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02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02화
202화. 다시 호북으로 (2)
“제법이로군. 아주 효과적으로 겁을 주고 있어.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운암이 묻는 말에 남궁문우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칼이 좋군.”
남궁문우는 칼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의 방에는 진귀한 보검과 보도가 몇 자루나 있었다. 지금도 그의 어깨에는 쇠를 무 썰듯이 하는 검이 두 자루나 메어져 있고, 허리에는 도가 하나 걸려 있었다. 그리고 품에는 단검이 여섯 자루나 있었다.
“그게 단가?”
“아닐세. 저 칼은, 내가 가지고 있는 명경(明鏡)에 버금갈 정도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군. 저런 칼은 정말 처음 보는군. 음……. 호북에 저런 칼이 있을 줄이야.”
운암은 적운상의 실력에 대한 평을 원했건만 남궁문우의 신경은 온통 적운상이 쓰고 있는 태룡도에 가 있었다. 그걸 보고 운암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남궁문우는 다 좋은데 좋은 칼만 보면 눈이 뒤집히는 저 욕심이 문제였다.
“하앗!”
그때 적운상의 힘찬 기합 소리가 들리자 운암이 다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후웅! 파가가가각!
적운상이 앉은 자세로 제자리에서 크게 원을 돌았다. 그 움직임에 따라 태룡도도 크게 원을 그리면서 구보세가 무사들의 다리를 베고 지나갔다.
“으아아악!”
“끄아악!”
적운상은 주위에 있던 자들이 우르르 쓰러지자 태룡도를 한 번 휘둘러서 거기에 묻어 있던 피를 털어냈다. 그리고 앞에 있는 자들을 쓸어봤다. 그 눈빛에 모두들 움찔하며 뒤로 후다닥 물러났다. 다리가 베일까 봐 겁을 먹은 것이다.
“구보지성! 나와라! 쥐새끼!”
적운상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구보세가의 무사들은 적운상이 그렇게 소리치는데도 섣불리 덤벼들지 못하고 그저 포위만 한 채 주춤거리고 있었다.
“구보지성!”
적운상이 다시 한 번 소리칠 때였다. 구보세가 안쪽에서 수십 명의 무사들과 함께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구보지성이었다.
그는 여유로운 얼굴로 걸어 나오다가 적운상을 보고 놀란 눈을 하며 이를 빠드득 갈았다.
“네놈…….”
“드디어 보는군, 망할 늙은이!”
“뭣들 하느냐? 어서 저놈을 죽여라!”
구보지성이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갈아먹어도 시원찮을 놈이 직접 찾아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앗!”
“타핫!”
구보지성과 함께 나온 무사들이 일제히 적운상을 향해 달려들려고 했다. 그러나 적운상이 먼저 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적운상은 그들이 나올 때부터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금안뇌정신공을 잔뜩 끌어올린 적운상의 눈에 황금색의 물결이 일렁거렸다.
훙! 따앙! 파지지직!
가장 앞에 있던 무사가 얼결에 적운상의 태룡도를 막아냈다가 옆으로 확 날아갔다. 그 바람에 그쪽에 있던 무사들과 뒤엉키며 우르르 넘어졌다.
훙! 파가가각!
적운상이 다시 한 번 태룡도를 휘두르자 무사 한 명의 허리가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무사의 칼을 때렸다.
따앙!
“커헉!”
들고 있던 칼이 밀리면서 갑자기 가슴을 치자 그가 피를 뿜어내며 날아갔다. 그러면서 그쪽에 있던 자들에게 부딪쳐 다 같이 땅을 뒹굴었다.
적운상이 크게 한 걸음을 디디면서 태룡도를 횡으로 휘둘렀다. 조사묘에서 익힌 바로 그 베기였다.
후우우우웅! 카가가가가각!
구보지성의 앞에 있던 다섯 명의 허리가 깔끔하게 갈라지면서 피가 흩날렸다. 적운상이 다시 한 번 태룡도를 휘둘렀을 때는 그 뒤에 있던 네 명이 쓰러졌다.
“구보지성!”
적운상이 구보지성을 향해 태룡도를 휘둘러갔다. 그러자 구보지성 뒤에 있던 사내가 급히 앞으로 나섰다. 그는 두꺼운 쇠로 된 봉으로 적운상의 태룡도를 막아냈다.
따앙!
“크윽!”
파삭!
적운상의 태룡도를 막아낸 사내의 발이 바닥을 파고들었다. 돌로 된 계단인데도 그랬다. 게다가 온몸이 찌르르 하니 울리는 충격에 그는 하마터면 봉을 놓칠 뻔했다.
그를 보고 멀리서 보고 있던 운암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조철우로군.”
“그렇군. 좋은 봉이다.”
남궁문우는 여전히 무기에만 관심이 있었다. 조철우는 봉술이 대단하기로 유명했다. 그가 쓰는 쇠로 된 봉은 웬만한 검이나 칼은 단번에 부러트릴 정도로 단단했다.
“지금이다!”
조철우가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십여 명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쇠사슬이 달린 추를 날렸다.
촤르르르륵!
적운상이 뒤로 물러나면서 추를 모두 쳐냈다. 그러다 크게 봉을 휘둘러오는 조철우를 보고 다급하게 태룡도를 휘둘렀다.
따앙!
“큭!”
적운상이 봉을 쳐낸 자세 그대로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손목이 욱신거리면서 팔이 저릿해왔다. 들고 있는 칼이 태룡도가 아니었다면 방금 일격으로 완전히 부러졌을 것이다.
그러고 있는데 또다시 십여 개의 추가 날아왔다.
챙챙챙챙챙!
적운상이 태룡도를 빠르게 돌려 날아오는 추를 모두 쳐냈다. 그러나 시선은 조철우를 보고 있었다. 조철우는 다시 한 번 온 힘을 다해 적운상을 향해 봉을 휘두르려다가 멈칫했다.
적운상의 눈빛 때문이었다.
‘강한 놈이로군.’
사실 조철우는 예전에 적운상을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왕대곡과 대성상단의 팔대고수들이 적운상과 객잔에서 마주쳤을 때 그 자리에 조철우도 있었다. 그러나 왕대곡이 나서는 바람에 그가 활약할 기회가 없었다.
그때 적운상의 실력이 제법이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그뿐이었다. 자신의 상대는 아니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막상 겨뤄보니 그게 아니었다. 만약 혼자였다면 적운상을 상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촤르르르륵! 촤륵!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추가 계속 날아왔다. 그걸 일일이 쳐내던 적운상은 왼팔로 하나를 잡았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추들이 적운상의 왼팔에 마구 감겼다.
그 상태로는 왼팔을 쓸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렇게 추가 팽팽하게 걸려 있으니 움직이기도 쉽지가 않았다.
적운상이 왼팔에 감겨 있는 추를 풀어내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나 풀 수가 없었다. 추는 여전히 팽팽히 당겨진 채, 오히려 오른쪽 다리에도 추가 와서 감겼다.
촤르르륵! 촤르륵!
“흐아아아앗!”
적운상이 왼쪽 팔과 오른쪽 다리에 추가 감겨 주춤거리자 조철우가 기합을 내지르며 봉을 휘둘러왔다. 조철우는 적운상을 쳐 날릴 수 있는 완벽한 기회라 여겼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적운상은 일부러 왼팔에 추가 감기도록 놔뒀다. 조철우를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가 쉽게 움직이지 않자 이번에는 오른쪽 다리에도 추가 감기도록 놔뒀다. 그러자 그제야 조철우가 움직인 것이다.
적운상이 태룡도로 원을 한 번 그리자 왼팔에 감겨 있던 쇠사슬이 후드득 끊겨져 나갔다. 태룡도의 날카로움이 상식을 초월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걸 보고 두 사람이 눈을 빛냈다. 한 명은 남궁문우였다. 그는 태룡도의 날카로움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지금이라도 당장 가지고 싶은 마음에 몸이 들썩거렸다.
그리고 또 한 명은 온몸으로 봉을 내려치고 있던 조철우였다.
‘아뿔싸!’
조철우는 적운상의 생각대로 움직였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지금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공격을 거두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냥 이대로 봉을 휘두르는 수밖에 없었다.
조철우는 이를 악물었다. 동작이 큰 만큼 위력은 대단했으나 허점이 컸다. 적운상이 맞받아칠 리가 없다. 옆으로 피한 후에 허점을 노리고 칼을 휘두를 것이 분명했다.
조철우는 한 군데 베일 각오를 했다. 대신에 적운상의 머리통을 부수어버릴 생각을 했다. 살을 내주고 뼈를 부수려는 것이다.
그러나 조철우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적운상은 생각지도 못하게 온몸으로 내려치는 그의 봉을 과감하게 맞받아쳤다.
떠엉! 빠지지지직!
“커헉!”
조철우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공중으로 튕겨져 올랐다. 그는 구보지성의 머리 위를 넘어 구보세가의 정문 지붕에 가서 부딪쳤다.
콰아아아앙!
지붕을 부수고 땅으로 떨어진 조철우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대로 정신을 잃은 것이다. 땅에 떨어진 그의 봉은 반 이상이나 파여 있었다. 봉이 그렇게 파이면서 뒤로 밀리는 바람에 조철우는 가슴뼈가 으스러졌다. 그 상태에서 지붕에 부딪쳤다가 땅으로 떨어졌으니, 정신이 멀쩡하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후욱!”
적운상은 조철우를 날려버린 자세로 호흡을 조절하고는 천천히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아직까지 자신의 오른쪽 다리에 걸려 있는 쇠사슬을 봤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어야 할 쇠사슬은 축 늘어져서 풀어져 있었다.
그걸 당기던 자들이 조철우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푼 것이다.
적운상이 구보지성을 노려봤다. 그는 안색이 창백한 채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두려움에 떠는 건지, 분노로 인해 떠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네놈……. 감히 이곳에 와서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성싶으냐?”
“왕 대협을 죽였듯이 나도 그렇게 비열한 방법으로 죽일 생각인가?”
적운상이 크게 소리치자 구보지성이 찔끔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곧 성난 모습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게 무슨 말이냐? 왕대곡을 내가 죽였다니!”
“해남삼귀에게 사주해서 비겁한 방법으로 그분을 죽이지 않았는가? 나는 그 혈채를 받으러 왔다!”
적운상이 소리치는 말에 멀리서 구경을 하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구보지성은 적운상에게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운상이 구보세가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정문 앞에서 저 난리를 치기에 구보지성은 그가 겁을 먹어서 그런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적운상은 사람들 앞에서 구보세가를 치는 명분을 세우고 있었다. 스스로 정당하다는 것을 내세우며 당당하게 구보세가를 치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구보세가를 공격했다가는 구보세가와 인맥이 닿아 있는 곳과 원한을 질 수밖에 없다. 누구나 납득을 하는 명분이 있다면 그들은 체면이 있어 나서지 못한다.
적운상은 그렇게 뒷일까지 생각을 하고 이런 일을 벌이고 있었다. 범인은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한다.
상대가 누구던가? 바로 구보세가였다. 적운상은 배짱 좋게 그 구보세가를 상대로 혼자서 덤비고 있었다.
“없는 일을 만들지 마라! 왕대곡과 나는 친우였다. 그런 내가 왜 그를 죽인단 말이냐?”
“당신의 패악한 짓을 보다 못한 왕 대협이 당신 아들의 팔을 잘랐기 때문이지.”
“그 일은 이미 끝난 일이다. 왕대곡이 그 일로 나를 찾아온 것은 사실이었다. 허나 내 아들의 잘못이라 나는 그를 탓하지 않았고, 그도 손이 과했음을 사과했다. 그건 많은 사람들이 지켜봤으니 증인을 대라면 댈 수도 있다.”
“그래놓고 뒤통수를 쳤군.”
“닥쳐라! 네놈이 뭘 안다고…….”
“모르는 건 당신이지.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알고 있을 건 다 알고 있어. 해남삼귀는 어디 있나?”
“흥! 더 이상 네놈의 말에 놀아날 내가 아니다. 네놈은 자꾸 내가 왕대곡을 죽였다고 하는데, 정작 증거는 하나도 대지 못하고 있지 않으냐? 단지 추측만으로 이 같은 일을 벌였단 말이냐? 내가 왕대곡을 죽였다면 어디 증거를 대봐라!”
“큭큭.”
적운상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걸 보고 구보지성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뭔가 있는 건가?’
사실 적운상의 말대로 해남삼귀를 불러와 왕대곡을 죽인 것은 구보지성이었다. 왕대곡이 찾아와서 제갈호월에 관한 일을 추궁하자 구보지성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저 그 일이 세간에 알려지기 전에 덮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사과를 하고 그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척하며 속였다. 그리고 뒤로는 그를 상대할 해남삼귀를 불러들였다. 해남삼귀는 무공은 대단히 뛰어났지만 명예는 모르는 자들이었다. 막대한 돈을 주자 당장에 승낙을 하고 왕대곡을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마음이 놓이지 않은 구보지성은 왕대곡을 조용히 불러내서 독을 탄 차를 마시게 했다. 그런 후에 해남삼귀가 덤벼든 것이다.
왕대곡이 죽자 구보지성은 대성상단을 떠난 팔대고수들도 하나둘씩 죽여서 입막음을 했다. 그 흔적은 절대로 남기지 않았다. 아무도 몰래 처리했다. 오직 해남삼귀만이 알 뿐이었다.
“흥! 증거가 없다면 오늘 일에 대해서 네놈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증거? 증거라면 여기 있지.”
“뭐냐? 어디에 뭐가 있느냐?”
“여기 있잖아. 내가 여기에 와 있다는 것이 증거다.”
“그게 무슨 말이냐?”
“나는 형산파의 적운상이다! 지금껏 나는 내 목숨을 노리고 덤비는 자들과 악인들을 상대로만 칼을 휘둘러왔다. 그런 내가 당신을 향해 칼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 이것이 증거다!”
궤변이었다. 그런데도 적운상이 너무나 당당하게 외치자 그걸 듣는 사람들은 정말 그런 것처럼 생각됐다.
적운상은 호북에 와서 양민들을 무참히 살해해서 형산마검이라고 불렸었다. 그러나 사정을 알고 보니 그들은 흉악하기 이를 데 없는 혈마승들이었다. 나중에 그 사정을 안 사람들이 적운상을 다시 형산일검, 또는 무적일검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한 일이 한 번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적운상의 말에 믿음이 갔다. 세간에 알려지기로 구보지성은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또 모르는 일이었다.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사람들이 긍정하는 눈빛을 보내자 구보지성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그 모습이 오히려 사람들의 믿음을 증폭시켰다. 차라리 가만히 있었으면 사람들은 긴가민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자 사람들은 적운상의 말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악한 놈 같으니라고…….’
구보지성은 흥분해서 적운상의 말을 맞받아친 것을 크게 후회했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구보지성은 슬금슬금 물러나다가 안으로 후다닥 도망을 쳤다. 적운상은 그가 그렇게 도망을 칠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가 다급하게 뒤를 쫓았다.
“우리도 가보세나.”
남궁문우가 그렇게 말하면서 운암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몸을 날렸다. 그걸 보고 운암이 못 말리겠다는 듯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남궁문우는 적운상이 가지고 있는 태룡도가 탐이 나서 저러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남의 일을 귀찮게만 여기는 그가 저렇게 빠르게 움직일 리가 없었다.
어쨌든 남궁문우 혼자 가게 할 수는 없었다. 운암도 남궁문우의 뒤를 따라 구보세가 안으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