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83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83화
283화. 드디어 온 사람들 (2)
적운상이 방을 나가자 막정위가 초사영을 봤다. 초사영은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심각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사영아.”
“네.”
“술이나 한 잔 하자.”
“네?”
막정위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술을 마시지 않았다. 술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즐기지도 않았다.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할 때만 가끔씩 마시는 정도였다. 그런 막정위가 술을 마시자고 하니 초사영은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자.”
막정위가 초사영의 어깨를 한 번 소리 나게 치고는 먼저 방을 나갔다.
* * *
“좋구나.”
막정위가 어두운 밤하늘에 걸려 있던 달을 보며 중얼거렸다.
“꼭 이런 데서 먹어야 합니까?”
초사영이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숙소의 지붕 위였다. 여름에야 더워서 이렇게 올라와 있으면 시원하기나 하지 아직까지는 겨울이라서 찬바람이 제법 매서웠다.
“뭐가 어때서?”
“춥잖아요.”
“마셔. 그럼 안 추울 거야?”
“쳇!”
초사영은 막정위가 내미는 술병을 낚아채듯이 잡아서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다 식은 오리고기를 으적으적 씹었다.
“이게 뭔 청승인지 모르겠습니다.”
“큭큭. 지금 이렇게 해보지 언제 또 해보겠냐? 너나 나나, 나이 더 들고 제자들도 많아져봐라. 그때는 체면 때문에 하고 싶어도 못해.”
“대사형이나 그렇겠죠. 조금 있으면 장문인이 될 테니까요. 저는 아닙니다.”
“녀석. 냉정하기는.”
“제 성격이 원래 그런 거 몰랐습니까?”
“알고 있지. 왜 모르겠냐?”
초사영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막정위였다. 초사영은 바로 밑의 사제였고,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아서 때론 친구처럼, 때론 형제처럼, 늘 붙어 다녔었다. 초사영이 말투나 행동은 차갑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막정위는 알고 있었다.
“할 얘기는 뭡니까? 추우니까 본론만 짧게 이야기해요.”
“싫다. 길게 이야기할 거다.”
“그럼 전 그냥 내려갈 겁니다.”
여전히 투덜대는 초사영을 보면서 막정위가 입을 뗐다.
“운상이와 함께 왔던 두 노인 말이다.”
“네. 그들이 왜요?”
“알고 보니 황궁에서 왔더구나.”
“네?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상관 소저가 은근히 알아보고 어제 나한테 이야기를 해주더구나.”
“대단한 사람들입니까?”
“유백이라는 노인은 황제의 스승이다. 그리고 동헌이라는 노인은 금의위의 고수들을 키워내는 사람이더라.”
“그들이 왜 운상이와 함께 온 겁니까? 운상이도 알고 있는 겁니까?”
“아니. 운상이는 모르는 것 같다. 그 녀석, 의외로 그런 데 둔하니까.”
“황궁에서 왜 그런 사람들을 보낸 걸까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황궁에서 운상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만약 좋은 쪽이라면, 무림맹이나 호천마궁에서도 함부로 할 수 없겠군요.”
“그렇기는 하지만 어찌될지는 아직 모른다. 게다가 황궁하고 관계를 맺었다가 좋게 끝난 문파는 하나도 없잖아.”
사실이 그랬다. 황궁하고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정치세력이 된다는 뜻이었다. 나라가 아무리 안정이 되어있다 해도 정치판은 달랐다. 어제의 적이 오늘은 동료가 되고, 오늘의 동료가 내일은 또다시 적이 되는 것이 바로 정치였다.
그 흐름에 휩쓸려 자칫 잘못하다가는 멸문을 당하기 쉬웠다. 정적은 죄도 없는데 역모로 몰아서 죽이기도 하기 때문에 줄을 잘못 서면 그리 되는 것이다.
게다가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고 하지 않던가?
권력은 십 년을 못 가고 꽃잎은 열흘을 못 간다는 이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황궁에서 아무리 세력이 좋은 곳과 손을 잡았다고 해도, 설사 그것이 황제라고 해도, 언젠가는 판도가 뒤집어지게 되어 있다. 그때는 그야말로 끈 떨어진 연과 같은 신세가 되고 만다.
그래서 황궁과 관계를 가진 무림인들치고 끝이 좋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렇군요.”
“이렇게 일이 겹치니까 나도 어떤 결정을 어떻게 내려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후우… 사부님이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지 이제야 와 닿는다.”
막정위가 한숨을 내쉬며 말하고는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지금까지는 잘하고 있잖아요. 사형이 결정하면 누구든 다 따를 겁니다. 그것이 옳은 결정이 아니더라도요.”
“그래서 더 힘들다. 요즘은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아. 한 번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모두 잃을 수도 있어. 무림맹이나 호천마궁, 그리고 황궁까지,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한없이 약하잖아.”
“앓는 소리 그만하세요. 운상이가 있잖아요. 우리도 있고.”
“그래. 그래서 이렇게 버티고 있는 거다. 하지만 지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알았어요. 오늘은 얼어 죽더라도 같이 밤새워 술 마십시다. 조금 있으면 혼인도 하지 장문인도 되지, 다른 사람들이 보면 부러워할 일이라고요. 그러니까 엄살떨지 마세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
“그럼요.”
“호오, 너 장문인이 되고 싶었구나.”
“옛날에 포기했습니다.”
“되고 싶기는 했다는 거네.”
“포기했다니까요.”
“감히 장문인 자리를 넘봤단 말이지!”
막정위가 그렇게 말하면서 초사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초사영이 재빨리 그 손을 쳐내는 순간 어느새 발이 면상으로 날아들었다.
“헛!”
기습을 당한 초사영은 그걸 막을 수가 없었다. 이에 그대로 몸을 뒤로 눕혀서 옆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하하하. 그게 무슨 무공이냐? 꼴사납게.”
막정위의 놀림에 초사영이 욱해서 제대로 자세를 잡고 달려들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툭탁거리자 밑에서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거, 잠 좀 잡시다!”
“대사형! 시끄러워요!”
“누가 지붕에서 난리 치는 거야?”
그러건 말건 막정위와 초사영은 지칠 때까지 지붕에서 그 난리를 쳤다.
* * *
막정위의 혼인식 겸 장무인 취임식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원래 이맘때쯤 되면 청첩장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와야 정상이었다. 먼 곳에서 오는 사람들은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오기 때문에 미리 도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그것이 예의였다.
그런데 손님들로 와글와글해야 할 객방이 썰렁했다. 이름 없는 무사들 몇 명만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을 뿐, 정식으로 청첩장을 받은 사람들이나 문파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객이 적다고 들었네.”
금검문의 태상가주인 홍문형이 편치 않은 얼굴로 말했다. 그 옆에는 막정위가 앉아서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모두 무림맹의 눈치를 보는 걸 겁니다.”
“아무리 그렇다 하나, 이럴 줄은 몰랐군. 금검문의 이름이 이리 약했다니 그동안 헛산 느낌이야.”
“무림맹의 힘이 그만큼 강해졌다는 뜻이겠지요.”
마시던 차를 내려놓고 태연하게 말하는 막정위를 홍문형이 가만히 쳐다봤다. 홍문형은 막정위가 처음에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적운상과 자꾸 비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홍은령은 적운상을 좋아했었고, 그와 맺어졌어야 했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막정위와 맺어지게 된 것이다. 꿩 대신 닭이란 생각에 그리 내키지 않았지만, 어쨌든 형산파와 사돈지간이 되고, 홍은령이 원하니 혼인을 허락했다.
그런데 요즘의 막정위는 빛이 나 보였다. 아직 경험이 일천하고 사람 다루는 것이 조금 거칠기는 했지만, 장문인으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포용할 줄 알고 베풀 줄 알며, 끊어야 할 때는 과감하게 끊었다.
적운상과는 또 다른 강함을 내면에 가지고 있는 것이 홍문형의 눈에 보였다. 저 상태에서 경험만 쌓는다면 아주 노련하고 처세에 능한 장문인이 될 것이라 짐작되었다.
“그래도 이렇게 있기에는 자존심이 상하는군. 다시 한 번 객들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네. 자네도 그러는 것이 어떤가?”
“저는 그러지 않을 겁니다.”
“어째서인가?”
“청첩장은 분명히 전했습니다. 오고 안 오고는 그들의 선택인데, 굳이 강요해서 오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잘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잘된 일이란 건가?”
“이 기회에 진정한 친구가 누구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나중에 그들을 대할 때 어느 정도에서 선을 그어야 할지 기준을 세울 수 있으니 좋지요.”
홍문형은 역시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은령의 신랑으로 막정위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도 그렇군. 그럼 나도 이대로 있어야겠군. 허허. 늘그막에 자네에게 한 수 배웠군.”
“아닙니다. 하하.”
막정위가 겸손을 떨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은서린을 좋게 본 식객 중 한 명이 멀리서 가져온 최상급의 차였다. 첫맛은 썼지만, 뒷맛은 달달하니 좋았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면서 은서린이 다급하게 막정위를 불렀다.
“대사형!”
“무슨 일이야? 사매. 손님도 계신데.”
그제야 은서린은 홍문형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아! 죄송해요. 어르신이 계신 줄 몰랐어요.”
“허허. 괜찮네. 그보다 급한 일이 있나 보군.”
“네. 대사형. 큰일 났어요.”
“무슨 일인데?”
“무당파와 화산파에서 온 사람들이 산 아래까지 와 있데요.”
“뭐?”
적운상에게 듣고 언제고 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막상 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당황이 됐다.
“어르신. 아무래도 먼저 일어나야겠습니다.”
“같이 가세나.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내가 함께 가는 게 좋을 것 같군.”
“오히려 바라던 일입니다. 폐 끼치겠습니다.”
“아닐세. 이제 한식구나 마찬가지지 않나. 가세나.”
“알겠습니다. 서린아.”
“네. 대사형.”
“운상이는?”
“초 사형하고 조사묘에 갔는데.”
“가서 그들이 왔다고 전하고 내가 말할 때까지 절대로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해.”
“네.”
은서린이 밖으로 달려 나가자 막정위도 그들을 맞을 준비를 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