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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203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5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03화

203화. 새로운 만남 (1)

 

구보세가는 굉장히 넓었다. 제때에 구보지성의 뒤를 따라왔는데도 그만 놓치고 말았다. 적운상은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대로 구보지성이 도망가 버린다면 그 뒷감당이 힘들었다. 숨어서 돈으로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형산파에도 피해가 갈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어떻게든 찾아서 오늘 끝을 봐야 했다.

적운상은 비마보를 펼쳐서 가까이에 있던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방마다 뒤지며 구보지성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몇 개의 전각을 뒤졌으나 구보지성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월동문을 지나자 큰 연못이 있는 후원이 나왔다.

구보지성은 그곳에 있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피부가 까무잡잡한 사내 세 명과 함께였다. 해남삼귀였다.

“내가 계속 도망만 칠 줄 알았더냐?”

“호랑이의 위세를 업고 날뛰는 여우같군.”

“네놈…….”

적운상이 비꼬는 말에 구보지성이 그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그러나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부들부들 몸만 떨 뿐이었다.

“저자를 죽이면 되는 거요?”

해남삼귀 중 첫째가 물었다.

“그래. 저자를 죽이면 원하는 만큼의 금자를 주지.”

“약속 잊지 마시오.”

“나는 상인이다.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아.”

“하지만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서슴지 않고 하지.”

“닥쳐라! 사내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뭐가 잘못이란 말이냐?”

구보지성은 옆에 있는 해남삼귀를 믿고 큰소리를 쳤다.

“맞아. 사내가 여자를 좋아하는 건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그걸 올바르게 표출하지 못한 건 잘못이지. 부딪쳐보고 안 되면 마음을 접을 줄도 알아야지. 그 나이 되도록 그런 것도 몰랐나?”

“뭣들 하는가? 어서 저놈을 죽여! 당장에 죽이란 말이다!”

구보지성이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그러자 해남삼귀 중 둘째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알았으니까 거 옆에서 떠들지 좀 마시오.”

“둘째야, 그러지 마라. 그래도 의뢰인이 아니더냐?”

“쳇! 알겠소, 형님.”

못마땅한 듯이 말을 하며 그가 검을 뽑았다. 그러자 첫째와 셋째도 검을 뽑아 들었다. 그들의 검은 중원에서 쓰는 것과는 달랐다. 마치 왜구들이 쓰는 검처럼 검신이 얇고 한쪽에만 날이 있었다. 그러니 검이라고 하기보다는 도라고 해야 했다.

그들은 적운상을 중간에 두고 품(品) 자 형태로 포위를 했다. 그리고 마치 매가 먹이를 노리는 것 같은 눈빛으로 적운상을 쏘아보며 기세를 뿜어냈다.

치링!

적운상이 태룡도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허공에 대고 크게 한 번 휘둘렀다가 자세를 잡았다. 그걸 보고 금방이라도 덤벼들듯이 노려보던 해남삼귀가 주춤하며 섣불리 칼을 휘두르지 못했다.

‘고수다.’

해남삼귀가 똑같은 생각을 하며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방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었다.

후웅!

적운상이 먼저 선공을 가했다. 앞에 있는 둘째를 향해 태룡도를 횡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하게 옆에 있던 셋째가 적운상의 태룡도를 막아냈다. 그리고 앞에 있던 둘째는 공격을 해왔다.

적운상이 둘째의 공격을 쳐내면서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그러나 뒤에는 첫째가 있었다. 그가 사납게 검을 휘두르자 적운상은 뒤로 물러날 수가 없었다.

챙챙챙챙!

순식간에 십여 합을 주고받은 적운상은 이들이 펼치는 검진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게 허를 찌르며 공격과 방어를 했다.

앞에서 막는가 하면 옆에서 막았다. 옆에서 공격을 해오는가 하면 뒤에서 공격을 해왔다. 거기다 검이 빠르고 강했다. 개개인의 실력도 결코 약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 검진을 펼치며 합공을 하자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계속 뒤를 잡히고 있어. 이러다가는 당한다.’

적운상은 마음이 조금 조급해졌다. 그러나 전혀 내색하지 않으며 해남삼귀가 펼치는 검진의 약점을 찾으려 했다. 그때 뒤에서 공격해 오는 셋째의 검이 적운상의 어깨를 약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자 첫째와 둘째가 동시에 공격을 해왔다.

챙챙!

적운상이 두 사람의 공격을 막아내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마치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셋째가 미리 날아올라 공중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검을 힘껏 내리쳤다.

따앙!

적운상이 땅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 믿을 수 없게도 이들의 검진에는 약점이 없었다. 세 명이 완벽하게 서로를 보완하며 검을 휘둘렀다.

‘약점이 없으면…….’

적운상의 눈에 황금색의 기운이 어른거렸다. 금안뇌정신공을 끌어올린 것이다.

후우우웅! 빠지지지직!

‘…만든다!’

따앙!

“크윽!”

적운상이 뇌기를 가득 실어서 휘두른 일격을 검으로 막아낸 둘째가 화들짝 놀랐다. 뇌기가 검을 통해 몸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 주춤하자 검진에 틈이 생겼다. 적운상은 둘째를 향해 다시 태룡도를 휘두르며 그를 밀어붙였다. 그러자 첫째와 셋째가 둘째를 돕기 위해 적운상을 공격해 갔다.

따당! 땅! 땅!

“무슨…….”

“헛!”

첫째와 셋째의 눈이 경악으로 인해 크게 떠졌다. 적운상이 앞에 있는 둘째를 밀어붙이면서 뒤를 공격하는 첫째와 셋째의 공격을 보지도 않은 채 쳐낸 것이다. 그러니 둘째는 계속 뒷걸음질을 치면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누구던가?

해남삼귀였다. 세간에서는 그들 셋이 펼치는 검진이 소림사의 십팔나한진과 버금간다고들 한다. 그런 해남삼귀의 검진이 지금 적운상에 의해 깨지려 하고 있었다.

“제길!”

“죽어!”

따당! 땅!

적운상은 계속 등 뒤를 공격해 오는 첫째와 셋째의 칼을 보지도 않고 쳐냈다. 그러면서 계속 앞에 있는 둘째를 몰아붙였다. 둘째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적운상의 공격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그러다 발밑의 풀을 밟는 순간 발이 쭉 미끄러졌다.

다른 때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해남삼귀 정도 되는 고수들은 몸이 깃털과 같이 가볍다. 그러니 풀을 밟고 미끄러진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적운상의 공격에 밀려 계속 뒷걸음질을 치던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마음이 다급했다. 그러다 뒤로 내딛는 발에 힘이 과도하게 실렸고, 그 결과 그렇게 미끄러진 것이다.

넘어진 둘째는 참 환장할 노릇이지만 적운상에게는 기회였다.

후우우우웅!

적운상이 상체를 뒤로 눕히면서 크게 태룡도로 원을 그렸다. 그러자 뒤에서 공격하던 첫째와 셋째의 칼이 튕겨지면서 마지막에는 발이 미끄러져서 넘어지던 둘째를 베어갔다.

“헉!”

따앙!

둘째는 뒤로 넘어지는 와중에도 얼결에 칼을 들어 적운상의 태룡도를 막아냈다. 그러나 적운상의 공격이 너무나 가벼웠다. 칼을 휘두르는 기세로 봐서는 굉장한 힘이 실려 있을 것 같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둘째가 영문을 몰라 하는 사이에 적운상은 그의 등 뒤로 돌아가서 어깨를 잡았다. 애초에 적운상은 이럴 생각으로 둘째와 칼이 부딪치는 순간에 힘을 뺀 것이다.

파지지지지직!

“끄아아아아악!”

둘째는 어깨에 올려진 적운상의 손에서 갑자기 찌릿한 기운이 흘러나와 온몸을 헤집고 다니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비명을 질렀다.

“둘째야!”

“형님!”

첫째와 셋째가 둘째를 도와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적운상이 들고 있던 태룡도를 놓고 그들의 손을 잡아서 둘째의 몸에 붙였다. 첫째와 셋째가 그것을 의아하게 여길 때였다.

둘째와 마찬가지로 온몸이 찌릿찌릿해지는 뇌기가 파고들자 심장이 오그라들고 전신의 피가 다 말라버리는 느낌에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빠지지지지지지지직!

“크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그 정도의 뇌기를 몸으로 받으면 보통은 그대로 죽어버린다. 아니면 기절이라도 한다. 그러나 해남삼귀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내공을 끌어올려 적운상의 뇌기에 대항을 하려고 했다.

내공싸움을 하려는 것이다. 그걸 눈치챈 적운상의 눈에 황금색의 기운이 더욱 짙어졌다. 금안뇌정신공을 더욱 끌어올리자 뇌기가 안으로 갈무리되지 않아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파지지지지지지직!

“으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악!”

몸속을 헤집던 뇌기의 기운이 갑자기 서너 배나 강해지자 해남삼귀가 몸을 떨며 비명을 마구 질렀다. 그러다 둘째가 가장 먼저 축 늘어졌다. 적운상에게 직접적으로 뇌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받는 충격이 가장 컸던 것이다. 뒤이어 첫째와 셋째가 혀를 빼물며 눈이 하얗게 뒤집혔다.

그제야 적운상은 뇌기를 거둬들였다. 이대로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들은 구보지성의 비열한 짓거리를 증언해 줄 자들이었다.

적운상이 구보지성을 봤다. 그러자 그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적운상이 땅에 꽂아둔 태룡도를 잡았다. 그리고 땅을 박차는 순간 빛이 번쩍였다. 태룡도의 도신이 뿜어내는 빛이었다.

파핫!

구보지성의 가슴에서 피가 솟구쳐 올랐다.

“끄으…………”

구보지성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적운상이 그런 구보지성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평생 개같이 살아라.”

파지지지지지직!

“크허허허헉!”

구보지성은 난생처음 당해보는 끔찍한 고통에 혀를 빼물며 몸부림을 쳤다. 그러다 그대로 축 늘어졌다.

구보지성은 이제 사지를 쓰지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할 것이다. 눈만 이리저리 굴리면서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야 했다. 어찌 보면 잔인한 처사였다.

그렇게 놔두느니 깔끔하게 죽이는 것이 더 나았다. 그러나 제갈호월이 당한 세월과 왕대곡의 죽음을 생각한다면 응분의 대가였다.

적운상은 의협심이 강하기는 하지만 손에 사정을 두는 사람은 아니었다. 예전에 장지이가 흑도의 무리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고 죽었을 때 적운상은 똑같은 방법으로 그들을 죽이며 흑도문파 하나를 완전히 쓸어버렸었다. 구혁상을 죽이고 주양악을 납치해 갔던 혈마사도 결국에는 적운상의 손에 박살이 났다.

적운상은 쉽게 움직이지 않지만 한 번 움직이면 항상 끝을 봤다. 어설프게 손대느니 차라리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좋고, 기왕에 손을 썼으면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하라는 구혁상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새외를 돌 때도 적운상은 항상 그랬었다.

“조금 과하지 않은가?”

담 위에서 지금까지의 과정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운암이 풀쩍 뛰어내려 적운상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옆에 있는 남궁문우는 적운상의 손에 들려 있는 태룡도만 보고 있었다.

적운상은 운암과 남궁문우를 살펴봤다. 적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무당파인가?”

“운암이라고 하네.”

운암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스스로를 밝혔다.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데도 그는 적운상에게 자연스럽게 하대를 했다.

“이쪽은 남궁문우라고 하지. 오다가다 만난 사이일세.”

남궁문우는 옆에서 운암이 뭐라 하건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적운상의 손에 들려 있는 태룡도만 봤다. 그러다 아쉬운 듯이 입맛을 쩝쩝 다시며 시선을 돌리는가 했더니 다시 태룡도에 눈을 꽂았다.

“적운상이오.”

“알고 있네. 사제들이 자네 이야기를 많이 하더군. 이렇게 보니 들은 그대로야. 하하.”

“무당십걸이오?”

“맞네.”

“개입할 거요?”

“음……. 원래는 그래야겠지. 구보세가는 호북에서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세가일세. 그런데 이런 꼴을 당했으니 한동안 시끌시끌할 걸세. 무당파는 그런 걸 좋아하지 않지.”

“늦었소. 이미 끝났소. 지금 끼어들면 무당파의 명성에 흠만 갈 뿐이오.”

정문에서 그 난리를 치는 바람에 적운상이 이렇게 손을 쓰는 것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납득을 한 상태였다. 무당파가 끼어들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건 적운상의 생각일 뿐이었다.

“그렇지 않아. 내가 나선다면 오늘 있었던 일 자체가 무위로 돌아갈 수도 있네. 무당파를 무시하지 말게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생각이오?”

적운상이 하는 말에 운암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하늘을 가릴 수는 없겠지.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이목은 가릴 수가 있다네. 그게 무당파의 힘이지.”

“스스로를 속이겠다는 뜻이군. 내가 아는 운학이나 운산은 그렇지 않았소. 운청이라면 또 모르겠군.”

적운상은 더 볼일 없다는 듯이 태룡도를 집어넣었다.

“괜찮겠나?”

“좋을 대로 하시오. 난 나 자신에게 떳떳하고 스스로 하고자 해서 했을 뿐이오. 그런 나에게 누군가 욕을 한다면 똑같이 욕을 할 것이오. 칼을 휘두르면 망설이지 않고 벨 것이오. 그게 누구든.”

“…….”

운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운학에게 적운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냥 약간의 호기심 정도였다. 그런데 운산과 운청에게 들었을 때는 도대체 어떤 자이기에 저들까지 그렇게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하는지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과연 그랬다. 그들이 그럴 만했다. 남자답게 잘생긴 얼굴에 온몸에서 풍겨오는 박력, 거기에 뛰어난 무공을 지녔고 신념이 있으며 그걸 관철시키려는 정신이 있다.

운암은 지금껏 이렇게까지 존재감이 강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왜 운학이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는지, 운산이 왜 적운상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흥분을 해서 이성을 잃는지 이해가 갔다.

“가게. 뒷정리는 내가 하지.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생각은 없으니까.”

적운상이 고맙다는 말 대신 고개를 살짝 숙였다. 무당파에서 나서서 뒷정리를 해주면 후환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서 운암을 만난 것은 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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