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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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9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38화
장천운 일행은 정문 근처에 있는 객당의 방에서 소식이 오기를 기다렸다.
말을 전하러 간 무사가 일각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은데?”
사공명신이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교왕과의 일전으로 충격은 받은 그의 안색은 아직도 약간 창백했다.
“어쩌면 엉뚱한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어요.”
두양양이 미간을 좁히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구산이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대주, 정식 방문보다 몰래 들어와서 만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어차피 주백홍의 의향을 확실하게 알아야 해. 말로만 소성주를 따르겠다고 해놓고 다른 마음을 먹으면 나중에 엉뚱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어.”
“그건 그런데…… 두 소저 말대로 당장 저들이 엉뚱한 마음을 먹으면 곤란하지 않겠나?”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그러면 저들은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야.”
그때였다. 밖에서 발걸음소리가 방을 향해 다가왔다.
곧 문이 열리더니 삼십대 장한이 방문 밖에서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문주님께서 모셔오라 하셨소. 대표로 한 분만 나를 따라오시오.”
주백홍은 대봉전에서 장천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호위무사 열 명과 간부로 보이는 자들 셋이 그와 함께 있었다.
장천운은 주백홍의 전면 이 장 거리까지 걸어간 후 포권을 취했다.
“구천성 흑월대 대주 장천운이라 합니다.”
“오느라 수고가 많았네.”
“이른 새벽에 찾아와서 많은 말씀을 드리는 것도 결례일 것 같으니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나 역시 그게 좋을 것 같군. 지금 몹시 피곤하거든.”
“임시성주이신 소성주께선 대봉문이 신천검문을 대신해서 본 성의 지부 역할을 해주길 바라십니다.”
“우리 대봉문에게 구천성의 지부가 되어서 구천성의 명을 따르라, 그 말인가?”
“그렇습니다, 문주.”
“무슨 말인지는 알겠네만, 우리 대봉문은 지난 이백여 년 동안 한 번도 남 밑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 세상을 살다 보면 하기 싫은 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가 있지요.”
단순한 말이지만 그 속에는 뼈가 들어있었다.
일문을 십 년 동안 다스려온 주백홍이다. 그 말을 왜 못 알아들을까.
눈매를 꿈틀거린 그가 툭 내뱉듯 말했다.
“그래도 거부한다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만약 끝까지 거부하신다면 소성주님께서도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협박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사실 그보다 더한 말도 할 수 있었다. 사마경은 아예 대봉문이라는 이름을 지워버리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러나 아직은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일 때가 아니었다.
그 말은 최후에 해도 되었다.
“으음…….”
주백홍은 침음을 흘리고 고민에 쌓인 표정을 지었다.
분노가 치밀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오냐, 지금은 마음대로 짖고 까불어라, 이놈!’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한숨을 길게 내쉰 그가 짐짓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네. 전쟁에서 패했으니 어쩔 수 없지. 가서 전하게. 말씀대로 따르겠다고.”
의외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순순히 받아들인다.
장천운은 깊어진 눈으로 주백홍을 보며 다시 포권을 취했다.
“감사합니다, 문주. 그럼 간단한 서약문을 하나 써주시지요.”
주백홍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미간에 주름이 깊게 그어졌다.
“서약문?”
“소성주님께 충성을 맹세한다는 내용이면 됩니다.”
주백홍이 인상을 쓰며 장천운을 노려보았다.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건가?”
“문주님의 말씀을 못 믿어서가 아닙니다.”
“그럼 무슨 뜻으로 한 말인가?”
“저야 문주님께 말씀을 들었으니 믿는다지만, 소성주님께서 제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줄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서, 서약문을 꼭 받아가야만 하겠다?”
“소성주님께서는 말로 듣는 것보다 문서를 더 원하십니다.”
주백홍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눈 하나 깜박이지도 않고 자신을 몰아붙이는 어린놈이 괘씸했다.
‘죽일 놈! 네놈이 명을 재촉하는구나. 오냐, 그렇게 죽기를 원한다면 죽여주마!’
아예 이곳에서 죽일까?
다른 다섯 놈도 모두 죽여 버리고 흔적마저 지운다면 누가 알겠는가?
주백홍은 심장에서 전율이 일 정도로 살심이 치밀었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놈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었다.
놈이 구천성의 사자만 아니었어도 그렇게 했을 텐데…….
숨을 깊게 들이쉰 주백홍은 장천운의 두 눈을 똑바로 직시했다. 눈빛이 차갑게 타올랐다.
“좋아, 써주지.”
장천운이 서약서를 품에 넣고 대봉전을 나가자, 주백홍은 이를 갈며 태사의의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파스스스스.
나무로 된 팔걸이가 먼지처럼 부서졌다.
“왕 당주는?”
한쪽에 서 있던 중년무사가 싸늘한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먼저 출발했습니다.”
“한 당주가 가서 도와주게. 도망치는 놈이 있으면 안 되니까.”
“예, 문주.”
***
장천운 일행은 대봉문을 나오자마자 곧장 강을 건너서 동쪽으로 달렸다.
서서히 동이 트면서 새벽어스름이 밀려나고 있었다.
“대주, 저들이 너무 순순히 응해준 것 같지 않나?”
선우상이 이마를 찌푸리고 말했다.
구산은 그게 뭐 어떠냐는 듯 태평스런 표정이었다.
“저들도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거부하면 멸문을 당할지 모르는데요.”
“대주는 어떻게 생각해요?”
두양양이 장천운의 생각을 물었다.
장천운은 밝아오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
“내가 들은 주백홍은 이렇게 순순히 굽힐 사람이 아니오. 그런데도 순순히 굽혔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거요.”
“어떤 이유요?”
“그 이유는 저곳에 도착하면 알 수 있을 것 같소.”
장천운이 전면을 보며 말하자, 다른 사람들도 장천운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았다.
어스름이 밀려나는 자리에 숲이 펼쳐져 있고, 그들이 달리는 길이 그 숲을 향해 뻗어 있었다.
숲까지 삼십여 장쯤 남았을 때, 선우상이 눈을 치켜떴다.
숲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깊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현재 이곳에서, 이 꼭두새벽에 자신들을 죽이고 싶어 하는 자들은 한 부류뿐이니까.
“흥! 그럼 그렇지, 다른 꿍꿍이가 있을 줄 알았어.”
사공명신도 눈에서 한광을 번뜩였다.
“안에서 죽이면 본심이 드러날 테니, 밖에서 다른 사람들의 짓인 것처럼 꾸밀 생각이었나 보군.”
“어떻게 할 건가, 대주?”
구산이 말하며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장천운이 무심한 어조로 답했다.
“친다. 내가 선두에 서지.”
“저들도 작정하고 나왔을 텐데, 피해가는 게 낫지 않을까?”
“급히 동원했을 테니 염려될 정도는 아닐 거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확실하게 경고를 해놓는 게 좋겠어.”
“하긴, 그것도 그렇군.”
이제 숲까지의 거리는 이십여 장 정도. 그 거리는 결국 자신들을 죽이려는 자들과의 거리였다. 그럼에도 달리는 속도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십 장, 장천운이 현월을 손가락으로 툭 쳐서 올렸다. 뒤따르던 사람들도 무기를 빼들었다.
길은 숲을 관통하고 있었다.
장천운 일행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숲속 길로 들어섰다.
그때였다.
“쳐라!”
외마디 명령이 떨어지자, 어스름이 깔린 양쪽 숲속에서 백여 명이 쏟아져 나왔다.
“스스로 택한 길, 우리를 원망하지 마라!”
냉랭한 일갈이 장천운의 입에서 흘러나옴과 동시에 벼락이 번쩍였다.
사공명신 등도 망설이지 않고 적속으로 뛰어들었다.
검광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무사들을 휩쓸었다. 어스름 속에서 피가 튀고, 비명이 줄지어서 터져 나왔다.
단 여섯 명에 불과했지만, 장천운 일행은 강아지 무리에 뛰어든 호랑이였다.
“으아악!”
“피해!”
왕수한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살풍경에 눈초리가 찢어질 듯 눈을 부릅떴다. 오싹 소름이 끼쳤다.
“이, 이런……!”
장천운 일행이 젊다는 것만 생각하고 무사들을 동원했다.
동원한 무사는 모두 일백여 명. 젊은 놈들 중 두어 명이 절정 수준의 고수라 해도 그 정도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그 착각이 깨지는 데까지는 반의반각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데려온 무사 중 절반이 쓰러진 후에야 악을 쓰듯 소리쳤다.
“모두 물러서! 후퇴해!”
공포에 질린 무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뒤로 몸을 날렸다.
그때 장천운이 왕수한을 향해 몸을 날렸다.
왕수한은 기겁해서 다급히 검을 들어 방어했다.
쩌정!
장천운의 공격에 왕수한의 검이 부러졌다.
거센 충격을 받은 왕수한은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는 피를 삼키며 방어에 집중했다.
그러나 장천운의 검을 그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현월의 검첨에서 죽 뻗어나간 검기가 왕수한의 가슴을 가르고 지나갔다.
“크억!”
비명을 내지른 왕수한이 비틀거렸다.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단 일검도 감당해내지 못할 줄이야.
저놈이 누군데!
장천운이 경악으로 물든 그의 눈을 직시했다.
“목숨은 살려주겠소. 가서 문주께 전하시오. 한번만 더 이런 일이 벌어지면, 대봉문이라는 이름이 강호에서 지워질 거라고.”
비벽당주(秘壁堂主) 한무기가 도착했을 때는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이 시신과 부상자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상자 중에는 넋이 반쯤 빠진 왕수한도 있었다.
당황한 한무기가 물었다.
“왕 당주, 이게 어찌된 거요? 놈들은?”
왕수한이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놈들을 너무 몰랐소. 놈들을 제거하기는커녕 한 놈도 죽이지 못했소.”
“그럼……?”
“한 형, 가서 문주께 내 대신 말을 전해주시오. 저들의 요구를 그냥 받아들이라고 말이오.”
처연한 표정으로 말을 맺은 왕수한은 한무기가 말릴 새도 없이 자신의 부러진 검으로 목을 그어버렸다.
***
사마경은 진시 무렵에 신천장을 출발했다.
신천장으로 달려올 때만 해도 구천성 무사 칠백, 섭가장 무사 백, 철기보 무사 이백, 도합 천이 넘었다.
그러나 돌아가는 인원은 사백오십여 명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풍운산장 무사들을 빼면 삼백이 조금 넘는 정도. 승리를 기뻐할 수도 없는 참담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만큼은 구천성을 나설 때와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패배의 위기에서 지옥을 구경하고 살아남지 않았는가.
천혼전과 경천단 무사들조차 소성주파의 무사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전과 달랐다.
달라진 사람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사마경도 달라진 점이 많았다.
마음은 더욱 차가워졌고, 살기도 짙어졌다.
‘정말 아름답군.’
백리우진의 눈에는 그런 사마경이 더욱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그럴수록 마음이 조급해졌다.
수혼대와 흑월대의 반 이상이 죽거나 부상을 당한 상태다. 괴물 같은 장천운 그놈도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갈 절호의 기회!
그런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두 사람 때문에 다가갈 수가 없었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사마경의 비밀호위라고 했다.
‘젠장, 저자들만 아니어도 좋은 기횐데…….’
그가 계산을 따지느라 망설였다면, 독고민은 직접 몸으로 부딪쳤다.
“소성주, 이제부터는 제가 호위하겠습니다. 장천운보다 나을 겁니다.”
씨알도 먹히지 않았지만.
“본인 목숨이나 잘 지켜요.”
“…….”
백리우진은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크크크, 멍청한 놈. 그리 쉽게 마음을 얻을 것 같았으면 내가 왜 가만히 있겠어?’
그의 입꼬리가 길게 늘어질 즈음, 패왕거의 쪽문이 열리더니 사마경이 백리우진을 향해 말했다.
“백리 공자는 왜 거기에서 혼자 피식거리고 있어요? 뭐 못 볼 것 봤어요? 독고 공자와 함께 전면으로 가서 앞장서요.”
“아, 예, 소성주.”
풀이 죽어 있던 독고민이 속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백리우진을 쳐다보았다.
‘너 같은 거지새끼가 어디서 경매를 넘봐?’
‘빌어먹을.’
백리우진이 인상을 구기며 전면으로 가는데, 우측의 언덕 너머에서 몇 사람이 나타났다. 장천운 일행이었다.
그들을 본 독고민과 백리우진의 표정이 조금 전보다 더 일그러졌다.
‘개자식, 빨리도 오는군.’
‘어디 갔다 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