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98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98화
298화. 형산파의 진정한 힘 (2)
“후우… 어쨌든 일단 한숨 돌렸군.”
이현의 말에 막정위가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니 모두 운기조식도 하시고 뭐라도 먹으면서 충분히 힘을 비축해두십시오.”
“호천마궁의 소궁주를 인질로 잡았으면 저들을 완전히 물러나게 할 수도 있지 않겠소?”
혁강운이 묻는 말에 막정위는 고개를 저었다.
“무리일 겁니다. 하지만 시간만 끌어준다면 우리가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긴단 말이오?”
“우리만으로는 이제 한계요. 적들은 아직도 천 명 이상이나 남았잖소.”
“맞네.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에는 이리 되었군.”
모두 절망적이었다. 상황이 그러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막정위는 아니었다.
“아닙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께 말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아직 남악현 사람들이 남아있습니다.”
“…….”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예전에 호왕문이 쳐들어왔을 때 있었던 사람들은 단번에 그 말뜻을 이해했다.
“그렇구나! 그렇지! 하하하하하!”
이존의가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트리자 아파서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그를 쳐다봤다.
“자세히 설명을 해보게.”
이현의 말에 막정위가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시겠지만 제가 세운 계획은 모두 시간을 끌기 위한 것들이었습니다. 남악현 사람들이 이곳의 상황을 알고 모여서 올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자네 말은…….”
그제야 이현도 뭔가 짚이는 것이 있었다. 남악현에 들어섰을 때 운산이 했던 말이 떠오른 것이다. 남악현 사람들 모두가 형산파의 제자나 마찬가지라던 말.
“그렇습니다. 남악현 사람들 모두가 우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형산파가 어려운 걸 알면 만사를 젖혀놓고 달려올 겁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적들의 수는 아직도 천 명이 넘네. 무공을 익혔다고는 하지만 미약한 수준의 양민들이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일로가 어렵지 않겠냐는 얼굴을 하며 물었다. 옆에 있던 운산도 같은 생각이었다.
“예전에 호왕문이 쳐들어왔을 때 몰려온 사람들의 수가 약 이천 명이라고 들었소. 일로 어르신의 말대로 그들만으로는 저들을 물리칠 수가 없지 않소?”
두 사람의 말을 듣고 막정위가 침착하게 말했다.
“이천 명이 아닙니다.”
“에?”
“그게 무슨 말인가?”
“호왕문이 쳐들어 온 지 몇 년이나 지났습니다. 아직도 그때와 같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모두 막정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막정위는 웃었다. 그리고 모두를 향해 말했다.
“이천 명이 아니라, 사천 명입니다.”
* * *
“하, 참 나…….”
운암은 기가 막혔다. 그 옆에서 같이 가고 있는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기가 막히다 못해 황당했고, 그러다 보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남악현 입구에서 사람들이 비켜줄 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이제 형산에 금방 도착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대로에는 남악현 사람들이 꽉 차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게 너무 길다 보니 뒤쪽에 있는 사람들은 앞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해 듣지를 못했다. 이에 운암은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설명을 해야 했다.
그러다 이내 먼저 가기를 포기하고 사람들과 같이 가기로 했다. 차라리 이게 더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실이 그랬다.
대로에 꽉 찬 사람들은 모두가 형산파로 향하고 있었다. 그 수가 어림잡아도 이삼 천 명은 되는 것 같았다. 지금도 계속 모여드는 것을 보며 아마 최종적으로 모이는 사람들의 수는 그 이상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물결이었다. 넘실거리는 물결이 형산파로, 형산파로 향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지금껏 그 어떤 문파에서도 해내지 못한 일을 형산파는 해냈다. 지방에 있는 작은 문파가 무당파나 소림사조차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것이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심하게 고동쳤다. 잠시나마 전율이 일기도 했다.
운암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서서희가 어린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웃으면서 걷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옆에는 무량이 한 아이를 목마 태워서 이리저리 흔들어주고 있었다. 아이는 어디 놀러 가는 걸로 알고 마냥 웃으며 기쁜 얼굴이었다.
너무나 편안한 저들의 모습을 보니 운암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과연 이 상태로 호천마궁의 정예들과 싸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사람 수는 이쪽이 많았지만 무공을 제대로 익힌 고수는 자신들뿐이었다. 싸움이 시작되면 저들 중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그러한 것을 알고도 저리 가는 것일까?
“촌장님.”
운암이 옆에서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걷고 있는 노인을 불렀다. 그러자 그가 운암을 올려다봤다.
“왜 그러시오?”
“지금 이렇게 모여서 가고는 있지만 그들은 아주 무서운 자들입니다. 가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쯧쯧. 보아하니 한가락 하는 것 같기는 한데 겁이 많구랴.”
“아니, 그게 아니라…….”
“겁이 나면 안 와도 되오. 하지만 우리는 가야 한다오.”
“어째서입니까?”
“후후. 받았으니 보답을 해야 하지 않겠소?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암. 그렇고말고.”
“그렇… 습니까?”
뭘 어떻게 받았기에 그러는지 운암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걸 눈치챘는지 촌장이 웃으면서 지난 이야기를 했다.
“작년에 말이오, 내 손녀가 열이 나서 심하게 앓은 적이 있소. 한밤중인데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니 아이를 업고 의원한테 갈 수가 없었소. 속이 타고 입이 바짝바짝 마르더이다. 그때 글쎄 사형이라는 그 양반이 억수같이 오는 비를 그대로 다 맞으면서 그 먼 거리를 가서 의원을 업어옵디다. 허허. 어찌나 고맙던지. 덕분에 손녀가 살았지요.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오. 포목점을 하는 장씨가 강도를 당한 거요. 그 돈은 장씨가 막내딸을 시집보내기 위해서 몇 년 동안 정말 열심히 모은 돈이었다오. 그 이야기를 듣고 사형들이 나섰소. 어떻게 됐을 것 같소?”
“글쎄요? 강도를 잡았나요?”
“잡지 못했소. 남악현 사람들은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오. 그러니 당연히 다른 곳에서 온 사람 아니겠소? 하지만 그게 누군지 찾을 길이 있어야지. 뜨내기들이 강도짓을 하고 다른 곳으로 도망가면 어쩔 수가 없지 않소?”
“그렇군요.”
다소 김빠지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노인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형들은 잡았다고 했다오. 강도를 잡아서 돈을 다시 되찾아 왔다면서 돌려주는데 빼앗긴 돈보다 돈이 더 많은 게 아니겠소? 알고 보니 강도를 잡지 못한 사형들이 가지고 있던 돈을 탈탈 털어서 모아서 준 거였소. 허허. 참 바보들 아니오?”
촌장은 그 뒤로도 이야기를 계속했다. 모두 들어보면 별일 아니었지만, 깊게 생각해 보면 대단한 일이었다. 남을 위한다는 것,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운암은 숙연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제야 왜 이들이 이렇게 형산파의 일에 목숨까지 버릴 각오로 발 벗고 나서는지 이해가 갔다.
형산파는 덕이 있었다. 의가 있고 협이 있었다. 그러니 따를 수밖에.
“이제 거의 다 왔구먼.”
촌장이 멀리 앞을 보면서 하는 말에 운암도 그쪽을 봤다. 그곳에는 호천마궁의 무사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아직 싸움이 시작되지 않은 건가?’
“제가 가보겠습니다.”
현성도 궁금했던지 자진해서 정찰을 가려고 했다.
“나도 같이 가지.”
운암이 그렇게 말하면서 먼저 몸을 날리자 현성이 그 뒤를 따라 날아올랐다.
* * *
“자네한테서는 도망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이제 좀 지혈을 해주는 게 어떤가?”
적운상에게 눌려 있던 조비가 푸념하듯이 말했다. 잠깐 고민하던 적운상은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여전히 목에 태룡도를 대고 있었다.
“지혈해라.”
“하, 나는 왼팔을 베였네. 피도 많이 흘려서 정신도 몽롱하군.”
“하기 싫으면 말고.”
“아닐세. 하지. 하고말고.”
적운상이 냉랭하게 말하자 조비는 재빨리 다리와 팔의 혈도를 눌렀다. 그리고 금창약을 뿌린 후에 옷을 찢어서 꽉 감아 지혈을 했다.
“이제 어쩔 텐가? 이대로 계속 나를 잡고 있는다고 뭔가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러니 타협을 하는 건 어떤가?”
“타협은 없다.”
“다시 생각해 보게. 나는 여기서 죽더라도 자네와 형산파를 그대로 놔둘 생각이 없네. 아버님의 명령이기도 하고, 내 성격상 이렇게 물러난다는 건 말도 안 되지.”
“그래서?”
“말하지 않았나? 타협을 하자고. 자네는 이대로 나를 인질로 잡아서 호천마궁까지 가는 걸세. 그럼 형산파도 무사하고, 나도 체면이 서지 않겠나?”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군.”
“그게 무슨 말인가? 지금 상황에서…….”
말을 하던 조비는 적운상이 자신의 어깨 너머로 뭔가를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고개를 돌려보니 산 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몰랐나? 저게 형산파의 진정한 힘이지.”
“큭큭. 내가 보기에는 칼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할 것 같은데 저들이 형산파의 진정한 힘이라는 건가?”
“저들이 몇 명이나 될 것 같은가?”
적운상이 묻는 말에 조비가 산 위로 꾸역꾸역 올라오는 사람들을 봤다. 끝이 없었다. 도대체 몇 명인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그들이 그렇게 몰려오자 호천마궁의 무사들이 다들 조금씩 긴장하기 시작했다.
“많군.”
“마지막으로 파악한 수가 사천이다.”
“음…….”
“이곳은 산이다. 무공이 조금 뛰어난 걸로는 저들을 뚫고 가지 못해. 어떻게 산을 벗어나더라도 남악현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까지는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계속 쫓기게 될 거다.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남악현 사람들 모두가 덤벼들 테니까.”
“믿을 수 없다. 저들은 그저 군중심리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야. 부하들이 몇 명만 베면 금방 흩어질걸.”
“뭘 모르는군. 멀어서 저들의 눈빛이 보이지 않나? 몇 명 베면 흩어질 거라고? 자신 있으면 해봐. 장담하건대 그랬다가는 여기서 뼈를 묻어야 할 거다. 네 말대로 군중심리라는 게 그러니까. 한번 분노가 전염되면 뒷감당이 안 되거든.”
조비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적운상의 말대로 그들을 보니 아무 생각 없이 온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다들 표정이 결연하니 나름대로 각오를 하고 온 것이다. 게다가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무림맹에서 온 수호무룡대와 수호봉황대였다.
“무림맹까지 왔군. 후후. 완전히 졌어. 나의 패배일세.”
“이제는 내가 물어야겠군. 어떻게 할 텐가?”
“글쎄… 진 것은 확실하니 더 이상 싸워도 의미가 없겠지. 이대로 보내 줄 건가?”
조비가 고개를 돌려 적운상을 봤다.
“보내준다 해도 저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걸.”
“현 사람들만 어떻게 해주게. 그럼 무림맹에서 온 것들은 알아서 피해갈 테니까. 안 그럼 나도 어쩔 수 없네. 궁지에 몰렸으니 발악을 해보는 수밖에. 그럼 피해가 적지 않을 걸세.”
그때였다. 신보복이 나는 듯이 달려와서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그는 상당히 다급한 얼굴로 조비를 봤다.
“무슨 일인가?”
“그게… 형산파에서 소궁주님을 만나자고 합니다.”
“그래?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런가?”
“형산파에 유백님과 동헌님이 계십니다.”
조비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그들이 왜 이곳에 와 있단 말인가?
대외적으로 그들은 조황인의 막역지우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황궁 사람들이었다. 호천마궁이 황궁과 연관되어 있다는 건 조황인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만 아는 일이었다.
“그분들이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어떻게…….”
만약 형산파에서 그 두 사람을 인질로 삼았다면 자신들은 아무것도 못해보고 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동헌은 금의위를 가르칠 정도로 무공이 뛰어났고, 유백은 황제를 가르치는 스승이었다. 금의위와 황제는 권력의 핵심이었다. 만약 두 사람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황궁이 움직이기 전에 조황인이 먼저 난리를 칠 일이었다.
“졌군. 완전히 졌어. 그분들이 직접 부른 거냐?”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알았다. 간다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신보복이 몸을 날려 사라지자 조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칼은 치워도 되네. 그분들이 형산파에 있다면 나를 잡아둘 필요가 없네.”
잠시 생각을 하던 적운상은 태룡도를 거뒀다. 그러자 조비가 유역초를 보며 말했다.
“자네는 나와 함께 가세나. 양 대주는 부하들을 정리하고 명령이 있을 때까지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게 하게.”
“알겠습니다.”
조비가 지시를 내리고는 유역초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그가 와서 조비에게 등을 내밀었다. 적운상에게 찔린 다리 때문에 움직이기가 불편한 것을 알고 업고 가려는 것이다.
“가세나.”
조비를 업은 유역초가 형산파로 향하자 적운상도 함께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