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36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36화
236화. 취임식 (2)
“고, 공자님.”
항아가 그를 부르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젊은 사내는 현 황제의 여덟 번째 아들이었다. 그는 항아의 미색에 빠져 수시로 이곳을 찾아왔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항아가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며 시일을 끌다가 오늘에야 만나줬다.
기쁜 마음에 한창 즐기고 있었는데 항아가 잠시 나갔다 온다고 한다. 당연히 볼일을 보고 오나 보다 했는데 이 방에서 다른 손님을 상대하고 있었으니 눈이 뒤집힐 만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애써 화를 누르면서 말했다.
“지금 당장 나와라. 그럼 용서해 주마.”
항아가 이마대의 눈치를 봤다. 이마대는 어이없어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자 항아가 이마대의 손을 잡고 상체를 숙이면서 낮게 말했다.
“팔황자예요. 상대하지 마세요.”
그 말에 이마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말고 멈칫했다. 이마대가 항아를 봤다. 항아가 걱정 말라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고 있는데 팔황야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뭘 하고 있느냐? 어서 나오라는데!”
“알았어요.”
항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에게 가려고 하는데 누군가 손목을 잡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적운상이었다.
“적 공자.”
“앉아 있어.”
“하지만…….”
난처해하던 항아가 적운상에게도 그가 팔황자라는 걸 작게 이야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사이도 없이 적운상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확 잡아당겼다. 그리고 옆자리에 앉히고는 팔황자에게 다가갔다.
그걸 보고 이마대와 항아가 기겁을 했다. 적운상은 상대가 팔황자인 줄 모르고 있다. 그를 향해 손을 쓰면 뒷감당이 힘들었다. 아무리 호천마궁이라고 해도 황궁을 상대하는 것은 극히 꺼리는 일이었다.
“의제!”
이마대가 소리쳐 적운상을 불렀다. 하지만 적운상은 쳐다보지도 않고 걱정 말라는 듯이 손만 살짝 들었다. 그래서 이마대는 적운상이 거칠게 굴지는 않겠거니 했다. 그러나 웬걸?
적운상은 팔황야에게 다가가자마자 그의 머리를 잡아서 확 잡아당겼다. 그러자 그의 몸이 물구나무를 서듯이 거꾸로 돌면서 얼굴로 바닥을 찍었다.
쿵!
“아! 안 돼요!”
“의제!”
“너 이 자식!”
“죽어!”
네 사람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말이 터져 나왔다. 이마대는 인상을 팍 찌푸렸고 항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리고 팔황야의 호위무사 두 명은 사납게 소리치며 칼을 뽑으려고 했다. 하지만 적운상이 칼을 뽑으려고 검파를 움켜쥔 두 사람의 손을 잡자 더 이상 칼이 뽑히지 않았다.
두 사람이 크게 놀란 눈으로 적운상을 봤다. 그들은 황궁에서 제법 알아주는 고수들이었다. 그랬기에 팔황자의 호위무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너무나 어이없이 팔을 잡혀 칼조차 뽑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적운상이 잡고 있던 그들의 손목을 놓고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들의 머리가 크게 흔들리며 좌우로 확 날아가 벽에 쿵 소리를 내면서 부딪쳤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항아가 발끈해서 적운상을 향해 소리쳤다. 적운상의 무공 정도면 아까 이마대에게 자신이 속삭인 말을 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상대가 팔황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도 이렇게 망설임 없이 손을 쓰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뭐를 말이오?”
적운상이 침착하니 되물었다.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잖아요.”
“몰랐소.”
“거짓말하지 말아요. 아까 내가…….”
“그게 중요하오?”
적운상이 말을 끊으면서 물어왔다. 항아는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껏 많은 사람을 겪어왔지만 이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대는 나한테 왔고, 그 시간만큼은 내가 산 시간이오. 나는 상대가 방해를 하기에 손을 좀 봤을 뿐이오.”
“…….”
항아는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적운상은 지금 이 모든 걸 자신에게 떠넘기고 있었다.
“내 잘못이라는 건가요?”
“아니오. 나는 내 시간을 방해받기를 원하지 않았을 뿐이오.”
“그렇다 해도…….”
“그가 누구건 상관없어. 무례는 저들이 먼저 범했소.”
“하아…….”
항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 적운상이라는 사람을. 적운상은 오만하고 거만하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아래로 본다. 오로지 자신의 가치기준에 따라 위아래를 정한다.
무공이 뛰어난 자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형태였다. 하지만 웬만한 무공으로는 그러지 못한다. 천하에 손꼽히는 고수들만이 그럴 수가 있었다.
항아가 적운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마대의 의제라고 들었다. 무적일검 적운상. 호천마궁의 궁주인 조황인이 인정한 사내. 이례 없는 혜택으로 조금 있으면 호천마궁 십대의 대주가 될 사내.
그녀가 아는 건 그 정도였지만 거기에 또 하나를 추가해야 할 것 같았다. 천하를 품을 수 있는 사내.
적운상은 컸다. 너무나 컸다. 조황인이 그에게서 뭘 봤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호천마궁이 담아낼 수 없는 사내였다. 저런 사람이 일개 대주라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자들이 신경 쓰인다면 내가 처리해 주지.”
“설마…….”
항아는 오싹 소름이 돋았다. 지금 적운상은 팔황야를 죽여서 흔적을 지우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 정말 통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에요. 후우……. 이 대협, 죄송하지만 오늘은 이만 가시고 다음에 다시 들러주시면 안 될까요? 이 일은 제가 어떻게든 무마시켜 보겠어요.”
“음…….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군.”
이마대가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지. 좋은 술자리가 엉망이 되었지만 뭐, 어쩌겠나? 하하하.”
별거 아니라는 듯이 이마대가 먼저 나가자 적운상이 그 뒤를 따라 나갔다.
항아가 그런 적운상의 뒷모습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적운상은 이마대와 함께 호천마궁으로 가면서 생각에 잠겼다. 항아루는 분명 호천마궁과 연관이 있는 곳이었다. 그게 아니라 해도 항아만큼은 뭔가 연관이 있었다.
사실 적운상은 방 안에 들어왔던 자가 팔황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차라리 몰랐다면 가만히 있었을 테지만, 알기에 손을 썼다.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적운상의 생각대로라면 호천마궁의 뒤에는 황궁이 있었다. 예전에 조비가 호천마궁이 하는 일에 대해서 언급을 했을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었다.
호천마궁은 강호를 좌지우지하면서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이익도 없고 명예도 없다. 도대체 그런 일을 왜 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 뒤에 황궁이 있다면 충분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적절한 통제. 황궁의 목적은 그것이었다.
강호가 어떤 곳이던가?
무림인들이 어떠한 자들이던가?
역대서부터 그들의 도움으로 반란을 일삼고 나라를 뒤엎은 일은 심심찮게 있어 왔었다. 황궁에서는 그것을 두려워했다. 그렇다고 그들을 모두 없앨 수도 없었다. 그러면 나라 자체가 흔들린다. 그들은 나라에 위협이 되기도 하지만 나라가 위험할 때 도움이 되기도 했다. 외적의 침략을 그들의 힘으로 지켜낸 적도 많았었다.
이에 황궁에서는 호천마궁을 조직해서 은밀하게 강호를 통제하고자 했다. 크면 누르고, 독보적인 곳은 인근의 곳을 키워 대립시켰다.
이 일은 극비로 아무도 몰랐다. 황궁에서도 몇 명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호천마궁에서는 대주들조차 모르는 일이었다. 궁주인 조황인과 몇몇 장로들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위에서 가지고 있는 생각은 알게 모르게 아래로 전달이 되는 법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렇게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항아가 이마대에게 그가 팔황자라는 것을 이야기했을 때, 이마대는 너무나 쉽게 물러났다. 상대가 아무리 팔황자라 해도 이마대의 성격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 어떠한 경우에도 황궁에 대적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적운상은 자신의 생각에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전에는 막연하게 그럴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호천마궁의 뒤에는 확실하게 황궁이 있었다.
그걸 막상 확인을 하게 되자 적운상은 앞이 깜깜했다. 호천마궁만 상대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황궁이라니, 너무나 벅찼다.
‘일단은 계속 따르는 수밖에 없겠군.’
금마도의 마염견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랬기에 적운상보다 훨씬 더 전에 심검의 경지에 올랐으면서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호천마궁에 도착하자 적운상은 사부인 임옥군에게 서찰을 보냈다. 한동안 못 돌아가니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그 서찰은 중간에 누군가 확인을 했다. 아직까지 호천마궁에서는 적운상을 완전히 믿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 * *
“안에 있나?”
조비였다.
“들어와.”
“들었네. 항아루에 가서 사고를 쳤다면서?”
방으로 들어온 조비의 첫마디가 그거였다. 이마대가 입을 놀리지는 않았을 텐데 어떻게 하루 만에 그런 걸 다 알아내는지 정말 놀라운 정보력이었다. 혹시 감시가 뒤따라 붙었던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런 표정 하지 말게. 내가 자네에게 관심이 많아서 정보가 빨리 들어오는 것뿐일세.”
“반갑지 않은 말이로군.”
“자네가 뭔가 잘 모르고 있나 본데, 다른 사람들은 나한테 관심을 받지 못해서 안달이라네. 자네처럼 오만하게 구는 사람은 없지.”
“억울하면 관심을 끊어. 바라지 않는 일이니까.”
“하, 참 나……. 자네는 그게 매력일세. 속으로는 안 그러면서 겉으로는 그러는 척하는 거 말일세.”
“날 겉과 속이 다른 놈으로 보는군.”
“사실이 그렇지 않나.”
“마음대로 생각하도록 해. 그보다 무슨 일로 온 건가?”
“며칠 후면 취임식일세. 알고 있겠지?”
“알고 있네.”
“그래서 선물을 가져왔네.”
조비가 그렇게 말하면서 들고 있던 걸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적운상이 뭔가 싶어서 보니 옷이었다.
“입어보게나.”
“나중에.”
“솜씨가 좋은 사람에게 부탁했네. 썩 잘 어울릴 걸세.”
“고맙군.”
“하하. 친구 사이에 고맙기는.”
조비가 기분이 좋은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다 조금 정색을 하며 적운상을 봤다.
“듣자니 이 대주와 많이 친해졌다던데…….”
“의형으로 모시기로 했네.”
“허, 그게 정말인가?”
“그래.”
“아니, 어떻게 그를 구워삶았나?”
조비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이마대는 능력은 좋지만 추한 외모 때문에 성격이 괴팍해서 다른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그래서 같은 대주들조차도 그를 약간 꺼려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한 번 본 적운상과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마음을 열었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조혜 소저랑 잘되게 도와준다고 했네.”
“뭐? 자네…….”
기가 막혔던지 조비가 어이없어하다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한참이나 배를 잡고 웃던 조비는 어찌나 웃었는지 눈물까지 찔끔거리고 있었다.
“큭큭. 자네는 정말 재미있어. 항상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그래서 나를 좋아하는 거겠지.”
“맞네. 그런데 혜가 이 대주와 잘 안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사람의 인연은 하늘이 정하는 걸세. 나는 그저 약간의 도움을 줄 뿐이지. 그런 걸로 뭐라고 할 사람 같았으면 의형으로 삼지도 않았을 걸세.”
“멋지군. 멋져. 이거 벌써부터 취임식이 기대되는걸.”
“기대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십대의 대원들은 자네가 대주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아. 분명 뭔가 방해가 있을 거야. 잘 이겨내기를 바라네.”
대답대신 적운상은 웃었다. 이미 방법은 모두 생각해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