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40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40화
240화. 십대의 대주 (3)
“괘, 괜찮으세요?”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오는 적운상을 보고 소하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도대체 뭘 하고 왔기에 저런 모습으로 오는 걸까?
“괜찮아. 씻을 준비를 좀 해줘.”
“어디 다치신 건 아니고요?”
“안 다쳤어.”
적운상은 피곤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소하는 멍하니 그런 적운상을 보다가 시킨 대로 그가 씻을 수 있게 준비를 하러 갔다.
준비가 끝나자 적운상이 옷을 벗고 몸의 피를 씻어낸 후에 나무로 된 커다란 둥근 물통에 몸을 담갔다. 소하가 그런 적운상의 몸에 작은 통으로 물을 떠서 부어줬다. 여기저기 살펴보니 정말 다친 곳은 전혀 없었다.
그럼 그 피는 다 누구의 피였을까? 대원들을 만나러 간다더니 혹시 그들을…….
그럴 리가 없었다. 어쨌든 부하들인데. 하지만 적운상의 성격상 또 모르는 일이었다. 듣자하니 십대의 대원들은 대주 알기를 뭐같이 알며 무시를 한다고 했었다. 그래서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서너 번이나 대주가 바뀌었다지 않은가?
“됐어. 나가서 볼일 봐.”
“네? 아니요. 괜찮아요. 특별히 할 일도 없는 걸요.”
“그래도 나가봐. 씻고 나서 잘 테니까 그렇게 알고.”
“네.”
소하는 밖으로 나가면서 힐끗 적운상을 봤다. 신기한 사람이었다.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었다. 자신을 데려온 목적이 뭘까?
알아본 바로는 대주 취임식 때 대청 하나를 엉망으로 만들면서 자신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까지 데려와 놓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있어만 달라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던 소하는 문득 소름 끼치는 게 떠올랐다. 만약 적운상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 그러니까 호천마궁과 황궁에 대한 걸 원하는 거라면?
그럼 항아루에 왔을 때부터 모두가 계산된 행동이었던 걸 수도 있었다.
소하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러다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자신이 황궁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게다가 적운상이 그런 걸 알아서 뭐에 쓰겠는가?
억측이었다. 하지만 그냥 넘기기에는 뭔가 찜찜함이 남았다. 소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눈을 빛냈다.
* * *
적운상은 정말 씻고 오자마자 저녁때까지 잠만 잤다. 소하는 그런 적운상을 보면서 조용히 기다렸다. 그가 깨기를.
일단은 확인을 해야 했다. 그게 아니라 해도 어쨌든 이렇게 계속 지낼 수는 없었다. 그녀는 이렇게 답답한 삶을 살아본 적이 거의 없었다. 늘 화려하게 반짝거리면서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살아왔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녀가 한 번 웃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수두룩했었다.
그런데 이곳은 어떤가?
너무나 적막했다. 하루 종일 한 사람을 보고 기다리며 생활하고 있다. 그런 삶은 그녀에게 맞지 않았다.
그러니 오늘 결정을 할 생각이었다. 적운상은 큰 사람이었다. 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예전보다 훨씬 더 화려하게, 더 도도하게,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살 수 있었다.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적운상이 눈을 떴다.
“음…….”
“일어나셨어요?”
“그래. 물 좀 가져다 줘.”
소하는 적운상이 시키는 대로 물을 가져왔다. 적운상은 그걸 벌컥벌컥 마시고 그릇을 돌려줬다.
“식사하셔야죠?”
“그러지.”
적운상이 일어나서 옷을 입을 동안 소하는 식사준비를 했다. 오늘은 정성들여 만든 요리가 몇 개나 됐다. 거기다 비싼 술도 준비했다.
적운상이 그걸 먹으면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좋군.”
“한 잔 받으세요.”
소하가 따르는 술을 적운상이 말없이 받아서 마셨다. 그리고 다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소하는 같이 식사를 하면서 간간이 적운상의 잔을 채워줬다. 저 술은 상당히 독했다. 그런데도 적운상은 넙죽넙죽 잘 받아 마시고 있었다. 그럴 것이다.
지금 적운상이 마시는 술의 특징이 그랬다. 독하기는 하지만 당장에 취기가 올라오지는 않는다. 나중에 한꺼번에 확 올라온다. 그때는 아무리 주량이 대단해도 소용이 없었다.
다섯 번째 잔을 채워주려는데 적운상이 소하의 손을 잡았다.
“됐다.”
“팔 아파요. 그러니 마지막으로 한 잔만 더 드세요.”
소하가 하는 말에 적운상이 그녀의 손을 놓았다. 그러자 그녀가 잔을 채우고 술병을 내려놓았다.
“이틀 뒤에 산동으로 가죠?”
“그래.”
“무사히 다녀오기를 빌게요.”
적운상이 가만히 눈을 들어 소하를 봤다. 그리고 젓가락을 내려놓고 술잔을 비운 후에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 말이 있는 것 같군.”
“아니요. 없어요.”
“갑갑한가?”
“…….”
소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저 사람은 늘 저런 식이었다. 단 한 번도 그녀의 예상 안에 있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정공법밖에 없었다.
소하가 적운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런 그녀의 눈에서 기이한 열정이 일렁거렸다.
“나를 왜 데려왔죠?”
“필요하니까.”
“왜 필요하죠?”
“궁주를 안심시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갑갑하면 언제든 이야기해. 풀어줄 테니까.”
소하가 멍한 눈으로 적운상을 봤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그냥, 아무 조건 없이 풀어준단 말인가?
자신의 값어치가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밤마다 한 이불을 덮고 잤었다. 그게 적운상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었던 거라 생각되니 속에서 울컥하고 뭔가 치솟았다.
“당신에게 나는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건가요?”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이곳에 있는 것이 싫은 것 같아서 보내주겠다는데 뭐가 문제지? 나한테 원하는 게 뭔가?”
소하는 그제야 뭔가 깨닫는 것이 있었다. 그녀는 지금 적운상에게 뭔가를 원하고 있었다. 그냥 놔두겠다는데 도대체 뭘 더 원하는가?
그녀가 원하는 건 적운상의 관심이었다. 일상적으로 대해주는 그런 관심 말고 더 깊은 관심을 원하고 있었다. 그걸 알아주지 않으니까 속상한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걸 알고 있어요. 황궁과 호천마궁에 대해서 알고 싶은 거죠?”
소하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니라면 울면서 매달려야 했고, 맞다고 하면 거래를 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적운상의 대답은 또 한 번 그녀의 예상을 빗나갔다.
“필요 없어.”
“그게 무슨 말이죠?”
“처음에는 네 생각대로 그게 목적이었지. 하지만 이젠 필요 없어졌다.”
“그래서 나를 보내려는 건가요?”
“뭔가 착각하고 있군. 나는 너를 보내려고 한 적 없어. 네 스스로 버티지를 못하니까 언제든 떠나라고 한 것뿐이야. 계속 있고 싶으면 있어도 좋아.”
“그럼……. 그럼 날 안아줄 건가요?”
적운상과 소하의 시선이 뜨겁게 맞부딪쳤다. 소하는 그녀의 모든 것을 걸고 적운상과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보통 남자였다면 벌써 그 눈빛에 욕정을 참지 못하고 덤벼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운상은 담담하니 그녀의 눈빛을 받아냈다. 그러다 희미하게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너한테 그런 눈빛은 어울리지 않아. 일단 네 자신부터 찾도록 해.”
적운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지나치면서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줬다. 소하는 단지 손이 머리에 닿았을 뿐인데도 찌릿한 뭔가 몸을 훑는 느낌이 들었다. 남자를 많이 겪어봤는데도 그런 느낌은 상당히 생소했다.
덜컹!
소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가려는 적운상을 뒤에서 껴안았다.
“안아줘요.”
“방금 말했잖아. 우선 네 자신부터 찾으라고.”
적운상이 그녀의 팔을 풀면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수혈을 짚었다. 소하는 설마 수혈을 짚을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가 그대로 스르륵 눈을 감았다.
소하를 안아서 침상에 눕힌 적운상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불쌍한 여인이었다. 이런 식으로밖에 살 수 없는 그런 여인이었다. 적운상이 소하를 통해서 뭔가를 알아내려다가 마음을 바꾼 이유도 그래서였다.
적운상이 흘러내린 소하의 머리카락을 쓸어서 넘겨줬다.
“양악이가 이 일을 알면 날 죽이려 들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