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02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02화
302화. 느긋한 일상 (2)
무림맹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빴다. 호천마궁의 움직임에 대한 보고가 각지에서 올라왔고, 그게 한차례 걸러지면 수뇌부들은 적절한 조치를 내려야 했다.
게다가 호천마궁의 일뿐만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도움을 청하는 문파들까지 도와줘야 했다. 무림맹에 가입한 약소문파들이 주위의 사파나 흑도문파들과 부딪치면서 생기는 사소한 문제들까지 해결을 해줘야했다. 그래야 그들이 따르기 때문이었다.
“좋소. 그럼 그 안건은 그렇게 해결하기로 합시다.”
무당파의 장문인인 일영진인이 무림맹의 수뇌부들을 보며 말했다. 이것이 벌써 서른두 번째 안건이었다. 아침부터 하나씩 처리를 하느라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처리해야 할 일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무당파의 일대제자였다. 이곳이 무당파라면 모를까 무림맹인 이상 무당파의 이대제자라도 함부로 들어올 수가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저렇게 들어왔다면 뭔가 중대한 사항이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냐?”
일영진인이 근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일대제자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장문인. 그리고 여러 어르신들. 워낙에 급한 일이라 무례를 무릅쓰고 왔습니다.”
“허허. 마음 쓰지 말게나. 사항이 중하면 그럴 수도 있는 게지.”
소림사의 방장인 구지선사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그를 안심시켰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가 구지선사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여 예를 표하고는 품에서 서찰 하나를 꺼내서 일영진인에게 건넸다. 그걸 받아본 일영진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무슨 일인데 그러는 거요?”
화산파의 장문인인 적양진인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며 물었다. 일영진인 정도 되면 수행이 깊어서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다. 그런데 저러는 것을 보면 분명 뭔가 큰일이 생긴 것이리라.
“형산파에서 호천마궁의 정예 삼천 명을 대파했다고 하오.”
“허, 난 또 뭐라고, 무룡대와 봉황대가 그들을 도우러 갔으니 당연한 일이지 않소?”
적양진인이 허탈하니 웃으면서 되물었다.
“아니오. 무룡대와 봉황대는 검 한 번 휘두르지 않았다고 하오.”
“헛! 그게 정말이오? 그들의 도움 없이 호천마궁의 정예를 삼천 명이나 물리쳤단 말이오?”
“그렇소.”
“말도 안 되오. 형산파에 적운상이 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별 볼일 없는 자들뿐이오. 문파의 제자들이 백 명도 채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소이다. 그런데 어떻게 호천마궁의 정예들을 막아냈단 말이오?”
“혹시 무당삼현 어르신들과 화산이로 어르신들이 도와준 것 아니오?”
“그래도 불가능하오. 그분들의 무공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연세가 이미 백세를 넘으셨소. 그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끌면서 싸운다면 당해내기가 힘드오. 다른 곳도 아니고 호천마궁이오.”
“그도 그렇군. 허면 도대체 어찌된 일이란 말이오?”
사람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다가 서찰을 들고 있는 일영진인을 봤다. 그러자 일영진인이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하아……여기에 보니 형산파에는 백 명이 넘는 식객들이 머물고 있었다고 하오. 하나같이 제법 명성이 알려진 자들이라고 하는구려.”
“허, 형산파에서 호천마궁이 쳐들어올 걸 알고 미리 도움을 청했구먼.”
누군가가 혀를 차면서 하는 말에 일영진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형산파에서 머물렀다고 하오.”
“이해가 가지 않는구려. 주인보다 객이 많다는 것도 그렇고, 그들이 왜 그런 작은 문파에서 계속 머무르고 있었단 말이오?”
“그들 대부분이 적운상에게 패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음…….”
궁금증을 내비치던 사람들이 그 한마디에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서 적운상을 떠올렸다. 당시에 형산파는 힘이 없었다. 적운상이 떠나 있으면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이 항상 위태위태했었다.
그래서 적운상은 임시방책으로 자신과 비무를 해서 패하면 무조건 형산파의 식객으로 보냈다. 약속기한은 기본이 오 년이었다. 혹시나 형산파에 일이 생기면 그들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 같은 적운상의 생각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꿰뚫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기발한 방법이었다. 그걸 깨닫자 적운상이 얼마나 형산파를 생각하는지 여실히 와 닿았다.
“그래도 이해가 안 가는구려. 그들의 명성이 좀 있다지만 어차피 지방에서나 좀 알려졌을 정도일 터, 게다가 겨우 백여 명 아니오. 그들만으로는 삼천이나 되는 호천마궁의 정예들을 막아낼 수가 없소이다.”
“맞소.”
“그들 말고도 있었소.”
일영진인이 들고 있던 서찰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누가 있었단 말이오?”
“형산파의 제자들이 있었소.”
“그게 무슨 말이오? 형산파의 제자들은 백 명도 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소?”
“맞소. 하지만 그건 정식제자의 수고, 그렇지 않은, 그러니까 속가제자 정도 되겠군. 여기에 적힌 대로라면 그날 남악현 사람들 모두가 형산파를 돕기 위해서 움직였는데, 그 수가 사천 명이나 된다고 하오.”
“허!”
“그런…….”
잠시 정적이 흘렀다. 과거에 형산파가 양민들의 도움으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호왕문을 물리친 사건은 굉장히 유명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많은 문파들이 같은 일을 하려고 노력했던가?
하지만 성공한 문파는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런데 형산파는 꾸준히 성장해서 그 수가 사천 명으로 늘었다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 정도라면 단연 호남제일문파라 할 수가 있었다.
게다가 상대하기도 굉장히 까다로웠다. 특히 자신들 같은 정파 사람들은 더욱이 그랬다. 양민들을 죽였다가는 사람들의 원성을 사게 되고, 그럼 끝장이었다.
무당파나 소림사 같은 문파들은 대부호들의 기부금보다는 양민들의 작은 성의가 재정의 반 이상을 차지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많지는 않아도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서 성의를 보이기 때문에 그 금액이 어마어마했다.
그런데 양민을 죽여서 명예가 땅에 떨어지면 누가 오겠는가?
수행도 좋지만 밥 굶어가면서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사람이 모여 살려면 돈이 필요했다.
“험험! 내용은 그게 다요?”
적양진인이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헛기침을 하면서 일영진인에게 물었다.
“아니오. 무당삼현 어르신들과 화산이로 어르신들이 한 달 뒤에 적운상과 비무를 한다고 하오.”
“비무? 분명 그렇게 적혀 있단 말이오?”
“그렇소. 놀랍게도 적운상의 무공이 그분들과 비슷하다고 되어 있소.”
“허…….”
기가 막혔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적운상이 대단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 정도였단 말인가?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니오? 그분들이 어떤 분들인데…….”
“아니오. 여기에 보면 어르신들이 먼저 비무를 하자고 했답니다. 혹시 탈인의 경지라고 들어봤소?”
“탈인의 경지? 인간의 능력을 벗어났다는 뜻인가?”
“그렇소.”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삼분의 일은 처음 듣는 생소한 말이었다.
“그게 도대체 어떤 경지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누군가가 묻자 일영진인이 다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탈인의 경지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상상도 할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오. 그로 인해 상대의 움직임이 아주 느리게 보인다고 하더이다. 나도 딱 두 번 봤을 뿐이오. 그 당시 나는 심검의 경지에 올라 있었소. 그런데 어르신에게는 일초지적(一招之敵)이었소.”
“마, 말도 안 되오. 어찌 그런 경지가…….”
“어르신 말로는 내가 검을 휘두르는 것이 너무 느려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라고 했소. 우리네가 삼류무사들을 상대해도 그렇지 않소? 너무나 느려서 굼벵이가 기어가는 것이 더 빠르게 느껴질 정도 아니오?”
“그렇다면 심검의 경지와 탈인의 경지가 그렇게까지 차이가 난단 말이오?”
“그렇소.”
“어르신들이 먼저 비무를 청했다면 적운상이 그 경지에 올라 있다는 것 아니오?”
“맞소. 그렇지 않다면 비무를 할 이유가 없소. 그저 한 수 가르치면 되지.”
“맙소사…….”
“도대체 그 나이에 어떻게 수련을 했기에…….”
좌중이 침울해졌다. 자신들이 한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너무 오만하고 자만했었다. 자리를 굳히기에 급급해서 잠룡을 못 알아보고 지렁이라 여기며 밟아 죽이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 잠룡이 이제 잠에서 깨어나 날아오르고 있었다. 도대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때 좀 더 고민을 하며 내치지 말고 품었어야 했거늘.’
“하아…….”
몇몇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한숨이 새어나왔다. 자신들의 잘못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만약, 혹시라도, 그런 일은 없겠지만, 무당삼현과 화산이로가 비무에서 패한다면?
적운상은 천하제일고수로 불리게 될 것이다. 그 여파는 또 어떻겠는가?
무인들은 자신보다 강한 고수를 웬만해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익힌 무공과 사문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다. 하지만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강한 사람을 동경하고 따르고 추앙하게 된다. 게다가 지금의 적운상이 있기까지 얼마나 굴곡이 있었던가?
적운상은 명문대파나 세가에서 어렸을 때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벌모세수 받고, 영약 먹어가며 최상승의 무공을 익히는 그런 탄탄하고 안정적인 길을 걸어오지 않았다.
뭣 하나 없는 삼류문파에서 오로지 노력만으로 그런 혜택 받은 사람들을 제치고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었다. 젊은 사람들의 피를 끓게 하기에 충분한 이야기였다.
그가 와서 무림맹을 흔든다면,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무림맹에 더 힘을 실어주고 더 탄탄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해줄까? 그게 문제였다.
형산파는 사부가 죽자마자 무림맹에서 탈퇴를 했고, 적운상은 사제의 일로 삼십 명이나 되는 무림맹의 고수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그일 때문에 무당삼현과 화산이로를 보낸 건데 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