보다 배는 빠르게 뒤로 튕겨져 나갔다.
“제법이로구나!”
지철목은 손가락을 모아 손을 하나의 창처럼 만들었다. 그러고는 조황인의 심장을 노리고 쑤셔 넣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조황인이 가볍게 팔을 한 번 휘두르자 그의 적마수는 어이없게 튕겨졌다.
콰아아아아앙!
“크윽!”
자존심이 상한 지철목은 맹공격을 퍼부었다. 기세가 너무 험악해서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급히 뒤로 물러나 두 사람이 싸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줬다.
지철목은 순식간에 십여 초식을 펼쳤다. 그러나 조황인의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 더구나 조황인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떼지 않고 오로지 한 손으로만 상대를 하고 있었다.
지철목이 누구던가?
삼대마두 중 한 명이었으며, 수공(手功) 중에서는 천하에서 손꼽히는 적마수를 대성한 사람이었다. 나무건 바위건 사람이건 간에 그의 적마수에 맞으면 흐물흐물 녹아버린다.
그런데 조황인은 그를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이 하고 있었다. 그걸 보는 사람들은 당혹감에 그저 눈만 크게 뜨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지철목을 상대로 저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황인은 강해도 너무 강했다.
퍼어어어어엉!
쾅!
“커헉!”
조황인의 장력에 뒤로 삼장이나 튕겨져 나간 지철목이 나무에 등을 부딪치며 간신히 멈추었다.
“헉헉…….”
지철목은 무서운 눈으로 조황인을 노려봤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내상이 심해서 내공의 흐름이 자꾸 끊기고 있었다. 이런 상태로 싸워봐야 승산이 없었다. 애초에 그는 조황인의 상대가 아니었다.
“시시하군.”
정말로 그랬다. 조황인은 시시했다. 적운상과 겨룬 이후에 조황인은 나이도 잊고 폐관수련을 했다. 그 결과 생각지도 못한 경지에 오를 수가 있었다.
무림맹의 수뇌부가 움직이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직접 나타난 이유도 그래서였다. 누구를 상대하든 꺾이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내가 해보지.”
조용히 말하면서 앞으로 나선 사람은 일초일살이라 불리는 부운초였다. 그는 지금까지 일 초식에 딱 한 명씩만 죽여 왔다.
그의 실력이라면 일 초식에 서너 명씩 죽일 수도 있건만 다수를 상대할 때도 오로지 한 명씩만 죽였다. 또한 어떤 고수라도 그렇게 일 초식에 죽였다. 그래서 붙은 별호가 일초일살이었다.
사람들은 과연 그의 일 초식이 조황인에게도 통할지 궁금증이 일었다. 조황인의 무공이 굉장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도 사람이었다. 부운초의 일격필살이 막아내지 못할 수도 있었다.
부운초가 천천히 걸어 나와서 조황인의 앞에 섰다. 그러자 조황인이 씨익 웃었다.
“당신 정도면 한 번 할 만하지. 듣자니 쓰레기들이 모여서 마도연맹을 만들었다는군. 그런 곳에 몸담기에는 자존심이 상했을 텐데.”
조황인이 하는 말에 가장 큰 반응을 보인 건 금극영이었다. 예전에 금극영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사파의 무인들이 하나둘씩 결속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었다. 하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사파의 인간들은 개성이 너무나 강해서 절대로 하나로 뭉치지 못한다. 사문구룡회만 해도 그렇다. 덩치로 따지자면 그들은 북진마문이나 호천마궁과도 충분히 맞설 정도였다. 하지만 아홉 개의 문파가 손을 잡고 있는 연합체이다 보니 하나로 통일된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딱 그 격이었다.
그래서 뭔가 움직임이 있어도 크게 뭉치지는 못하리라 여겼었다. 사문구룡회나 호천마궁에서도 마도연맹이 결맹되는 것을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금극영처럼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이유는 그래서였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을 깨고 마도연맹은 거대하게 뭉쳤다. 전대의 노마두들이 대거 모여들었고, 부평초 같은 뜨내기들이 몸을 의탁해왔다.
그러한 사실을 금극영은 이제야 안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 맹주를 만난다면 우리가 왜 그렇게 모여들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호오…… 누군지 꼭 한 번 만나고 싶군.”
“그 전에 나를 넘어서야 할 거다.”
부운초가 검을 잡고 자세를 취했다. 그는 발검과 동시에 조황인을 벨 생각이었다.
섬광과 같은 극쾌!
그 일 초식에 모든 것을 걸려는 것이다.
조황인은 그런 부운초의 생각을 알면서도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마치 해볼 테면 해보라는 태도였다.
주위가 고요해졌다.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어찌나 조용한지 옆에 있는 사람의 숨소리까지도 들릴 정도였다. 극도로 긴장된 팽배한 분위기가 주위를 내리눌렀다. 무공이 절정에 오른 고수들의 대결이었다.
생사를 건 단 한 수의 대결!
당사자들보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더욱 긴장을 하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켜야 했다.
그때, 부운초가 움직였다. 그의 검은 빛살과 같았다. 검신에서 반사되는 은색의 빛이 번쩍이는 순간 검은 이미 뽑혀 있었고, 조황인을 베고 지나간 상태였다.
사람들은 눈을 크게 떴다. 조황인을 벤 것인가?
조황인은 멀쩡했다. 하지만 결과는 아직 알 수가 없었다. 너무나 빠른 쾌검에 당하면 상대는 잠시 동안 그걸 전혀 느끼지 못한다. 멀쩡하게 있다가 베인 곳이 벌어지는 순간 죽는다.
그러니 보기에 조황인이 멀쩡하다고 해도 어쩌면 이미 부운초의 검이 베고 지나갔을 수도 있었다.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조황인에게 모였다. 조황인은 입가를 살짝 올려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섬뜩하군.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아!”
몇몇 사람들이 아쉬움에 찬 탄성을 터트렸다. 부운초는 조황인을 죽이지 못했다. 그저 어깨를 살짝 베었을 뿐이었다.
“이제 더 이상은 일초일살이 아니로군.”
조황인의 말을 들으면서 부운초는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검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사람들은 이제 아연한 기색으로 조황인을 봤다. 삼대마두 중 두 명이 조황인 한 명에게 당한 것이다. 그것도 너무나 어이없이 쉽게 당했다.
그들 두 사람은 조황인의 힘을 빼는 일조차 하지 못했다. 도대체 조황인은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그를 당해낼 수 있는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물러날 수는 없었다.
“강하군. 그대는 정말 강해.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이유를 알겠어.”
일영진인이 조황인의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러자 적양진인이 그의 옆으로 와서 섰다.
“나도 한팔 거들겠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들은 무당파의 장문인과 화산파의 장문인이었다. 그런 그들이 한 사람을 두고 협공이라니.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안 될 이유도 없었다. 지금은 일대일로 비무를 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생사를 건 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마도연맹은 삼대마두가 꺾이기는 했지만 아직도 백여 명에 달했다. 그들 개개인의 힘은 패도육영대를 넘어섰다. 북진마문은 또 어떤가?
그들은 아직까지 음영단을 전혀 활용하지 않고 있었다.
일영진인을 비롯한 무림맹 사람들은 조황인을 이긴다고 해도 그 뒤에 있는 장로들과 패도육영대를 모두 상대해야 했다. 산 넘어 산이었다.
오늘 과연 몇 명이나 살아서 이곳을 벗어날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모두 여기에 뼈를 묻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런 상황에서 일대일을 고집하는 사람이 바보였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일영진인은 조황인을 향해 물었다.
“괜찮겠소?”
“둘이든 셋이든 상관없다. 모두 상대해주지.”
광오한 말이었지만 일영진인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황인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그는 그만큼 강했다. 그랬기에 적양진인이 스스럼없이 나선 것이다.
세 사람이 대치하고 서자 사람들이 뒤로 훌쩍 물러났다. 어떤 공방전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흥분이 되었다. 이런 대결은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일이었다.
일영진인은 검을 늘어트린 채 자연스럽게 서 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자연체(自然體)였다. 취하고 있는 자세 전부가 허점이었지만 쉽게 공격해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디를 어떻게 공격하든 즉각 반응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옆에 서 있는 적양진인 역시 자연체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세가 일영진인과는 달랐다. 일영진인이 물과 같다면 적양진인은 불과 같았다. 모든 것을 받아들여 되돌려 줄 것 같은 일영진인의 기세에 비해 그는 즉각 되받아칠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런 두 사람의 자세를 보며 조황인이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조황인은 폐관수련의 결과를 시험할 상대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원 없이 많은 강자들을 상대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조황인이 기세를 일으켰다. 그는 지철목이나 부운초를 상대할 때조차 그렇게 기세를 일으키지 않았었다. 그런데 일영진인과 적양진인을 상대로는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다. 그만큼 두 사람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팽팽하게 긴장된 공기가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사람들은 보고 있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저 세 사람 사이에는 이제 그 누구도 끼어들 수가 없었다.
끼어드는 순간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말리라.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그들 사이에 끼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 그는 끼어들지 않았다. 세 사람이 그를 의식해서 맞부딪치는 기세를 거두었다.
“여기들 모여 있었군.”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하면서 다가오는 사람은 이제 갓 약관을 넘겼을 것 같은 나이의 젊은이였다. 흑색무복을 입고 도 한 자루와 검 한 자루를 엉덩이 쪽에 비껴 메고 있는 사내, 조황인만큼이나 강한 존재감과 위압감을 뿜어내는 그는 다름 아닌 적운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