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01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01화
301화. 느긋한 일상 (1)
적운상은 주양악이 아침수련은 하지 않고 화를 내며 방으로 가버리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주약악은 내공이 대단하기 때문에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수가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노력을 하지 않으니 답답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기준으로 너무 채근을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한숨을 내쉬다가 건물 모퉁이를 봤다.
주양악과 말다툼을 할 때부터 그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었지만 곧 가겠지 하며 그냥 무시를 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에게 볼일이 있는지 계속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제 그만 나오지.”
적운상의 말에 모퉁이에서 일곱 명의 남녀가 머뭇거리면서 나타났다.
“하하. 적 형. 이른 아침부터 열심이구려.”
운산이 넉살좋게 웃으면서 먼저 말을 건넸다. 적운상은 운산의 인사를 무시하면서 그와 함께 온 사람들을 봤다. 소림사의 비무대회 때 겨뤘었던 무당파의 운암, 소림사의 무량, 그리고 화산파의 현성이 세 명의 여인들과 함께 있었다. 세 명의 여인들은 곤륜파의 서서희, 황보세의 황보인영, 하북팽가의 팽고은이었다.
“무슨 일들이지?”
“아, 그러니까 그게…… 우리도 아침수련을 하러 나왔습니다. 하하.”
운산이 머뭇거리다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대충 둘러댔다.
“그럼 수련들 해.”
적운상이 몸을 돌려 방으로 향하자 서서희와 팽고은이 운산을 자꾸 앞으로 밀면서 눈짓을 줬다. 적운상을 붙잡으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운산은 필사적으로 버텼다. 그러자 보다 못한 황보인영이 나섰다.
“적 공자.”
“뭐요?”
저만치 가던 적운상이 고개를 돌려 황보인영을 봤다. 황보인영은 적운상과 시선이 마주치자 괜히 기가 눌리는 느낌에 찔끔했다.
“저기…… 자,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적운상은 그녀를 잠시 보다가 함께 온 사람들을 한 번 훑어봤다. 모두들 난감해하면서도 뭔가를 바라는 눈치였다. 적운상은 황보인영에게 다가가 할 이야기가 있으면 해보라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저기…….”
황보인영은 적운상이 바로 앞에 서서 내려다보자 한없이 자신이 작아지는 것 같았다. 이에 제대로 말을 못하고 얼굴을 붉히면서 우물쭈물했다.
“할 이야기가 뭐요?”
“그러니까…… 풍뢰십삼식 좀 보여주세요.”
‘아, 이게 아닌데…….’
황보인영이 말해놓고 후회를 했지만 이미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간 상태였다. 좀 더 좋게 말을 돌려서 해야 했건만, 기가 눌려 긴장을 하는 바람에 그리된 것이다.
“아니요. 그게 아니고…….”
“그거 때문에 온 거요? 저 사람들 다?”
“네? 네.”
적운상이 못마땅한 듯이 그들을 봤다. 그러자 그들이 모두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부렸다.
“정확히 묻고 싶은 게 뭐요? 정말 풍뢰십삼식을 보러 온 건 아닐 테고.”
적운상이 이야기를 나눌 생각을 내비추자 서서희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나섰다.
“아니에요. 적 공자. 우리는 정말 풍뢰십삼식을 보러 왔어요. 운산 도사님이 그러더군요. 이 시간에 오면 적 공자가 풍뢰십삼식을 수련하는 걸 볼 수 있다고요. 물론 다른 사람이 무공을 연공하는 걸 보는 건 실례지만 형산파에서는 이상하게 아무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와봤어요.”
“무공이라면 저 사람들도 뛰어나지 않소.”
적운상이 무량과 현성, 운암을 가리키며 말했다.
“맞아요. 하지만 저분들은 정상적으로 강하죠. 그에 비해 적 공자는 남다른 길을 걸어서 지금의 경지에 올랐다고 들었어요.”
“남다를 것 없소. 그저 노력을 좀 했을 뿐이오.”
“이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뼈를 깎는 수련을 해온 사람들이에요. 모두들 노력은 할 만큼 했고, 지금도 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적 공자가 그리 높은 경지에 올랐다는 건 남다른 뭔가가 있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지 말고 가르침을 좀 주세요.”
서서희가 예쁘게 웃으면서 포권을 취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하게 무량도 합장을 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부탁합니다. 적 시주.”
원래 고수들은 자존심이 강했다. 거기다 명예까지 있으면 더한 법이었다. 하지만 무량은 성격이 동글동글하고 수행이 깊었다. 그리고 이미 적운상에게 한 번 패하지 않았던가?
적운상의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자존심 상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운암과 현성은 그러지를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적운상에게 가르침을 청하는데도 그냥 보고 있기만 했다.
사실 그들이 여기에 온 것은 한 수 배우기보다는 오로지 호기심 때문이었다. 자신들을 이긴 적운상이 수련하는 걸 아무런 제재 없이 볼 수 있다니까 와본 것뿐이었다.
어쨌든 무량이 그렇게 고개를 숙이며 부탁을 하니 적운상은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허리에 차고 있던 태룡도를 뽑아들고 풍뢰십삼식의 기식을 취했다.
“눈에 차지 않는다고 욕이나 하지 마시오.”
적운상이 풍뢰십삼식을 펼치려고 하자 사람들이 잔뜩 기대하는 눈으로 쳐다봤다. 조금 뻣뻣하게 굴던 운암과 현성도 마찬가지였다.
후우우우웅!
태룡도가 움직이자 바람소리가 세차게 일었다. 적운상은 열세 개의 초식을 연이어 펼쳤다. 그걸 보면서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실망을 했다.
적운상이 보여준 풍뢰십삼식은 강하고 빠르며 깔끔했다. 힘이 느껴지는 도법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초식이 워낙에 간단해서 그 밖에 대단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됐소?”
적운상이 그들을 보며 물었다. 표정들이 가관이었다.
“저기, 적 공자. 듣기로 적 공자는 그 풍뢰십삼식으로 무상지검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던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죠? 아, 내공심법이 뛰어났군요!”
서서희가 말을 하다가 뒤늦게 생각이 떠올랐는지 스스로 답을 내렸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당시 금안뇌정신공은 불완전한 내공심법이었다.
“아니오. 형산파의 내공심법이 지금은 두 개지만 그 당시에는 하나뿐이었소. 그것도 뒷부분이 소실된 불완전한 것이었소.”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적운상의 말이 사실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무상지검의 경지에 올랐단 말인가?
“그럼 혹시 영약을 먹었다든가, 은거기인(隱居奇人)을 만났었나요?”
서서희가 계속 관심을 가지고 묻자 적운상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양악 때문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데 자꾸 귀찮게 구니 조금 짜증이 났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자신이 이들에게 가르침을 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냥 무시해버리기도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아니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기 전까지 손에서 검을 놓지 않았소.”
“그 정도는 누구나 하지 않나요?”
서서희가 가볍게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공이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한 번쯤은 폐관수련이라는 것을 한다.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 고독과 싸워가며 무공을 연공한다. 그때는 작심하고 하기 때문에 밥 먹는 것조차 잊어가며 검을 휘두를 때가 많았다.
“당신도 해봤소?”
“물론이죠. 예전에 사부님한테 붙잡혀서 2년 동안 폐관수련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럼 이것도 가능하겠군.”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면서 풍뢰십삼식을 두 번 연속으로 펼쳤다. 그러자 서서희는 적운상이 왜 그러나 싶어서 유심히 봤다. 하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단지 답답한 느낌이 조금 들었을 뿐이다.
“뭘 말하는 거죠?”
“소저가 아는 초식을 아무거나 세 개만 펼쳐보시오.”
“네?”
적운상이 하는 뜬금없는 말에 서서희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봐도 상관없겠다 싶은 초식을 세 개 펼쳤다. 서서희가 워낙에 예쁘고 곤륜파의 무공은 화려한 초식이 많아서 보기에 아주 좋았다.
“됐나요?”
“다시 해보시오.”
서서희는 적운상이 그렇게 시키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방금 펼쳤던 초식을 다시 펼쳤다.
“됐죠?”
“됐소. 당신의 수준을 알겠소.”
“그게 무슨 말이죠?”
조금 무시하는 투였기 때문에 서서희가 약간 기분 상해하면서 물었다. 그러자 적운상이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방금 당신이 펼친 초식은 겨우 세 개뿐이었소. 그런데 검로(劍路)가 다 다르고 움직임이 다 달랐소.”
“그,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요? 방금 보여준 건 그리 중요한 초식도 아니고, 또 사람이 하는 건데 어떻게 할 때마다 완전히 똑같을 수가 있죠?”
“아까 내가 하는 걸 보지 않았소?”
“에?”
그제야 서서희는 왜 적운상이 펼치는 풍뢰십삼식을 보면서 그렇게 가슴이 답답했는지 이해가 됐다. 너무나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적 공자 말은 초식을 그렇게 완벽하게 될 때까지 연습을 해야 한다는 건가요?”
“아니오.”
적운상이 부정을 하자 무량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그렇지란 표정을 지었다. 무공이란 것은 초식을 익히고 나면 변초를 능숙하게 펼칠 수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잊어야 한다. 큰 틀만 놔두고 잊는 것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적운상의 말은 생각 외였다.
“그보다 더 해야 하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요? 어차피 나중에 가면 초식은 버리는 거잖아요.”
“나는 무상지검의 경지에 올랐어도 초식을 있는 그대로 사용했었소. 지금도 가끔은 그러오.”
“그게……이해가 안 돼요.”
“검을 뽑으시오.”
적운상의 말에 서서희가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그러자 적운상이 허공에 대고 칼을 한 번 휘둘렀다. 풍뢰십삼식 중 다섯 번째 초식인 대붕비상(大鵬飛上)이라는 초식이었다.
초식이름은 뭔가 있어 보이고 대단했지만 사실 그냥 위로 올려치는 것일 뿐이었다.
“당신이 본 방금 이 초식을 펼쳐보겠소. 막아보시오.”
서서희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미리 쓸 초식을 가르쳐주는데도 못 막을 바보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건 오만이고 자만이었다. 적운상은 그리 빠르게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 태룡도의 궤적이 그대로 보였다. 그런데도 막는 것이 반 박자 정도 늦고 말았다.
적운상의 태룡도는 어느새 서서희의 턱밑에 와 있었다.
“이제 알겠소?”
“이, 이건 당연한 거잖아요. 적 공자가 쓴 초식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적 공자가 그 초식을 썼으니까 대단한 거잖아요.”
다른 사람이 그 초식을 썼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단 소리였다. 적운상은 의외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나였기 때문에 당신은 막지 못한 거요. 명문정파 사람들은 상승의 무공에 너무 연연하는 경향이 있소. 물론 상승의 무공을 익히면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강해질 수 있소. 하지만 중요한 건 사람이오. 절세의 비급을 가지고 있다 해도 노력을 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오. 당시에 형산파에는 아무것도 없었소. 영약은커녕 돈이 없어서 늘 밥 먹는 걸 걱정해야 했소. 무공은 모두 불완전한 것들뿐이었고, 가르침을 줄 변변찮은 고수조차 한 명 없었소. 나는 그걸 모두 내 노력으로 채웠소. 십 년 동안 한시도 검을 놓지 않고 같은 초식을 계속 반복해서 연습했소. 나중에는 정신병까지 생겼소. 그래도 계속 했더니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든 그 무공의 움직임이 나왔소. 심지어 밥 먹을 때하는 젓가락질조차 그랬소. 그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얻은 무상지검의 경지였소.”
적운상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서희는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적운상은 무표정하니 아무 감정 없이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그게 더 말에 힘을 실어줬다.
서서희는 문득 운산이 어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적운상을 보면 자신이 얼마나 혜택을 받은 환경에서 무공을 수련해왔는지를 깨닫게 된다던 그 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을 뛰어넘으려면 도대체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하는 걸까?
사람들은 그런 환경에서 태어나면 거의 대부분 포기부터 한다. 하지만 적운상은 오로지 노력 하나로 극복해낸 것이다. 어떻게 보면 경이로웠다.
“대충 이해한 것 같군. 그럼 이만 가보겠소. 그런 쓸데없는 데 호기심을 가질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칼을 한 번이라도 더 휘두르시오. 그래야 강해지니까.”
적운상이 가고 난 이후에도 그들은 한참 동안이나 자리를 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