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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167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7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67화

167화. 호북으로 (2)

 

“놈!”

쉬익!

고안동이 사선으로 두 개의 겸을 엇갈리게 내려 그었다. 적운상은 단도로 그의 공격을 받았다.

챙챙챙챙챙챙챙!

정확히 여덟 번의 공격이었다. 적운상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제자리에서 그의 공격을 모두 쳐냈다. 그러면서 우측 팔목으로 고안동의 팔을 밀어내면서 단도로 어깨를 공격했다.

“웃!”

고안동이 재빨리 몸을 틀었다. 그러나 그건 속임수였다. 진짜 공격은 따로 있었다.

파각!

“크윽!”

목을 베일 뻔한 고안동이 깜짝 놀라며 낮게 신음소리를 냈다. 적운상의 단도가 아슬아슬하게 그의 목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조금만 늦었어도 그대로 목이 베였을 것이다.

챙챙챙챙챙챙!

이번에 적운상은 일곱 번의 공격을 연이어 쳐냈다. 그러다 우측 손의 단도로 고안동의 겸을 하나 걸어 당기면서 좌측 손의 단도를 힘껏 위로 그어 올렸다.

파삿!

적운상의 단도가 바로 눈앞을 스쳐 지나가며 고안동의 이마를 살짝 벴다. 고안동은 움찔하며 진땀을 흘렸다.

챙챙챙챙챙!

또다시 고안동의 겸과 적운상의 단도가 맞부딪쳤다. 그리고 이번에는 네 번 만에 고안동이 팔을 베였다.

고안동은 그렇게 세 번이나 공격을 허용했다.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한 번씩 그럴 때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세 번 모두 아주 약간의 차이였다. 그 약간의 차이로 인해 생사가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적운상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고안동의 겸이 몇 번이나 눈앞을 스쳐가며 아슬아슬한 상황에 놓였었지만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챙챙챙챙!

고안동이 적운상과 공격을 주고받다가 후다닥 물러났다. 더 이상 압박감을 견뎌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헉헉…….”

고안동은 일다경도 싸우지 않았다. 그런데도 심력소모가 커서 벌써부터 호흡이 거칠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중선일은 크게 놀랐다.

대성상단의 팔대고수인 그가 저리 힘들어하는 건 처음 봤다. 더구나 상대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애송이였으니…….

그의 그런 표정과는 반대로 여자를 보호하던 세 명의 사내들은 얼굴에 밝은 빛이 떠올랐다. 사실 그들은 거의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목숨을 버린다 해도 여자를 지킬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중선일은 어떻게 한 번 해보겠지만 고안동은 무리였기 때문이다.

“왜 도망가? 덤벼.”

적운상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면서 도발했지만 고안동은 그러지 않았다.

“흥! 네놈의 술수에 말려들 줄 아느냐?”

“그렇게 있는다고 상황이 바뀌는 건 아니야.”

적운상이 고안동과의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그리고 두 개의 단도를 휘둘러갔다.

챙챙챙챙! 파각!

“크윽!”

적운상의 공격을 막아내던 고안동이 인상을 쓰면서 비틀 거렸다. 다리를 살짝 베였기 때문이다. 적운상은 그가 비틀거리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팔과 가슴, 다리를 연이어 베었다.

파각! 파각! 파각!

“끄아아아아!”

고안동이 괴성을 지르면서 사납게 두 개의 겸을 휘둘렀다. 하나는 내려 긋고 다른 하나는 횡으로 그었다. 아껴두었던 절기인 십자베기였다.

온 힘을 다한 일격이라서 위력이 대단했다. 빠르기는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변화는 없었으나 두 개의 겸으로 펼치는 공격이라 피할 곳이 없었다.

그런데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적운상이 단도로 그의 십자베기를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내려 긋는 겸을 잡고 있는 손목과 횡으로 그어오는 쪽의 팔뚝을 벴다.

파가가각!

“크아아악!”

고안동이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두 개의 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손목과 팔뚝을 베이는 바람에 겸을 들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으으… 네놈…….”

고안동이 분한 눈으로 적운상을 노려봤다.

“여기까지만 하지. 계속 하겠다면 끝장을 보고.”

“오늘 일, 잊지 않겠다. 대성상단을 적으로 돌린 것을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다.”

고안동이 밖으로 나가자 중선일이 쓰러진 사내들을 부축하게 해서 뒤를 따라 나갔다.

적운상은 단도를 닦아서 품에 넣고 바닥에 떨어져서 뒹구는 술병을 집어 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고맙습니다. 대협.”

“감사합니다. 도움을 받았군요.”

사내들이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 적운상은 그들의 뒤에 있는 여자를 봤다.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드러나 있는 눈이 상당히 매혹적이었다.

“적 오라버니.”

백리난수가 부르면서 다가오자 적운상이 몸을 돌렸다. 그러자 사내 하나가 다급하니 그를 불렀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뭐요?”

“아까 형산파의 적 대협이라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럼 혹시 최근 호남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형산일검이 아닙니까?”

그는 얼마 전에 호남에 갈 일이 있었기 때문에 적운상에 대해 들은 것이 조금 있었다.

“맞소.”

“그렇군요. 잠시만 시간을 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꼭 좀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말해보시오.”

“어디로 가시는지는 모르지만 융중산(隆中山)까지 동행을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사례는 적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싫소.”

적운상이 딱 잘라 말하자 말을 꺼냈던 사내가 조금 무안해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저희들은 지금 제갈세가로 가는 중입니다. 그곳까지 아가씨를 무사히 모셔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십시오.”

적운상이 다시 힐끗 면사를 쓰고 있는 여자를 봤다. 여자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싫소.”

적운상은 다시 거절하고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사내들이 아쉬운 얼굴로 적운상의 뒷모습만 바라봤다.

* * *

 

“흥! 겁이 없는 놈이로군. 대성상단이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나?”

삼 장로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관심 없어.”

“네가 부린 객기 때문에 네놈 주변 사람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적운상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삼 장로를 봤다.

“지금 나를 걱정해 주는 건가?”

“누가 걱정을 한다는 거냐?”

삼 장로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내 생각에도 적 동생이 괜히 끼어들었던 것 같아. 도대체 왜 끼어든 거야?”

지금까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백수연이 적운상을 보며 말했다.

“누이가 다칠 뻔했잖아.”

“뭐?”

생각지도 못한 이유였다.

“지금 나 때문이라는 거야?”

백수연이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물었다. 적운상은 대답은 않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지금 묻고 있잖아! 야! 적운상!”

백수연이 아무리 불러도 적운상은 돌아보지 않았다.

“참 나…….”

“훗! 부끄러운가 봐요.”

백리난수가 하는 말에 백수연이 미소를 지었다.

‘쯔쯧. 곧 죽을 줄도 모르고…….’

삼 장로가 적운상과 백수연, 백리난수를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 * *

 

적운상은 반나절 가까이 돌아다니면서 객잔을 확인했다. 그러다 허름한 객잔의 이층 창문에 붉은 천이 묶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관추서가 남긴 표식이었다.

적운상은 그리로 가서 방을 잡았다. 관추서는 어디를 갔는지 방에 없었다. 저녁을 먹으며 기다리고 있는데 관추서가 객잔으로 들어섰다.

“아! 적 대협. 오셨군요.”

관추서가 다가와 탁자에 앉았다. 그리고 힐끗 삼 장로를 봤다.

“찾았소?”

“네. 대충 짐작 가는 곳이 있습니다.”

적운상이 삼 장로를 봤다.

“형문산 어디로 가면 되지?”

“흥! 너는 내가 가자는 데로만 따라오면 된다.”

“범어사.”

관추서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삼 장로는 흠칫하며 그를 봤다.

“맞지 않소?”

“흐흐흐. 그렇군. 네놈. 추적꾼이었군.”

“그렇소. 일반 사찰로 위장하고 있지만 사실 그곳이 혈마사 아니오?”

“잘도 알아냈구나.”

“쉽지는 않았소.”

“네놈도 곧 죽을 것이다.”

삼 장로가 음산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날 밤, 모두가 잠들어 있는 늦은 시각에 누군가가 조용히 적운상의 방문을 두드렸다. 관추서였다.

“적 대협.”

“무슨 일이오?”

“정말 혈마사를 상대할 생각입니까?”

“그렇소.”

“혼자서는 무리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요?”

“실은 낮에 말했던 범어사는 혈마사가 아닙니다. 아니 혈마사가 맞기는 하지만 그곳에 혈불이 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좀 더 세세하게 말해보시오.”

“그동안 제가 알아본 바로는 혈마사는 한 군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호남은 물론이고 이곳에도 곳곳에 있습니다. 다만 보통 사찰로 위장을 하고 있어서 모를 뿐입니다. 그 수가 제가 알아낸 것만 열 군데가 넘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위장을 하고 섞여 있다는 겁니다.”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범어사 같은 경우는 절에 있는 중들 전부가 혈마승들입니다. 하지만 다른 몇몇 곳은 일반 사찰이나 다름없고, 다만 몇몇 사람들만 혈마승들이었습니다. 그렇게 곳곳에 산재해 있는 혈마승들의 수가 굉장히 많습니다. 몇백, 아니 몇천 명이 될지도 모릅니다.”

“상관없소.”

“…….”

관추서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으로 적운상을 봤다.

“내가 찾는 건 내 사매요. 그들 모두를 상대할 생각은 없소. 하지만 사매가 죽었다면… 그때는 나도 모르겠군.”

관추서는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이 사람이라면, 적운상이라면 혈마사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천 명이 됐든 만 명이 됐든 적운상의 손에 걸리면 씨도 안 남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당신이 할 일은 여기까지군. 그동안 수고했소.”

“여기서 의뢰를 마칠 생각이십니까?”

“그렇소. 나 때문에 당신까지 위험해지는 건 바라지 않소.”

“알겠습니다. 여기에 그동안 제가 알아낸 곳들을 적어 놓았습니다. 모두 열일곱 군데입니다.”

“고맙소. 보수는 얼마를 주면 되겠소?”

“훗! 은자 한 냥이면 됩니다.”

적운상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목숨을 걸고 일한 것치고는 대가가 너무 적었다.

“정말 그거면 되오?”

“그렇습니다. 어차피 이번 일은 보수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그 정도면 됩니다.”

“알겠소.”

적운상이 품에서 은자 하나를 꺼내서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든 관추서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적 대협, 꼭 사매를 찾기를 바라겠습니다.”

“고맙소.”

“그럼 저는 내일 아침에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소.”

관추서가 방을 나가자 적운상이 그가 준 종이를 펼쳐봤다. 안에는 범어사를 비롯한 여러 군데의 사찰 이름과 위치가 적혀 있었다.

적운상은 의외로 너무 쉽게 일이 풀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혈마사는 그동안 여러 차례 호남에 나타나 피를 불러일으켰었다. 그런데도 지금껏 아무도 그들의 행적을 추적해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드러나니 조금 이상한 생각까지 들었다. 관추서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여기면 그만이었지만, 그렇게만 생각하기에는 뭔가 석연찮은 느낌이었다.

‘과민반응일지도 모르겠군.’

적운상은 애써 생각을 떨쳐버리고 침상에 누웠다. 그렇게 잠시 누워 있으니까 주양악의 얼굴이 생각났다.

‘후우… 살아만 있어라.’

적운상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 * *

 

적운상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간단하게 몸을 풀었다. 이제는 초식에 구애받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초식을 버린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몸을 푼 후에 대충 씻고 나니 백수연과 백리난수가 일어났다. 적운상은 주방으로 가서 양해를 구하고 직접 요리를 했다.

“먹어봐.”

“어머, 적 오라버니가 직접 만든 거예요?”

“응. 오랜만에 하는 거라서 맛은 자신이 없어.”

“음… 아니에요. 맛있어요.”

백리난수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백수연도 요리를 조금 먹어보니 굉장히 맛있었다.

“훗! 객잔 하나 차려도 되겠다.”

“칭찬이 과한걸.”

“아니야. 정말 맛있어.”

백수연은 맛있는 요리를 먹는데도 표정이 밝지 못했다. 적운상이 이렇게 직접 요리를 해준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운상은 혼자 떠나려는 것이다. 저번에 정암사에서 다쳐서 의원에 있었을 때부터 적운상은 그렇게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백수연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여기까지 따라왔다. 적운상도 여기까지는 큰 위험이 없다고 여겼기에 함께 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아니었다. 이 앞에는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적운상은 그 위험으로부터 백수연과 백리난수를 지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기서 헤어지려는 것이다.

“언니, 왜 그래요? 표정이 좋지 않아요.”

“응? 아니야. 훗!”

백수연이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제야 백리난수는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적 오라버니.”

백리난수가 적운상을 불렀다. 그러자 적운상이 그녀를 봤다.

“난수야.”

“네.”

“백 누이.”

“…….”

백수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젓가락을 깔짝대며 요리만 집어 먹었다.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갈 거야.”

“적 오라버니!”

“알고 있겠지만 더 이상은 안 돼. 너무 위험해.”

“하지만…….”

백리난수가 더 뭔가를 이야기하려고 하자 백수연이 그녀를 말렸다.

“그만해. 너나 나나 적 동생에게는 그저 짐일 뿐이야. 저번에 정암사에 갔을 때 그걸 알았잖아. 우리가 따라가면 우리 때문에 적 동생이 죽을 수도 있어.”

“언니…….”

백수연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주르륵 흘러내렸다. 백수연은 적운상을 똑바로 쳐다봤다.

“돌아올 거지?”

“응.”

“나… 기다려도 돼?”

적운상은 대답하지 않았다.

“난, 아무래도 안 되겠어. 흐윽… 내가 너무 비참하고 구차하게 느껴져서… 마음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흑… 그게 안 돼. 어떡하지 나…….”

백수연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눈물이 계속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러는 것조차도 그녀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나 좋아하는 걸 어쩐단 말인가?

“누이, 울지 마. 누이는 반드시 좋은 남자 만날 거야.”

적운상이 활짝 웃으면서 백수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독여줬다. 그러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백리난수를 봤다.

“미안해. 누이를 부탁해.”

“적 오라버니…….”

“두 사람 다 건강해. 갔다 올게.”

적운상이 말을 마치고 이층으로 연결된 계단을 봤다. 삼 장로가 내려오다가 분위기가 이상하자 코웃음을 쳤다.

“가지.”

“죽을 걸 알고 작별 인사라도 나눈 거냐?”

“그건 오늘 당신이 해야 할 일이야.”

적운상이 하는 말에 삼 장로가 울컥했지만 꾹 눌러 참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백수연과 백리난수는 객잔 밖으로 나와서 멀어져가는 적운상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무사하겠죠?”

“응. 그럴 거야. 강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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