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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192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4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92화

192화. 천응방에서 (1)

 

적운상은 일행과 함께 큰 마을에 도착했다. 대로에는 잡다한 물건들을 파는 상인들과 오가는 행인들로 북적거렸다.

“사람들이 많네.”

주양악이 기분이 좋은 듯이 중얼거렸다. 그동안 강변을 따라 걸어왔기 때문에 이렇게 큰 마을에 들어서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조심해.”

“에? 뭐를?”

적운상이 갑자기 주양악을 잡아당겨 품에 안았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자의 손을 잡았다. 그는 초라한 행색의 중년사내였는데 적운상에게 잡힌 손에는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파지지지직!

“크아아아악!”

적운상이 잡고 있는 손을 통해 뇌기를 쏟아 붓자 중년사내가 크게 비명을 질렀다. 오가는 행인들이 그 비명소리에 놀라 적운상을 바라봤다.

그러건 말건 적운상은 그 사내를 옆으로 던졌다. 그러자 그쪽에서 달려들던 사내 한 명과 부딪치며 뒤로 넘어졌다.

“뭐야?”

뒤늦게 살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운산과 운청이 재빨리 검을 뽑았다.

“끝났어.”

“뭐?”

“두 명뿐이야. 모두 처리했으니까 가자.”

그제야 적운상이 하는 말을 이해하고 운산과 운청이 검을 집어넣었다. 적운상은 가까운 식당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점심때인데도 사람이 별로 없이 한적했다.

점소이가 주문을 받아갔다.

“아까 그들이 살수라는 것을 어떻게 안 겁니까?”

운청이 계속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무인들이 제일 꺼리는 상대가 바로 살수들이다. 특히 아까처럼 사람들 틈에 섞여서 손을 쓰는 그런 살수들은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일단 그들이 살수라는 걸 알아내기만 하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게 어려웠다. 그래서 지근거리까지 그들이 오도록 허용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적운상은 용케 살수들을 미리 찾아냈다. 아까 대로에서처럼 암습을 받은 것이 벌써 세 번째였다. 살수들은 떼로 덤비다가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지 암습으로 방법을 바꿨다.

첫 번째는 객잔에서 자고 있을 때 암습을 해왔다. 그리고 두 번째는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술에 취한 주정뱅이가 암습을 했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였던 것이다.

적운상은 그때마다 항상 살수들을 미리 알아보고 대처를 했다. 그게 신기해서 운청이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냥, 감이야.”

“단순히 감으로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들을 선별해냈다는 겁니까?”

운청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응.”

“그러지 말고 뭔가 비법이 있으면 알려주지 그래?”

운산이 친근감 있게 말하면서 팔꿈치로 적운상의 옆구리를 툭 쳤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 그럼 보일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정말이야.”

“그럼 너는 하루 종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거냐?”

“그렇지.”

“말해주기 싫은 거로군.”

운산은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이 어떻게 하루 종일 긴장을 한 채로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 심력소모가 커서 자칫 폐인이 될 수도 있었다.

“말해줘도 안 믿는군. 나를 따라다녔을 테니까 알 텐데.”

“뭐를?”

“혈마승들이 얼마나 지독하게 덤벼들었는지. 수십 명씩 기습을 하는 건 예사였고 살기를 죽이고 접근해서 시도 때도 없이 암습을 했었지. 잠시 긴장을 늦추면 그대로 목이 날아가는 거야. 그래서 나는 한시도 긴장을 푼 적이 없어. 잠잘 때조차도 암습에 대비해서 선잠을 잤다. 내가 아직까지 살아 있는 이유가 그거야. 혈마승들이 그때 하던 것에 비하면 지금 놈들이 하는 짓거리는 애교로 봐줄 정도지.”

“음…….”

운산은 적운상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깨닫자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꼈다. 적운상을 볼 때마다 자신과는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들곤 하는데 지금도 그랬다.

‘그것이 강자의 세상이겠지.’

스스로 납득을 하면서 운산이 점소이가 내려놓은 소면을 먹으려고 했다. 그러자 적운상이 그의 손을 잡았다.

“왜?”

“독이 있어.”

“뭐?”

“다른 사람들도 먹지 마.”

적운상이 하는 말에 모두들 멈칫하며 젓가락으로 집고 있던 요리를 내려놓았다.

“이대로 나가자.”

“독을 푼 놈을 그냥 놔두고 가자고?”

“죽여도 마찬가지야. 또 다른 놈들이 독을 탈걸.”

“배고픈데…….”

주양악이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을 나오자 적운상은 길거리에서 만두를 몇 개 사서 나눠줬다.

“하아…… 이제 음식도 마음대로 못 먹는군. 여기에는 독이 안 들어 있는 거야?”

운산의 말에 적운상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모르지.”

“퉤!”

한 움큼 만두를 베어 물었던 운산이 입에 있던 만두를 뱉어냈다. 혹시나 독이 있을까봐 불안했던 것이다. 하지만 적운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것을 보고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

“모르니까 모른다고 했을 뿐이야.”

“그래. 너 잘났다.”

“그들이 계속 이런 식이면 형산파에 도착해서도 문제 아닙니까?”

운청이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걱정 없어. 형산파 안에서는 이런 짓 못하니까.”

운청은 적운상이 도대체 뭘 믿고 저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형산파가 요즘 세가 조금 강해지고는 있었지만 그래봤자 호남의 지방에 있는 작은 문파에 불과했다. 듣기로는 강한 사람도 적운상과 주양악뿐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저렇게 확신을 갖고 움직이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성도인 장사에 도착하기까지 두 번의 암습이 더 있었다. 식사는 항상 독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먹었다.

“천응방으로 가지. 만날 사람도 있고, 무기도 하나 구해야 하니까.”

“천응방이라면 도검을 잘 만들기로 유명한 곳 아닌가?”

“맞아.”

적운상이 미소를 지으면서 앞장섰다.

* * *

 

“어서 오십시오. 병장기를 맡기실 겁니까? 아니면 사러 오신 겁니까?”

적운상이 일행과 함께 천응방 안으로 들어서자 염소수염을 기른 사내가 와서 반겼다. 주위에 있는 대장간에서는 망치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백 누이를 만나러 왔는데.”

“네?”

염소수염의 사내가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백 누이에게 가서 적운상이 왔다고 하면 알 거요.”

“백 누이라면…… 묘묘 아가씨를 찾는 겁니까?”

“묘묘의 언니를 말하는 거요.”

“그럼 수연 아가씨를 찾아오신 겁니까?”

“그렇소.”

“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염소수염의 사내가 자리를 비우자 적운상이 주위를 둘러봤다. 예전에 왔을 때와 바뀐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때 웬 사내 한 명이 기다란 창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다 적운상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어? 적 공자 아닙니까?”

“훗! 오랜만이군.”

적운상을 알아본 사내는 다름 아닌 진웅이었다.

“정말 오랜만이군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잘 지냈지.”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겁니까? 혹시 백 소저를 보러 온 겁니까?”

“그런 이유도 있고, 칼을 하나 살까 해서 들렀지.”

“어! 거기서 뭐해? 앗! 양악이지?”

진웅의 뒤에서 뾰족한 외침이 들려오자 모두들 그쪽을 봤다. 거기에는 머리를 양쪽으로 묶고 치마를 입었지만 허리에는 검을 두 개나 차고 있는 여인이 서 있었다. 백묘묘였다.

“묘묘!”

“살아 있었구나!”

두 사람이 달려들어서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어떻게 된 거야? 정말 죽은 줄 알았어.”

“헤. 죽기는 누가 죽었다고.”

“아! 적 오라버니도 있었네. 적 오라버니가 구해온 거야?”

“응.”

“잘됐다. 너무 반가워.”

“그런데 여자다워졌네.”

주양악이 백묘묘를 보며 말했다. 예전에는 항상 바지를 입고 다니던 그녀였다. 그런데 치마를 입고 있으니 그렇게 보였다.

“으응…… 그렇게 됐어.”

백묘묘가 웃으면서 진웅을 힐끗 봤다. 그러자 진웅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두 사람의 눈치가 이상하자 주양악이 실눈을 뜨고 백묘묘를 노려봤다.

“뭐야? 두 사람 사귀는 거야?”

“아니…… 사귀는 건 아니고…… 야, 야, 약혼했어.”

“뭐어?”

주양악이 놀란 얼굴을 하다가 백묘묘의 등을 세차게 한 대 때렸다.

“잘됐네! 축하해!”

“응. 고마워. 그런데 저 사람들은 누구야?”

“인사해요. 여기는 천응방의 차녀예요. 이쪽은 이번에 내 사매가 된 호월 언니. 그리고 저기 두 사람은 무당파에서 왔어.”

“반가워요. 백묘묘예요.”

백묘묘가 생긋 웃으면서 인사를 하자 제갈호월과 운산, 운청도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진웅도 끼어들어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헤에…… 그보다 적 오라버니는 여기에 오면 안 되는데.”

한창 이야기 중에 백묘묘가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왜?”

주양악이 궁금해하며 이유를 묻자 백묘묘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요즘 언니랑 은성 오라버니를 다시 이어주려고 아버님이랑 신검문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거든. 지금도 은성 오라버니랑 신검문의 문주님이 와 있어.”

“그게 사형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데.”

“그게 그러니까…… 으그…… 넌 아무것도 모르지? 그럼 그냥 모른 채로 있어.”

“뭔데? 내가 알면 안 되는 거야?”

“그런 건 아닌데…….”

백묘묘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말끝을 흐리고 있을 때였다. 신검문의 문주인 이태산과 이은성이 천응방의 방주인 백태정과 함께 안에서 나왔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백수연이 무표정하니 걸어 나왔다.

백수연은 아무 생각 없이 이태산과 이은성을 배웅하려다가 적운상을 보고 그대로 딱 굳어버렸다. 백태정은 갑자기 백수연이 이상하자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돌려봤다. 그러자 적운상이 백수연을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저 자식이 왜 또…….’

백태정은 임옥군한테 백수연과 적운상을 이어주자고 끈질기게 달라붙었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금검문의 홍문형이 방해를 한 이유도 있었지만, 적운상을 따라갔던 백수연이 돌아와서 모든 것을 포기한 듯이 행동한 이유가 가장 컸다.

“응? 저 사람은 형산파의 적운상이 아닌가?”

이태산이 적운상을 알아봤다. 옆에 있던 이은성도 적운상을 알아보고 백수연을 봤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백수연은 적운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백수연이 적운상에게 가려고 했다. 백태정이 그걸 간파하고 재빨리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하지만 돌아보는 백수연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는 것을 보고 한숨을 푹 쉬며 손을 놔줬다.

백수연은 적운상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나 곧 걸음이 빨라지더니 이내 뛰어가서 적운상에게 안겼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리 무가의 여식이라지만 그래도 지킬 건 지켜야 하거늘,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외간남자(?)를 저렇게 껴안다니,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다.

“무사했구나.”

“응.”

“돌아왔구나.”

“응.”

“안 올 줄 알았어.”

“응.”

“다행이야.”

적운상은 백수연의 등을 다독여주다가 힐끗 주양악을 봤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뭐가 뭔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저렇게 좋아하면서 나한테 시집오겠다니. 참 나…….’

이은성이 적운상에게 안겨 있는 백수연을 보며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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