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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190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8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90화

190화. 사투(死鬪) (4)

 

돛대는 강물을 따라 계속 흘러가다가 속도가 점점 줄더니 이내 강가에 걸렸다.

“얼마나 떠내려 왔지?”

“모르겠어요.”

운산의 물음에 운청이 고개를 저으며 왕대곡을 봤다.

“아직 호북일세.”

“이제 어쩌지? 다시 배를 타야 하나?”

“아니. 육로로 가세나. 수로를 이용하면 이 같은 일을 또 당할 수도 있네.”

“그렇군요. 그나저나 그 늙은이가 아주 작심을 한 모양이네. 정말 눈에 뵈는 게 없나…….”

운산이 화를 내며 중얼거렸다. 그 늙은이란 구보지성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가 이리 악독할 줄은 나도 생각 못했네. 오랜 세월 친구라고 믿어온 내가 한심하군.”

왕대곡이 한탄을 하며 말하자 운산은 괜히 말을 꺼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닙니다. 왕 대협. 왕 대협 잘못이 아닙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그 늙은이가 그런 자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게나 말일세. 후우…… 날이 어두워지는 것 같군. 어서 가세나.”

“네.”

“적운상은 좀 어떤가?”

주양악이 고개를 저었다. 적운상은 아직도 잠이 든 채로 주양악의 등에 업혀 있었다.

“무겁지 않습니까? 이제 내가 업죠.”

운산의 말에 주양악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가벼워요. 그리고 계속 몸을 따뜻하게 해줘야 하니까 제가 업고 있을게요.”

“그도 그렇군요.”

운산이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주양악의 괴력을 잠시 잊고 있었다.

왕대곡이 앞장서자 모두가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왕대곡은 강변을 따라 계속 걸었다. 밤이 되자 기온이 내려가면서 추위가 더해졌다. 하지만 다행히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마을이 있다는 뜻이었다.

왕대곡은 그곳에 도착하자 객잔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워낙에 작은 마을이라 객잔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인근에서 가장 큰 집으로 가서 대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하룻밤 묵기를 청했다. 집주인이 경계를 하며 거절을 하려 하기에 손에 은자를 몇 개 쥐어줬다. 그러자 집주인의 태도가 바뀌더니 두말없이 방을 두 개 내줬다.

방은 상당히 비좁았다. 하지만 언제 또 대성상단에서 보낸 살수들이 기습을 해올지 몰랐기 때문에 좁아도 한집에 같이 있는 것이 좋았다.

방 하나는 왕대곡과 운산, 운청이 썼다. 그리고 다른 방은 주양악과 적운상, 제갈호월이 썼다.

원래는 적운상도 왕대곡과 같은 방을 써야 했지만 주양악이 당연하다는 듯이 방에 재우니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지 못했다.

한밤중에 주양악은 깜짝 놀라서 잠이 깼다. 적운상의 몸에서 열이 펄펄 났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그녀는 옆방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왕대곡이 자다 일어나서 적운상의 상태를 살폈다. 그러나 의술에 대해서는 거의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저번에 먹였던 내상약을 한 알 더 먹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조금씩 열이 내려갔다. 약 효과가 좋았던 것이다.

* * *

 

“음…….”

눈을 뜬 주양악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자신이 침상에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분명 여기에는 적운상이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옆에 앉아서 내공을 운용해서 적운상의 몸을 데워주다가 그대로 깜빡 잠이 들었었다. 그런데 왜 여기에 누워 있는 걸까?

주양악이 몸을 일으켰다. 창으로 들어온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셨다. 손으로 햇살을 가리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그곳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뭐를 보고 있는지 환하게 웃으면서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적운상이었다.

주양악은 잠시 동안 적운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적운상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러다 적운상과 시선이 마주쳤다.

“깼구나.”

적운상이 주양악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괜찮은 거야?”

“응. 괜찮아졌어.”

주양악이 침상에서 내려와 적운상을 꽉 껴안았다.

“사형이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었는데.”

“미안.”

적운상이 품에 있는 주양악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앞으로는 그러지 마.”

“응. 그럴게.”

침상에서 자고 있던 제갈호월이 눈을 떴다. 하지만 적운상과 주양악이 저러고 있으니 일어나서 분위기를 깨기가 좀 미안했다. 그래서 계속 자는 척을 하려고 했다.

“제갈 사매도 일어났네. 씻고 같이 밥 먹자.”

“네? 네.”

정말 귀신이었다. 어떻게 잠이 깬 걸 아는 걸까?

모두가 모여 앉아 아침식사를 했다. 운산과 운청은 여전히 티격태격했다. 주양악은 그녀답지 않게 적운상 옆에 딱 달라붙어서 반찬까지 챙겨줬다. 한 번 잃을 뻔하고 나서야 적운상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왕대곡이 심각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이대로는 안 될 것 같군.”

“그게 무슨 말입니까?”

“구보지성은 앞으로도 계속 살수들을 보내올 걸세. 돈이야 넘치고도 남는 사람이니 충분히 그럴 테지. 그래서 내가 그를 만나볼 생각일세.”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위험하겠지. 하지만 내게도 생각이 있네. 문제는 내가 아니라 자네들일세. 그가 아들의 팔을 자른 내게만 원한을 가진다면 상관이 없지만 그렇지는 않을 걸세. 내가 그를 만나서 일을 해결하는 동안 자네들이 버텨야 하는데 괜찮겠나?”

“차라리 무당파로 가는 것이 어떻습니까?”

운청의 제안에 왕대곡이 무릎을 탁 쳤다.

“그렇군. 지금까지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군. 구보지성이 아무리 날뛰어도 무당파를 상대로는 힘들지.”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적운상이 거절을 했다. 그러자 왕대곡이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이유가 뭔가?”

“저는 형산파를 떠나올 때 사부님에게 반년 안에 돌아가겠다고 약속을 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반년이 지났습니다. 사부님이 걱정을 많이 하고 있을 겁니다.”

“흠…… 그럼 서찰을 보내면 되지 않나?”

“그래도 직접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시 호북으로 돌아가면 저를 흉수로 알고 있는 군소문파들이 사람을 보내올 겁니다. 무당파에 누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그 정도는 충분히 막아줄 수 있어.”

운산이 답답한 듯이 말했다. 그러자 적운상이 미소를 지었다.

“마음만 받지. 아무튼 무당파로 갈 수는 없습니다.”

“형산파로 가면 계속 그들의 공격을 받아야 하네.”

“호남에만 들어서면 문제없습니다.”

“대성상단의 힘을 무시하지 말게. 달리 호북제일상단이라 불리는 것이 아닐세.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고 하지 않는가?”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실 저는 대성상단은 그리 염두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허…….”

왕대곡이 혀를 찼다. 도대체 뭘 믿고 저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까지 대성상단이 얼마나 대단한지 겪지 않았던가?

그런데 염두에도 두지 않고 있다니, 허세인지 배짱인지, 아니면 정말 그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왕 대협, 그보다 부탁이 있습니다.”

“뭔가?”

“다시 한 번 저와 겨뤄주시겠습니까?”

생각지도 않은 말에 모두가 적운상을 봤다. 어제 열이 펄펄 끓어서 죽네 사네 하던 사람이 비무는 무슨 비무란 말인가?

“이유가 뭔가?”

“실은 비무를 약속한 상대가 있습니다. 시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지금의 저로서는 버거운 상대입니다. 그래서 떠나시기 전에 다시 한 번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왕대곡이 승낙을 했다.

“좋네. 하지만 점심때까지는 푹 쉬게. 점심을 먹고 겨뤄보세나.”

“감사합니다.”

적운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저기…….”

운산이 왕대곡에게 의자를 당겨 앉으며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 왕대곡은 듣지 않아도 그가 하려는 말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좋네. 자네에게도 한 수 가르쳐주지.”

“흐흐흐.”

운산이 좋아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 * *

 

“사형, 정말 겨룰 거야?”

적운상과 함께 처마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주양악이 물었다.

“응. 왕 대협은 나와 동수거나 그 이상이야. 왕 대협을 이길 수 있다면 금마도의 그 노인도 이길 수가 있어.”

“하지만 지금은 몸이 정상이 아니잖아.”

“괜찮아. 조금 쉬었더니 많이 좋아졌어.”

“사형이 무슨 철인인 줄 알아? 그렇게 몸을 막 굴리면 나중에 후회한다.”

주양악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적운상이 그런 주양악을 끌어당겨서 품에 안았다. 그러자 주양악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쉿! 나는 잔소리하는 여자는 좋아하지 않아.”

“치이…… 나는 만날 다치는 남자는 좋아하지 않네요.”

“걱정 말래도 그러네.”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면서 주양악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 됐다.”

“응.”

적운상이 마당으로 갔다. 왕대곡은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운산과 운청, 그리고 제갈호월이 조금 떨어진 곳으로 물러났다.

“조심해. 사형.”

“알았어.”

주양악도 제갈호월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러자 왕대곡이 검을 뽑았다.

“가볍게 해보도록 하지.”

“한 수 배우겠습니다.”

적운상이 포권을 취하고 백운검을 뽑아들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적운상은 왕대곡의 모습이 커 보였다. 마염견을 봤을 때도 그랬다. 심리적인 압박감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부상 때문에 시간을 끌면 내가 불리해.’

적운상은 빨리 승부를 낼 생각으로 처음부터 조사묘에서 익힌 베기를 쓰려고 마음먹었다. 몇 번이나 몸이 버텨줄지 의문이었지만 눈앞에 있는 거대한 산을 무너트리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슥!

적운상이 조금씩 거리를 좁혀갔다. 그러면서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기 위해 극한까지 정신을 가다듬어 집중했다.

쉭!

전혀 낌새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베기였다.

따앙!

왕대곡이 얼결에 베기를 막아냈다. 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적운상이 방금 한 베기는 굉장했다.

‘그때 나를 날려버린 것이 이거로군.’

왕대곡이 속으로 감탄을 하면서 적운상을 눈으로 쫓았다.

‘왼쪽!’

쉬익! 따앙!

“큭!”

제때에 맞받아쳤는데도 힘에서 밀렸다. 왕대곡이 뒤로 두어 걸음이나 물러났다. 적운상이 그런 왕대곡의 오른쪽으로 돌면서 다시 한 번 그 베기를 했다.

왕대곡은 적운상이 이번에도 그 베기를 할 것이라 여기고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먼저 맞받아쳐서 위력을 줄일 생각이었다.

후(後)의 선(先)!

늦게 출발했으나 먼저 상대를 제압하는 묘리였지만 곧 무리란 것을 깨달았다. 적운상의 베기는 너무나 빨랐다. 그리고 너무나 위력적이었다.

따앙!

왕대곡이 다시 뒤로 두어 걸음 밀려났다. 이렇게 되면 선(先)의 선(先), 적운상이 먼저 공격할 틈을 주지 않고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쉬쉬쉬쉬쉿!

왕대곡이 천중낙화검을 펼쳤다. 그리고 쉴 새 없이 적운상을 몰아붙여갔다. 이에 적운상은 제때에 검을 휘두를 수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계속 밀리다가 패하고 만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때 왕대곡이 갑자기 검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왜 검을 거둔 겁니까?”

“자네의 문제점을 알았기 때문일세.”

“제게 문제가 있습니까?”

“모르고 있었나 보군.”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정말로 뭔가 문제점이 있다면 찾아서 고쳐야 했다.

“무슨 문제점입니까?”

“무상지검의 경지는 넘어섰군.”

“그렇습니다.”

“그럼 심검의 경지에는 올랐나?”

“그런 것 같습니다.”

“대답이 불분명하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적운상은 심검의 경지에 대해서 말로만 들어왔었다. 그것도 그 같은 경지에 오른 사람에게서 들은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것이 있더라 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그 같은 경지에 확실히 올라서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막연하게 짐작만 할뿐이었다.

“지금껏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흐음…… 그럼 자네가 그동안 어떻게 수련해왔는지를 말해보게.”

적운상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에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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