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05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05화
205화. 새로운 만남 (3)
“도대체 그들이 왜 그랬다더냐?”
성질 급한 사내 하나가 기다리지 못하고 소녀를 재촉했다.
“그 사람들은 무적일검이 하는 이야기에 증거가 없다고 했어요. 모두들 속고 있는 거라고요. 구보세가에서 벽로검객 왕 대협을 죽였다지만 누구 한 명 본 사람이 없어요. 그저 소문뿐이죠. 그런데도 무적일검은 원한을 갚는다고 구보세가를 그렇게 만들었어요. 구보세가의 가주 할아버지는 숨만 붙어 있지 죽은 거나 마찬가지래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하루 종일 천장만 보고 있대요.”
“무적일검에게 증거가 없다면 구보세가에도 증거가 없기는 마찬가지 아니냐?”
누군가 날카롭게 묻는 말에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몇몇 사람들은 분위기와 상관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이야기도 했었어요. 그랬더니 누군가 이렇게 말했어요. 구보세가에서 굳이 왕 대협을 죽이지 않았다는 증거를 댈 이유가 없다고요. 무적일검이 무조건 옳은 건 아니잖아요? 증거도 없이 먼저 구보세가를 공격한 건 무적일검이었어요.”
“음…….”
사람들이 납득이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아직도 적운상을 두둔했다.
“하지만 그는 무적일검이다. 그런 그가 근거도 없이 그런 일을 벌였을까?”
“맞아요. 그때도 그렇게 똑같이 묻는 사람이 있었어요.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 아니겠어요? 그들은 이렇게 말했어요. 모든 것이 무적일검의 계략이다. 그 사람은 예전에 구보세가의 며느리를 빼돌려 형산파로 끌고 갔었는데, 그 일을 덮기 위해서 그 같은 일을 벌였다고요.”
“그런 일이 있었던가?”
“저는 모른답니다. 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을 뿐이에요. 듣기로는 호천마궁(昊天魔宮)이 움직일 거래요. 구보세가의 공자가 전 재산의 반을 호천마궁에 주면서 무적일검을 죽여 달라고 했대요.”
“호천마궁!”
“그런…….”
명문정파 중 최고가 어디냐고 물으면 사람마다 조금씩 의견이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소림사와 무당파를 꼽는다. 그리고 소림사나 무당파와 견줄 정도의 흑도문파를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호천마궁을 꼽는다.
호천마궁은 드러내놓고 움직이지 않는다. 항상 은밀하게 움직인다. 그럼에도 그 이름은 누구나 알고 있다. 마치 그림자가 실체가 없지만 늘 존재하는 것처럼 그런 곳이 바로 호천마궁이었다.
“쉽지 않겠는걸.”
“호천마궁을 상대로야… 이미 죽었다고 봐야지.”
사람들은 적운상이 벌써 죽은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금껏 호천마궁을 상대로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소문파 하나가 박살 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적운상의 무공이 아무리 대단해도 무리였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다.
“호천마궁이 나설 줄은 의외로군.”
객잔 구석에 있는 탁자에 앉아 있던 운암이 나직하니 중얼거렸다. 그러자 맞은편에서 술을 홀짝이던 남궁문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소문일 뿐이잖아.”
“소문을 가볍게 여기지 말게.”
“가볍게 여기지 않아.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길 뿐이지.”
호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건 남궁문우와는 상관이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뛰어난 무기들뿐이었다.
“그렇지. 자네와는 상관이 없지. 하지만 말일세. 호천마궁 정도 되면 대단한 신병이기가 하나쯤은 있지 않겠나?”
“…….”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던지 남궁문우가 멍하니 운암을 봤다. 그러자 운암이 낮게 혀를 차며 말했다.
“이제야 좀 관심이 가나 보군.”
“방금 생각난 게 있네.”
“말해 보게.”
“호천마궁에 있는 두 개의 명검. 비익쌍검(比翼雙劍) 말일세.”
“호오……. 용케 기억해 냈군. 하지만 그걸 볼 일은 없을 걸세. 비익쌍검은 호천마궁의 소궁주와 그의 약혼녀가 가지고 있다고 들었네. 하지만 지금껏 그들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지 않나?”
“그래서 저 친구를 도와줄 생각이네. 저 친구가 안 죽고 버틸수록 호천마궁에서 더 강한 고수를 보내지 않겠나? 그러다 보면 소궁주도 나타날 걸세.”
“하하하. 그러다 호천마궁에서 자네를 죽이려고 하면 어찌하려고 그러는가?”
“도망가야지.”
“명쾌하군.”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멀찍이 떨어진 탁자에 혼자 앉아 있는 사내를 봤다. 적운상이었다.
적운상은 진즉부터 그 자리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는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그런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입가에 잔잔하니 미소를 띠었다.
호천마궁이 나선 것은 조금 의외였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게다가 아직 그쪽에서 나타난 것도 아니니 굳이 신경 쓰고 싶지가 않았다. 지금은 구보일옥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문제였다. 이대로 놔두면 계속 여기저기 청부를 하고 다닐지도 몰랐다. 그러니 그 전에 뭔가 손을 써놔야 형산파에도 피해가 가지 않는다.
적운상이 마시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객잔으로 네 명의 사내들이 들어왔다. 모두 삿갓을 깊이 눌러쓰고 있었는데 입고 있는 승복이나 손에 들고 있는 선장을 보건대 승려가 분명했다.
그들은 빠르게 적운상이 앉아 있는 탁자를 지나쳐 갔다. 세 명이 그렇게 지나가고 마지막 한 명이 지나쳐 갈 때였다. 갑자기 그가 몸을 돌리며 선장으로 적운상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그러자 앞서 갔던 세 명이 동시에 뒤로 뛰어올라 선장을 내려쳤다.
적운상은 고개를 숙여 뒤통수를 노리고 휘둘러지는 선장을 피하면서 탁자를 위로 쳐올렸다.
“헛!”
콰아아아아아앙!
탁자가 공중에서 휘둘러지는 세 개의 선장에 맞고 박살이 났다. 그 틈에 적운상이 태룡도를 뽑아서 크게 원을 그렸다.
따당! 땅땅!
공중에 떠 있던 승려 세 명이 적운상의 태룡도를 선장으로 막아낸 자세 그대로 뒤로 붕 떠올랐다. 가볍게 휘두른 일격이었는데도 위력이 엄청나서 한 명은 천장을 발로 차고 나서야 중심을 잡을 수가 있었다.
“갈!”
적운상의 뒤통수를 쳤던 승려가 기합을 내지르면서 선장을 좌우로 휘둘렀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같은 기세에 뒤로 물러났을 것이다. 하지만 적운상은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면서 태룡도를 휘둘렀다.
따앙! 파지지직!
“크윽…….”
선장을 휘두르던 승려는 적운상의 태룡도에서 찌릿한 뇌기가 손을 타고 몸으로 파고들자 몸을 움찔 떨었다. 그 짧은 찰나에 적운상이 손을 뻗어 그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뒤로 튕겨나갔다가 다시 공격을 해오던 세 명의 승려들이 급히 선장을 회수했다. 그대로 선장을 휘둘렀다가는 멱살을 잡혀서 끌려가고 있는 동료가 맞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놔라!”
멱살이 잡혀서 끌려가던 승려가 선장으로 적운상의 손을 쳐내려고 했다. 하지만 적운상이 태룡도를 내려치자 그걸 막는 것이 먼저였다.
따앙!
적운상의 태룡도를 막은 승려가 다시 적운상에게 조금 끌려갔다. 세 명의 승려들은 잡혀 있는 승려 때문에 계속 공격을 해오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틈만 노렸다.
“이놈!”
따앙! 땅!
“크윽!”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멱살을 잡힌 것을 풀려고 할 때마다 적운상은 태룡도를 내려쳤다. 그러면서 이리저리 확확 흔들어대니 정신이 없었다.
그걸 보고 있던 운암은 무릎을 탁 치면서 탄복을 했다.
“저런 방법도 있었군. 절묘하다. 절묘해. 그렇지 않은가?”
“누구나 다 쓰는 방법 아닌가?”
“천만에! 아까 저 친구가 칼을 마구 휘둘렀다면 근처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많이 다쳤을 거네. 하지만 저리 싸우니 아무도 다치지 않고 잘 도망을 쳤잖은가?”
운암의 말을 듣고 보니 그랬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싸움이라 피하고자시고 할 시간이 없었다. 저들이 그대로 엉켜서 싸웠다면 엉뚱한 사람들까지 휘말려서 모두 다치거나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운상이 저렇게 세 명을 견제하면서 싸우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도망을 칠 수가 있었다.
“타핫!”
승려 하나가 탁자를 구르면서 넘어가 적운상의 등을 노리고 선장을 휘둘렀다. 그러자 적운상에게 멱살이 잡혀 있던 승려도 선장을 휘둘렀다. 그가 노리는 곳은 적운상의 다리였다.
적운상은 잡고 있던 멱살을 놓고 옆에 있는 탁자를 손으로 짚으면서 뛰어넘었다. 그 바람에 승려 두 명의 선장은 그대로 허공에 휘둘러졌다.
후우우웅!
헛손질을 하는 두 사람을 향해 적운상은 방금 타고 넘은 탁자를 발로 힘껏 밀어 찼다.
키기기기기긱!
탁자가 미끄러져가며 두 사람을 덮쳐갔다. 그러자 그들이 동시에 선장을 내려쳐서 탁자를 부쉈다.
콰아아아앙!
“놈!”
“죽어라!”
다른 두 명의 승려가 적운상의 머리와 다리를 노리고 선장을 휘둘렀다. 적운상은 그 자리에서 몸을 한 바퀴 돌리며 태룡도로 그들의 공격을 튕겨냈다. 그리고 탁자를 부수고 이제야 공격을 해오려는 두 명의 승려를 향해 쇄도해 갔다.
“헉!”
쉬이이이익! 따앙!
“크윽!”
“컥!”
적운상은 일격에 두 사람을 객잔의 벽까지 튕겨버렸다. 이어서 등 뒤에서 휘둘러오는 선장 하나를 내려쳐서 바닥에 꽂고, 또 하나는 태룡도로 비껴내면서 손으로 잡았다.
파지지지직!
“크아아아악!”
적운상이 금안뇌정신공을 운용해서 잡고 있던 선장으로 뇌기를 흘려보냈다. 그러자 승려가 비명을 지르면서 선장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뭐, 뭐냐?”
“괜찮은가?”
“나도 모르겠다. 조심해라.”
선장을 놓친 승려가 적운상을 노려보면서 세 명의 승려에게 말했다. 적운상은 그들을 잠시 쳐다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어디서 왔나? 호천마궁인가?”
“그렇다. 본 궁이 너를 죽이기로 한 이상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싸움을 구경하기 위해서 도망가지 않고 객잔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적운상과 승려들이 나누는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저, 저 사람이 무적일검?’
미처 도망가지 못했던 비파를 켜던 노인과 이야기를 하던 소녀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적운상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의 이야기를 그렇게 안 좋게 했으니,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이 떨려오는 걸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럼 가서 더 강한 놈더러 오라고 그래. 안 그럼 호천마궁으로 안내를 하던가.”
적운상이 대놓고 무시를 하자 승려들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하지만 삿갓을 쓰고 있어서 보이지는 않았다.
“닥쳐라! 네놈 정도는 우리만으로도 충분하다.”
승려 하나가 소리쳤지만 적운상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느긋하게 근처에 있는 탁자로 가서 거기에 있던 술병을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상대를 앞두고 그런 행동을 하다니, 어지간히 무시를 하는 처사였다.
“이놈!”
승려 셋이 동시에 적운상을 향해 덤벼들었다. 적운상은 마시던 술병을 그들에게 던졌다. 그것을 중간에 있는 승려가 선장으로 쳐내는 순간 하나의 선이 그어졌다. 이어서 다시 한 번 비스듬히 선이 그어졌다.
“…….”
아까 적운상의 뇌기에 선장을 떨어트리는 바람에 제때에 공격을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던 승려의 눈이 커다래졌다. 어찌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적운상이 만든 하나의 선은 두 명의 승려를 가르고 지나갔다. 이어서 다시 하나의 선이 그 두 명의 승려와 함께 나머지 한 명마저도 긋고 지나갔다.
그들이 들고 있던 선장과 함께 몸이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그런데도 일체의 소리가 없었다. 적운상이 태룡도를 거둘 때가 되어서야 세 명의 승려들이 쓰러지며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적운상이 놀라서 크게 뜬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승려를 봤다.
“가서 전해. 나를 상대하려면 좀 더 강한 놈을 보내든가 아니면 관두라고. 가라.”
승려는 멍하니 넋이 나가 있다가 적운상이 하는 말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살았다는 생각에 다른 건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허겁지겁 객잔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자 적운상이 품에서 철전 몇 개를 꺼내 아까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던 소녀의 손에 쥐어줬다.
“이야기 재미있었다.”
적운상은 소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객잔 밖으로 나갔다. 소녀는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어렸을 때부터 이리저리 하도 돌아다니다 보니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오줌을 지려서 치마가 축축했다.
“우리도 가지.”
남궁문우가 후다닥 먼저 자리를 떴다. 그러자 운암이 품에서 돈을 꺼내 탁자에 올려놓으면서 소리쳤다.
“같이 가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