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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173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5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73화

173화. 인연의 끝 (1)

 

적운상은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삼 장로가 그 뒤를 따라 나갔다.

“앞으로.”

가마 안에서 혈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가마를 매고 있는 여덟 명의 혈마승들이 앞으로 걸어갔다.

가마는 적운상 앞에서 멈췄다. 적운상은 가마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내려라.”

혈불의 지시에 가마를 메고 있던 혈마승들이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러자 뒤쪽에 있던 혈마승 하나가 가마의 문 앞에 엎드렸다.

그제야 가마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혈불이 육중한 몸을 이끌고 엎드려 있는 혈마승을 계단 삼아 밟으며 땅으로 내려섰다.

“오랜만이구나.”

혈불이 탁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왔다.

“큭큭. 그렇군. 오랜만이군.”

적운상은 너무나 기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나를 찾는다고 들었다.”

“아니. 내가 찾는 건 네가 아니라 내 사매다. 양악이는 어디 있나? 그녀를 되찾으러 왔다.”

“천마는 형산파로 돌아가기를 포기했다.”

적운상의 눈빛이 바뀌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양악이가 어디에 있는지나 말해.”

“너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뭘 모르고 있다는 거냐?”

“네가 그렇게 강해지기까지 어떻게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느냐?”

“…….”

적운상은 멍하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는 너희를 모두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천마가 내게 조건을 걸었다. 너희를 살려주면 나를 따르기로. 나는 그 조건을 승낙했다.”

“그래서?”

적운상은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래서!”

적운상이 악을 쓰며 소리쳤다. 그러자 혈불이 희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와 천마는 이제 한 몸이다.”

“으아아아아아아!”

적운상이 이성을 잃고 혈불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혈불이 쌍장을 뻗어내자 제때에 피하지 못하고 뒤로 삼 장이나 튕겨 나왔다.

콰앙! 촤아아아아악!

땅에 내려선 적운상의 발이 계속 미끄러졌다.

“크윽!”

혈불의 쌍장을 막아낸 양팔이 얼얼했다. 무리하게 몸을 지탱하느라 다리도 욱신거렸다. 그제야 적운상은 냉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방금 받은 충격으로 손이 덜덜 떨려서 칼을 잡을 수가 없었다.

“쳇!”

적운상이 왼손으로 오른손을 주무르며 풀었다. 그러면서 천천히 혈불에게 다가갔다.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어.”

“나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그건 사매를 만나보면 알 일이지. 다시 한 번 해볼까? 이번에는 이 년 전처럼 너 대신 죽어줄 놈도 없으니까 조심하는 게 좋아.”

혈불이 무표정하게 적운상을 봤다. 그러나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적운상은 아직도 팔이 좀 얼얼했다. 어쩔 수 없이 옷을 찢어서 백운검과 손을 묶었다. 그리고 몇 번 휘둘러본 후에 혈불을 봤다.

“이 정도면 할 만하군. 덤벼. 살 생각은 하지 말고.”

“오늘 너는 인연의 끝을 보게 되리라.”

“닥쳐!”

쉬익!

적운상이 한걸음에 거리를 좁히며 백운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혈불이 손을 뻗어 적운상의 백운검을 막아냈다.

따앙!

맨손이 검과 부딪쳤는데도 혈불의 손은 멀쩡했다. 혈불옥장을 극한까지 익혔기 때문에 적운상의 백운검으로도 상처 하나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쉬쉬쉬쉿!

적운상이 혈불의 어깨와 다리를 노리고 빠르게 백운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때마다 모두 혈불의 손에 막혔다.

적운상이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조사동에서 익힌 베기를 하려고 했다. 그걸 눈치 챈 혈불이 바짝 거리를 좁혀왔다.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거리가 한순간에 사라지자 적운상은 또다시 뒤로 물러났다. 혈불이 거리를 주지 않기 위해 계속 바짝 따라붙었다.

이대로라면 조사동에서 익힌 베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적운상은 이 년간 조사동에서 폐관수련을 하면서 무공의 경지만 높아진 것이 아니었다. 금안뇌정신공도 십이성(十二成)까지 완벽하게 익혔다.

“저리…….”

적운상은 계속 뒤로 물러나면서 뇌기를 있는 대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눈에 황금색의 기운이 어른거렸다. 적운상은 십이 성의 뇌기를 혈불에게 전부 쏟아 부을 생각이었다.

“…꺼져!”

파지지지지지지직! 콰앙!

적운상이 왼손바닥을 쭉 밀어내자 그걸 받아낸 혈불의 육중한 몸이 뒤로 삼 장이나 날아갔다. 그래도 그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 장 정도를 더 미끄러진 후에야 멈춰 섰다.

“쿨럭!”

혈불의 입에서 피가 한 움큼이나 쏟아져 나왔다. 뇌기가 속을 헤집어 놓아서 엉망이었다. 그의 내공이 절륜하지 않았더라면 방금 받은 일격으로 숨이 끊어졌을 것이다.

혈불이 가슴을 움켜잡고 놀란 눈으로 적운상을 봤다. 혈불옥장과 혈도십팔식을 극한까지 익힌 이후로 이렇게까지 충격을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크윽…….”

혈불은 숨을 쉬기가 괴로웠다.

“쿨럭!”

다시 한 번 시커먼 피를 토해내자 그제야 좀 숨통이 트였다. 그러나 여전히 몸은 엉망이었다.

적운상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금안뇌정신공은 상대의 내공을 뚫고 들어가 몸을 헤집어 놓는다. 대신에 상대의 장력도 고스란히 그대로 받아내야 했다.

“쿨럭!”

적운상도 피를 한 움큼이나 토해냈다. 혈불을 후려쳤던 왼팔은 완전히 부러져서 덜렁거렸다. 속이 진탕되어 서 있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적운상은 발을 질질 끌며 혈불에게 다가갔다.

그런 적운상의 몸에서 뜨거운 열기가 확 번져 나와 주위를 압도했다. 기회를 틈타 덤벼들려던 혈마승들이 그같이 숨 막히는 기세에 몸을 움찔하며 움직이지를 못했다.

적운상이나 혈불은 그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아무리 부상을 입었다 해도 그들로서는 무리였다. 호랑이가 상처를 입었다고 해서 토끼가 죽일 수는 없는 것처럼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크윽…….”

적운상은 이를 악물었다. 입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부러진 왼팔에서는 움직일 때마다 극심한 통증이 왔다. 속은 미식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몸이 천근같이 무거웠다. 그래도 적운상은 계속 걸어갔다. 그의 눈에는 오로지 혈불만이 보였다.

혈불은 꼼짝도 않고 서서 계속 내공을 단전에 모았다. 그러나 적운상의 뇌기에 의해 엉망이 되어, 아주 미세한 기운밖에 모이지가 않았다.

“큭큭…….”

적운상이 드디어 혈불 앞에 섰다. 거기까지 가기가 왜 그렇게 힘이 들던지. 그 아주 잠시의 시간이 적운상에게는 끝나지 않는 영원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이제 혈불은 적운상의 완벽한 거리에 들어왔다. 적운상이 백운검을 꽉 잡았다. 다행히 아까 백운검과 손을 천으로 묶어놓았었기 때문에 놓치지 않을 수가 있었다.

적운상은 지금 서 있기도 버거웠지만, 한 번 정도는 검을 휘두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뒤가 문제였지만 생각하지 않았다. 마지막 일격에 모든 것을 걸 생각이었다.

스슥!

적운상이 오른발을 앞으로 반보 정도 밀었다. 그리고 오른손에 묶여 있는 백운검을 천천히 왼쪽으로 이동시켰다. 그렇게 자세를 잡자 적운상의 몸에서 무서운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화아아아아악!

혈불은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거대한 해일이 밀려오는 것 같은 압박감이 그의 몸을 눌러왔다. 그러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리가 덜덜 떨렸다.

죽음을 눈앞에 두자 두려움이 인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수천 명이나 되는 혈마승들이 신처럼 떠받는 그가 지금 적운상 한 명에게 겁을 먹고 다리를 떨고 있었다.

적운상이 사나운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혈불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 적운상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로 봐서 저건 몸이 멀쩡하다 해도 피할 수가 없었다.

“쿨럭!”

혈불이 피를 토해내며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적운상의 검이 공간을 갈랐다.

사아아아악! 파지지지직!

적운상의 몸을 중심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검이 궤적을 남기며 지나갔다. 적운상은 검에서 바람 소리를 들었다. 동시에 뇌기의 기운을 느꼈다.

“그대가… 이겼구나…….”

그것이 혈불의 마지막이었다. 혈불의 목이 스르륵 옆으로 떨어져 내렸다. 적운상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가슴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마치 호랑이가 포효하는 것 같은 소리였다. 그 소리에 혈마승들은 완전히 싸울 의사를 잃었다. 그들이 신같이 떠받들던 혈불이 죽었는데도 복수를 생각하기는커녕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서 도망을 갔다.

적운상은 그 자리에서 풀썩 무너져 내렸다. 더 이상은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힘이 없었다. 그때 뒤에서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적운상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삼 장로가 거기에 서 있었다. 지금 삼 장로가 손을 쓴다면 끝이었다. 적운상은 그를 상대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큭큭큭. 오늘 같은 날을 기다려왔다.”

“후… 당신한테는 고맙단 이야기를 해야겠군.”

의외의 말에 삼 장로가 멍하니 적운상을 내려다봤다.

“뭐가 고맙다는 거냐?”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약속… 지켰잖아.”

“흥! 난 네 녀석의 죽음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 하지만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가 있었어. 나 혼자였다면 중간에 무너졌을 거야.”

삼 장로는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랬던가…….’

아무리 악행을 일삼던 혈마승들이라지만 그들도 사람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적운상은 하루도 쉬지 않고 사람을 죽여 왔다. 한두 명일 때도 있었고, 백 명을 넘게 죽인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적운상은 정신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스스로를 정당화시키면서 계속 무너지려는 정신을 다잡았다. 그러나 혼자서 그렇게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만약 적운상이 혼자였다면 중간에 포기를 했거나 아니면 계속 그렇게 하다가 미쳐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삼 장로가 항상 묵묵히 지켜봐줬기에, 적운상은 지금까지 버틸 수가 있었다.

사실 삼 장로가 아니라 누구라도 상관이 없었다.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중요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옳다는 것을 누군가가 알아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다만 그걸 삼 장로가 했을 뿐이다.

삼 장로는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냥 중간에 떠났으면 적운상은 스스로 무너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정말 기가 막힌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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