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22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22화
222화. 사연 (3)
일은 착착 진행되었다. 그녀의 외모와 뛰어난 무공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이대로라면 백리세가를 다시 재건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마음이 기쁘지 않았다. 뭔가 허전했다.
나중에야 그녀는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온 것이다. 그녀는 적운상을 만나서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래요. 적 오라버니가 내 마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뿌리친 것도 있으니까. 원래 여자가 한을 품으면 무섭다고들 하잖아요.”
백리난수가 애써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러면서 두 개의 반월도를 꺼내 들었다.
“우리 승부로 모든 걸 결정지어요. 적 오라버니가 이기면 절 마음대로 해도 좋아요. 하지만 제가 이기면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상관하지 말고 놔주세요.”
“그러지.”
적운상이 천천히 태룡도를 뽑았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최선을 다해봐. 그러면서까지 강해진 것이 어느 정도인지 나를 납득시켜 봐.”
백리난수는 두 개의 반월도를 꽉 움켜쥐었다. 이것으로 적운상과는 두 번째 대결이었다.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그녀는 지난 시간 동안 뼈를 깎는 노력을 해왔다. 적운상 말대로 그런 짓을 하면서까지 이루고자 했기 때문에 더욱이 이를 악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백리난수는 처음부터 절망감을 맛봐야 했다. 적운상이 칼을 뽑아 들자 확 덮쳐오는 기세에 다리부터 떨렸다. 더구나 적운상이 저렇게 냉정한 눈으로 본다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하앗!”
백리난수가 발악을 하듯이 두 개의 반월도를 휘둘러갔다.
따앙!
적운상이 가볍게 휘두른 일격에 두 개의 반월도가 모두 튕겨졌다. 그러나 백리난수는 몸을 한 번 휘돌리면서 다시 반월도를 휘둘렀다.
따다다다다다땅!
순식간에 여덟 번이나 공격을 했지만 적운상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모두 쳐냈다. 그것도 제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백리난수는 내기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성화신공에 있던 무공을 쓰기 시작했다. 뜨거운 화기가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은 동작으로 그녀는 적운상을 향해 공격해 갔다.
그러나 적운상은 여전히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채 그녀의 공격을 모두 쳐냈다. 어떤 공격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또다시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차이가 나도 너무 났다. 그녀가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할 때 적운상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겨우 그 정도야? 겨우 그걸 얻으려고 그런 짓을 한 거냐?”
순간 백리난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방어는 완전히 도외시한 채 적운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걸 보자 적운상은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짓을 하면서까지 비급을 가져갔으면 더 강해져야 할 것 아닌가?
더 독해져서 악착같이 살아야 하건만 왜 지금 찾아와서 바보같이 목숨을 버리려고 한단 말인가?
여태까지 방어만 하던 적운상이 처음으로 공격을 했다.
후우우우웅! 따앙!
“꺄아아악!”
백리난수는 적운상의 일격에 들고 있던 두 개의 반월도를 모두 놓쳐버렸다. 그리고 뒤로 삼 장을 넘게 날아가서 무대 아래로 떨어졌다.
승부가 났음에도 적운상은 무서운 얼굴로 백리난수를 향해 다가갔다. 풍기는 기세로 봐서는 그대로 백리난수를 죽일 것만 같았다.
그걸 알면서도 주위의 사람들은 선뜻 나서지 못했다. 적운상의 풍기는 기세에 기가 죽어서 발이 묶인 것이다.
그때 백수연이 다급하게 무대 위로 올라가서 그를 붙잡았다.
“그만둬.”
“놔.”
“상대가 누군지 몰라? 난수라고!”
“알아. 그러니까 이러는 거야.”
“운상아.”
“놓으라고!”
찰싹!
적운상은 갑자기 뺨에 불이 번쩍하자 깜짝 놀랐다. 백수연이 그의 뺨을 사정없이 친 것이다. 평소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적운상은 잔뜩 흥분해 있었고 백수연이 그럴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라 미처 피하지를 못했다.
적운상이 멍하니 쳐다보자 백수연이 그의 멱살을 잡았다.
“정신 차려! 적운상! 여자한테 무슨 짓이야! 너 그런 놈이었어! 난수를 죽이려면 나부터 죽여!”
백수연이 윽박을 지르는 소리에 적운상이 그제야 마음을 가라앉혔다.
“후우… 알았어, 누이. 그러니까 이것 좀 놔줘. 꼴사납잖아.”
“미, 미안.”
백수연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적운상의 얼굴을 살폈다.
“아니야. 괜찮아.”
“많이 아파? 나도 모르게 그만…….”
“너무 아파.”
적운상은 뺨을 만지는 백수연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그렇게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서 난수를 돌봐줘.”
“너는?”
“비무가 끝나지 않았잖아. 마음껏 칼질이라도 해야 기분이 풀릴 것 같아.”
“알았어.”
백수연이 밑으로 내려가서 백리난수를 안아 들었다. 어느새 주양악이 와서 거들었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던 적운상이 기합을 내지르면서 태룡도를 허공에 한 번 크게 휘둘렀다.
“흐아아아압!”
후우우우우웅! 웅웅웅!
칼바람이 일며 태룡도가 크게 울음소리를 냈다. 그러자 백리난수에게 모여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적운상에게로 향했다. 사람들은 크게 놀란 눈으로 적운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검명(劒鳴)인가?”
“뭐야? 어떻게 칼에서 저런 소리가 나는 거야?”
웅성거림이 일자 적운상이 그들을 보며 소리쳤다.
“형산파의 적운상이오! 아무나 좋소! 나와서 겨뤄봅시다!”
사람들은 적운상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누가 나설까 기대를 하다가 모두들 깜짝 놀랐다. 무대 위로 세 사람이 동시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 세 사람은 모두 무림에서 명성이 쟁쟁한 사람들이었다.
* * *
무대 위로 올라온 세 사람이 서로를 봤다. 서로 아는 얼굴들이었다. 한 명은 무당십걸의 수좌에 있는 운암이었다. 또 한 명은 화산파의 매화검수 중 최고라는 현성이었고, 마지막 한 명은 소림사의 십팔나한 중 첫째인 무량이었다.
저들은 절대로 이런 비무에는 나서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그들의 강함이나 그들이 속해 있는 문파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셋이서 동시에 올라온 것이다.
그것이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했다.
무적일검이란 명성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저들에 비하면 아무래도 모자란 감이 있었다. 그러나 방금 보여준 베기는 저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베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허! 이런… 가장 먼저 올라왔다고 여겼는데 조금 늦었군.”
운암이 너스레를 떨며 하는 말에 현성이 그에게 반장을 했다.
“그쪽에서 양보를 해줬으면 합니다.”
“나야 뭐 상관없지만, 저쪽은 쉽게 비킬 것 같지가 않군.”
운암이 무량을 가리키며 말하자 현성이 그를 봤다.
“부탁해도 되겠소?”
무량은 잠시 현성을 보다가 조용히 합장을 하고는 그대로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운암이 의외라는 표정을 짓다가 곧 몸을 날렸다.
“잘해보시게.”
혼자 남겨진 현성은 그제야 적운상을 향해 반장을 하며 인사를 건넸다.
“화산파의 현성이라고 하오. 방금 보여준 일 초식은 정말 대단했소.”
사람들은 현성이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이 보기에도 칼이 그렇게 우는 것은 정말 대단하게 보였다.
그러나 현성이 대단하다고 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마지막에 백리난수를 튕겨버린 일격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사실 운암이나 무량도 그걸 보고 자극을 받았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칼의 울음소리를 낸 것은 마음에도 두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경지가 낮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운암이나 무량, 그리고 현성의 경지가 너무 높을 뿐이었다.
그들과 같이 적운상의 베기를 알아본 사람들 중에는 아직까지 눈을 감고 그걸 어떻게 막아내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이 당신 칭찬을 많이 하더군. 후기지수들 중에서는 단연 으뜸이라면서 말이오. 그 말을 믿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만나보니 왜들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오.”
“과찬이오.”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오. 그러다 그대의 칼에 목숨을 잃는다 해도 후회는 없소. 그러니 그대도 최선을 다해주시오.”
비무라고 예의 차려가면서 서로 봐주지 말자는 뜻이었다. 적운상이 그걸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적운상이 승낙을 하자 현성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적운상을 보며 한참이나 서 있었다. 적운상도 태룡도를 드리운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이 그렇게 움직이지 않고 서 있자 모두들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집중을 했다. 저러다가 어느 한순간 움직이면 거기서 승부가 끝날 수도 있었다. 고수들의 싸움이라는 건 그런 것이다.
현성은 적운상이 아까 백리난수를 날려버리던 초식에 맞서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직접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상으로 만들어낸 그가 움직이고 있었다. 심상으로 먼저 적운상에게 맞설 수 있는지를 재고 있었던 것이다.
적운상은 그걸 알면서도 그저 기다리고만 있었다. 굳이 공격할 필요가 없었다. 현성이 그걸 이겨내면 움직일 것이다. 그때 칼을 섞어도 늦지 않았다.
그리고 현성이 그걸 이겨내지 못하면 알아서 패배를 시인하고 내려갈 것을 알고 있었다. 붙어봐야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