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07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07화
207화. 호천마궁 (2)
“지금까지 당신처럼 무모한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화사가 밤길을 걸어가며 적운상에게 말했다. 그러자 적운상이 살짝 입가를 올리며 말했다.
“그런가? 칭찬으로 알지.”
“호천마궁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에요. 당신 혼자 어떻게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요.”
“노력은 해봐야지. 이대로 죽을 수는 없잖아.”
“이번 일을 결정한 것은 소궁주님이에요. 소궁주님은 한 번 결정한 것을 절대로 번복하지 않아요.”
“이번에는 하게 될 거야.”
“대단한 자신감이군요. 당신은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할 테죠? 하지만 당신 정도의 고수는 호천마궁에 넘쳐나요.”
“새겨두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화사는 그런 적운상이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뭘 믿고 저렇게 대범한 걸까?
강가의 나루터에 도착한 화사는 그곳에서 배가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배 한 척이 서서히 다가왔다.
“조 어르신을 뵈어요.”
화사가 노를 잡고 있는 노인을 향해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적운상을 봤다.
“무적일검이 자네인가?”
“맞소.”
“타게.”
적운상은 망설이지 않고 배에 올라탔다.
“어르신, 괜찮다면 저도 가고 싶어요.”
“네가 올 곳이 아니다.”
“그래서 부탁드리는 거예요. 전 저자가 어찌 당할지 제 눈으로 꼭 보고 싶어요.”
잠시 생각을 하던 노인이 허락을 했다.
“타라.”
“감사드려요.”
화사가 인사를 하고는 배에 올라탔다. 그러자 노인이 힘차게 노를 젓기 시작했다.
배는 흐르는 강물을 따라 한참이나 내려갔다. 적운상은 뱃머리에 서서 노인과 화사에게 등을 보인 채 넘실대는 강물과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의 운치를 즐기고 있었다.
노인은 그런 적운상의 대범함에 기가 막혔다. 지금 그는 호랑이굴로 들어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너무나 여유가 있었다. 더구나 등을 보이다니, 설마 공격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단 말인가?
노인은 노를 꽉 움켜잡았다. 그러자 적운상이 슬쩍 고개를 돌려 노인을 봤다. 그 눈빛에 노인은 적운상을 공격하려던 마음을 다잡았다.
‘어린놈이 어떻게 저런 경지에 올랐단 말인가? 어쩌면 소궁주가 감당하기 벅찰 수도 있다.’
노인이 적운상과 눈싸움을 하다 출수(出手)를 하려고 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하게 적운상이 고개를 돌려 다시 강물과 밤하늘에 떠 있는 달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
노인은 적운상을 공격하려던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 방금 적운상은 노인의 그릇을 쟀다. 그리고 뒤에서 공격을 해와도 충분히 받아낼 수 있다 여겼다. 그랬기에 과감히 다시 고개를 돌린 것이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노인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적운상의 행동에서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적운상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만약 출수를 했다면 그대로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그건 개죽음이었다. 적운상을 상대하려면 적어도 다섯 명은 있어야 했다. 호천마궁의 장로가 다섯 명은 있어야 한번 해볼 만했다.
‘금마도의 마염견을 꺾었다더니……. 괴물이로군.’
노인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소궁주가 저 괴물 같은 놈을 어떻게 상대할지 걱정이 앞섰다.
* * *
노인은 커다란 배가 보이자 그쪽으로 배를 바짝 댔다. 그러자 커다란 배 위에서 줄사다리가 내려왔다. 적운상이 몸을 날리자 배가 크게 출렁거렸다. 그 바람에 노인과 화사는 하마터면 물에 빠질 뻔했다.
“저놈이…….”
노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이미 적운상은 커다란 배 위로 올라간 후라 보이지가 않았다. 노인이 경공을 펼쳐 커다란 배 위로 올라갔다.
적운상은 그곳에서 한 사내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문사 차림의 젊은 사내는 상당히 외모가 수려했다. 마치 여자가 남장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호천마궁의 소궁주가 바로 그였다.
“당신이 무적일검이로군. 그렇잖아도 한번 보고 싶었네. 앉게. 앉아서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군.”
소궁주가 뱃머리 쪽을 가리키며 먼저 그쪽으로 갔다. 거기에는 조촐하게 술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소궁주가 자리를 잡고 앉자 적운상이 그 맞은편에 앉았다.
“술자리에 여자가 없으면 안 되지.”
소궁주가 그렇게 말하면서 화사를 봤다. 그러자 화사가 군말 없이 다가와 자리에 앉았다.
“저 친구의 잔부터 채워줘.”
“네.”
화사가 술병을 들어 술을 따라주려고 하자 적운상이 잔을 들었다. 화사는 그 잔에 술을 채우고 이어서 소궁주의 잔도 가득 채웠다.
“나는 비라고 하네. 성은 조가네. 자네는 이름이 뭔가?”
“적운상.”
“좋은 이름이군. 형산파라지?”
적운상은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일단 한 잔 하세. 만나서 반갑네.”
조비가 잔을 들자 적운상도 잔을 들었다. 둘은 잠시 시선을 마주치다가 동시에 술잔을 비웠다.
“어떤가? 자네가 온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구한 술이네.”
“좋군.”
“입맛에 맞는다니 다행이군.”
조비는 적운상을 대하는 데 스스럼이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오랜 친구 사이로 착각을 할 정도였다.
“청부는 내가 직접 받았네. 구보가의 멍청이가 와서 부탁을 하기에 금자 삼백에 의뢰를 받았지. 하지만 후회가 되는군. 너무 적게 받았어. 겨우 하루 만에 지부 세 곳이 쑥대밭이 되고 나까지 불러낼 정도니, 적어도 천 냥은 받아야 되는 의뢰였는데 말이지.”
“계속할 텐가?”
“생각 중일세. 방금 말했듯이 손해가 너무 커. 호천마궁의 가장 큰 장점이 뭔지 아는가?”
적운상이 술잔을 비우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화사가 그의 술잔을 채워줬다.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지. 그래서 호천마궁에 대해 아는 이는 극히 적네. 소궁주인 내 얼굴을 아는 사람도 손가락을 꼽을 정도지. 그런데 겨우 하루 만에 지부 세 곳이 드러났네. 사실 궁에서는 자네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고 있었지. 이번 일은 내 독단으로 처리한 일일세. 왠지 아나?”
“모르겠군.”
“자네가 금마도의 마염견을 꺾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궁금증이 일었기 때문일세.”
“그를 아나?”
“물론이지. 호천마궁은 천하 곳곳에 지부를 두고 있네. 너무 많아서 몇 개의 지부가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을 정도지. 그런데 유일하게 호천마궁의 지부가 없는 곳이 있네.”
조비가 말을 끊고 입가를 말아 올렸다.
“호남이로군.”
“맞네. 마염견 때문이었지. 마염견 그가 우리 호천마궁이 할 일을 대신했기 때문에 그곳에는 지부를 두지 않은 걸세. 궁금하지 않나?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무슨 일을 하지?”
“훗! 우리는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들고 있네. 비유하자면 세상이라는 악기를 조율하는 악사라고 할 수 있지. 악기가 고운 소리를 낼 수 있게 우리가 조율을 하고 있는 걸세.”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그런 적운상의 표정을 읽은 조비가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가 호남에 있으니 호남으로 예를 들어 설명해 주지. 호남에는 많은 문파들이 있네. 하지만 특출한 문파는 없지. 칠대세력이 있기는 하지만 모두 거기서 거길세. 그 좁은 곳에 일곱 개의 세력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뜻은 모두가 고만고만하다는 뜻이지. 그들은 그게 자신들의 의지대로 그렇게 된 것이라 여기고 있지만 아닐세. 금마도에서 적절하게 손을 썼기 때문이지. 자네가 무너트린 혈마사가 왜 호남에만 출현을 했었는지 아는가?”
“…….”
적운상은 조비가 마지막에 한 말을 듣자 호천마궁에서 하는 일이 뭔지 단번에 이해가 갔다.
혈마사는 몇십 년에 한 번씩 호남에만 출현을 해서 한바탕 피바람을 일으키고는 사라졌다. 그런 혈마사의 목적이 뭔지는 누구도 몰랐다.
왜 사람들을 죽이는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째서 호남에만 나타나는지 알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조비의 말을 듣고 보니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았다.
적운상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견제인가?”
“견제가 아니라 아까도 말했듯이 조율일세. 마염견은 호천마궁이 호남에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았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을 알아서 대신 했지. 우리 입장에서는 오히려 편한 일이었지. 그래서 우리는 그저 약간의 도움을 줬을 뿐일세. 그게 바로 혈마사지. 마염견은 호남에서 어느 한 문파가 크게 성장을 하려하거나 문파 간의 싸움이 심해질 때면 혈마사를 불러들였네. 덕분에 호남에는 아직도 이렇다 하게 강한 힘을 가진 문파가 없네. 그런데 자네가 나타난 거야. 자네로 인해 형산파는 짧은 기간에 부쩍 힘을 키웠네. 금마도에서 상대하기가 벅찰 정도로 말이야. 이상한 건 마염견의 행동이었네. 그가 마음먹었다면 형산파는 지금처럼 세를 불리지 못했을 걸세. 자네도 아마 죽었겠지.”
조비의 말을 들으면서 적운상은 말없이 술잔을 비웠다. 조비의 말대로 마염견이 형산파를 쓸어버리기로 마음먹었다면 막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예전의 적운상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약했다. 그때 마염견과 겨루었다면 필패였다.
“하지만 말일세. 마염견은 그러지 않았네. 자네를 지켜봤지. 지금 우리가 그러고 있는 것처럼.”
적운상이 조비를 봤다. 그러자 조비가 미소를 지으면서 술을 권했다.
“나에게 그런 걸 알려주는 이유가 뭐지? 자네 말대로라면 소림사나 무당파도 호천마궁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들도 그걸 알고 있나?”
“전혀 모르고 있네. 하지만 요즘에 와서 조금 눈치를 챈 것 같아. 무당파에서 한동안 금마도를 지겹게 쫓아다녔었지. 소림사가 이번에 무림대회를 여는 이유도 아마 우리 때문일 걸세.”
“그렇군.”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조비가 말끝을 흐리면서 적운상을 봤다. 적운상은 그의 시선을 무덤덤하게 받아냈다.
“자네가 금마도 대신에 호남을 맡아줬으면 하네. 위에서 자네를 지켜보는 이유는 그래서야. 될 것 같으면 호남을 맡기고 아니다 싶으면 누를 생각인 거지. 그렇게 되면 금마도가 계속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하게 될 걸세.”
“그거 이상하군. 지금까지 금마도가 해온 일을 형산파에서 하려고 하면 많은 차질이 생길 텐데 왜 이쪽으로 넘기려는 거지?”
“아까도 말했듯이 형산파가 너무 커버렸기 때문일세. 이제는 호남제일문파라 해도 될 정도이지. 금마도가 통제하기가 힘들어졌다는 뜻일세.”
“금마도에서 통제가 힘들면 당신들이 도와주면 될 일 아닌가?”
적운상이 딱 꼬집어내서 하는 말에 조비가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 짧은 시간에 호천마궁의 호남지부 세 곳을 찾아낸 건 무공이 강해서만이 아니었다. 머리를 쓸 줄 알기 때문에 그리된 것이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군.’
“알았네. 솔직하게 말하지. 금마도에는 마염견의 뒤를 이을 사람이 없네. 방성이라는 제자가 있지만 능력이 부족해. 그는 무공은 뛰어나지만 자네 같은 머리가 없네. 그리고 또 하나. 자네 손에 혈마사가 무너졌잖은가? 이제 우리가 도움을 주려면 전면으로 나서야 하네. 그러면 무당파와 소림사와 마찰을 빚을 수가 있지. 그래서 방법을 바꾸기로 한 걸세. 섬서에는 화산파가 있고 호북에는 무당파가 있네. 그리고 하남에는 소림사가 있지. 믿기지 않겠지만 그렇게 만든 것이 바로 호천마궁일세. 자네가 원한다면 앞으로 호남 하면 누구나 형산파를 떠올리게 될 걸세. 어떤가? 끌리는 제안 아닌가?”
“하나만 묻지.”
“뭐든지 묻게나.”
“왜 나한테 모든 걸 드러내는 거지? 무당파나 소림사도 모르고 있는 일들을 왜 내게는 거리낌 없이 말하는 건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나 모르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나나 형산파쯤은 언제라도 없애버릴 수 있다는 자신감인가?”
적운상이 묻는 말에 조비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술을 한 잔 마셨다.
“글쎄……. 나도 모르겠군. 하지만 자네를 무시해서 그런 것은 아닐세. 그저, 자네를 보니까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사실 마염견은 내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네. 자넨 그와 많이 닮았어.”
“자네가 말한 건 생각해 보지. 우선 나에 대한 청부를 어떻게 할 건지부터 말해.”
“나는 자네가 마음에 들지만 위에서는 아직 그렇지 않아. 당분간은 계속 본 궁의 고수들이 자네를 죽이려 할 걸세. 일종의 시험이라 생각하게나. 자네가 살아남으면 내가 제의한 것을 받아들일 권리가 생길 걸세.”
조비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적운상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