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59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59화
259화. 적염도인 (3)
그때 모용혜의 비명소리가 크게 울렸다.
“꺄악!”
그녀는 중년인의 공격에 다리를 채이면서 얼굴을 맞았다. 모용대수가 그걸 보고 흥분해서 도움을 주려다가 틈을 보였다. 그러자 그와 싸우던 중년인이 몸을 날려 그의 등을 찼다.
두 사람이 제압당하자 이제 남은 건 모용세천뿐이었다. 모용세천은 이런 상황에서도 도와주지 않고 앉아서 술만 마시고 있는 적운상이 괘씸했다.
그가 도와줄 것을 염두에 두고 적염도인에게 덤벼든 건데 저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모용세천은 자존심을 죽이고 적운상을 불렀다.
“적 형! 보고만 있을 셈이오?”
“굳이 끼어들 생각 없소.”
적운상의 말에 모용세천은 자신이 크게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적운상이 그를 도와 적염도인과 싸울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문파들조차 상대하기를 꺼려 하는 적염도인이었다.
그런데 오늘 처음 본 그가 뭣 때문에 그를 도와 적염도인과 싸운단 말인가?
“부탁이오. 도와주시오.”
모용세천은 남은 자존심마저 완전히 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과 모용대수가 당하는 거야 감수할 수 있다지만 모용혜가 당하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흥! 사리판단을 잘하는 아이로구나. 하지만 늦었다. 네 행동이 상당히 눈에 거슬리는구나.”
적염도인의 말에 적운상이 마시던 술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그를 향해 움직였다.
적염도인은 적운상에게서 느껴지는 박력에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단지 일어나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묘하게 사람을 찍어 누르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뭐라고 했소?”
퉁명스럽게 묻는 말에 적염도인은 한순간이나마 적운상을 잘 달래서 보내야 할지 아니면 손을 좀 봐줘야 할지를 갈등했다. 그러다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흠칫 놀랐다.
자신이 누구던가?
적염도인이었다. 강호의 내로라하는 명문정파들조차도 상대하기를 꺼려 하지 않던가?
그런데 저런 애송이에게 한순간이나마 기가 눌렸다니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네놈! 누구냐?”
“내가 먼저 물었소만. 아까 뭐라고 했소?”
“애송이 놈이 얄팍한 재주가 하나쯤은 있나 보구나.”
“확인해 보시오.”
적운상이 짧게 말하고는 태룡도를 뽑아 들었다. 그러자 후끈하니 뜨거운 열기가 사방을 덮었다.
‘이놈 이거…….’
적염도인은 잔뜩 긴장했다. 아까 걸어오면서 느껴졌던 박력과는 달랐다. 그건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사람 본연의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적운상이 작정을 하고 뿜어내는 투기였다.
어깨를 짓누르는 묵직한 기세에 적염도인은 팔을 한차례 크게 돌려 뒷짐을 졌다. 보기에는 긴 소맷자락이 거치적거려서 그런 것 같았지만 사실은 적운상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를 흘려버리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었다.
“놈! 네 주제를 알게 해주마!”
“나한테 그런 말을 했던 놈치고 무사한 놈은 한 명도 없었지.”
“닥치고 덤벼라!”
적염도인이 크게 소리치는 순간 적운상이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태룡도를 횡으로 휘둘렀다. 적염도인이 크게 놀라며 뒤로 훌쩍 뛰어올랐다. 적운상의 베기는 생각보다 빠르고 위력적이었다.
훙훙훙훙!
적운상이 적염도인을 뒤쫓으며 태룡도를 마구 휘둘러댔다. 그러자 태룡도가 만드는 부채꼴모양의 잔영에 걸리는 것들은 모두 잘려나갔다. 기둥이며 탁자, 의자 심지어 벽까지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
그걸 보고 적염도인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어렸다. 지금껏 이런 식으로 무식하게 칼을 휘두르는 놈은 보지 못했었다. 처음부터 사람을 찍어 누르는 기세를 풍겨내더니 칼질하는 것도 그랬다. 맞서는 순간 여지없이 부서져나갈 것같이 저돌적이었다.
후우우웅!
적염도인이 벽을 차고 옆에 있는 기둥으로 날아갔다.
콰아아앙!
적운상이 휘두른 태룡도에 벽이 부서지고 이어서 적염도인이 손으로 잡고 있던 기둥이 잘려나갔다.
“이런 무식한 놈이!”
공중제비를 돌며 적염도인이 팔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뭔가가 빠른 속도로 적운상의 미간을 향해 날아갔다.
따앙!
적운상이 태룡도를 그걸 쳐내면서 확인해보니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 한 쇠구슬이었다.
타타타타탕!
적염도인이 다시 한 번 쇠구슬을 쏘아냈다. 적운상이 옆으로 몸을 피하자 쇠구슬이 탁자와 바닥에 깊숙이 박혔다.
그사이에 거리를 좁힌 적염도인이 양발로 적운상의 가슴을 찼다. 피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적운상은 다급하니 태룡도를 들어 어깨에 대고 몸을 틀었다.
가슴을 맞느니 그렇게 해서 어깨를 맞는 것이 나았다.
파앙!
적염도인의 양발이 적운상의 어깨를 때렸다. 아니 정확히는 어깨에 대어져 있는 태룡도를 찼다.
어깨에 묵직한 충격이 오면서 적운상의 몸이 홱 옆으로 날아가 기둥에 부딪쳤다.
쿠웅!
“목을 내놓아라!”
적염도인이 크게 소리치면서 뒤따라 몸을 날렸다. 그러면서 손끝으로 적운상의 목을 찌르려고 했다. 하지만 적운상이 밑에서 위로 태룡도를 그어 올리며 앞에 있는 탁자를 날리자 그것부터 부숴야 했다.
콰아아아앙!
탁자가 부서지면서 적염도인의 뻗어낸 손이 기둥에 박혔다. 방금까지 있던 적운상이 보이지 않자 적염도인이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때 옆으로 빠졌던 적운상이 달려들며 태룡도를 내려치자 적염도인의 팔에서 피가 튀었다.
“크아아악!”
적염도인이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물러났다. 적운상은 그를 쫓지 않고 여유롭게 서서 발에 거치적거리는 것들을 옆으로 치웠다.
사람들은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면서 시종일관 눈을 떼지 못했다. 적운상이 탁자와 기둥, 벽을 부수며 적염도인을 몰아붙이다가 저렇게 팔에 상처를 내기까지 걸린 시간은 일각도 되지 않았다. 초식의 수로 따져도 오십 초식이 넘지 않았다.
이쯤 되자 적염도인은 자신이 적운상을 낮춰봤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적운상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그와 동수거나 아니면 그 이상이었다.
“넌 누구냐? 이름을 대라.”
적염도인이 잡아먹을 듯이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면서 물었다. 그러나 적운상은 피식 웃으면서 태룡도를 어깨에 걸쳤다.
“알아서 뭐하게? 곧 죽을 텐데.”
“이놈…….”
적운상이 격장지계(激將之計)로 화를 돋우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적염도인은 끓어오르는 화를 누를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그가 상대했던 자들은 두 가지 경향을 보였었다.
처음부터 욕설을 퍼부으며 죽자 살자 달려들던가 아니면 고상한 척하며 체면치레를 따지는 경우였다. 면전에 대고 적운상처럼 저렇게 살살 약을 올리는 놈은 한 명도 없었다.
“시간 없으니 빨리 끝냅시다. 마시던 술도 마저 마셔야 하고 할 일이 많아서 말이지.”
적운상이 삐딱하니 서서 하는 말에 적염도인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내공을 아끼며 전력을 다하지 않았었다. 내공을 소모하면 그걸 다시 채우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염도인이 익힌 건 음양합환일로신공(陰陽合歡一路神功)이라는 도가계열의 무공이었는데, 말이 신공이지 방중술(房中術)의 일종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여자만 있으면 그런 방중술을 통해 쉽게 내공을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여자를 통해 채음보양을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깨끗한 원기를 가지고 있는 여자를 찾아야 했고, 일을 행하는 중에도 이것저것 신경 쓸 것이 많았다. 그리고 그렇게 내공이 쌓이면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한 번 내공을 소모하면 좀처럼 원래대로 돌아오지가 않아서 다시 여자를 통해 채음보양을 해야 했다.
그런 단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적염도인이 음양합환일로신공을 익힌 이유는 내공을 쌓는 것이 빠르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노력(?)하기에 따라 남들보다 몇 배나 빠르게 내공을 쌓을 수 있으니 그 모든 단점을 무시할 만큼 매력이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적운상을 상대하면서도 가급적 내공의 소모를 줄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화가 난 상태였다. 이에 내기를 마구 소모하며 적운상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쾅!
아까 싸울 때와는 다르게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까는 적운상이 무식하게 다 때려 부수며 적염도인을 몰아붙였는데 지금은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적운상은 이리저리 요령껏 피하다가 조사동에서 익힌 베기를 했다. 그러자 하나의 선이 적염도인의 허리를 가르고 지나갔다.
파핫!
“크흑!”
적염도인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옆구리에서 피가 콸콸 쏟아졌다. 지혈을 하며 적염도인은 그제야 자신이 이성을 잃고 흥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흐으… 영악한 놈 같으니라고…….”
“당하는 사람이 바보지. 계속할 거요? 하겠다면 목을 쳐주고, 아니라면 이만합시다.”
적운상이 하는 말에 적염도인이 의외라는 듯이 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강호는 은원이 확실한 곳이었다. 그래서 어정쩡하게 손을 쓰는 건 안 쓰느니만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보내준다니? 나중에 있을 후환이 두렵지 않단 말인가?
모용세천이 나서서 그것을 말하려고 했다. 적염도인은 반드시 앙심을 품고 복수를 해올 것이다. 그러니 기회가 되었을 때 그를 죽이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적염도인이 모용대수와 모용혜가 있는 곳을 보자 모용세천은 입을 열지 못했다. 지금 나섰다가 말 한마디 잘못하면 저들이 다칠 수도 있었다. 그제야 모용세천은 저 두 사람 때문에 적운상이 적염도인을 그대로 보내주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만간 네놈을 찾아가겠다.”
“올 때는 각오해야 할걸. 이렇게 봐주는 건 이번뿐이니까.”
적염도인이 잠시 적운상을 노려보다가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모용대수와 모용혜를 제압하고 있던 두 명의 중년인들이 재빨리 달려가 적염도인을 부축했다.
그렇게 그들이 가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객잔을 나가려던 적염도인이 갑자기 손을 휘저어 쇠구슬 다섯 개를 던졌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적염도인이 나가는 것을 보고 모두 자신들도 모르게 긴장을 풀었었다.
쐐에에에에엑!
다섯 개의 쇠구슬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모용혜를 향해 날아갔다. 모용세천이 그걸 보고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모용혜의 근처에 있던 모용대수도 뒤늦게 반응했다.
적운상은 모용혜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다. 모용혜는 눈앞까지 날아온 쇠구슬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따다다다땅!
쇠구슬이 뭔가에 부딪쳐서 튕겨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혜야!”
“하아…….”
모용세천이 부르는 소리와 뒤에서 모용대수가 내쉬는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모용혜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러자 넓은 등이 보였다. 자신을 지켜준 사람의 등이었다.
모용혜는 문득 예전에도 이런 등을 봤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녀를 업어주던 아버지의 등이 이랬었다.
“고맙소. 적 형. 정말 고맙소.”
모용세천이 달려와서 적운상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적염도인은 객잔을 나가면서 혹시라도 적운상이 마음을 바꾸고 달려들까 겁이 났다. 더구나 수하들이 모용대수와 모용혜를 놔준 상황이었다. 그래서 쇠구슬을 날리고 그 틈에 도망을 친 것이다.
적운상이 그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다섯 개의 쇠구슬은 이미 그를 스쳐지나가 모용혜의 바로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적운상은 다급한 마음에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단전에서 터져 나온 금안뇌정신공의 뇌기가 몸 밖으로까지 확 번져 나왔고, 임옥군을 구할 때처럼 주위의 모든 것이 정지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믿을 수 없게도 모용혜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움직인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방금 한 일인데도 어떻게 했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적운상이 심각하게 생각에 잠겨 있자 모용세천은 적염도인을 그냥 놔준 것 때문에 그런다고 오해를 했다.
“걱정 마십시오. 적 형. 오늘 이렇게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우리가 모른 채 하겠습니까? 제가 발 벗고 나서서 적 형의 안위에 신경을 쓰겠습니다.”
모용세천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까 적운상이 버티고 앉아서 관여하지 않으려고 했던 건 어느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적운상은 모용대수와 모용혜를 살리기 위해 위험을 떠안으면서까지 적염도인을 놔줬다.
그것만으로도 아까의 일은 무마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어쨌든 적운상이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세 사람 모두 어떤 끔찍한 일을 당했을지 모른다.
“일단 다른 객잔으로 옮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니오. 이곳에서 기다릴 사람이 있소.”
“아! 그렇습니까? 그럼 이곳에 계속 있어야겠군요.”
모용세천이 그렇게 말하면서 객잔주인을 불러서 돈을 쥐어줬다. 그 돈을 받은 주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돈이 너무 많았다. 이 정도 돈이면 객잔을 고치고도 남았다.
“소란을 피워 미안하오. 하지만 며칠 더 묵어야 할 것 같소.”
모용세천의 말에 객잔주인이 가당찮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쉬실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이르겠습니다. 이층으로 올라가시죠. 하하.”
“그러는 게 좋겠습니다.”
모용세천이 적운상의 의견을 묻듯이 말했다.
“그럽시다.”
짧게 대답하고 적운상이 먼저 이층으로 올라가자 세 사람이 뒤를 따라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