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78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78화
278화. 무당삼현과 화산이로 (3)
“끙. 에구. 늙으면 그저 죽어야지.”
나이가 몇인지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주름살이 자글자글하고 백발과 백미, 백염, 그리고 까만 도포자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서 있던 노인이 허리를 두드리면서 중얼거렸다. 그 옆에는 같은 차림의 노도사 두 명이 서 있었다.
딱 보기에도 뭔가가 있어 보이는 노도사들은 무당파의 은거고수들인 무당삼현이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 온갖 인상을 다 찌푸리고 있는 젊은 도사는 운산이었다.
“야, 이놈아! 누가 죽었어? 왜 그리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어?”
무당삼현 중 둘째인 이현이 운산의 뒤통수를 냅다 갈기며 소리쳤다. 운산은 무당십걸이다. 그것도 둘째였다. 무당파는 물론이고 강호 어디를 가던 대접을 받았다. 그러기까지 그야말로 피를 토해내는 노력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당파에 갓 입문하던 시절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처음에 사부인 일영진인이 무당삼현과 함께 형산파로 가라고 했을 때는 뛸 듯이 기뻤다. 무당삼현이 누구던가?
무당파는 물론이고 강호에서도 전설로 전해지는 인물들이었다. 그런 무당삼현과 함께 가다가 뭐라도 하나 얻어들으면 바로 무공이 한 단계 더 올라설지도 몰랐다.
더구나 무당삼현은 적운상과 겨루러 가고 있었다. 누가 이길지 궁금한 건 차치하더라도 그런 높은 경지에 올라있는 고수들의 싸움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가슴이 뛰었다.
그래서 좋아라 했건만 웬걸?
무당삼현은 운산을 마치 종복 부리듯이 했다. 한시도 쉬지 못하게 이거 가져와라, 저거 가져와라 하면서 심부름을 시키지를 않나, 심심하다고 노래를 시키고, 툭하면 이렇게 손찌검까지 했다.
하지만 항렬과 무공이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나다 보니 계속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또, 왜 때리시는 겁니까?”
“이런 멍청한 놈! 여기까지 오면서 그 한 번을 못 피해? 너 무당십걸이 맞기는 맞는 거냐? 그냥 네 사부 힘만 믿고 졸라서 된 거 아니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이래봬도… 악!”
발끈해서 목소리를 높이던 운산이 뒤통수를 잡으면서 비명을 질렀다. 도대체 어떻게 손을 쓰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런 망할, 어린놈이 어디서 눈깔을 뒤집고 큰 소리야! 큰 소리가!”
“말로 해도 되는데 때리니까… 끄악!”
또다시 뒤통수를 맞은 운산이 머리를 붙잡고 아예 저만치 도망을 쳤다. 그러고는 홱 돌아보며 소리쳤다.
“기습을 하니까 못 피하는 거 아닙니까? 말로 해도 되는데 왜 꼭 때리는 겁니까?”
“어쭈! 저놈 봐라?”
“쯧쯧, 사형. 그러게 가르치려면 제대로 가르쳐야지 장난을 치니까 그렇지 않소?”
무당삼현 중 막내인 삼현이 운산이 하는 짓거리를 보며 혀를 찼다. 그걸 들은 운산이 기가 살아서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맞습니다. 가르침을 주시려면 제대로 주십시오!”
“사제. 나도 막내의 말에 동감이다. 하려면 제대로 해라.”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무당삼현 중 첫째인 일현이 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자 이현이 긍정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알겠습니다. 그럼 제대로 해야겠군요. 이놈아. 방금 기습을 하니까 못 피하는 거라고 했느냐? 강호에서 어떤 놈이 나 공격합니다, 하고 손을 쓰더냐? 아둔한 놈 같으니라고. 좋다. 어쨌든 기습이 아니면 막을 수 있다는 뜻이렷다? 그럼 어디 막아봐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운산의 뒤통수에 다시 불이 났다.
딱!
“악!”
운산은 양손으로 뒤통수를 감싸며 다급하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는 동안 무려 네 번이나 더 뒤통수를 맞았다. 감싸고 있는 손 위를 때린 것이 아니었다. 자꾸 뒤통수를 감싸는 운산의 손을 자연스럽게 치워내면서 때렸다. 간단한 손놀림이었지만 그 빠르기와 교묘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다른 무림인들이 봤으면 아마 크게 감탄을 했을 것이다.
“크윽…….”
쭈그리고 앉아서 뒤통수를 움켜잡고 있는 운산은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비참하게 느껴졌다. 누가 지금의 자신을 보고 무당십걸이라 하겠는가?
“뭐해? 기습이 아니면 피할 수 있다며?”
“네. 네. 잘못했습니다. 제가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어르신을 못 알아뵙고 감히 덤볐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표정은 아니었다. 불만이 가득했다. 그걸 놔둘 이현이 아니었다.
딱!
“크악!”
“나는 겉과 속이 다른 놈을 제일 싫어한다.”
“끄응.”
운산은 후회스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제인 운청한테 가라고 하는 건데 괜히 자신이 와가지고 이 고생이었다.
“뭐하는 거야? 제대로 된 가르침은 이제 시작이다. 오늘 네놈 뒤통수가 남아나면 내가 무당파를 떠나마.”
“헉!”
운산이 창백하게 질려서 뒷걸음질을 치다가 뒤를 힐끗 봤다. 마침 누군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두 명의 노도사와 젊은 여자였는데 옷소매에 매화가 수놓아져 있었다.
‘화산파!’
다행이라는 생각에 운산이 그들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그동안에 뒤통수를 세 번이나 얻어맞았지만 꿋꿋이 버텼다.
“반갑습니다. 혹시 화산파분들이 아니신지요?”
운산이 먼전 반장을 하면서 인사를 했다. 방금 뒤통수를 맞으면서 눈물을 빼던 모습과는 다르게 아주 예의 바른 몸가짐이었다. 그걸 보고 젊은 여자가 쿡하고 짧게 웃다가 정색을 하고는 예의를 받았다.
“네. 맞아요. 보아하니 무당파인 것 같은데 맞나요?”
“맞습니다. 빈도는 부족하나마 무당십걸 중 한 명인 운산이라고 합니다.”
“어머, 그러셨군요. 저는 현인이라고 해요.”
“호오… 화산파의 매화검수 중, 눈이 부셔서 쳐다볼 수 없는 꽃이 한 송이 있다더니 당신이었군요.”
혀에 기름칠을 했는지 느끼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운산이었다. 성격이 원래 호방하고, 붙임성이 좋았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가리는 것이 없었다.
현인은 과한 칭찬이란 것을 알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그녀가 수행을 한다지만 여자는 여자였다. 예쁘다는데 싫을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무당파에서 알아주는 무당십걸이 그런 말을 하니,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호호. 말을 아주 재미있게 하시네요.”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에라, 이놈아!”
딱!
“끄악!”
뒤통수에서 불이 나자 운산이 머리를 붙잡고 몸을 웅크렸다. 화산파 사람들이 있으면 체면상 때리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 것이 오산이었다. 무당삼현은 이미 속세의 법도 같은 것은 멀리 던져둔 지 오래였다.
“도를 닦는다는 놈이 여자를 멀리하지는 못할망정 그 무슨 망발이냐?”
“망발이라니요? 어르신 눈에는 이 아리따운 소저가 보이지 않는단 말입니까?”
“이놈이 그래도!”
다시 손이 나가려는 순간 멈칫했다. 손목이 따끔했기 때문이다. 암기에 맞은 것이 아니었다. 화산이로 중 한 명이 쏘아보는 시선 때문이었다.
그제야 이현은 그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방금까지는 눈으로 봤는데도 그리 신경이 쓰이지 않았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자연과의 동화!
그것은 도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경지 중의 하나였다. 화산이로는 그 초입에 들어 있었다. 그래서 존재감이 희미했다. 스스로 나타내기 전까지는 그걸 알아채기가 쉽지 않았다.
상대가 무당삼현이라 해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살수가 기척을 완전히 감추고 숨어있으면 찾아내기 힘든 것처럼, 처음부터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의식하기가 어려웠다.
‘허!’
이현은 속으로 혀를 찼다. 화산이로와는 오랜만에 만났다. 몇 년 만인지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사이에 이런 경지에 올라 있을 줄은 몰랐다.
“오랜만이로군.”
이현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화산이로 중 첫째, 일로가 반장을 하며 인사를 받았다. 둘째인 이로는 입을 여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오랜만이오.”
“누군가 했더니 화산의 노괴(老怪)들이로구나.”
일현이 삼현과 함께 다가오며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일로도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똑같이 비릿한 웃음을 보였다.
“흐흐.”
“흐흐.”
일현과 일로는 일 장여의 거리를 두고 서로를 뚫어지게 노려봤다. 심상찮은 분위기에 운산은 바짝 긴장을 했다. 더 이상 뒤통수를 얻어맞지 않아도 되는 건 좋았지만, 이런 살 떨리는 긴장감은 반갑지가 않았다.
그 역시도 화산이로가 있는 걸 봤으면서도 전혀 의식하지 못했었다. 일로가 의식적으로 이현에게 기를 흘려보냈을 때에서야 알았다. 그런 걸로 보건대 화산이로의 실력은 결코 무당삼현의 아래가 아니었다.
그런데 서로 한바탕 붙는다면 그 여파에 휩쓸려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보아하니 현인도 운산과 같은 생각을 하는지 얼굴에 불안감이 가득했다.
“지금 해볼 테냐?”
일현이 비스듬히 서며 물었다. 언제라도 등에 매고 있는 송문고검을 뽑아서 일로를 베어버릴 수 있는 자세였다. 일로가 그런 일현의 자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지금 싸울 생각 없다.”
의외였다. 예전 같았으면 저렇게 물러날 일로가 아니었다. 일현은 일로를 조금 더 자극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텐데.”
“형산파의 애송이를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호오… 우리도 그 일로 왔다만.”
“다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거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하는군.”
또다시 두 사람의 눈싸움이 시작되었다. 운산과 현인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어이가 없었다. 일현과 일로는 무당파와 화산파의 최고 어른들이었다.
무공도 뛰어났지만, 깨달음의 깊이는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저 어린애 같은, 유치한 대화는 뭐란 말인가?
그때였다. 갑자기 일로가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것과 거의 동시에 이로가 현인을 옆구리에 끼고 뒤따라 달렸다.
“어딜!”
일현이 소리치면서 일로를 따라잡으려고 했다. 그걸 보고 삼현이 몸을 날렸고, 이현은 운산의 뒷덜미를 잡아채고 달렸다.
쉬이이이이익!
다섯 사람이 달리는 바람소리가 매섭게 일었다. 운산은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빠르게 움직이기는 처음이었다. 무당십걸이라 불리는 만큼 경공도 어디 가서 빠질 정도는 아니었다. 바람보다 빨리 달린다는 한혈보마를 타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급이 완전히 달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십여 장을 이동하는데, 맞바람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드니 멀리 있던 나무나 바위가 갑자기 눈앞으로 확확 다가왔다가 사라졌다.
이런 속도로 이동하다가 부딪치면 몸이 으스러지고 말 것이다. 그걸 생각하니 등골을 따라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꺄아아아아아악!”
희미하게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누군지 짐작이 갔다. 이로의 옆구리에 끼어 있는 현인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운산도 비명을 지르고 싶은 걸 꾹 참고 있는데 현인이 버티어낼 리가 없었다. 그녀는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지르다가 이로가 아혈을 짚자 조용해졌다.
“제법 늘었구나.”
“내가 할 말이다.”
일현이 비웃으며 하는 말에 일로가 코웃음을 치면서 대꾸했다. 둘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쉬지 않고 계속 달렸다. 그 바람에 운산과 현인은 거의 실신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러건 말건 무당삼현과 화산이로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경공을 펼쳤다. 그들은, 서로 앙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