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61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61화
261화. 멀고 먼 길 (2)
사흘 동안 적운상은 방에 틀어박혀 명상만 했다. 하지만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의 상황을 아무리 되새겨 봐도 어떻게 했는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아…….”
한숨을 내쉬며 밖으로 나오자 우형승이 일층의 탁자에 앉아서 모용세천과 껄껄거리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형승을 보고 있으면 정말 걱정 없이 편하게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어. 뭔가 좀 알아냈나?”
우형승이 이층의 난간에 있는 적운상을 보며 큰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적운상은 고개를 저으며 일층으로 내려왔다.
“막막합니다.”
“이제 겨우 사흘 지났는데 뭘. 편하게 생각해.”
우형승이 그렇게 말하면서 술잔을 내밀었다. 이제 초저녁이었다. 그런데 벌써부터 술이었다. 하지만 적운상은 뭐라 하지 않고 술잔을 받아서 비웠다.
싸구려 죽엽청의 맛이 입안을 가득 메워왔다.
“쓰군요.”
“술이란 원래 써야 제맛이지.”
적운상이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배유철이 돌아왔다. 그는 오자마자 모용세천과 모용대수를 밀치고 앉더니 술병을 들고 마치 물을 마시듯이 벌컥벌컥 마셨다.
“캬아…….”
“목이 말랐나 보군.”
“젠장! 여기 놈들은 왜 그렇게 지독한 거야.”
혼잣말을 하며 씩씩대던 배유철이 다시 술을 쭉 들이켰다. 그걸 보고 피식 웃던 우형승이 요리가 담긴 접시를 배유철 앞으로 밀어주면서 물었다.
“어떻게 됐나?”
“어려워. 정보가 거의 없어. 아무래도 여기서 더 북상해봐야 할 것 같아.”
“찾을 수는 있겠나?”
“내가 언제 못 찾는 것 봤나? 기간이 문제지.”
“얼마나 걸릴 것 같은데?”
“빨라도 일 년이야.”
“호오…….”
우형승의 입에서 감탄이 나왔다. 약간 놀리듯 보였지만 우형승은 정말로 감탄하고 있었다. 고진명을 찾을 수 있는 정보는 굉장히 빈약했다.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고, 거처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고향도 타국이었다.
그런데 겨우 일 년 만에 찾을 수 있다니 감탄이 나올 수밖에.
“반년 만에 찾아주시오.”
적운상이 하는 말에 배유철이 도끼눈을 떴다.
“말이 돼? 일 년도 빠르게 잡은 거야. 늦으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부탁이오.”
“하…….”
배유철은 기가 막혔다. 부탁인데도 적운상이 말하니 어째 부탁 같지가 않고 협박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건 그렇다 치고, 돈은 어떻게 할 거야? 나는 선불로 항상 반을 받고 일했어. 사람을 찾든 못 찾든 그건 경비야. 돌려주지 않아.”
적운상이 마음에 안 들어서인지 배유철의 말투는 퉁명스러웠다. 그럼에도 적운상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서 내밀었다. 배유철이 그걸 들어보니 묵직했다.
“금자인가?”
“그렇소.”
“이 정도면 좀 모자라지만 일단 시작은 하지. 중간에 혹시 돈이 떨어지면 더 청구할 수도 있어. 일이 끝나면 그만큼은 더 줘야 하고.”
“알겠소.”
“좋아. 그럼. 빨리 시작해야 하니 먼저 가지. 아주 반가웠다. 친구야! 다음에는 절대로 찾아오지 마라.”
적운상을 보며 말하다가 마지막에는 우형승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말하고는 배유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우형승이 그의 팔목을 잡았다.
“왜?”
“촉박한 일이니 빨리 찾아줘.”
“그러겠다고 했잖아.”
“지금 기루에 갈 거 아니지?”
배유철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의 습관 중 하나였다. 사람을 찾아다니자면 타지를 돌아다니면서 굉장히 고생을 해야 했다. 그래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선금을 받으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진탕 노는 일이었다. 때로는 우형승과 함께 어울려서 놀았기 때문에 지금 손목을 잡혀서 그런 말을 듣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일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놈 찾아!”
배유철이 강하게 나오자 우형승이 멋쩍어하며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러지 말라고. 틈나면 내가 자네 딸을 한 번 가르쳐보지.”
“정말인가?”
배유철이 의외라는 듯이 되물었다. 배유철에게는 금지옥엽이 하나 있었다.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금이야 옥이야 키우고 있는데 점점 커가는 걸 보니 걱정이 앞섰다.
혹시나 자신이 잘못되면 어떻게 살아갈지 불안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루는 우형승을 찾아가서 무공을 좀 가르쳐주라고 부탁을 했었다. 하지만 우형승은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했다.
그 후로 몇 번이나 부탁을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천하제일의 검객을 친구로 둔 덕 좀 보려고 했는데 당최 먹히지가 않으니 배유철은 화가 났다.
하지만 부탁하는 입장이라 어떻게 하지를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생각지도 못하게 우형승이 먼저 말을 꺼낸 것이다.
“정말일세. 내가 언제 이런 일로 실언을 하는 걸 봤나?”
“음…….”
배유철이 우형승을 잠시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다 적운상을 봤다. 우형승의 마음이 바뀐 이유, 그건 아마 적운상 때문이리라.
“알겠네. 정말 고맙네. 조만간 연락을 하겠네.”
배유철은 그길로 고진명을 찾아 길을 떠났다. 물론 기루에 들르지 않았음을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 * *
적운상은 답답했다. 아무리 칼을 휘둘러도 그 답답한 마음이 풀리지가 않았다.
“하아…….”
한숨을 쉬고 있는데 뒤에서 우형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침부터 웬 한숨이야? 나도 오랜만에 몸이나 좀 풀어볼까? 어때?”
우형승이 웃으면서 물었다. 그와의 비무는 오히려 적운상이 더 바라던 일이었다. 적운상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볍게 하자고. 가볍게.”
우형승이 그렇게 말하면서 싸구려 청강검을 뽑아 들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관리를 안 했는지 녹도 좀 슬었고 이도 나가 있었다. 무인에게 검은 생명과 같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까지 관리를 안 할 수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검을 버렸다고 스스로 말했던 우형승이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예의 같은 건 필요 없네.”
“알겠습니다.”
우형승은 목을 이리저리 꺾고 어깨를 몇 번 돌리면서 몸을 풀었다. 그런 건 검을 뽑기 전에 해야 정상 아닌가?
적운상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게. 어쨌건 내가 검을 먼저 잡은 선배이니 선수는 양보를 하지.”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적운상은 침착하게 우형승을 살폈다. 우형승은 청강검을 자연스럽게 늘어트리고 서있었다. 정말로 그는 제대로 할 생각이 없는지 기세나 투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쉬익!
갑자기 적운상의 태룡도가 칼바람을 일으키며 우형승의 목을 노리고 움직였다.
땅!
우형승은 적운상의 태룡도를 가볍게 흘리면서 쳐냈다. 그러고는 입가를 살짝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제법이군.”
“형님도 제법입니다.”
“검을 버렸다지만 얻은 깨달음은 크다는 걸 잊었나?”
“천만에요!”
쉬익!
적운상의 태룡도가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도 노리는 곳은 목이었다.
땅!
우형승이 아까와 같은 방법으로 적운상의 태룡도를 쳐냈다. 적운상은 방금 한두 번의 공격으로 우형승이 어떻게 검을 쓰는지 대충 감을 잡았다.
무당파의 검법처럼 철저하게 힘을 흘리는 방식이었다. 그랬기에 적운상의 공격을 그처럼 가볍게 흘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조심하십시오.”
“자네 걱정이나 하게나.”
우형승의 말에 적운상이 입가를 올려 웃었다. 그러다가 조사묘에서 익힌 베기를 했다. 빠르고 강한 베기였다. 태룡도가 움직이는 궤적에 걸리면 뭐든지 갈라지고 만다.
그러나 적운상의 베기는 중간에 막히고 말았다. 믿을 수 없게도 우형승은 적운상의 태룡도에 그 싸구려 청강검을 붙이더니 그대로 미끄러트려서 손목을 베어 왔다.
사실 그렇게 청강검을 대면 그대로 잘려나가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우형승은 서로의 무기가 부딪치는 순간 손목을 비트는 간단한 동작으로 적운상의 베기에 실린 힘을 흘려버렸다.
전에 소림사에서 겨뤘던 무당파의 운암이 보여줬던 것만큼이나 부드러웠다. 아마 무당파의 도사들이 이걸 봤다면 크게 놀랐을 것이다.
적운상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금껏 조사묘에서 익힌 베기를 이런 식으로 반격당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에 깜짝 놀라서 재빨리 태룡도를 뒤로 뺐다.
하지만 그게 실수였다. 만약 적운상이 당황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우형승과 같은 방법으로 손목의 탄력을 이용해서 태룡도를 회전시켰을 것이다. 그러면 우형승의 청강검도 튕겨졌을 테고 그 틈에 반격도 가능했다.
그러나 적운상은 당황하며 태룡도를 뒤로 뺐고, 우형승은 그대로 청강검을 쭉 찔러 넣었다. 그러자 적운상의 소매에 구멍이 뚫렸다. 조금만 늦었으면 소매가 아니라 손목이 뚫렸을 것이다.
우형승의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소매를 뚫은 검의 방향을 교묘하게 틀더니 적운상의 턱을 노리고 밑에서 위로 쭉 찔러왔다.
적운상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러자 아슬아슬하게 우형승의 검이 적운상의 턱을 스치고 지났다.
적운상은 눈앞에서 뻗어 올라가는 검을 보면서 반격을 하려고 했다. 우형승의 검은 이미 뻗어 올라가 있는 상태였고 적운상의 태룡도는 휘두르기 좋도록 뒤로 빠져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적운상이 유리했다.
하지만 그건 적운상의 착각이었다. 위로 뻗어 올라갔던 우형승의 검이 갑자기 밑으로 뚝 떨어져 내린 것이다. 찌르기에 이은 베기였다.
이게 생사를 건 실전이고, 만약 다른 부위 같았으면 그냥 검에 긁히고 그대로 태룡도를 휘둘러 우형승을 베어버렸을 테지만, 지금은 가볍게 비무를 하는 중이었다.
더구나 얼굴을 베이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자칫 눈을 다쳐서 실명이라도 한다면 이겨도 후회를 할 일이었다. 적운상은 어쩔 수 없이 공격을 포기하고 내려쳐오는 우형승의 검을 태룡도로 올려쳤다.
치링!
우형승은 밑에서 위로 반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태룡도의 힘에 거스르지 않고 청강검을 미끄러트리면서 뒤로 훌쩍 물러났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좋군. 쾌(快)와 중(重)은 나무랄 데가 없어. 하지만 변(變)이 부족해.”
우형승의 지적에 적운상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풍뢰십삼식을 도(刀)로 펼치면 우형승의 말대로 변화가 부족해진다. 그래서 한때 적운상은 두 개의 단도로 풍뢰십삼식을 펼치는 방법을 고안해내지 않았던가?
적운상은 태룡도를 땅에 꽂고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풍뢰십삼식을 권(拳)으로 펼치려는 것이다. 그걸 보고 우형승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권으로 할 생각인가?”
“같은 무공입니다.”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면서 우형승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후우우웅! 파직!
적운상의 주먹에서 바람소리가 일며 뇌전의 기운이 맺혔다. 빠르기는 섬전(閃電)과 같고 강맹하기 이를 데 없어서 스치기만 해도 크게 다칠 것 같았다.
우형승은 적운상이 진심으로 덤벼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걸 받아주면 우형승 역시 진심이 되어야 했다. 우형승은 어떻게 해야 할지 순간 갈등을 했으나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먼저 반응을 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