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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184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6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84화

184화. 의지대로 (2)

 

운산과 운청은 적운상의 대담함과 수십여 명의 무인들을 압도하는 엄청난 기세에 크게 탄복을 했다. 지금 적운상이 상대하고 있는 자들은 그저 그런 별 볼일 없는 자들이 아니었다.

호북제일상단인 대성상단을 가지고 있는 구보세가와 호북제일세가인 제갈세가였다. 호북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세가 중에서 가장 세력이 강한 양대세가를 상대로 저런 배짱이라니, 그 사내다운 기개에 저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적운상은 주위를 한 번 쓸어본 후에 백운검을 거뒀다. 그리고 주양악과 제갈호월을 보며 말했다.

“가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적운상이 허락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호월은 제갈무양과 감혜인을 향해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아버님, 삼 년 전에 저한테 용기를 가지라 하셨지요. 제갈세가의 사람으로서 부끄럽게 살지 말라 하셨지요. 이제 그렇게 살아보려고 합니다. 아버님 뜻대로 강해지려 합니다. 스스로 납득할 만큼 강해지면 그때 돌아오겠습니다. 불효를 용서하세요.”

제갈호월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걸 보며 제갈무양은 멍하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감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눈물을 흘렸다.

제갈호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구보지성을 봤다. 독기가 가득한 눈이었다. 그렇게 보기만 할 뿐 제갈호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시선만으로도 모든 걸 다 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가요. 사형.”

제갈호월의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홀가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적운상이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었다. 주양악이 웃으면서 제갈호월의 손을 잡고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러자 앞에 있던 대성상단의 무사들과 제갈세가의 무사들이 분분히 길을 열어줬다.

머뭇거리던 운산도 후다닥 적운상을 따라 달렸다. 그걸 보고 운청이 한숨을 푹 쉬면서 몸을 날렸다.

* * *

 

“헤헤.”

적운상은 아까부터 계속 옆에서 알짱거리면서 실실 웃고 있는 주양악이 상당히 신경에 거슬렸다.

“왜?”

“아니 그냥…….”

적운상은 주양악이 왜 저러는지 알고 있었다. 제갈호월을 도와주지 않겠다고 하고선 그렇게 도와준 것 때문에 저러는 것이다.

“그만해.”

“내가 뭘?”

주양악이 딴청을 부리며 모르는 척했다. 그러자 적운상이 주양악의 머리를 양손으로 잡고 눈을 맞추면서 말했다.

“그만하라고.”

“아, 알았어.”

주양악이 찔끔하며 바로 대답을 했다. 하지만 적운상이 놓아주자 바로 혀를 삐죽 내밀었다. 그걸 보고 제갈호월이 작게 웃음을 지었다.

“제갈 사매.”

“네.”

“조금 고되더라도 참아. 큰 마을이 나오면 마차를 살 테니까.”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보다 팔은 괜찮나요?”

부목을 대놓았던 걸 그렇게 부숴버렸으니 괜찮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적운상은 제갈호월이 스스로를 책망할까 봐 내색하지 않으며 말했다.

“괜찮아.”

“그래도 한 번 봐요. 제가 의술을 조금 알아요. 책으로만 공부한 거지만 조금은 도움이 될 거예요.”

제갈호월이 그렇게 말하면서 적운상의 팔을 잡았다. 적운상은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추고 그녀에게 팔을 맡겼다.

“뼈가 붙은 후라 다행히 크게 잘못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응. 이 정도면 괜찮아. 고마워.”

“아니에요.”

적운상과 제갈호월이 그렇게 친근감 있게 구는 걸 보자 주양악은 기분이 이상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감정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참을 이동하자 큰 마을이 나왔다. 적운상은 그곳에서 마차를 한 대 구했다. 마차를 모는 건 자연히 운청이 해야 했다. 적운상은 환자였고, 주양악과 제갈호월은 여자였다. 결국 남은 건 운산과 운청이었는데 운청이 사제라 어쩔 수 없이 마차를 몰게 된 것이다.

“넓군요.”

제갈호월이 창밖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평야를 보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배어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운산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지금까지 많은 여자들을 만났지만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여자는 처음이었다. 이에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쿵쾅거렸다.

‘나는 도사다. 도를 닦는 도사다. 현혹되지 말자. 원시천존!’

운산이 속으로 도호를 외우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다 혹시나 적운상도 그런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같은 남자인데 자신만 그랬을 리가 없다 여긴 것이다.

그러나 적운상은 제갈호월의 그런 모습을 봤으면서도 무표정하니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왜?”

“응? 아니야.”

‘쳇! 너는 임자 있다 이거냐?’

운산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못마땅한 눈으로 적운상과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주양악을 봤다. 그때 밖에서 마차를 몰고 있던 운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형! 앞에 마을이 보여요. 저기서 쉬었다 갑시다.”

“그냥 가.”

“추워서 손발이 다 얼었어요! 그럼 사형이 마차를 모십시오.”

운청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오자 운산이 금방 말을 바꿨다.

“알았다. 쉬었다가 가자.”

운청은 마을로 들어서자 식당 앞에 마차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내리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으…… 춥다.”

운청이 자리를 잡고 앉자 그제야 적운상이 다 같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사형! 여깁니다.”

“그래.”

점소이가 주문을 받아 가자 주양악이 식당 안을 둘러봤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손님들이 꽉 차서 남은 자리가 없었다. 그러다 한 탁자에 홀로 앉아 있는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기이한 느낌의 노인이었다. 주양악은 그 노인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봤다. 하지만 계속 그 노인이 머릿속에 남았다. 그래서 다시 그 노인을 봤다. 그러자 노인과 또다시 눈이 마주쳤다.

‘뭐지?’

두 번이나 그렇게 눈이 마주쳤다는 건 노인이 계속 이쪽을 보고 있다는 뜻이다.

“왜 그래요?”

제갈호월이 묻자 주양악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대답했다.

“저기 있는 사람이 자꾸 이쪽을 보는 것 같아서요.”

“누구요?”

“저기 있는 할아버지요.”

주양악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정말 웬 노인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누구죠? 혹시 아는 사람이에요?”

“아니요. 몰라요. 처음 보는 할아버지예요.”

제갈호월과 주양악이 대화하는 것을 듣고 있던 운산이 누군가 싶어서 고개를 돌렸다.

“헛!”

운산은 노인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온몸의 솜털이 바짝 서는 느낌에 저도 모르게 하마터면 검을 뽑을 뻔했다.

“사형, 왜 그러는 겁니까?”

운청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그러다 운청도 노인과 눈이 마주치자 빠르게 검을 잡았다.

탁!

옆에 앉아 있던 적운상이 운청의 손을 잡았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검을 뽑아들었을 것이다. 그제야 마음을 좀 진정시킨 운청이 적운상을 봤다.

적운상은 노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시선을 마주치자 팽팽한 긴장감이 식당 안을 꽉 메웠다.

“뭐, 뭐지?”

“뭐야, 이건?”

주위에 있던 손님들이 영문도 모르고 중얼거렸다. 갑자기 오싹한 느낌과 함께 소름이 돋았기 때문이다. 몇몇 무인들은 그 긴장감을 이해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원인을 찾고자 했다. 그러다 노인과 적운상을 보고는 자신들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일촉즉발(一觸卽發)!

건드리는 순간 터질 것 같은 팽팽한 분위기였다. 적운상의 옆에 있던 운산과 운청은 바짝 긴장한 채 언제든지 검을 뽑을 준비를 했다. 그러나 적운상은 여전히 노인을 쳐다보기만 할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제법이로군.’

노인은 흡족한 얼굴로 시선을 거두고 식사를 마저 했다. 적운상도 무표정하니 점소이가 내려놓은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른 사람들도 다시 왁자지껄하니 식사를 했다.

“대성상단에서 고용한 고수인가?”

운산이 촉촉하게 땀이 배어 있는 손을 옷에 슥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아니기를 바라야지요.”

대성상단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저 정도의 고수를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또 모르는 일이었다.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일행이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왔지만 노인은 여전히 그곳에 남았다. 따라올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운산이나 운청은 찜찜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지만 적운상은 별일 아니라는 얼굴이었다.

“조금만 더 가면 호북을 벗어나겠군. 배를 이용해서 가지.”

“으…… 너무 춥지 않아? 이렇게 추운데 강바람을 맞자고?”

운산이 그 커다란 덩치를 웅크리며 엄살을 떨었다.

“그럼 따로 가든가.”

“너무 매정하게 구는 거 아니야? 그러다 아까 식당에서 봤던 그 노인과 같은 고수가 나타나면 어떻게…….”

말을 하던 운산이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정말 아까 식당에서 봤던 노인이 느긋하게 뒷짐을 지고 오고 있었다.

“제길. 이거 위험한데. 사제, 너는 두 사람을 보호해서 이곳을 벗어나. 그동안 우리 둘이 막아보…….”

운산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적운상이 노인을 향해 걸어갔다. 그걸 보고 운산이 놀라서 소리쳤다.

“이봐! 혼자서는 무리야!”

“기다려요.”

주양악이 운산을 붙잡았다.

“뭐야?”

“사형은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지 않아요. 나서지 말아요.”

“아까 그 같은 기세를 보고도 그런 말을 하는 거요?”

“알아요. 그러니까 그냥 있어요.”

“하…… 참 나…….”

주양악이 잡은 팔을 놓지 않으며 말하자 운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적운상은 노인과 서너 걸음의 간격을 놓고 멈춰 섰다. 검을 뽑아 휘둘러도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을 거리였다. 노인이 그것을 알아채고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마염견이라고 하네.”

“적운상입니다.”

“알고 있네. 옥평이에게 들었네.”

“옥평이라면…….”

적운상이 선뜻 기억을 해내지 못하자 마염견이 덧붙여 말했다.

“자네가 내게 보여주라고 어깨에 구멍을 내지 않았나? 남예는 인질로 잡고 말이야.”

그제야 금마도가 생각난 적운상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어떤가? 지금 괜찮겠나?”

당장에 겨루자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듣고 뒤에 있던 운산과 운청이 더 긴장을 했다.

“지금은 안 되겠군요. 혈불에게 부러진 팔이 아직 낫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손이 얼어서 감각이 좀 무딥니다. 이런 상태로 싸우면 제가 질 겁니다.”

‘바, 바보 같은 사형. 그런 걸 왜 다 말해주는 거야?’

주양악은 적운상이 저러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질 것 같으면 허세라도 떨어야지 그런 걸 왜 말해준단 말인가?

“혈불을 베었나?”

“그렇습니다.”

“그를 상대하고 왼팔 하나 부러졌다면 이득을 본 셈이로군.”

“그를 아십니까?”

“물론이지. 이번에 그를 움직인 것이 나일세.”

아예 생각지도 못했던 일은 아니었다. 이에 적운상은 별로 놀라지 않았지만 운산과 운청은 아니었다. 도대체 저 노인이 누구이기에 혈불을 움직일 수가 있단 말인가?

두 사람은 아직까지 그가 금마도의 도주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자네하고는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싶군. 어떤가?”

“일행들이 싫어할 겁니다.”

“그럼 저들을 죽이면 되겠군.”

“어려울 겁니다.”

“허! 막을 자신이 있나?”

“막지는 못해도 저들이 도망칠 때까지 붙잡아둘 자신은 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마염견이 입 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웃다가 갑자기 검을 뽑았다.

쉭!

마염견의 검이 적운상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적운상은 그런데도 꼼짝도 않고 있다가 검이 지나감과 동시에 백운검을 뽑았다.

파핫!

적운상은 마염견의 허리를 베려고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마염견은 이미 공중으로 훌쩍 날아올라 있었다.

“후후. 섬뜩하구만.”

땅으로 내려선 마염견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할 겁니까?”

“아닐세. 며칠 말미를 주지. 언제가 좋겠나?”

“한 달 정도면 팔이 나을 것 같습니다.”

“좋네. 그럼 그때 찾아가지.”

마염견이 그렇게 말하면서 검을 거두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적운상은 가만히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백운검을 집어넣었다. 그러는 그의 손에는 촉촉하니 땀이 배어 있었다.

마염견이 섬뜩하다고 했지만 정말로 섬뜩한 건 바로 적운상이었다. 방금 마염견이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을 때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났다면 그대로 목을 베였을 것이다. 그대로 가만히 있었기에 살 수 있었다.

‘괴물이군.’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조사묘에서 폐관을 하고 나온 이후로 스스로의 무공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랬기에 혈불까지 벨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런 거대한 벽이 가로막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승부에 자신이 없는 상대는 처음이었다.

“사형. 괜찮아요?”

주양악이 다가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응. 괜찮아.”

적운상이 걱정 말라는 듯이 주양악의 머리를 살짝 헝클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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