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77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77화
177화. 제갈세가 (2)
콰아아아아아아!
깎아지른 것 같은 거대한 절벽에서 힘차게 쏟아지는 폭포소리가 주위를 꽉 메웠다. 그곳에 한 사내가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보통 체구에 낡은 적삼을 입고 있었는데, 앉아 있는 자리 옆에는 투박한 장검이 하나 놓여 있다.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그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사형.”
폭포 소리 때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야 정상이건만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마치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생생했다. 그를 부른 도옥평의 내공이 그만큼 절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산과 같이 앉아 있는 사내에 비하면 아직도 한참이나 부족했다. 그는 마염견의 대제자이자 도옥평의 사형인 방성이었다.
“사형.”
도옥평이 다시 방성을 부르자 그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
탁한 저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상대에게 위압감을 줬다. 도옥평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마염견 밑에서 수년간 무공을 배우며 방성과 함께 지냈지만, 여전히 저 목소리에는 주눅이 들었다.
거기에는 심리적인 것도 컸다. 방성은 벽이었다. 도옥평이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었다. 그러한 벽이 앞에 있으면 누구라도 주눅이 들기 마련이다.
도옥평은 아직도 그 벽이 너무나 높아 보인다는 것에 크게 실망했다. 그동안 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노력을 했건만 실력의 차이는 전혀 줄지 않았다. 겨루지 않아도, 이렇게 뒷모습만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겨루고 싶습니다.”
도옥평이 간신히 입을 뗐다.
“…….”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도옥평의 옆에 있던 임진숭이 무료하니 주위를 둘러봤다. 장엄하니 흘러내리는 폭포의 절경이 그를 압도했다. 잠시 그걸 보며 잡생각을 하고 있는데 방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지.”
방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도옥평이 그런 방성을 향해 검을 겨눴다. 방성은 검을 뽑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웃!”
은은하니 덮쳐오는 기세를 느낀 임진숭은 숨이 턱하니 막혀왔다. 이에 저도 모르게 두어 걸음을 물러났다. 그러면서 도옥평을 보니 그는 몸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두려움을 느낀 것인가?’
임진숭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곧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도옥평은 전율하고 있었다. 방성과 같은 강자와 검을 섞을 수 있다는 것에 환희하고 있었던 것이다.
‘천생 무인이로구만.’
강자를 보면 보통은 두 가지 반응이 나온다. 하나는 겁을 먹고 수그리는 것이다. 강아지가 꼬리를 말듯이 스스로의 약함을 인정하고 알아서 물러난다. 그리고 또 하나는 도옥평과 같이 피가 끓어올라 주체를 못하는 경우다.
‘심검의 경지에…… 올랐나?’
도옥평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봤던 방성의 실력은 이렇지 않았었다. 물론 그때도 강하기는 했지만 지금과 같이 이렇게 거대해 보이지는 않았었다. 이건 마치, 사부인 마염견을 대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도옥평은 해일과 같이 끊이지 않고 덮쳐오는 방성의 기세에 정면으로 맞섰다. 파도에 휩쓸려 가는 작은 배처럼 위태위태했지만 물러서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버텼다. 물러서면 그것이 곧 패배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조금은 늘었구나.”
방성이 하는 말에 도옥평의 눈빛이 변했다. 항상 저랬다. 방성은 항상 도옥평을 낮춰 봤다. 한 번도 동등선상에 놓고 본 적이 없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도옥평이 한 걸음을 나아가며 검을 움켜쥔 손에 힘을 줬다.
“와라.”
방성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천천히 도옥평에게 다가갔다.
“하압!”
도옥평의 입에서 힘찬 기합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땅을 박차고 방성을 향해 쇄도해 갔다.
카가가가가각!
단 일검의 승부였다. 도옥평은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을 찔렀다.
신검합일(身劒合一)!
도옥평은 검과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 누가 봐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깔끔한 일검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높은 경지에 올라 있는 방성을 이기기에는 무리였다.
도옥평의 검이 방성의 가슴 앞에 이르렀을 때, 방성의 검이 움직였다. 그의 검은 도옥평의 검을 옆으로 밀어내며 그대로 찔러 들어왔다.
너무나 시기적절한 때에, 딱 필요한 만큼의 움직임이었다. 도옥평이 그대로 계속 검을 찔러간다면 죽고 싶어서 스스로 방성의 검에 달려드는 꼴이었다. 그렇다고 물러서기에는 방성의 검이 너무나 빨랐다. 피하기가 힘들다면 막아내는 수밖에 없다.
도옥평은 검을 비틀어 올렸다. 찔러가던 검의 방향을 그렇게 억지로 비트니 몸에 무리가 왔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방성은 도옥평이 사제라고 해서 봐주거나 하지 않는다. 지금껏 수없이 많은 비무를 해왔지만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초식을 전개해서 못 막아내면 끝이었다. 절대로 손에 사정을 둬 중간에 멈추지 않았다.
파각!
“크윽!”
도옥평의 어깨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완벽한 패배였다. 방성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검을 한 번 찔러 넣었을 뿐이다. 도옥평은 그걸 어떻게 하지 못해 억지로 틀어 올리다가 진 것이다. 그걸로 승부는 끝이었다.
“다쳤군. 그런 몸으로 나와 겨루려고 한 거냐?”
“헉…… 헉…… 처음부터 무리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멍청한 놈. 그렇게 베이니까 속이 좀 편해졌냐?”
마치 도옥평의 속을 다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말이었다. 방성의 말대로 도옥평은 그저 객기를 한 번 부리고 싶었다. 적운상에게 어이없이 패한 이후, 마염견에게 아직 한참 멀었다는 말까지 듣자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걸 풀고자 방성을 찾은 것이다. 커다란 벽에 세차게 한 번 부딪치고 나면 마음이 조금 풀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염견도 그것을 알기에 방성을 이기고 오라는 무리한 조건을 내건 것이다.
“후욱…… 더 답답해요.”
“그 답답함을 없애려면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큭큭.”
너무나 쉽게 말한다. 천재라 불리던 자신보다 늘 한 발 앞서 나가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방성이었다.
“형산파에 적운상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사부님이 그를 직접 상대하겠다고 하더군요.”
“네가 계기로구나.”
“맞습니다. 그는…… 사형만큼이나 강합니다.”
“그럼 사부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다.”
“아니요. 방금 말했잖습니까? 그는 사형만큼 강합니다.”
도옥평이 힘주어 말하면서 방성을 봤다. 방성은 가만히 도옥평의 시선을 받으면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방금 도옥평이 한 말, 적운상이 방성만큼 강하다는 말은 마염견이 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방성의 무공은 지금 최고의 절정기를 맞고 있었다. 계속 무공이 쑥쑥 늘고 있었다. 그에 비해 마염견은 이미 완성을 한 상태에서 머물러 있었다.
“사부님보다 먼저 그자를 만나야겠군. 함께 갈 테냐?”
“그러려고 온 겁니다.”
그제야 도옥평이 어깨의 상처를 지혈하기 시작했다.
* * *
“사형!”
“이제 왔냐?”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술도 한잔 걸치고 있던 운산이 운청을 반겼다.
“대낮부터 무슨 술입니까?”
“마음이 괴롭구나.”
뜬금없는 엉뚱한 말에 운청이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운산의 맞은편에 앉았다.
“또 뭐가 문제입니까?”
“해도 해도 늘지를 않는구나.”
“뭐가 안 늡니까? 음, 이거 맛있군요.”
“너는 지금 사형이 이렇게 고민에 빠져 있는데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
“그래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잖습니까? 어이! 여기 밥 한 공기 가져와!”
운청이 건성건성 말하며 점소이를 불렀다. 그 태도가 못마땅했던지 운산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술잔을 비웠다.
“에휴…… 됐다. 내가 너한테 뭔 말을 하겠냐?”
“뭔데 그러는 겁니까? 혹시 적운상 그자한테 진 걸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건 아니죠? 우리는 무인이 아니라 도를 닦는 도사입니다. 무공이란 건…….”
“됐다. 됐어. 사부님 잔소리도 지겨운데 네 잔소리까지 들어야겠냐?”
운산이 손을 저으면서 말하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자 운청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알아보니까 적운상이 근처에 와 있다고 하더군요.”
“뭐? 여긴 왜?”
“제갈세가로 가고 있답니다. 대성상단하고 한바탕 한 모양입니다.”
“대성상단? 그럼 그 아저씨하고도 붙었나?”
운산이 말하는 그 아저씨란 대성상단의 팔대고수 중 가장 강하다는 도왕(刀王) 금정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별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도법은 호북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단했다. 호북에서 도를 쓰는 자치고 그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가 없을 정도고, 지금 형산파에 식객으로 머물고 있는 호남제일도 이존의도 그에게 패배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운산도 마찬가지였다. 운산은 예전에 금정신과 백여 초식을 겨뤘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겨우 반 초식 차이로 지고 말았다. 그 후로 금정신을 이기기 위해 무던히 노력을 했다.
“아니요. 금정신은 나서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듣기로는 구보지성이 직접 움직이고 있다고 하니 조만간 한판 붙을지도 모르죠.”
“어디냐?”
“네?”
“적운상이 있는 곳이 어디냐고?”
“아까 제갈세가로 가고 있다고 했잖습니까?”
“가자.”
운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운청이 황당하다는 듯이 그를 올려다봤다.
“저 지금 밥도 다 안 먹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서 뭘 하자는 겁니까?”
“흐흐. 너는 그냥 따라오기나 해.”
“싫습니다. 전 안 가렵니다.”
“그럼 관둬라. 나 혼자 간다.”
운산이 미련 없다는 듯이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자 운청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형! 사형! 돈은 내고 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