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7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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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72화
172화. 혈로 (2)
“이대로 그냥 가도 되는 거냐?”
삼 장로가 뒤쫓아 오면서 물었다.
“무슨 말이야?”
“사실 그녀를 돕고 싶지 않나? 제갈세가까지 데려다 주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나에겐 할 일이 있어.”
“흥!”
삼 장로가 코웃음을 쳤다. 적운상은 알다가도 모를 놈이었다. 늘 그의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적운상은 마을 외곽의 야트막한 야산으로 향했다. 그곳에 혈마사가 있었다. 그러나 그곳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이미 그곳에 있던 혈마승들이 대거 몰려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수가 이백 명에 달했다. 그들을 유심히 보던 삼 장로가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이 호법이로군.”
혈마사의 호법은 모두 네 명이었다. 그 중 일 호법은 이 년 전에 혈불 대신에 적운상의 검에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삼 호법과 사 호법도 얼마 전에 적운상에게 죽고 이제 남은 건 이 호법뿐이었다.
“설마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구나. 네놈… 그때 죽여 버렸어야 하는 건데…….”
이 년 전의 일을 기억해내며 이 호법이 이를 갈았다. 그러건 말건 적운상은 백운검을 뽑아들었다.
“싸우기 전에 하나만 묻지. 혈불은 어디 있나?”
“내가 말할 거라 생각하나?”
“잘도 숨어 있군. 내가 못 찾을 거라 생각하나 보지?”
“그분은 숨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호법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그럼 너희들은 버림받았군.”
“뭐?”
이 호법이 무슨 말이냐는 듯이 적운상을 봤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혈마승들이 내 손에 죽었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이 호법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적운상의 말에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건 내 사매다. 그런데 혈불은 쥐새끼처럼 숨어서 사매를 감추고만 있군. 너희들보다 내 사매가 더 귀여움을 받나 보지?”
“그 입… 닥쳐라…….”
이 호법의 얼굴에 살기가 가득 떠올랐다. 그렇다고 겁먹을 적운상이 아니었다.
“나는 사매를 찾기 전까지는 포기하지 않아. 네놈들 씨를 말려버리겠다.”
순간 적운상의 몸에서 압도적인 기세가 확 주위를 덮쳤다. 그러자 이 호법은 물론이고 그 뒤에 있던 혈마승들도 주춤하며 바짝 긴장을 했다.
“사매가 어디에 있는지 말할 생각이 없다면 빨리 시작하지. 너희들을 처리하고 다른 곳으로 가야 하니까.”
“죽엇!”
이 호법이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들었다. 적운상은 무표정하니 기다리고 있다가 백운검을 휘둘렀다.
일검!
그 일검에 이 호법의 허리가 두 동강이 났다. 검이 지나갔는데도 이 호법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적운상은 그를 지나쳐가 그 뒤에서 덤벼드는 혈마승들을 향해 백운검을 휘둘렀다. 백운검의 궤적에 걸리는 모든 것이 베어졌다.
혈마승들이 마치 짚단이 쓰러지듯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옆에서 거리를 두고 있던 혈마승들이 혈도를 던졌다. 그러자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십여 개의 혈도가 날아왔다.
적운상은 백운검으로 혈도를 모두 쳐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뒤에서 십여 개의 혈도가 날아왔다. 혈마승들은 적운상의 거리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려고 했다.
모두들 멀찍이 떨어져서 혈도만 던져댔다. 지극히 소극적인 공격방법이었다. 이 호법이 단 일검에 죽고, 숨 몇 번 쉴 짧은 찰나에 이십 명이 넘게 쓰러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에 그간 들어온 소문도 그들을 소극적이게 만들었다.
석 달!
무려 석 달이었다. 그 석 달 동안 혈마승들은 끈질기게 그를 죽이고자 했었다. 암습에 암습을 거듭했고, 떼를 지어 습격을 했다. 그런데도 적운상은 오히려 곳곳에 있는 혈마사를 찾아다니며 하나, 하나씩 박살을 냈다.
그가 다녀간 곳은 개미새끼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했다. 혈마승치고 그 소문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훙훙훙! 따당! 땅!
적운상이 날아오는 혈도를 쳐내면서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자 그쪽에 있던 혈마승들이 좌우로 갈라져서 우르르 물러났다. 적운상이 그들 중 한쪽을 쫓아 좌측으로 돌았다. 그제야 다급하게 그들이 맞서려고 했지만 이미 들고 있던 혈도는 모두 던져버린 후여서 손에 무기가 없었다.
파가가가각!
“끄아아아악!”
“아아아악!”
혈마승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적운상은 마치 양떼를 쫓아다니는 늑대와 같았다. 혈마승들은 싸우기보다는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그 수가 월등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이백 명 중, 백오십 명이 넘게 죽었다. 걸린 시간은 겨우 일각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사십여 명은 뿔뿔이 흩어져서 모두 도망쳤다.
“후우…….”
적운상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백운검을 한 번 공중에 휘둘렀다. 그러자 백운검에 묻어 있던 피가 떨어져 나갔다.
“오늘도 이겼군.”
“가지.”
적운상이 몸을 돌렸다. 그러자 삼 장로가 죽어 있는 혈마승들의 시체를 힐끗 보고는 적운상을 뒤따라갔다.
* * *
그날 저녁, 적운상은 꿈을 꿨다. 주양악이 그를 꼭 안아주는 꿈이었다. 아침에 눈을 뜬 적운상은 주먹으로 힘껏 벽을 후려쳤다.
쾅!
앞으로 남은 시간은 한 달 정도였다. 그 안에 주양악을 찾지 못하면 사부인 임옥군과의 약속대로 형산파로 돌아가야 했다.
방 밖으로 나온 적운상이 세수를 하다가 자신의 손을 봤다. 도대체 이 손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인 걸까?
이제는 살인이 무감각했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끔찍한 느낌이었다. 사람을 베도 아무렇지도 않다니, 그건 아니었다.
그러나 주양악을 찾을 때까지는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혈불을 만나서 그녀에 대한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멈출 수가 없었다.
적운상은 물을 머리에 퍼부었다. 추운 겨울에 그렇게 물을 뒤집어쓰니 정신이 바짝 드는 느낌이었다.
순간 적운상이 몸을 돌림과 동시에 뒤에 있던 사람의 목을 잡고 주먹으로 후려치려고 했다.
“멈춰!”
적운상의 주먹은 그의 얼굴 바로 앞에서 멈췄다. 그는 운산이었다. 그 뒤에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운청이 멍하니 서 있었다.
몇 개월 전에 운산과 겨루던 적운상의 실력은 저렇지가 않았었다. 물론 운산보다 강하기는 했지만 저렇게 한 수에 제압할 정도는 아니었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적운상의 실력은 눈에 띄게 늘어 있었다.
그간 하루가 멀다 하고 혈마승들의 암습과 기습을 받아왔으니 강해지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당신이로군.”
적운상이 손을 풀었다. 그러자 운산이 방금 잡혔던 목을 손으로 만지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놀래라. 제대로 한 대 맞을 뻔했군.”
“무슨 일이야?”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
“해봐.”
“이러고 이야기할 수는 없잖아. 옷 좀 입고 저쪽으로 와. 같이 식사나 하자고.”
“그러지.”
적운상이 방으로 가서 옷을 입고 일층으로 내려갔다. 운산과 운청은 벌써 음식을 다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할 이야기가 뭐야?”
적운상이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실은 말이야. 그동안 우리가 쭉 당신을 따라다녔거든.”
“그런데?”
“뭐야? 안 놀라는 거야? 혹시 알고 있었어?”
“아니. 방금 듣고 알았어.”
“험! 아무튼 그래서 말이지. 이쯤 했으면 해.”
“뭐를?”
“혈마사 놈들을 죽이는 거 말이야.”
운산이 하는 말에 적운상은 젓가락으로 요리를 집다가 멈칫하며 그를 봤다.
“이유가 뭐지? 혈마사는 악행을 일삼는 자들이야. 내가 처리해주면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
“단순히 생각하면 그렇지. 하지만 상황은 그렇지가 않아.”
적운상이 계속 말해보라는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자 운산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당신을 쫓아다니면서 뒤처리를 하고 다녔어. 그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도 세간에서는 조용했던 거야.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절간에서 죽은 놈들은 우리가 모두 처리할 수 있었지만 길거리에서 날뛰다가 죽은 놈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지. 사람들이 당신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아니.”
“형산마검이라고 불러. 살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그게 무당파와 무슨 상관이지?”
“다른 곳에서 당신이 그렇게 날뛰었다면 상관이 없지. 하지만 여기는 호북이야. 여기서 살귀가 날뛰면 무당의 체면이 말이 아니지. 우리도 이런 일이 생길까 봐 그렇게 당신 뒤를 따라다니면서 고생을 했던 건데, 이젠 소용이 없게 됐어.”
“그래서 어쩔 셈인가?”
“어쩌긴, 말려야지.”
적운상이 피식 웃었다. 그걸 보고 운산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뭐야? 그 웃음은?”
“그러니까 한 마디로 나보고 무당파의 체면 깎이는 일은 하지 말라 이거로군.”
“그거야 뭐… 그렇지.”
“좋아. 그럼 그만두지.”
적운상이 너무나 쉽게 순순히 응하자 운산은 의외였다.
“정말이야?”
“대신에 사매를 찾으면 그만둔다. 아직은 아니야.”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군. 사제, 네가 설명해봐.”
운산이 옆에 있는 운청을 보며 말했다.
“적 대협, 소문이 잠잠해질 때까지만 조용히 있어주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당십걸이 당신을 막을 겁니다. 적 대협도 그걸 원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좋군. 둘의 실력은 알고 있으니 이참에 다른 사람들의 실력도 한 번 보지.”
탕!
“함부로 말하지 마!”
운산이 탁자를 내려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객잔 안에 있던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그를 봤다.
“사형, 빨리 앉으세요.”
운청이 옷깃을 잡아당기자 운산이 무안해하며 자리에 앉았다.
“이봐, 대사형인 운암은 융통성이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는 사람이야. 무당파에 조금이라도 해가 갈 것 같으면 절대로 그냥 넘기지 않아. 우리가 여기서 너를 설득시키지 못하면 그 사람이 올 거야. 그럼 이렇게 말로 끝나지 않아. 무당파를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꼭 그렇게 해야겠어? 네 사문에도 누가 갈 행동이라고.”
운산이 형산파까지 걸고넘어지자 적운상은 생각을 좀 달리해야 했다.
“그럼 한 달만 기다려 줘.”
“한 달?”
“그래. 그 안에 사매를 찾지 못하면 돌아가지.”
“음…….”
운산이 운청을 봤다. 그러자 운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우리가 그 성질 더러운 노인네들한테 가서 잘 말해볼게.”
“고맙군.”
“응? 그렇지. 고맙지.”
운산은 적운상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자 왠지 기분이 좋았다. 절대로 그런 말을 할 것 같지 않은 사람한테 그런 말을 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럼 그렇게 알고 간다.”
“그래. 아참.”
“뭔데?”
“잘 먹었다.”
적운상이 운산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이층으로 올라갔다.
“뭘 잘 먹었단 거야?”
운산이 운청을 보며 물었다.
“크으… 보면 모릅니까? 식사비 우리가 내라는 이야기 아닙니까?”
“쳇! 쪼잔하기는…….”
운산이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다.
* * *
적운상은 삼 장로와 함께 현의 외곽으로 향했다. 남장에는 어제 적운상에 의해 쑥대밭이 된 곳 말고도 또 한 군데의 혈마사가 있었다. 적운상은 지금 그리로 가는 길이었다.
“여기도 네가 오는 걸 미리 알고 있을 거다.”
“그렇겠지.”
삼 장로가 하는 말에 적운상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그곳이 그렇게 됐는데 이쪽에 연락이 닿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조용하군.”
삼 장로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말했다. 앞에는 다 쓸어져가는 음침한 폐찰이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것 같았다.
적운상이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었다.
“이곳이 확실해?”
“내 기억으로는 확실해. 하지만 나도 한동안 호남에 있었으니 이쪽 사정은 잘 모른다.”
안에는 곳곳에 거미줄이 쳐져 있고 먼지가 가득했다.
“아무것도 없군. 돌아가지.”
“후후… 그럴 수가 없을 것 같군.”
“뭐?”
적운상이 보니 삼 장로가 밖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적운상도 그쪽으로 가서 밖을 봤다.
혈마승들이었다. 적어도 삼백 명은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것은 적운상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그들의 앞에 있는 커다란 가마만 보였다. 그건 혈불이 타고 다니는 가마였다.
“드디어 만났군. 크크.”
적운상의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어렸다. 그걸 보고 삼 장로는 섬뜩한 기분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