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07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07화
307화. 천응방에서 (1)
장 의원은 한밤중에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자 짜증이 치솟았다. 한창 부인과 재미를 보려던 차에 산통이 깨졌다.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가보니 젊은 사람 다섯 명이 서 있었다.
“이들의 상처를 봐주시오.”
듣기 좋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위압적이었다. 게다가 칼을 차고 있는 것을 보니 무인이 분명했다.
“이, 일단 들어오십시오.”
장 의원은 적운상 일행을 안으로 안내한 후에 백리난수의 상처부터 살폈다.
“응급처치를 잘하셨군요. 흉터는 좀 남겠지만 큰 이상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푹 쉬어야 합니다. 행여 팔을 움직이다가는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말을 하면서 장 의원이 적운상의 눈치를 살폈다. 살다 살다 저런 인간은 처음이었다. 그는 가만히 서 있는데도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동안 장 의원은 무림인들도 제법 많이 치료를 했었다. 그들이 단번에 집을 뛰어넘고 일격에 바위를 부순다지만 그에게는 단지 환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 서 있는 저 인간은 그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치료를 하는 손이 더욱이 조심스러웠다.
“다 됐습니다.”
백리난수의 치료를 끝낸 장 의원이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동호영과 정안문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제 됐으니까 가세요.”
“가고 말고는 내가 정해.”
“많이…… 바뀌었군요.”
“너도 마찬가지야.”
“아니요. 나는 원래 이랬어요. 적 오라…… 당신이 그걸 몰랐을 뿐이에요.”
“하려던 일은 어떻게 됐어?”
백리난수는 적운상이 말하는 하려던 일이 뭔지 몰라 잠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그게 백리세가의 재건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씁쓸한 얼굴로 대답했다.
“여기 동 공자는 북진마문의 후계자예요. 도움을 받으면 금방 제가 원하던 일을 할 수 있을 거예요.”
백리난수가 하는 말에 치료를 받던 동호영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지금까지 우연찮은 만남이라고만 여겼었건만 그게 아니었단 말인가?
하긴 저런 미인이 이유 없이 자신과 엮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동호영은 좋았다. 아니, 오히려 백리난수에게 뭔가 힘이 되어 줄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그게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반드시 도움을 주겠소.”
동호영이 힘 있는 목소리로 말하자 백리난수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동호영은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만 봐요. 동 공자. 언니가 예쁜 건 알지만 너무 그러면 실례라고요.”
용보아가 웃으면서 하는 말에 그제야 동호영이 얼굴을 붉히면서 시선을 돌렸다.
“하하. 동 형이 백리 소저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걸 누가 모르겠소.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 쌍 아니오?”
정안문이 적운상을 슬쩍 한 번 보며 말했다.
“아니오. 정 형. 그런 말 마시오. 백리 소저에게 실례요.”
동호영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적운상은 그들의 대화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지 가만히 팔짱을 끼고 여전히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그러다 밖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그제야 팔짱을 풀었다.
“여기서 잠시 기다려.”
적운상이 그 말만 하고 밖으로 나가자 네 사람은 영문을 몰라서 서로를 봤다.
“저 사람 왜 저래요? 항상 저래요?”
용보아의 물음에 백리난수는 살짝 끄덕였다.
“응. 원래 그런 사람이야.”
“아까는 먼발치에서 한 번 본 게 다라더니 그게 아니네요. 혹시 옛날 연인?”
용보아가 관심을 갖고 눈을 빛내면서 물었다. 사실 그건 동호영도 묻고 싶었던 거였다.
“아니. 그냥 짝사랑으로 끝났어.”
“에엑! 믿을 수 없어요. 세상에나. 언니가 뭐가 부족해서요?”
용보아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백리난수가 씁쓸하니 대답했다.
“잘난 사람이거든.”
“그거야 그렇지만…….”
용보아가 보기에도 적운상은 잘나 보였다. 적운상을 만나기 전에는 동호영이나 장안문이 대단해 보였었다. 외모도 괜찮고, 무공도 뛰어나며, 가문도 좋았다.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적운상을 보니 동호영과 장안문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외모부터 달랐고, 명성이나 무공은 아예 비교도 되지 않았다.
“흥! 난 그자의 건방진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소. 잘났다고 그걸 과시할 필요는 없지 않소?”
정안문이 불만 섞인 어투로 말했다. 그는 용보아에게 은근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용보아가 적운상을 인정하며 눈을 빛내자 조금 불안하기도 하고, 질투도 났다.
“그런데 왜 나간 거죠?”
용보아가 묻는 말에 백리난수는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밖에 누군가 왔어요. 내가 나가 볼게요.”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백리난수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방을 나왔다. 그리고 무작정 의원 밖으로 달렸다. 왜 그러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이었다.
적운상은 강했다. 누가 오든 그가 다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렇게 달려 나가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건 아마도 적운상이 이대로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리라.
적운상이 방을 나갈 때까지만 해도 백리난수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었다. 자신이 툴툴대기는 했지만 적운상이 계속 남아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적이 왔다면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로 인해 백리난수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적운상은 그런 사람이었다. 주위의 사람들을 위험하게 하느니 차라리 그걸 자신이 모두 떠안아버리는 게 그의 방식이었다.
오른쪽에서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백리난수는 경공술을 펼쳐서 그쪽으로 달려갔다. 다친 어깨가 욱신거렸지만 그것보다 적운상이 떠날지도 모른다는 것이 더 신경 쓰였다.
“적 오라버니!”
백리난수가 적운상을 부르며 몸을 날렸다. 좁은 골목길이었다. 그곳에서 적운상이 수십 명을 상대로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파가가가각!
“크아아악!”
“아아아악!”
단 한 번의 휘두름에 두 명이 비명을 지르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적운상은 그 뒤에서 덤벼들려는 자들을 향해 앞에 주저앉아 있는 사내의 턱을 걷어찼다. 그러자 그의 몸이 뒤로 확 날아가서 뒤에서 달려들던 사내들에게 부딪쳤다.
“여자다! 잡아!”
누군가의 외침에 사내들이 백리난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걸 보고 적운상이 옆에 있는 담벼락을 차고 달리면서 그들의 머리 위를 뛰어넘었다. 그러면서 태룡도를 휘두르자 그들이 겁을 먹고 머리를 감싸며 몸을 웅크렸다.
그 사이에 백리난수의 앞에 내려선 적운상이 무뚝뚝하게 말을 뱉어냈다.
“여긴 왜 왔어? 기다리라니까.”
백리난수는 순간 차갑게 머리가 식었다. 적운상이 떠날까 봐 무작정 오기는 했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다친 몸으로 와봤자 짐만 될 뿐이었다.
“죽여라!”
“우와아아아!”
사내들이 고함을 지르면서 우르르 달려들었다. 그들을 보는 적운상의 눈이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금안뇌정신공을 팔성 가까이 끌어올렸기 때문이었다.
“꺼져!”
후우우우우웅! 파지지지지직!
칼바람이 일며 뇌기가 태룡도에서 터져 나왔다. 횡으로 휘두른 일격에 가장 앞서 오던 다섯 명의 허리가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그리고 그 뒤에 있던 십여 명의 사내들은 마구잡이로 뿌려지는 강기에 맞고 몸을 떨며 쓰러졌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적운상을 죽이려고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치던 자들이 모두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이러한 것을 처음 봤다.
일격에, 단 일격에 이십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죽었다. 저런 무공이 있다는 것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남은 사내들이 슬슬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버렸다. 그걸 보고 적운상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태룡도를 허공에 휘둘러 피를 털어냈다. 그러고는 도집에 집어넣으면서 백리난수를 봤다.
“괜찮아?”
“네? 네. 괜찮아요.”
“저들은 누구죠?”
“몰라. 널 노린 거 아니었어?”
“아니요.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어요.”
“이상한데. 날 노리는 놈들치고는 너무 약해.”
누군들 약하지 않을까?
하지만 확실히 약하기는 약했다. 저런 놈들이 자신을 노릴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백리난수를 노리는 패거리라 여겼다.
사실 백리난수가 오지 않았다면 굳이 그렇게 죽이지 않고 쫓아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백리난수를 보호하려는 마음에 조금 과도하게 손을 쓰고 말았다.
그 정도의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보여주면 함부로 다시 덤빌 생각은 안 할 거라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백리난수가 모른다고 하니 괜히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가자.”
“저기, 적 오라버니.”
“응. 왜?”
“그냥…… 이대로 가주세요. 부탁이에요. 솔직히, 오라버니를 보고 있기가 너무 괴로워요.”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적운상은 백리난수를 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저 반가웠을 뿐이다. 그래서 뭐라고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말하니 가는 것이 낫다.
“그래. 가라면 가야지. 건강해라. 또…… 보자.”
“네. 오라버니도요.”
백리난수는 적운상을 보내기 싫었다. 좀 더 같이 있고 싶었다. 그게 그녀의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간신히 다잡은 마음을 주체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방금만 해도 적운상이 인사도 없이 그냥 가버릴까 봐 이렇게 뛰어나오지 않았던가?
적운상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그곳을 벗어났다. 백리난수도 몸을 돌렸다. 적운상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면 가서 붙잡고 싶을 것 같았다. 그러기 싫어서 보지 않으려는 것이다.
‘다시는 만나지 않기를…….’
백리난수는 속으로 그렇게 바랐다. 하지만 세상일은 생각한 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은 법이었다.
* * *
적운상과 백리난수가 떠나고 난 자리에 조용히 두 사람의 인영이 내려앉았다. 사도공과 설요원이었다.
“도대체 그게 뭐였죠? 객잔에서 당신이 피하기에 왜 그러나 했었는데 이유가 있었군요.”
설요원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아까 적운상이 일격에 이십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을 쓰러트리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었다. 칼이 벼락을 뿜어낸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
“음, 그가 말하기를 심검 이상의 경지에 올랐다고 했소. 내 생각에는 그게 아마 그가 말한 경지가 아닌가 싶군.”
“당신은 그가 보여준 것이 뭔지 아는 눈치군요.”
“짐작만 할 뿐이오.”
사도공이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내공을 이용해서 허공을 친다는 이야기는 전설로나 내려오는 경지였다. 기(氣)라는 것은 형체가 없어서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다. 단지 느껴질 뿐이다.
그러니 기로 사람을 상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직접 눈으로 봤다. 믿지 않으려야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말해줘요. 그게 뭔지.”
“검기상인(劍氣傷人)의 경지요.”
아니었다. 하지만 강기를 쓰는 것을 심검의 다음 경지라고 생각한 사도공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탈인의 경지가 있다는 건,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그렇군요. 이제 약관이 조금 넘은 것 같은데 어떻게 그런 경지에 올라 있죠? 사문이 대단한 것도 아닌데.”
“뭔가 기연을 얻었을 거요. 어쨌든 눈으로 확인했으니 이제 됐소.”
“위에 보고할 건가요?”
사도공과 설요원은 마도연맹(魔道聯盟)에 소속되어 있었다. 마도연맹은 크고 작은 사파들의 연합체였다. 북진마문과 사문구룡회 같은 거대세력에 맞서기 위해, 아니 정확히는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서로 손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드러나는 순간 북진마문과 사문구룡회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지금 무림인들의 관심은 온통 무림맹과 호천마궁의 싸움에 쏠려 있었다. 북진마문과 사문구룡회도 그랬기에 마도연맹이란 이름 아래, 수많은 사파와 마도인들이 모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물론이오. 만약 무적일검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북진마문이나 사문구룡회도 두렵지 않을 거요. 지금까지 왜 모두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군.”
“몰랐겠죠. 소문은 무성했지만 대부분 믿기지 않는 것들이었잖아요. 우리도 직접 보지 않았다면 신경도 쓰지 않았겠죠.”
확실히 그랬다. 적운상에 대한 소문은 과하다 할 정도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혼자서 혈마사를 쓸어버렸다는 것부터가 그랬다. 혈마사가 어떤 곳이던가?
호남의 모든 문파들이 손을 잡고 맞서도 끝내 어떻게 하지 못했던 곳이었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니고 다 무너져 가는 형산파 출신에, 이제 경우 약관을 벗어난 애송이가 단신으로 그들을 잠재웠다니 쉽게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 외의 소문들도 모두 그랬다. 그러니 뜬소문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직접 눈으로 본 사람들만이 믿을 뿐이었다.
“어쨌든 그를 끌어들여야 하오.”
“쉽지 않을 거예요.”
“아니. 의외로 쉬울 수도 있소. 현재 형산파는 무림맹을 탈퇴하고 그들과 적대관계에 있다고 들었소. 얼마 전에 호천마궁하고도 크게 한판 하지 않았소? 무림의 반 이상을 적으로 돌린 거요. 이때 우리가 힘을 보태 준다면 거절하지 않을 거요.”
“일리가 있군요.”
“나는 이대로 계속 적운상의 뒤를 쫓겠소. 그동안 당신은 방금 간 여자를 데리고 오시오. 하지만 절대로 다치게 해서는 안 되오. 적운상이 보호하려는 것으로 봐서 분명 쓸모가 있을 것이오.”
“알았어요. 그럼 위에는 당신이 보고해요.”
“알겠소.”
“나중에 봐요.”
설요원이 가고 나자 사도공도 곧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