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200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00화
200화. 소림사로
적운상이 마염견과 비무를 한 지 며칠이 지났다. 사람들은 그때의 흥분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들떠 있었다. 우습게도 가장 흥분을 한 사람은 소림사에서 온 지공이었다.
그는 지금껏 그렇게 가슴 떨리는 대결을 보지 못했었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두 사람의 비무를 보면서 하마터면 오줌까지 지릴 뻔했었다.
“지공 스님, 여기서 뭐하세요?”
“오, 백 소저로군요. 하하. 그냥 몸을 좀 풀고 있었습니다.”
백수연이 보기에는 아니었다. 그냥 몸을 푼 것치고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어찌나 열심히 무공을 수련했는지 입고 있는 승복이 완전히 땀에 젖어 있었다.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민둥머리에도 땀이 가득했다.
그걸 보고 백수연이 생긋 미소를 지었다. 요 며칠간 형산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마염견과 적운상의 비무에 큰 감동을 받고 밤낮으로 수련을 했다.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들리는 기합 소리에 잠을 못 잘 정도였다.
“그런데 백 소저께서 무슨 일로 온 겁니까? 저를 보러 온 것 같지는 않은데…….”
“아니에요. 지공 스님을 찾아왔어요. 운상이가 불러오라던 걸요.”
“그렇습니까?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좀 씻고 가겠습니다.”
“그러세요.”
지공은 그길로 냇가로 가서 땀을 씻어내고는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적운상에게 갔다.
“적 시주, 무슨 일입니까?”
“어서 오십시오. 떠난 줄 알았는데 아직 안 떠났군요.”
“하하. 떠나긴요.”
원래는 왔던 다음 날 가기로 했던 지공이었다. 그런데 적운상과 마염견의 대결을 보고 감동을 받아서 아직까지 남아 있었던 것이다.
“무림첩을 돌려야 하지 않습니까?”
“천천히 돌려도 됩니다.”
지공은 처음에 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로 적운상을 대했다. 하긴 그런 것을 봤으니 그러고도 남았다.
“실은 물어볼 것이 있어서 오시라고 한 겁니다.”
“뭐든지 물어보십시오. 소승이 아는 건 뭐든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번 무림대회에 무림문파 말고 상단도 참여를 하는가 싶어서요.”
“상단이요?”
“그렇습니다. 혹시 대성상단에도 무림첩이 갔습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저는 호남남방지역만 맡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상단에는 무림첩을 돌리지 않았을 겁니다. 그랬다면 저도 호남제일상단을 가지고 있는 상관보에 무림첩을 전해야 했을 겁니다.”
“그쪽에 전하는 무림첩이 없습니까?”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사실대로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천만에요. 그 정도야 뭐…… 하하.”
“같이 점심을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물론 좋죠.”
“그럼 그때 뵙죠.”
“그럼.”
지공이 방을 나가자 적운상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구보지성을 만나서 일을 해결하겠다던 왕대곡에게서는 아직도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그쪽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소림사로 가다가는 중간에 또 살수들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일단 사부님과 상의를 해야겠군.’
적운상은 임옥군을 찾아가서 그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임옥군이 조금 굳은 얼굴로 말했다.
“흐음…… 그거 큰일이로구나. 그래,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제가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어차피 소림사가 있는 하남으로 가려면 호북을 거쳐서 가야 합니다. 가서 대성상단의 일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사부님은 예정대로 날짜에 맞춰서 움직이시면 됩니다. 그러면 중간에 제가 합류하겠습니다.”
“너 혼자서는 위험하지 않겠느냐?”
“괜찮습니다. 왕 대협도 있으니 별일 없을 겁니다.”
“그럼 언제 떠날 생각이냐?”
“하루라도 빨리 떠나면 좋으니, 내일 떠날까 합니다.”
“팔의 상처가 아직 다 낫지 않았잖느냐? 좀 더 있다가 가거라.”
“왼팔이라 크게 불편하지 않습니다. 칼을 휘두르는데도 불편함이 없고요.”
“그래도 안 된다. 더 있다가 추위가 좀 누그러지면 그때 움직이거라.”
“하지만 사부님…….”
“시끄럽다. 네가 무공이 좀 강해졌다고 이제 사부 말까지 안 듣는 게냐?”
임옥군이 목소리를 높이자 적운상이 찔끔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사부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그동안 양악이하고 백 소저도 좀 보듬어 주고. 험.”
임옥군의 말에 적운상은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임옥군이 세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된 것은 백구환 때문이었다. 백구환이 백수연을 잘 부탁한다면서 비단과 은자, 그리고 손수 만든 명검을 보내온 것이다.
임옥군은 처음에 그걸 받고 영문을 몰랐으나 적운상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된 일인지를 알게 됐다. 주양악이야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던 일이지만 백수연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백태정이 화를 내며 돌아간 후로는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잘 맺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천응방이면 나쁘지 않았다. 더구나 호남제일미라고 할 정도로 예쁘지 않은가?
전에야 홍은령 때문에 어쩔 수없이 거절을 했다지만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었다. 이에 임옥군은 백수연을 벌써부터 한 가족처럼 대하고 있었다.
방을 나온 적운상이 잠시 서 있자 백수연이 다가왔다.
“뭐해?”
“응. 사부님하고 얘기 나누고 왔어.”
“무슨 얘기?”
“훗! 사부님이 백 누이 좀 잘 보듬어 주래.”
적운상이 하는 말에 백수연의 얼굴이 빨개졌다. 두 사람이 양쪽 어른들의 허락을 받기는 했지만 아직 혼전이라 같이 자지는 않았다. 주양악도 마찬가지였다.
밖에서야 보는 눈이 없으니까 때때로 같이 자기도 했지만 여기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부터 뭐할 거야?”
“글쎄?”
“잘됐네. 그럼 같이 구 어르신의 묘에 가자.”
“사숙조님의 묘에?”
“응. 그분이 널 이렇게 키워줬잖아. 가서 인사드려야지.”
“그래. 그럼 양악이도 같이 가자. 양악이도 돌아와서 아직 한 번도 가지 않았으니까.”
“그래. 그럼. 내가 가서 불러올게.”
“응.”
잠시 후에 백수연은 주양악과 함께 왔다.
“구 사숙조님한테 간다고?”
“그래.”
주양악이 조금 머뭇거리다가 환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 *
적운상은 구혁상의 묘에 도착하자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사숙조님, 저 왔습니다. 사숙조님 복수도 하고 양악이도 찾아왔어요. 저 잘했죠?”
적운상이 중얼거리는 말을 들으면서 주양악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뭐해? 너도 인사해야지.”
“응.”
주양악도 적운상 옆에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사숙조님, 적 사형은 걱정 마세요. 제가 잘 보살필게요.”
“누가 누굴 보살펴?”
그때 백수연도 옆에 와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면서 말했다.
“운상이가 바보 같더라도 제가 잘 챙길게요.”
“백 누이!”
“왜? 내가 틀린 말 했어?”
백수연이 미소를 지으면서 하는 말에 적운상은 그저 한숨만 푹 내쉬었다. 그러다가 묘비가 조금 비뚤어진 거 같아서 그걸 잡아서 바로 세우려고 했다. 그러자 그게 그냥 쑥 빠졌다.
“뭐야?”
적운상은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구혁상의 묘였다. 묘를 만들 때 적운상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허름하게 만들었을 리가 없었다.
적운상이 묘비를 옆에 놓고 묘를 살폈다. 딱 잡아 말할 수는 없었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조사묘에서 수련하고 있을 때 임옥군이 와서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 임옥군은 천마총의 보물을 구혁상과 함께 묻었다고 했었다.
적운상은 허리에 차고 있던 태룡도를 뽑았다. 백수연과 주양악은 적운상이 갑자기 칼을 뽑아들자 의아하게 여겼다.
“왜 그래?”
“잠깐 기다리고 있어.”
적운상은 주양악이 묻는 말에 그렇게 대답하고는 태룡도로 구혁상의 묘를 파기 시작했다.
“사, 사형! 이게 무슨 짓이야? 미쳤어?”
죽은 사람의 묘를 파는 것은 그 사람을 욕되게 하는 일이었다.
“확인할 게 있어. 비켜서.”
“뭔데 그래? 뭔데 갑자기 사숙조님의 묘를 파는 거야?”
주양악이 소리를 지르다가 적운상의 굳은 표정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적운상은 주양악과 다시 만난 이후로 한 번도 저런 표정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주양악이 어쩔 수 없이 비켜서자 적운상이 계속 묘를 파기 시작했다.
그러다 관이 나오자 망설이지 않고 관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구혁상의 유골과 그 옆에 보따리가 있는 것이 보였다. 적운상이 그걸 끌러봤다. 그 안에는 소림사의 신물인 녹옥불장을 비롯한 천마총의 보물들이 들어 있었다.
“양악아.”
“왜?”
“여기 있는 것들 확인해봐. 그때 네가 가지고 나온 것들 맞아?”
적운상의 말에 주양악이 물건들을 확인했다. 천마총에서 가지고 나왔던 물건들이 확실했다.
“응. 모두 맞아. 왜? 이것 때문에 사숙조님의 무덤을 판 거야?”
“없어진 건? 없어진 건 없어?”
주양악이 다시 한 번 물건들을 확인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모르겠어.”
주양악의 대답에 적운상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물었다.
“네가 천마의 내단을 먹었을 때 서린이가 성화신공을 알려줬다고 했었지?”
“응.”
“그럼 그 비급도 있었겠군.”
“어? 그러고 보니 그게 없네. 맞다. 우리가 동굴의 벽에 있는 것을 베낀 것도 없어.”
“그게 뭔데?”
“소림사와 무당파 무공의 파해법.”
“그리고? 그 외에는 또 없는 거 없어?”
“그리고…….”
주양악이 기억을 더듬다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것도 없어. 성화…… 성화…… 아무튼 지팡이 같은 봉이 하나 더 있었어.”
적운상은 자신의 예상이 맞자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누가 묘를 파헤치고 그것을 가져갔단 말인가?
‘설마…….’
그럴 리가 없었다. 적운상은 아니라 생각하며 고개를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