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42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3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42화
사마경 앞에 도착한 그는 황홀한 표정으로 허벅지처럼 통통한 두 팔을 들어서 포권을 취했다.
“허허허허, 소성주의 미모가 천하제일이라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는데, 이제 보니 천상천하 제일이었구려.”
“칭찬, 고마워요. 저 역시 오왕 중 한분이신 교왕을 뵙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밝은 표정으로 사마경의 인사를 받은 교왕은 시선을 돌려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또 보는군.”
장천운은 무표정한 얼굴로 묵직하게 포권만 취했다.
대신 사마경이 환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아! 맞아요. 제 호위무사인 천운이 교왕 노선배님과 손을 나누어본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사실인가요?”
교왕의 입술 끝이 묘하게 이지러졌다.
“험, 그렇소, 소궁주.”
“노선배님의 가공할 장력에 혼쭐이 났다고 하더군요.”
“뭐 혼쭐이 났다고 할 것까지야…….”
교왕은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얼버무렸다.
혼쭐이 난 사람은 자신이었다. 아마 장천운이 검을 뽑았다면 오늘 이 자리에 서 있지도 못했을 가능성이 반은 넘었다.
어쨌든 그 말로 장천운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일반적으로 젊은 놈들은 없는 말도 지어내서 자신을 부풀리곤 한다. 그런데 장천운은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오히려 낮추어서 말한 듯했다.
덕분에 자신은 위신을 지킬 수 있었다.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놈이군.’
사마경과 교왕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어찌나 분위기가 화기애애한지 마치 오래 전 헤어졌던 조손이 만난 듯했다.
장천운은 새삼 사마경이 대화에 뛰어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런 여인이 어떻게 십 년 동안 말도 잘 안하고 까칠하게 살아왔을까?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교왕은 진짜 할아버지라도 된 것처럼 사마경의 말에 종종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곳을 나가면 다시 적으로 돌아갈지 모르는 사람이지만, 최소한 지금 이 시간만큼은 진짜 조손 같았다.
장천운은 그 모습에 만족했다.
아마 교왕은 장로원으로 돌아간다 해도 이곳에 오기 전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정도만 해도 성공적인 만남이었다.
“좌우간 교왕 노선배님이 본 성에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오늘처럼 즐거운 대화를 자주 나눌 수 있죠.”
“허허허, 이 늙은이 역시 즐거웠소이다. 박대하지만 않는다면 가끔 들르리다.”
대화는 반 시진쯤 지나서야 그렇게 끝을 맺었다. 그리고 교왕도 무척 기분 좋은 표정으로 구천무전을 나섰다.
탕.
구천무전의 문이 닫히자, 사마경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어떻게 생각해? 교왕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겁니다. 저들과 어떤 식으로든 약속을 했을 테니까요.”
명성이 높을수록 약속을 중요시한다. 명예와 직결되어 있으니까.
“그럼 제거하는 게 나을까?”
“당분간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알았어. 그럼 일단 지켜보기만 하지 뭐.”
사마경과 장천운이 오왕 중 하나를 마음대로 죽였다 살렸다 하자, 옆에서 바라보던 소연추와 냉원상 등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구천성 무사들이 두 사람의 말을 들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하지만 구양명만은 다른 사람과 생각이 달랐다.
장천운이 작심하면 교왕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아는 것이다.
‘교왕 둔가부, 당신도 참 재수가 없군. 왜 저 괴물이 있는 이곳에 들어온 거요?’
그때 무화원에 있던 구산이 구천무전으로 찾아왔다.
“대주, 왕 대협이 돌아오셨네!”
60장: 독왕을 찾아서
장천운은 즉시 무화원으로 달려갔다.
왕규는 떠날 때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푸르뎅뎅할 정도로 창백한 안색만 봐서는 사흘을 못 넘기고 죽을 사람 같았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왕규가 울상을 지은 채 말했다.
“귀독마종을 찾았네.”
“그래요?”
목적을 이루었는데 표정이 왜 저러지?
“겨우겨우 찾았지.”
“어디 있습니까?”
“그를 찾아가기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하나 있네.”
“말씀해 보시죠.”
“나는 지금 당초당이 쓴 독에 중독된 상태네.”
장천운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독에 중독되었다고요? 그럼 제가 준 해독제를 복용하지 그러셨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왕규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당연히 복용했지. 그런데 해독이 안 되는 것 같아.”
“독왕의 해독제로도 해독이 안 된단 말입니까?”
“내 생각으로는, 효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니고 절반 정도만 된 것 같아.
“자세히 말씀해 보십시오.”
“후우우, 그러니까…….”
왕규는 한숨을 푹푹 쉬어가며 그 동안의 일을 말해주었다.
살기 위해서 자신의 이름을 판 것까지 모두.
“……그렇게 됐는데, 독을 억지로 먹이고는 한 가지 일을 처리하고 오라더군. 그래야만 해독시켜주겠다고 하면서 말이야. 그리고 뇌혈산인지 뭔지 하는 것도 그때 주겠다고 했어. 할 수 없이 나는…….”
당초당과 헤어진 왕규는 일단 장강부터 건넜다.
그때까지도 특별한 증상은 없었다. 무공을 펼치는 것도 가능했다. 그저 속이 조금 거북하기만 할뿐.
강을 건넌 그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이 정도라면 해독제로 완전히 해독할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해가 되지는 않겠지?
명색이 독왕이 만든 해독제인데!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린 그는 독왕의 해독제를 복용했다. 독이 발작한 후에 복용하면 늦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젠장!
그날부터 내리 사흘 동안 설사를 했다.
그 와중에도 그는 해독제에 들어 있다는 영약의 기운을 흡수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했다.
심지어 공력으로 항문의 괄약근을 조여서 설사를 최대한 지연시키기도 했다. 덕분에 설사는 했어도 공력은 그럭저럭 건질 수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했다.
세상의 어떤 놈도 자신처럼 버틸 수 없었을걸?
좌우간 그렇게 사흘에 걸친 폭풍설사로 온몸에 힘이 다 빠졌다.
그래도 설사하는 것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정작 문제는 그 고생을 하고도 완전한 해독이 안 된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일단 돌아온 거네. 자네라면 뭔가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야.”
그 말을 할 때만큼은 왕규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장천운의 가슴을 슬쩍 쳐다보는 걸 보니 해독제 한 알을 더 원하는 듯했다.
―한 알만 더 먹으면 해독할 수 있을 거야!
그런 뜻이 담긴 표정.
장천운은 눈을 내리깐 채 모른 척하고 듣기만 했다.
‘저도 어차피 얻은 거면서, 한 알 더 주면 어때?’
왕규는 무관심한 장천운을 야속해하면서도 마저 말을 맺었다.
“그리고 그가 시킨 일도 자네와 연관이 있네.”
그제야 장천운이 눈을 들고 물었다.
“저와 연관이 있다고요?”
“그렇다네.”
사마중천의 죽음에 대한 증거를 찾는 일도 중요하지만, 왕규를 이대로 죽게 놔둘 순 없다.
독왕의 해독제마저 듣지 않는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귀독마종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
“그가 시킨 일이 뭔지 말씀해 보쇼.”
왕규도 죽고 싶지 않았기에 순순히 대답했다.
“독왕 남사명이 살고 있는 곳을 알아오라고 했네.”
***
사마경은 장천운에게 사정을 전해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독왕의 해독제로도 해독할 수 없다고?”
“예, 소성주.”
“한 알 더 복용하면 해독되지 않을까?”
“하나 복용해서 해독이 안 되는 거라면 두 개를 먹어도 안 되는 건 마찬가지일 겁니다. 즉 독의 본질이 다르다는 거죠.”
“풉, 독에 대해서도 고수가 되었네?”
“왜 그런 말이 있잖습니까? 먹어본 놈이 잘 안다고요.”
“하기야 독을 그냥 복용만 한 것은 아니니까.”
독왕의 독을 복용하기 전에 나름대로 독의 성분 등을 알아보려고 노력했었다.
조금이라도 더 알면 그만큼 대응하는 게 나아질 테니까.
다행히 독왕은 그에게 독 성분을 알려주었다.
문제는 안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래도 귀를 기울인 덕분에 독에 대해서는 그럭저럭 돌팔이 수준은 되었다.
그때 독왕이 해준 말에 의하면, 독은 광물로 된 독과 초식으로 된 독, 동물 독 등으로 나누어지고, 또한 혈액에 영향을 미치는 독과 신경에 영향을 미치는 독 등이 있다고 했다.
간혹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독도 있고.
그러면서 그 본질이 다르면 해독하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뛰어난 해독제도 본질이 다른 독을 해독시킬 순 없다나?
어쩌면 귀독마종의 독과 독왕의 해독제는 바로 그 본질에서 차이가 나는 것일지 모른다.
“어쨌든 겸사겸사 독왕을 찾아봐야할 것 같습니다. 다행히 독왕과 뇌혈산은 관계없는 것 같으니 마음 편히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건 그래. 그런데 독왕 할아버지를 찾는 일과 귀독마종을 찾는 일을 동시에 진행하면 어때?”
어떻게 생각하면 가장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만약의 경우 하나를 희생시켜야만 한다.
장천운은 사마경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 점을 상기시켰다.
“독왕이 귀독마종의 독을 해독시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마경도 무슨 말인지 모르지 않았다.
귀독마종을 잡는다 해도 그가 왕규를 해독시켜준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그럴 경우 독왕을 찾는다 해도 그가 귀독마종의 독을 해독시키지 못하면 왕규는 죽는다.
그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나도 하나하나 처리하고 싶어. 하지만 천운도 알다시피 시간이 촉박해.”
공손백과 나극이 그때까지 기다려줄까?
“왕규는 소성주를 믿고 따라온 사람입니다. 믿고 따르는 사람을 지켜줘야 할 때 지켜주지 못하면 많은 사람이 떠나는 법입니다.”
사마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가 어찌 장천운의 말뜻을 모를까. 하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와 왕규의 목숨을 동일시 할 수 없었다.
“나도 알아. 그래도 복수와 왕규의 목숨 중 하나만 선택하라면……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어.”
“저도 압니다. 소성주께는 그 어떤 것보다 복수가 우선이라는 걸. 그일 때문에 성으로 돌아온 것 아닙니까?”
“맞아.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복수가 최우선이야.”
“그런데 복수를 위해선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있어야 한다?”
장천운은 사마경의 눈을 직시한 채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드릴 말씀은 다 드린 것 같습니다. 어차피 결정은 소성주께서 하셔야 합니다. 저는 소성주께서 어떻게 결정하시든 따르겠습니다.”
사마경은 입을 꾹 다문 채 눈을 내리깔고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천운도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서서 기다렸다.
항상 사마경 곁에 붙어 있던 소연추는 어딜 갔는지 한참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 바람에 방안은 유난히 고요했다.
하지만 방안에서 나눈 대화는 방문 밖에 서 있는 흑월대원조차 듣지 못했다. 장천운이 진기로 소리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소성주님, 차를 가져왔습니다.”
방문 밖에서 류화의 목소리가 들렸다.
별 대답이 없자 류화는 무언의 승낙으로 알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뺨에 가느다란 상처가 하나 있었다. 이번 전쟁에서 얻은 상처였다.
그 일을 가장 안타까워한 사람은 구산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류화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구산이 위로한답시고 ‘괜찮아, 류화야. 너는 내가 책임질 게. 어디 돼지를 얼굴보고 잡아먹냐?’라고 했다가 엉덩이만 걷어차였다.
여자를 돼지에 비유하다니.
그 바람에 흑월대원들에게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사마경은 류화가 차를 다 따른 다음에야 시선을 들어서 장천운을 쳐다보았다. 마침내 결정을 내린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