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99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99화
299화. 형산파에서 (1)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호천마궁의 무사들은 동료들의 시체를 챙기고 부상자들을 부축해갔다. 형산파도 마찬가지였다. 밖에서 그러는 동안 본관 전각의 대청에는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정면에는 막정위가 앉아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조비가 앉아있었다. 좌측에는 무당삼현과 화산이로가 앉아있었고, 우측에는 유백과 동헌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들 뒤에 적운상과 유역초, 운암과 황보인영 등 많은 사람들이 빙 둘러서 대청을 꽉 메우고 있었다.
“이번 일은 심히 유감이오.”
조비가 막정위를 향해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저 한마디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막정위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않고 조비를 노려보면서 씹어 으깨듯이 말했다.
“본인도 유감이오. 모처럼 형산파의 식구들이 다 모였는데 흐지부지 끝나서 말이오.”
“후후. 그 말은 끝까지 해보자는 말처럼 들리는구려. 혹시 밖에 있는 촌민들을 믿고 그러는 거요? 이거 참…….”
가소롭다는 듯이 말을 끊은 조비가 막정위를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저들의 수가 많기는 하지만 오합지졸일 뿐이오. 죽기를 각오하면 우리의 상대가 아니오. 혹여 우리가 패한다 해도 호천마궁에서 가만히 있을 것 같소?”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조비는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적운상이란 절대고수의 존재였다.
“아니. 네가 계속했다면 제일 먼저 네 목이 날아갔을 거다. 그 다음에는 대주들이고. 그럼 나머지는 쉽지. 그리고 호천마궁이 온다 해도 마찬가지야. 궁주가 나를 이길 거라 생각하나?”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조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버지의 실력을 의심한 적이 없건만, 이번만은 달랐다. 적운상이 보여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른 그 움직임을 과연 조황인이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자만하는군. 자네는 스스로 천하제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큭큭.”
조비의 낮게 웃음을 터트리자 이현이 가소롭다는 듯이 그를 보며 말했다.
“탈인의 경지를 아느냐?”
조비는 갑자기 이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현은 한심하다는 듯이 코웃음을 한 번 치고는 다시 한 번 물었다.
“탈인의 경지를 아느냐고 물었다.”
몰랐다. 조비뿐만이 아니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 탈인의 경지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이미 그 경지에 올라있는 적운상과 무당삼현, 화산이로, 그리고 동헌, 그 외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말이었다.
“심검의 경지에서 벽을 허물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그 세상에 한 발을 들여놓으면 주위의 모든 것들이 느려진다. 너무나 느려서 마치 정지해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그 안에서 나 홀로 자유로이 움직이는 거다. 그것이 탈인의 경지란 거다. 같은 경지에 오르지 못하면 절대로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다.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 초속의 공격을 어떻게 막아낸단 말이냐? 무슨 말인지 아느냐? 저놈이 마음만 먹으면 눈 한 번 깜빡이는 순간에 네놈에게 수십 번이나 칼질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좌중이 조용했다. 그런 경지가 있다니 대부분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이현의 말대로라면 탈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너무나 높은 경지고, 말도 안 되는 일 같아서 쉽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 같은 경지에 오른 사람이 눈앞에 있지 않은가?
“우물 안의 개구리가 있다면 딱 네놈일 것이다. 네 아비에게 가서 물어봐라. 탈인의 경지에 올랐냐고? 오르지 못했다면 적운상에게는 일초지적(一招之敵)밖에 안 된다.”
조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적운상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차이가 났다. 자신이 따라잡을 수 있는 그런 경지가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조비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 정확히는 탈인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 전부가 그 같은 생각을 했다.
너무나 요원한 경지건만 적운상은 저 나이에 이미 터득해서 무당삼현의 인정을 받고 있었다. 무림인이라면, 칼 든 무인이라면 누구라도 부러워할 일이었다.
“클클. 너무 그렇게 기죽이지 말게나.”
무거운 분위기를 깨고 말을 꺼낸 건 동헌이었다. 동헌과 무당삼현은 과거에 몇 번 얽혔던 적이 있었다.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대시 하는 관계도 아니었다. 그저 서로를 인정하는 그런 관계였다.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했을 뿐이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니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해야지.”
동헌이 그렇게 말하면서 조비를 봤다. 그러자 조비가 정신을 차리고 막정위를 보면서 말했다.
“피차간에 피해가 있었고, 계속 싸운다면 피해만 더 커질 뿐이오. 여기서 싸움을 멈추고 우리는 궁으로 돌아가겠소.”
마음대로 와서 싸움을 걸어놓고 안 되니까 돌아가겠다는 거였지만 막정위는 그렇게 하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조비의 말대로 계속 싸우면 피해가 막심했다.
“알겠소. 오늘은 그냥 보내주겠소. 하지만 오늘의 일을 형산파는 절대로 잊지 않을 거요. 남악현에, 아니 호남 땅에 앞으로 발붙이는 일이 없기를 바라오.”
“후, 유념하리다. 어르신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우리를 보내주지 않으시겠다면 끝까지 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감히!”
운암이 발끈해서 나서려고 하자 일현이 손을 들어 그를 말렸다. 그리고 조비를 보며 말했다.
“우리는 형산파의 손님으로 온 것이니, 막 장문인의 뜻을 존중해서 오늘은 그냥 보내주마. 하지만 이후로는 조심해야 할 것이다.”
“명심하지요. 그럼 어르신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조비가 마지막으로 동헌과 유백을 향해 물었다.
“우리는 계속 형산파에 머물 생각이다. 궁주에게 그리 전하거라.”
“알겠습니다. 그럼 더 이상 볼일이 없으니 먼저 가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조비는 동헌과 유백에게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그리고 적운상을 한 번 보고는 몸을 돌렸다. 조비가 부하들을 이끌고 나가자 막정위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분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일은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허허. 아닐세. 반대로 우리가 자네의 도움을 받았지. 대단한 통솔력이었네.”
일로의 칭찬에 막정위가 예를 갖추며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어르신들이 안 계셨다면 저희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겁니다.”
“됐네. 그럼 이제 우리 볼일만 남았군.”
일로가 그렇게 말하면서 적운상을 봤다. 무당삼현도 적운상을 봤다. 그러자 적운상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한 달 뒤가 어떻습니까?”
“좋군. 그때로 하지. 자네들은 어떤가?”
일현이 화산이로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그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상관없네.”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저들은 붙으려는 것이다. 무당삼현이나 화산이로가 얼마나 대단한 고수인지는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적운상은 또 어떻던가?
그런 그들이 붙는 것이다. 그걸 생각하자 벌써부터 짜릿하니 흥분이 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 * *
형산파는 유례 없이 바빴다. 막정위의 혼례식과 장문인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호천마궁과 붙는 바람에 그 뒷정리를 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모여들었던 현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돌려보내는 것부터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부상자들이 많아서 현에 있는 의원들을 모두 불러와야 했고, 죽은 사람들의 유가족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해야 했다.
그것뿐이면 다행이련만, 무당삼현과 화산이로가 적운상과 한판 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수호무룡대와 수호봉황대가 형산파에 눌러앉아버렸다. 손님으로 왔다가 떠나려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초절정 고수들의 대결을 언제 또 보겠는가?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덕분에 형산파의 객방은 완전히 꽉 차버렸고, 그들을 접대하느라 형산파의 재정에 구멍이 났다. 그렇다고 손님들에게 돈을 받을 수도 없으니 난감한 일이었다.
그 일을 보고 받은 막정위가 방에서 한숨을 쉬고 있는데, 적운상이 들어왔다.
“얼굴이 좋지 않습니다.”
“이번에 지출이 너무 많아서 완전히 적자다. 이 상태로 계속 가다가는 이, 삼 년은 굶어야 한다.”
“장문사형이 그러는 걸 보니까 예전의 사부님이 생각나는군요.”
“뭐?”
적운상이 하는 말에 막정위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랬었다. 형산파는 예전에 항상 재정이 바닥이어서, 임옥군은 늘 돈, 돈 했었고, 사숙들은 무공을 수련하기보다는 전부 돈 벌러 나가야 했었다.
“그러고 보니 관 사숙님과 금 사숙님은 잘 계시는지 모르겠구나. 어디에 계시건 건강하셔야 할 텐데.”
관 사숙은 적운상을 형산파로 데리고 왔던 관대평을 말하는 것이고 금 사숙이란 금계산이라고 임옥군의 막내사제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적운상은 금계산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예전에 새외에 있다가 구혁상하고 형산파로 돌아오는 길에 찾아다닌 적이 있었지만 끝내 만나지 못했었다.
“어디에 있던 형산파의 명성을 들으면 돌아올 겁니다.”
“그러기를 바라야지.”
“돈은 무림맹에 말해서 지원을 받는 것이 어떻습니까?”
“뭐?”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지금 형산파와 무림맹은 관계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무림맹에 돈을 요구하다니, 들어줄 리가 없었다.
“지금 이유도 없이 무림맹의 수호대의 눌러앉아 있잖습니까? 무림맹에서 탈퇴한 우리가 그들을 계속 먹여주고 재워줄 의무는 없습니다. 그러니 당당하게 돈을 요구해야지요. 아니면 모두 쫓아내던가.”
“음… 생각해보니 그렇구나.”
“제가 내일 가서 그들에게 말해 보겠습니다.”
“그들이 들어줄까?”
“밑져야 본전이죠. 저희야 어차피 손해 볼 것 없는 일 아닙니까?”
“알았다. 그럼 네게 맡기마.”
“네.”
다음 날이 되자 적운상은 운암과 황보인영을 객청으로 불렀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던 적운상이 포권을 하자 운암과 황보인영이 인사를 받았다.
“무슨 일로 부른 거요?”
운암이 자리에 앉으면서 용건부터 물었다. 신세지고 있는 입장이라서 어쩔 수 없이 오기는 했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볼일이 있으면 그쪽에서 찾아올 것이지 오라 가라 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황보인영은 그렇지 않았다. 적운상에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왔다.
“돈 때문에 불렀소.”
적운상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 운암과 황보인영이 알아듣지를 못하고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당신들이 객방을 차지하고 눌러있는 바람에 재정운영에 큰 어려움이 있소. 계속 지내려면 돈을 내던가 아니면 나가시오.”
적운상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운암과 황보인영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들이 이런 찬밥 취급을 당할 줄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보고 나가라는 건가요?”
“그렇소. 아니면 돈을 내시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요? 경우가 없어도 정도가 있지, 손님을 내치는 곳이 어디 있소?”
운암이 기분 나쁜 것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면서 따졌다. 그러자 적운상이 싸늘하니 그를 보며 말했다.
“경우가 없는 건 당신들 아니오? 방금 손님이라고 했소? 우리는 당신들을 오라고 한 적 없소. 그런데 저 많은 사람들이 공짜로 먹고 자며 이유도 없이 눌러앉아있지 않소? 솔직히 무림맹이라고 하면 이가 갈리오. 당신들 때문에 사부님이 돌아가셨고, 내 사제도 죽었소. 내가 칼을 뽑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기시오.”
적운상의 박력에 운암과 황보인영이 움찔했다. 살기를 뿜어낸 것도 아닌데 괜히 기가 눌렸다.
“하지만… 당신 손에 죽은 무림맹 사람들도 꽤 되잖아요. 우리도 참고 있는 건 마찬가지예요.”
“그때의 일을 알고 있소?”
“그게 무슨 말이죠?”
“내 사제가 죽을 때의 일을 제대로 알고 있냐고 묻고 있는 거요.”
“당연히 알고 있죠.”
“그들이 내 사제에게 칼질을 한 걸 알고 있소? 나를 찾기 위해서 적당히 베어서 피를 흘리며 계속 걷게 한 사실을 알고 있소? 나를 만날 때까지 사제가 몇 번이나 베였는지 알고 있소?”
적운상이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면서 말하자 황보인영은 덜컥 두려움이 들었다. 그녀고 그런 세세한 것들까지는 몰랐다. 그녀가 아는 건 형산파의 제자 하나가 정보를 빼돌리려고 했고, 그 사실을 들키자 도주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추적대가 조직되어 그를 뒤쫓았으나 모두 적운상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고 들었다.
운암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림맹의 수뇌부가 사실을 덮었기 때문이다.
“그게 정말이오?”
“못 믿겠으면 무림맹에 돌아가서 물어봐라. 진실이 무언지.”
“음…….”
운암은 입을 다물었다. 황보인영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 계속 지내려면 돈을 내던가, 아니면 나가라.”
나갈 수는 없었다. 무당삼현과 화산이로, 그리고 적운상의 비무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꼭 봐야 했다. 이현이 말했던 탈인의 경지를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기를 나가면 마땅히 묵을 곳도 없었다. 형산 밑에 있는 객잔까지는 굉장히 멀었다. 적운상이 그때 비무를 한 달 후에 하자고 했지만 마음이 바뀌면 지금 당장에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돈을 내는 수밖에 없었다.
“알았소. 돈을 내겠소. 얼마를 원하오?”
“객방 하나를 하루 쓰는데 은자 두 냥씩.”
“헛! 너무 비싸지 않소?”
“나는 싸다고 생각하는데. 싫으면 나가라.”
“이 엄동설한에 어디서 지내란 말이오?”
“그럼 돈을 내던가.”
“시간을 주시오. 사람들과 상의를 해보겠소.”
“정오까지 시간을 주지. 돈은 당연히 선불이다.”
“알았소. 더 이상 할 얘기 있소?”
“없다.”
“그럼 가보겠소.”
운암이 자리에서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황보인영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선뜻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말 거침이 없네요. 매사에 그런 식인가요?”
수호봉황대에는 모용세가에서 온 모용혜도 있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적운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상대에 따라 다르오.”
“후훗! 재미있는 대답이네요.”
“더 볼일 없으면 가보겠소.”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고 먼저 객청을 나갔다. 그런 적운상의 뒷모습을 황보인영이 빤히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