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63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63화
163화. 정암사의 혈투 (3)
소녀가 안내를 한 곳은 낡은 암자였다. 지붕은 곳곳이 뚫려 있고 벽은 금이 가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러나 비를 피할 정도는 되었다.
“너는 누구냐?”
옥조진인이 자리를 잡고 앉으며 소녀를 향해 물었다. 소녀는 일행을 이리로 데리고 왔으면서도 경계를 하면서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저는 강은영이에요.”
“강씨로구나.”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마치 먹이를 앞에 두고도 경계를 하는 고양이 같았다.
“나는 백리난수라고 해.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할까?”
백리난수가 생긋 미소를 지으면서 친근감 있게 굴자 강은영이 조금 경계심을 늦췄다.
“여기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혈마승들이 무섭지 않아?”
“무서워요. 하지만… 원영이를 구해야 해요.”
“원영이는 누구야?”
“제… 제 동생이에요.”
강은영이 말을 하면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걸 보고 백리난수는 잠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동안 백수연은 적운상의 상처를 살피며 당장에 할 수 있는 치료를 다 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지혈을 하는 것이 다였다. 금창약은 비에 젖어 쓸 수가 없었다.
“상처가 곪을 수도 있어.”
“괜찮아.”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면서 다리의 상처에 손을 가져다댔다.
파지지지직!
뇌기가 일며 살이 타는 냄새가 났다. 고통이 클 텐데도 적운상은 살짝 인상만 쓰고 말았다.
“뭐, 뭘 한 거야?”
백수연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보고 있던 백리난수가 대신 대답을 했다.
“상처를 지진 거예요.”
예전에 백리난수가 다리를 다쳤을 때도 적운상은 그런 식으로 치료를 해줬었다. 이 년이나 지났지만 그때의 흉터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게 가능한 거야?”
적운상은 대답 대신 다리의 상처를 보여줬다. 마치 불로 지진 것 같은 흔적이었다.
“이렇게 하면 곪지 않아.”
“팔도 다친 거야?”
“약간.”
“봐봐.”
적운상이 팔을 내밀자 백수연이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괜찮아. 내가 할게.”
적운상은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뇌기로 상처를 지졌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던 백수연이 안타까운 눈으로 물었다.
“항상 그렇게 치료해왔던 거야?”
“급할 때는.”
“후우…….”
적운상이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강은영을 봤다.
“혈마승들은 어디 있지?”
“…….”
강은영은 적운상을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네가 그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준다면 원영이라고 했나? 그 아이를 내가 구해주마.”
“정말이요?”
“그래. 아까 봤는지 모르지만 난 꽤 강해.”
“봤어요. 정말 통쾌했어요. 그 나쁜 놈들을 마구 죽였잖아요.”
강은영이 벌떡 일어나서 주먹과 발을 마구 휘두르면서 말했다. 아까 적운상이 혈마승들을 상대하던 걸 나름대로 흉내 낸 것이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해봐. 사정을 알아야지 도와주지.”
“알았어요.”
강은영은 경계심이 싹 사라졌는지 적운상의 앞에 바짝 다가와 앉았다. 그 모습을 보고 백수연이 살짝 미소를 흘렸다.
“아주 타고났군. 타고났어.”
“뭐가?”
적운상이 무슨 말인지 몰라 의아해하며 물었지만 백수연은 그저 코웃음만 칠 뿐이었다.
“원영이는 내 동생이에요.”
그렇게 서두를 꺼낸 강은영은 그간의 일을 모두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강은영은 인근의 산골마을에서 살던 아이였다. 그 산골마을과 가까운 곳에는 정암사라는 절이 있었다.
그곳에는 스님들이 몇 명 살았는데 모두들 마음씨가 좋아 마을사람들의 일을 곧잘 도와줬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스님들이 모두 바뀌었다.
그 전에 있던 스님들이 워낙에 잘 대해줘서 마을사람들은 큰 경계를 하지 않고 그들을 대했다. 그런데 그들이 갑자기 마을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몇 안 되는 여자만 빼고 모두 죽였다. 나이가 어려도 남자는 모두 죽였다. 그리고 여자들을 정암사로 끌고 갔다. 강은영은 그때 나이가 어렸다. 겨우 열 살이었다.
거의 이 년 동안 강은영은 그곳에서 갇혀 살았다. 혼자가 아니었다. 네 명이 같이 있었고, 그 중 한 명은 그녀의 동생인 강원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명이 끌려갔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강은영은 덜컥 겁이 났다. 도망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강원영과 같이 도망가기에는 무리였다. 동생인 강원영은 한쪽 다리를 절었다.
강은영은 나가서 사람을 불러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생을 혼자 남겨놓고 다른 한 명과 같이 도망쳤다. 그 한 명은 잡혀서 끌려갔다. 그러나 강은영은 잡히지 않았다.
예전부터 숨박질이라면 자신 있던 그녀였다. 숨고 숨어 다니며 그들의 손을 피했다. 하지만 산을 내려갈 수가 없었다. 내려가는 길목은 늘 그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일 년을 보냈다. 그러다 적운상을 보게 된 것이다. 어젯밤에 멀리서 적운상을 지켜보던 것도 그녀였다. 그녀의 동작이 워낙에 날래서 적운상은 그 움직임만 보고 고수로 오해를 한 것이다. 그리고 아까 대범하게 동굴 안으로 들어왔던 것도 그녀였다.
“이상하군. 잠깐 손을 내밀어봐.”
“네.”
강은영은 아무 생각 없이 적운상이 시키는 대로 손을 내밀었다. 적운상은 그녀의 완맥을 잡고 뇌기를 아주 약간만 밀어 넣었다. 강은영은 뭔가 찌릿한 것이 파고들자 약간 놀랐지만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적운상의 생각대로였다. 산속에서 커서 아무리 날래다지만 강은영은 어린 여자아이였다. 혈마승들을 피해 도망 다녔다는 것도 그렇고, 적운상의 추적을 피한 것도 그렇고 무공을 모르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완맥을 잡아봤는데 강은영은 내공을 익힌 상태였다. 그것도 일반적인 내공이 아니었다. 적운상이 익힌 금안뇌정신공과 같았다.
그것을 확인한 적운상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네 사부가 누구냐?”
“네?”
“누구에게 무공을 배웠지? 네 몸에는 뇌기가 돌고 있어. 네 나이치고는 성과가 빠른 편이야. 누군가가 제대로 가르쳤다는 뜻이지. 누가 너한테 무공을 가르쳐줬지?”
“무공이요?”
“그래.”
“혹시 숨 쉬는 거 말하는 거예요? 뱃속이 따뜻해지고?”
“그래. 그거다.”
“그건 엄마가 가르쳐준 건데요.”
“엄마는 어디 있지?”
“엄마는… 죽었어요.”
강은영이 축 처진 모습으로 말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안쓰럽게 보였다.
“엄마의 이름이 뭐냐?”
“강해원이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네가 익힌 무공이 뭔지 알아?”
강은영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녀는 그저 엄마가 가르쳐주는 걸 어렸을 때부터 해왔을 뿐, 자세한 건 아무것도 몰랐다.
적운상은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강은영의 몸에 쌓인 뇌기는 금안뇌정신공이 분명했다. 그것도 벌써 삼성(三成)의 성취를 넘어선 상태였다.
예전에 쌍둥이 중 하나였던 나연란의 성취가 그랬었다. 그녀의 아버지인 나한중이 밤마다 몰래 진기도인을 해줬기 때문에 그렇게 성취가 빨랐었다.
적운상의 생각에는 강은영도 그랬을 것 같았다. 강은영의 엄마가 진기도인을 해줬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지 않다면 저 나이에 그런 성취를 이루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적운상이 강은영을 빤히 쳐다봤다. 그녀는 전혀 모르고 있지만 형산파의 무공을 익히고 있으니 형산파의 제자라 봐야 했다.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내 이름은 적운상이다.”
강은영은 갑자기 왜 적운상이 이름을 말하는지 이유를 몰랐다. 그러나 어쨌든 상대가 이름을 밝혔으니 자신도 이름을 말해야 했다.
“저는 강은영이에요. 아까 말했잖아요.”
“그래. 아무래도 네 엄마는 형산파와 관련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네가 배운 무공은 형산파의 금안뇌정신공이야.”
“뭐?”
“에?”
적운상이 하는 말에 백수연과 백리난수가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자세한 건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네가 금안뇌정신공을 익힌 이상 너는 형산파 사람이다. 일단은 앞으로 나를 사형이라고 불러.”
“사, 사형… 이요?”
“그래.”
“그게 정말이야?”
백수연이 묻는 말에 적운상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응. 금안뇌정신공이 확실해. 그것도 굉장히 빠른 성취야.”
“세상에… 전혀 모르고 있었잖아.”
“세상인연이 다 그런 것이지.”
옥조진인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뜻하지 않은 일은 항상 산재해 있는 법이야. 그것을 인간의 지혜로 어찌 헤아리겠나? 모든 것이 다 인연이야. 인연.”
“호호. 그렇게 말하시니까 정말 도력이 높은 도사님 같아요.”
백리난수가 웃으면서 말하자 옥조진인이 짐짓 화난 척을 하며 소리쳤다.
“뭐야? 내가 전에 말했잖아? 내가 이래봬도 청성파 장문인의 사형이야! 내 도력이 하늘까지 닿아 있는 걸 모르는 거냐?”
“알았어요. 제가 말실수를 했어요.”
“험! 앞으로는 조심해.”
사실 백리난수는 조금, 아니 아주 많이 옥조진인의 신분이 의심스러웠다. 청성파 장문인의 사형이라는데 아까 싸우는 것을 보니 영 아니었다. 쓰는 무공이 정종무공인 것 같기는 했지만 난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혈마승들을 상대하면서 죽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은영아.”
“네. 사… 형.”
“너는 나와 함께 가자.”
“하지만 원영이는 어떻게 하고요?”
“내가 가보마. 하지만…….”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컸다. 혈마승들은 여자들을 실컷 유린할 대로 유린한 후에 죽인다. 시간이 그렇게 지났으니 아직까지 살아 있을 가능성이 없었다.
“각오는 하고 있어라. 원영이는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단 말이야.”
강은영이 악을 쓰며 소리쳤다. 적운상은 말없이 강은영을 보다가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래. 나도 그러기를 바란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가볼 테니까.”
“정말이요?”
“그래.”
적운상이 미소를 지어 보이며 강은영을 안심시켰다.
“누이, 은영이를 부탁해.”
“혼자 가려는 거야?”
“응. 위치를 알았으니까 가서 살펴보고 올게. 아마 그쪽에서도 우리를 찾고 있을 거야. 혹시라도 들키면 맞서지 말고 도망쳐.”
“같이 가.”
“아니. 이번에는 혼자 갈 거야. 그래야 할 것 같아.”
백수연이 조금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러자 적운상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어깨를 살짝 잡았다가 놓았다.
“걱정 마.”
“…….”
“적 오라버니, 조심하세요.”
“응. 옥조진인, 세 사람을 부탁합니다.”
“알겠네. 싸우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그냥 도망쳐.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으니까.”
“그러죠.”
“사형!”
강은영이 큰 목소리로 부르자 적운상이 뒤를 돌아봤다.
“원영이… 원영이를 꼭 구해주세요!”
“그래. 기다리고 있어.”
“네!”
적운상이 밖으로 나왔다. 아까는 그렇게 세차게 퍼붓더니 빗줄기가 다시 가늘어져 있었다.
‘오늘 밤에 끝내야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적운상은 경공을 펼쳤다.