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91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91화
291화. 호천마궁과의 전쟁, 그 시작 (1)
퍼엉!
폭죽소리와 함께 맑은 하늘에서 붉은 가루가 확 퍼지자 형산의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장대한 체구의 사내가 눈을 부릅떴다. 그는 호천마궁 일대의 대주 유역초였다.
철의 사내라 불릴 만큼 강한 자로서, 통솔력은 물론이고 무공도 굉장히 뛰어났다. 호천마궁의 궁주인 조황인도 인정하는 실력자였다.
“신호가 왔습니다.”
날렵한 몸매에 청의를 입고 있는 사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호천마궁 이대의 대주인 양문의였다. 밝게 생긴 것과는 다르게 간계(奸計)가 매우 뛰어났다.
그들 말고도 두 명의 대주가 더 있었다. 한 명은 오대의 대주인 신보복이었고, 또 한 명은 적운상과 호형호제(呼兄呼弟)하던 칠대의 대주 이마대였다.
“좋아. 출발한다. 이 대주는 남아서 후방을 지켜라. 혹시라도 빠져나오는 놈들이 있으면 모두 죽이도록.”
“알겠습니다.”
유역초가 앞장서서 천천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시간은 많았다. 급히 갈 이유가 없었다.
이 정도 숫자면 반 시진에서 한 시진이면 형산파를 깨끗이 쓸어버릴 수가 있었다. 적운상에 대한 대비책은 조비가 맡았다. 그러니 남은 자들만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오백 명이 선발대였다. 그들이 먼저 안을 휘저어 놓으면 본대 천 명이 밀고 들어와서 마무리를 한다. 오백 명은 만일을 위해 대기하고, 나머지 천 명은 뒤에 남아서 산의 입구를 지켰다.
조금 과하다 싶게 많이 왔지만 유역초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많건 적건 그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맡은 일을 완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양문의나 신보복은 아니었다. 굳이 이 많은 인원을 끌고 올 이유가 없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양문의는 책략에 능했기 때문에 더욱이 그랬다. 오백 명만 있어도 충분할 일을 왜 삼천 명이나 움직이게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잖아도 요즘 무림맹과의 충돌이 잦아서 눈에 뜨이는 행동은 안 하는 것이 좋았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무림맹에 자신들이 이렇게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갔을 것이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그들까지 상대해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궁주인 조황인의 명령이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흘흘. 경치가 좋구만.”
키가 작은 노인이 비아냥거리듯이 말했다. 그 노인은 승복을 입고 있었는데 중원의 옷이 아니었다. 멀리 서장에서나 볼 수 있는 옷이었다. 거기다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삿갓을 쓰고 자신의 키보다 더 큰 선장을 들고 있었다.
대주들은 그 노승의 법호가 교성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궁주인 조황인의 명으로 이번에 함께 오게 되었는데, 평소에는 보이지 않다가 이렇게 한 번씩 존재감을 드러냈다.
“어째 표정들이 그 모양인가?”
“상관하지 마십시오.”
신보복이 인상을 팍 쓰면서 말했다. 그는 교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별 볼일 없어 보이는데 신비한 척하는 것도 그랬고, 그런 주제에 궁주인 조황인의 신임을 받는다는 것도 그랬다.
“일은 항상 즐겁게 해야지. 그래야 뜻대로 술술 잘 풀린다네.”
“당신한테 그런 이야기 듣고 싶지 않습니다.”
“젊은 혈기에 일을 그르치는 것은 좋지 않아.”
“벌써부터 일이 잘못된 것처럼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미래를 볼 수 있다네.”
교성이 하는 말에 신보복이 한심하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는 딴 데 가서 하십시오.”
“궁주가 왜 나를 신임하는지 아나? 내가 미래를 예견하기 때문이라네.”
교성이 조황인의 이름까지 들먹이면서 말하자 신보복이 걸음을 멈추고 무서운 눈으로 쳐다봤다. 신보복은 유달리 궁중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다. 그래서 궁주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나쁜 이야기를 하면 상대가 누구건 칼을 뽑아 들고 덤벼들었다.
“말조심하십시오.”
“후후. 못 믿나 보군. 그럼 내가 자네의 앞날을 한 번 봐주지. 자네는 오늘 감당할 수 없는 고수를 만나서 좌절하게 될 걸세. 자네뿐만이 아닐세. 저기 있는 사람들 모두 그리 될게야.”
“형산파에 무당삼현과 화산이로가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세.”
“그럼 적운상을 말하는 겁니까? 적운상은 소궁주가 처리했을 겁니다.”
“아닐세. 적운상도 아니야.”
“그들 말고 우리의 상대가 될 만한 자들은 없습니다.”
“글쎄… 과연 그럴까?”
교성이 웃으면서 뒷짐을 지고 저만치 앞서 갔다. 그러자 신보복이 인상을 팍 썼다. 자기 할 말만 다 하고 사람 궁금하게 만들어놓고는 저리 가버리니 짜증이 났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 베어버리고 싶었지만, 궁주가 보낸 사람이라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
“신경 쓰지 마라. 네가 자꾸 그러니까 놀리는 거다.”
양문의가 옆에 와서 하는 말에 신보복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지금 놀림당하고 있었던 겁니까?”
“몰랐냐? 저 노인이 정말 앞날을 볼 수 있다면 궁주님께서 왜 여기로 보냈겠냐? 옆에 잡아두고 계속 앞날을 보게 하지.”
“끙.”
생각해보니 그랬다. 신보복은 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하지만 교성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 * *
폭죽이 터지자 적운상은 마음이 급해졌다. 호천마궁의 정예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조비를 잡아야 했다. 그러지 못하면 싸움이 힘들어진다. 하지만 양괴 때문에 조비에게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스스슥!
“끅!”
“크윽!”
양괴가 입으로 중얼중얼 괴상한 주문을 외우면서 손을 크게 휘젓자 네댓 걸음이나 거리를 두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사각거리면서 조각이 났다.
정말 괴이한 사술이었다. 저렇게 간단한 손짓으로 허공을 격해서 사람들을 잘라낼 수 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강기는 분명 아니었다. 그랬다면 뻗어 나온 기운을 느꼈을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하는지를 모르니 섣불리 접근할 수가 없었다.
“야이, 늙은 괴물아! 어디서 얄팍한 수법을 쓰느냐?”
검을 뽑아 든 이현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면서 소리쳤다. 보아하니 이현은 양괴가 쓰는 저 사이한 술법을 아는 것 같았다. 적운상은 이현이 어떻게 하나 보기 위해 뒤로 훌쩍 물러났다.
이현은 양괴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면서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양괴가 옆으로 피하면서 팔을 내저었다. 공격하는 것 치고는 회피동작이 너무 컸고, 팔을 내젖는 동작은 뭘 하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현이 하는 짓도 그랬다. 그는 양괴가 일검을 피하자 두 번째는 허공에 대고 휘둘렀다. 사람을 앞에 놔두고 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저러는 걸까?
유심히 두 사람을 보던 적운상은 뭔가 깨닫는 것이 있었다. 이현의 동작은 마치 보이지 않는 뭔가를 잘라내려는 것 같았다.
그것이었다. 그게 양괴의 술법이었다. 양괴의 손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은 실이 여러 가닥 달려 있었다. 천잠사라는 건데 웬만한 보검으로도 잘라지지 않는 질긴 실이었다.
그 실은 처음에 땅에 꽂았던 지팡이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걸 팽팽하게 당겨 사람들을 잘라냈던 것이다. 쓸데없이 동작이 큰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입으로 주문을 외우는 건 상대에게 그 같은 사실을 숨기고, 모산파의 술법이라고 믿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적운상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저런 수법도 간파를 못하다니 잠시나마 마음의 여유를 잃었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이현이 양괴와 싸우자 적운상은 여유가 생겼다. 이에 조비를 잡으려고 했는데 그가 보이지 않았다. 양괴에게 잠깐 신경을 쓰는 틈에 어딘가로 사라진 것이다.
적운상은 사람들이 휘두르는 무기를 피하며 재빠르게 움직였다. 조비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엉켜서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다급해진 적운상은 비마보를 펼쳐서 전각의 지붕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내려다보니 아래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호천마궁의 무사들은 제법 버티고 있었지만 쪽수에서 밀리니 방법이 없었다. 조만간 모두 쓰러질 것 같았다. 양괴는 이현과 싸우고 있었고, 음괴는 삼현이 상대하고 있었다.
거기서 시선을 거둬 다른 곳을 보다가 정문으로 빠르게 달려가는 조비를 발견했다. 적운상은 자리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리고 땅으로 내려섬과 동시에 다시 한 번 날아올라 조비의 뒤를 쫓았다.
쉬이이이익!
“사형!”
주양악이 정문으로 내달리는 적운상을 불렀다.
“조비가 정문에 있어!”
“같이 가요!”
적운상이 지나쳐가면서 외치는 소리에 주양악도 비마보를 펼쳐서 달리기 시작했다.
조비는 뒤에 적운상과 주양악이 따라붙는 것을 보고는 더욱 속력을 높였다. 그걸 보고 적운상과 주양악도 속력을 더 높였다. 그러자 주양악이 적운상의 앞으로 나왔다.
적운상이 익힌 금안뇌정신공은 파괴력은 좋았지만 이렇게 경공신법으로 응용하기에는 좋지 않았다. 그에 비해 주양악은 내공이 넘쳐서 주체를 못할 정도라서 그 성질이 어떻든 상관이 없었다. 마구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쉬익!
주양악의 몸이 앞으로 쭉쭉 나아가자 조비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면서 적운상과는 멀어졌다.
‘조금만 더!’
주양악이 그런 생각을 하며 조비를 향해 손을 뻗을 때였다. 뒤에서 적운상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멈춰! 양악아!”
뻗어냈던 손을 얼결에 거둬들인 주양악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적운상을 봤다. 그러자 적운상이 그녀의 팔을 잡고 왔던 길을 되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뭐야? 사형. 그 사람을 잡아야지.”
“시끄러워. 이미 늦었어.”
적운상이 소리치자 그제야 주양악은 뒤에서 쫓아오는 호천마궁의 정예들이 보였다.
“내가 시간을 벌 테니까 이대로 계속 달려. 대사형한테 놈들이 왔다고 알리고.”
“응!”
주양악이 힘차게 대답하며 내공을 더욱이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몸이 앞으로 확 튕겨져 나갔다.
적운상은 그 자리에서 몸을 돌리며 태룡도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가장 앞에서 달려오고 있는 사내를 향해 휘둘렀다.
따앙!
사내는 들고 있던 칼로 적운상의 일격을 막아냈다. 그러자 칼이 부러지면서 적운상의 태룡도가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
파가가가가각!
“크헉!”
그의 몸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적운상은 아래위로 태룡도를 휘둘러서 두 명을 더 베었다. 그러는 동안에 수십여 명의 사내들이 적운상을 지나쳐서 형산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